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특집] 별이 된 노진규 선수와 그의 친구 서이라 선수

3회 별이 된 어린 왕자와 세계의 왕자가 된 그의 친구

한 소년이 있었다.

9살 소년에겐 세 살 위 누나가 있었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잘 나가는 누나를 뒷바라지하던 어머니는 어린 그를 혼자 집에 두고 가는 것이 불안해서 ‘너도 한 번 스케이트를 타봐라’라고 권유했고, 별생각 없이 스케이팅화를 신었던 소년. 혼자서 타는 스피드스케이팅보다 여러 선수가 작은 원을 빠르게 돌면서 견제하는 쇼트트랙이 훨씬 재미있다고 느낀 소년은 누나와 달리 쇼트트랙 선수가 됐다.

하지만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된 누나에 비하면 소년은 늦게 주목을 받았다. 무려(?) 고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국가대표 선수가 된 소년. 하지만 그렇게 국가대표로 데뷔한 2010~2011시즌에 소년은 무려 세계선수권에서 개인 종합 우승을 차지하고, 2011 동계아시안게임에선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또 다른 한 소년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현장학습으로 고려대 아이스링크장에서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타보고 재미를 느껴 부모님을 졸라 쇼트트랙 선수가 된 소년. 그는 어려서부터 쇼트트랙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지만, 국가대표와는 거리가 멀었다. 2011년 세계주니어선수권 3000m 슈퍼파이널에서 뒤로 골인하는 파격 세레모니와 함께 주니어 세계선수권을 종합 우승했지만, 그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3000m 슈퍼파이널에서 넘어지며 종합 6위에 머물고 만다.

이후 두 소년은 입학이 예정됐던 한국체육대학교 빙상부에 나란히 입학해 동기가 된다. 그해 세계선수권 우승자와 세계주니어선수권 우승자.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의 미래를 짊어진 두 소년의 만남이었지만 위상 차이는 꽤 컸다. 그리고 한 소년이 다른 소년을 목표로 삼을 정도로 한동안 실력 격차도 컸다.

하지만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할 정도로 밝은 미래만 보이던 소년에게 예기치 못한 불행이 닥치며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올림픽 출전의 꿈은 무산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에게 좌절을 안겨줬던 질병은 더 안타깝고 고통스러운 비극을 안겨준다. 향년 23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만 했다. 공교롭게도 동기가 세상을 떠나는 날, 그의 친구는 국내 최고 선수의 자리에 오르며 국가대표 자격을 다시 한번 획득한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6년 전 친구가 우승했던 세계선수권을 우승하며 대신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룬다.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쇼트트랙 전 국가대표 고 노진규 선수와 현 국가대표 선수 서이라 선수이다. 4년에 한 번 쇼트트랙을 주목하는 방송과 언론의 관심은 온통 안현수, 이제는 러시아의 빅토르 안 선수에 쏠려 있지만, 우리 남자 대표팀에도 빅토르 안에 못지않은 실력과 사연을 가진 선수가 있었고 지금도 있다.

영원한 쇼트트랙의 별이 된 어린 왕자 노진규

혜성처럼 등장한 어린 왕자

2010-2011시즌 개막을 앞둔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의 전망은 어두웠다. 지난 밴쿠버 올림픽에서 2관왕에 올랐던 이정수와 계주 멤버인 곽윤기가 짬짜미 파동으로 징계를 받아 국제대회 출전을 할 수 없고, 단거리의 강자였던 성시백이 은퇴하면서 대표팀 전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린 상황에서 강제 세대교체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노진규 선수

이때 혜성같이 등장한 선수가 바로 노진규 선수였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의 나이에 2010년 세계주니어 선수권대회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하고, 국가대표로 데뷔해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을 거푸 제패하며 새로운 스타로 등극했다.

