[평창특집] 소울메이트 임효준·황대헌 선수

2회 룸메이트? 소울메이트!

지난 소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은 노메달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대한민국 쇼트트랙을 이끌고 나가던 곽윤기, 노진규 두 선수가 부상과 질병으로 올림픽에 나가지 못한 것이었다.

앞서 심석희, 최민정 선수 글에서도 쓴 바와 같이 대한민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때는 에이스와 그에 못지않은 실력의 이인자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대표팀의 성적을 견인했다. 그런 면에서 지난 소치 올림픽에서는 그런 에이스와 이인자 역할을 할 선수가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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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어떨까. 적어도 소치 올림픽 때와 같은 노메달의 부진을 겪진 않을 듯하다. 지난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대표팀은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월드컵 시리즈에서부터 자칫하면 올림픽 출전권도 못 따는 거 아니냐는 불안감을 던져줄 정도로 부진했다.

오죽하면 어깨 부상(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골육종) 중인 노진규 선수가 올림픽 개인전 출전 자격이 없는데도 티켓 확보를 위해 개인전에 출전해서 출전권을 따왔을 정도였다. 그에 반해 이번 시즌 남자 대표팀은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올림픽에 대해 기대감을 높였다.

이번 글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선전을 이끄는 두 선수, 임효준, 황대헌 선수이다.

두 선수는 2017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나란히 종합 1·2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개인종목 출전권을 따냈고 선수촌에선 룸메이트로 같은 방을 쓰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새로운 신데렐라로 등장할 두 선수. 3살 터울 룸메이트이자 소울 메이트인 두 선수의 이야기이다.

사진=임효준-황대헌 선수(사진 중간, 오른쪽)

부상 이겨내고 제2의 안현수 아닌 제1의 임효준으로

안현수 혹은 빅토르 안. 쇼트트랙 역사상, 아니 전 세계 스포츠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귀화 스캔들을 일으킨 안현수 선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복잡한 감정을 안겨주는 선수이다.

누가 뭐래도 안현수 선수는 쇼트트랙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쇼트트랙 선수를 통틀어 올림픽 금메달만 6개를 따내고, 세계선수권을 6회 우승한 선수는 안현수 선수가 유일하다.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누구도 그가 세계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이자 쇼트트랙 황제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안현수 선수에 비겨 제2의 안현수라고 불리는 선수가 있다면 매우 뛰어난 잠재력이 있는 선수일 것이다.

그런데 바로 지난 2017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1위의 성적을 거둔 임효준 선수는 제2의 안현수라는 수식어가 오래전에 붙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선수이다.

안현수 선수가 졸업한 한국체육대학교 후배이기도 한 임효준 선수. 과연 그가 제2의 안현수라는 수식어를 뛰어넘어 쇼트트랙 선수 임효준이란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을까.

이미 그는 깜짝 놀랄 실력으로 전현 국가대표 선수들을 제치고 종합 1위에 오른 2017 국가대표 선발전뿐만 아니라 이번 시즌 월드컵 1차 대회를 통해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의 후계자가 될 자질을 보였다.

사진=임효준 선수

제2의 박태환 꿈꾸다 쇼트트랙 선수로

어릴 적부터 운동 신경이 좋았던 임효준 선수를 부모님은 박태환 같은 수영 선수로 키우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면봉으로 장난을 치다 고막을 다치면서 임효준 선수는 수영을 그만둬야만 했다.

이후 임효준 선수는 세계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축구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했지만, 부모님은 그가 개인종목 선수로 성공하길 원했다. 결국, 그는 부모님의 뜻을 따라 집에서 가까운 아이스링크를 다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쇼트트랙 선수가 됐다.

뛰어난 자질 덕분에 어려서부터 각종 국내 대회를 휩쓸며 주목을 받은 임효준 선수는 2012년 제1회 동계유스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정상에 올랐다. 그때 함께 여자부 1000m에서 우승한 선수가 바로 심석희 선수였고, 선수촌 룸메이트이자 함께 월드컵 1차 대회에서 1·2위를 휩쓸었던 황대헌 선수가 4년 후 같은 종목에서 우승한 것도 재미있는 인연이다.

승승장구하던 임효준 선수는 주니어무대를 넘어 국가대표에 도전하려던 고등학교 2학년 때 그만 오른 발목이 골절되고 만다. 이제 막 선수로서의 기량이 꽃피려던 찰나 시련이 닥친 것이다.

지루한 재활 끝에 6개월 만에 복귀했지만 오래지 않아 이번에는 오른쪽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는다. 그리고 다시 지리한 재활 끝에 몸 상태를 회복해 참가한 다음 대회에선 앞서 넘어진 선수에게 걸려 넘어져서 허리를 다치는 부상을 입는다.