특히 2011-2012시즌 월드컵 6개 대회에서 1500m 금메달을 모두 따는 기록을 세우며 중장거리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2011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알마타에서 열린 동계아시안 게임에서는 1500m와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누나 노선영과 동반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2012년 세계선수권에서는 징계 후 복귀한 곽윤기 선수에게 아깝게 정상을 내줬지만, 준우승을 차지하며 여전히 세계정상권 기량을 뽐낸다. 러시아로 귀화해 빅토르 안이란 이름으로 세계 무대에 복귀한 안현수가 조금씩 예년의 기량을 되찾으며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을 위협하긴 했지만, 여전히 노진규와 곽윤기가 이끄는 남자대표팀의 성적은 훌륭했다.

하지만 곽윤기가 부상을 당해 2013 세계선수권 출전이 무산되고, 노진규마저 부진하면서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노진규 선수는 2013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올림픽 계주 경기에만 출전할 수 있는 3위에 그치고 만다(부진의 이유는 훗날 밝혀진다).

2014 소치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013-2014 쇼트트랙 월드컵 3·4차 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대표팀은 매우 부진했다. 곽윤기 선수가 부상으로 국가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하고 2013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던 신다운 선수와 2013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했던 이한빈 선수가 중압감에 시달리며 계속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면서 자칫하면 올림픽 출전권을 대거 놓칠 위기에까지 처한다.

바로 그때 고군분투하던 노진규 선수가 있었다. 본인이 출전할 수 없는 올림픽 개인 종목이지만 그는 동료들의 출전권 확보를 위해 달리고 또 달렸다. 사실 그때 이미 노진규 선수의 왼팔은 정상이 아니었다. 당시 경기 영상을 보면 왼팔을 거의 움직이지 못한 채로 이를 악물고 달리는 노진규 선수의 모습이 보인다. 결국, 노진규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 남자 대표팀은 개인전과 계주 올림픽 출전권을 상당수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아쉬운 소치행 무산

진짜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노진규 선수는 2014년 1월 14일 태릉빙상장에서의 훈련 도중 미끄러지면서 왼팔을 펜스에 부딪쳤고, 그 과정에서 어깨와 팔꿈치가 부러져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기에 이른다.

그뿐만 아니라 이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노진규 선수를 괴롭혀온 병이 악성 종양인 골육종으로 드러난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식이었다. 소치 올림픽에 출전해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와 당당하게 경쟁하겠다는 오랜 꿈이 무너진 것은 물론이요, 앞으로 선수 생활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노진규 선수의 쾌유를 기원하는 신다운 선수

그 후 노진규 선수는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병실에서 올림픽을 지켜본다. 하지만 자신이 출전권을 따낸 올림픽 경기에서 동료들이 안타깝게 실격과 탈락 등으로 노메달에 그치며 국민적인 지탄을 받는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봐야만 했다. 당시 노진규 선수는 남자부의 첫 경기이자 본인이 세계무대에서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했던 종목인 1500m 경기 후 동료들의 선전을 기원하는 육필 편지를 자신의 SNS에 남기기도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500m는 운이 많이 안 따라 준 거 같아. 아직 남은 경기가 많이 있고 단체전인 계주가 남았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늘 연습해오던 대로 자신감 있게 경기해줬으면 좋겠어. 서로서로를 믿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모두 웃으면서 돌아왔으면 좋겠어. 여자들도 긴장하지 말고 해오던 대로만 하면 정말 좋은 결과 나올 거 같으니까 마지막까지 화이팅하자!!”

하지만 노진규 선수의 격려가 무색하게 남자 대표팀의 부진은 계속 이어졌다. 특히나 노진규 선수 대신 출전했던 이호석 선수가 계주 준결승에서 넘어지면서 남자 계주 대표팀의 결승전 진출이 무산됐을 때는 정말 이보다 더 나쁠 순 없는 상황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누나 노선영 선수가 출전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생중계되지 않는 실망스러운 상황까지 이어진다. 노진규 선수에겐 실망과 상처투성이 올림픽이었다.

이후 1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노진규 선수의 골육종은 완치된 듯이 보였다. 수술과 항암치료로 몸속의 종양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후 노진규 선수는 2~3개월에 한 번씩 검사를 받으며 재활 운동을 통해 재기의 의지를 불태운다.