그야말로 불운의 연속, 그렇게 지긋지긋한 부상의 악몽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만은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재활을 마치고 출전한 2016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그는 종합 순위 10위에 그치며 그 자존심마저 큰 상처를 입었다. 물론 좌절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몸 상태가 정상이라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도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한다.

이에 절치부심하여 1년간 훈련에 몰두한 임효준 선수는 2017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놀랄 만한 기량을 보여주며 종합 1위의 성적을 거두며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특히나 스피드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며 순식간에 선두로 뛰쳐나가는 모습은 전성기의 안현수 선수 모습을 연상한다는 평을 받았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임효준 선수의 어머니는 아들의 우승에 펑펑 눈물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부모님으로서 마음고생도 심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임효준 선수가 선발전을 앞두고 용과 호랑이가 싸우는 꿈을 꿨다는 것이다. 보통은 태몽으로 많이 꾸는 꿈인데 미혼 남성인 임효준 선수가 꾼 것은 올림픽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금메달을 얻는다는 꿈이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사연은 임효준 선수는 중요한 시합 전에는 헤어스타일이나 패션에 변화를 준다는 것이다. 지난 선발전을 앞두고 임효준 선수는 펌을 했다고 하는데 다가올 평창 올림픽 때는 어떤 변화를 줄지 기대된다.

사진=임효준 선수

스피드와 순발력, 완급조절로 올림픽 정상 꿈꾼다

2017 국가대표 선발전이 국내 무대에서 그의 실력을 보여준 대회였다면 2017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는 국제무대에서 그의 경쟁력을 입증한 대회였다. 임효준 선수는 1차 월드컵 대회에서 1500m와 1000m에서 금메달, 500m에서는 은메달을 따내며 순식간에 세계 최고 스케이터의 자리에 올랐다.

다른 나라 선수들뿐만 아니라 언론들, 코칭 스태프들까지 깜짝 놀랄 정도의 훌륭한 성적으로 전 세계의 쟁쟁한 실력자들을 번번이 추월하며 본인의 장점을 맘껏 과시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나 1000m 결승에서 막판에 네덜란드의 싱키 크네트흐 선수에게 역전을 허용했다가 결승선에서 극적으로 추월하는 장면은 임효준 선수의 기량과 순발력, 승부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오랫동안 대한민국이 기다리던 막판에 경기를 뒤집는 에이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결승선을 통과하던 임효준 선수는 싱키 크네트흐 선수에게 밀려 넘어지면서 빙판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가벼운 부상을 입자, 더 이상 무리하지 않고 귀국했다. 이후 검사 결과 가벼운 요추 염좌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후 재활에 힘쓰다가 목동에서 열린 4차 대회에 출전한 임효준 선수는 아직은 컨디션이 70~80% 상태라 자신의 스타일대로 경기하지 못하고, 개인종목 노메달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하지만 5000m 계주에선 마지막 주자로 나서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며 월드컵 시리즈 남자 계주에서 1071일 만에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따내는 데 기여했다. 계주 2번 주자로 나선 건 처음이어서 긴장도 많이 했지만, 형들의 격려를 받으며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힘들 때마다 ‘의심은 오로지 연습으로만 없앨 수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빙상장으로 달려간다는 임효준 선수. 그는 올림픽 4관왕을 노리고 있다. 과연 그 바람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으나 지난 1차 월드컵 대회를 통해 그 가능성은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의 가장 큰 적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부상. 5년의 세월을 부상으로 허비하고 이번 월드컵 시리즈의 절반도 날린 만큼 이번엔 꼭 부상 없이 건강하게 올림픽을 치르길 바란다.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앙팡테리블, 황대헌

앙팡테리블(enfant terrible)은 프랑스어로 ‘무서운 아이’라는 뜻으로 프랑스 소설가인 장 콕토가 쓴 동명의 소설 제목에서 비롯된 말이다. 원래 뜻은 깜찍하고 엉뚱한 짓을 잘하는 조숙한 아이들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기성세대가 기존의 도덕관념과 사회적 권위에 대해 도전하는 젊은 세대에 대해 은근히 느끼는 당혹감과 두려움을 표현하는 말로 유행하기도 했다.

이 단어는 스포츠계에서도 잘 사용하는 말로 10대 어린 선수가 기존 성인 선수들을 능가하는 활약을 펼쳐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랄 때 많이 쓴다.

축구로 따지면 90년대 후반 K리그의 중흥을 이끌었던 고종수 선수나 바르셀로나 유소년 출신으로 이탈리아 세리에-A 헬로스 베로나에 입단한 이승우 선수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쇼트트랙 선수 중에도 10대 때부터 맹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이 있다. 남자선수 중에는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계주 멤버로 나섰던 송재근 선수가 있었고, 김동성 선수도 1997년 세계선수권과 1998년 나가노 올림픽 1000m에서 우승할 당시 고등학교 학생이었고,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 깜짝 출전했던 안현수 선수도 고등학생 신분이었다. 여자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전이경, 고기현, 진선유, 심석희 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 금메달리스트가 10대의 어린 나이에 세계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쇼트트랙이 보다 과학화되고 선수 생활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점점 10대에 깜짝 활약을 펼치는 선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나 점점 상향평준화되고 있는 남자부의 경우, 고등학교 선수가 좁고 좁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발전의 관문을 뚫고서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뿐더러 어쩌다 좁은 문을 열고 국가대표가 되어도 미미한 성적만을 남겼다. 다만 고 노진규 선수만이 2010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자마자 세계 무대를 평정하는 활약을 펼쳤을 뿐이다.

사진=황대헌 선수

오랜만에 등장한 고교생 에이스, 황대헌

그런데 이번에 소개하는 황대헌 선수는 전혀 10대 같지 않은 모습으로 세계 쇼트트랙계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2016-2017시즌 부상당한 기존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신해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그는 2차 월드컵 10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작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는 기존 국가대표 선수들 대신 출전한 5차 대회 500m에서 은메달, 6차 대회 1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깜짝 활약을 펼쳤다.

네덜란드의 싱키 크네흐트, 캐나다의 찰스 해믈린과 사무엘 지라드, 헝가리의 리우 샤오앙, 리우 샨도린 형제까지 모두 제치고 거둔 값진 성과였다.

월드컵에서 자신감을 얻은 여세를 몰아 2017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종합 2위의 성적을 거둔 황대헌 선수는 당당히 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따냈을 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월드컵 대회에서도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두며 앙팡테리블의 면모를 보였다.

월드컵 1차 대회에서는 1500m와 1000m에서 은메달, 500m에서 동메달을 따냈는데 재미있게도 이는 모두 임효준 선수 다음 순위였다. 순위만 놓고 보면 임효준 선수의 뒤를 황대헌 선수가 졸졸 따라다니는 듯한 성적이다.

그리고 임효준 선수가 허리 부상으로 빠진 2차 대회에서는 1500m 금메달, 500m 동메달을 따내며 남자 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고, 왼팔 부상을 입은 상태로 출전한 3·4차 대회에서도 맹활약을 펼쳐 1500m 랭킹 1위, 1000m 랭킹 2위, 500m 랭킹 4위에 올랐다.

사진=황대헌 선수

유망주 껍질 벗고 이제 올림픽 무대에서

어려서부터 황대헌 선수는 쇼트트랙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5살 때 빙상장에 부모님과 함께 갔다가 재미있어 보여서 스케이트를 시작한 그는 스릴감에 반해 쇼트트랙을 선택했고 그 후 국내 대회를 휩쓸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입은 허리와 발 부상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힘겨운 재활 기간을 거쳐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부활한 그는 2016년 동계 유스 올림픽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해 1000m 금메달을 따냈을 뿐만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 대로 2016-2017시즌 월드컵 대회에 대체 멤버로 참가하여 눈부신 성적을 거두며 성인 무대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올해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2위에 오르며 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따낸 그는 월드컵 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둬 올림픽 출전권을 자력으로 확보했을 뿐 아니라 유력한 금메달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특별히 개인전에서 선호하는 종목이 없다는 그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월드컵 무대에서도 전 종목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고 노진규 선수와 안현수 선수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황대헌 선수는 고 노진규 선수의 경우 훈련장 안팎에서 늘 성실하고 꾸준해서 보고 느낀 점이 많고, 안현수 선수는 스케이팅이 부드럽고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며 월드컵에서 붙어봤는데 정말 잘한다고 감탄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두 선수 모두 앞서 고등학생일 때 국가대표가 된 선수들이기도 하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목표와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황대헌 선수. 평소에는 힘든 훈련 중에도 막내로서 아무 말 대잔치로 분위기를 띄우는 활력소 역할을 한다고 한다. 형들과 함께 노력해서 첫 올림픽을 웃으면서 끝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룸메이트이자 닮은꼴인 두 선수, 올림픽에서도 함께 웃을 수 있길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두 선수는 선수촌 룸메이트로 함께 생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2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따냈고, 함께 출전한 월드컵 1차 대회에서는 1500m와 1000m에서는 금·은메달을, 500m에서는 은·동메달을 나란히 차지하며 마치 껌딱지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

두 선수 모두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중장거리뿐만 아니라 단거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조차 닮았다. 두 선수가 이렇게 친하다 보니 임효준 선수는 황대헌 선수가 방에서 함께 생활할 때는 잠도 못 잘 정도로 말이 많다며 평소엔 낯가림이 심하고 쑥스러움이 많지만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완전히 달라진다고 푸념할 정도이다.

화기애애한 대표팀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룸메이트가 아니라 소울메이트 같은 모습을 보이는 두 선수. 평창 올림픽에서도 두 사람의 바람대로 시상대 위에서 함께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