갑작스럽고도 안타까운 요절

그런데 팬들도 노진규 선수의 복귀를 애타게 기대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골육종이 재발한다. 결국, 노진규 선수는 마지막 작별 인사도 없이 2016년 4월 3일 오후 8시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다.

생전 당시 노진규 선수

노진규 선수는 당시 국가대표팀을 지도하던 박세우 감독이 “본인이 가르친 선수 중에서 가장 성실한 선수”라고 할 정도로 세계 최고의 성실성을 인정받은 선수였다. 본인의 장점은 체력과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다면서 죽어라 연습과 훈련만 하는 연습벌레에, 하는 일이 스케이트, 취미도 스케이트라고 할 정도라고 365일 운동과 스케이트만 알고 살던 바보였다. 하지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이렇게 착하고 성실한 그를 일찍 데려가 버렸다.

공교롭게도 그의 팬클럽 카페 이름은 ‘빙판 위의 어린 왕자’. 그는 그렇게 영원히 소년이자 어린 왕자인 채로 쇼트트랙의 별이 됐다.

목동의 왕자가 세계의 왕자가 되다

2017 세계선수권자 서이라 선수, 오랜 슬럼프를 깨고 세계 정상에 오르다

앞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노진규 선수의 친구이자 2017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서이라 선수는 이제 막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선수이다. 그는 2011년 짧게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그 후 2년 정도 긴 슬럼프를 겪으며 친구의 질주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2014년 국가선발전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로 복귀했고, 이후 월드컵 시리즈에서 몇 번의 우승을 경험하고 다음 시즌과 그다음 선발전까지 3회 연속 종합 우승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2017 세계선수권 대회에선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전 종목 입상하며 세계 최강자의 자리에까지 올라간다. 그동안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리는 목동에서만 잘한다고 붙었던 ‘목동의 왕자’란 별명을 뛰어넘어 ‘세계의 왕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서이라 선수

서이라 선수의 ‘이라’라는 다소 특이한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단어로 ‘항상 깨어 있으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다. 별명인 서리짱은 쩌리짱이 유행할 때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서이라 선수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항상 서글서글 웃는 얼굴이 매력적인 청년이다. 경기 후 독특한 세레머니로 눈길을 끄는 선수이기도 하다. 최근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에서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는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노진규와 서이라

어려서부터 친구이자 경쟁 상대였던 노진규와 서이라. 두 선수는 매우 대조적인 스타일의 선수다. 노진규 선수가 쇼트트랙 선수로서는 장신인 178cm의 키에 엄청난 지구력을 바탕으로 중장거리에 강한 스타일인 데 반해 서이라 선수는 160cm대의 작은 키에 빠른 순발력으로 500m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

서이라 선수

물론 이제 서이라 선수는 올라운드 스타일로 진화해서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전 종목에서 순위권에 드는 발전을 이룩하기는 했지만, 본인의 장점은 단거리에 있다고 말할 정도로 대한민국 선수 중에서는 드문 스프린트 형이었다.

성격도 조용조용하고 운동밖에 몰랐던 노진규 선수에 달리 서이라 선수는 인터뷰에서 랩을 할 정도로 활달하고 유쾌한 성격으로 음악을 듣는 것이 취미라고 한다. 이렇게 활달한 성격의 서이라 선수지만 태극마크의 무거움과 금메달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쇼트트랙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당부하고 있다. 물론 목표는 크게 쇼트트랙 올림픽 26년 역사상 전무했던 4관왕으로 잡았다.

서이라 선수가 친구의 못다 한 한을 풀고 실추된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번 시즌 서이라 선수의 월드컵 성적은 1500m 7위, 1000m 10위, 500m 6위로 지난 시즌 세계 챔피언답지 않게 다소 저조했다. 하지만 슬로우 스타터인 만큼 올림픽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올린다면 보다 훨씬 좋은 결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항상 긍정적인 성격인 그이기에 훌훌 털어버리고 또다시 빙판을 질주하리라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항상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쇼트트랙은 계속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