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특집] 역경 딛고 일어선 쇼트트랙 김선태 총감독

4회 병마를 이겨내고 올림픽에 나가다

흔히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를 ‘독이 든 성배’라고들 한다. 대한민국 축구 지도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고 잃을 것도 많은 자리라는 얘기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 국민이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에게 그리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월드컵 본선 정도는 어렵지 않게 가주고, 본선에서 16강 정도 가면 대성공, 못해도 1승 1무 정도만 거둬도 박수받으며 귀국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대한민국의 동·하계 올림픽 효자종목인 양궁과 쇼트트랙에 대한 기대는 훨씬 커서 금메달을 못 따면 욕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양궁과 쇼트트랙의 종목 위상을 전 세계 최고 인기 스포츠인 감히 축구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양궁과 쇼트트랙 내 위상은 축구로 따지면 브라질이나 독일 정도는 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 보니 올림픽에 출전하는 양궁과 쇼트트랙 대표팀의 감독이 받는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금메달을 따야 본전인 종목들이다 보니 최선에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작은 실수 하나라도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특히나 평창 동계올림픽은 최초로 한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이다 보니 부담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퍼레이드를 벌이기는커녕 죽을 쑨다면 대표 선수들은 물론이고 감독도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감독직을 그만두는 것은 물론이고 이민을 고려할 정도로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김선태 총감독

이렇게 진정한 ‘독이 든 성배’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사람은 바로 김선태 감독이다. 1976년생으로 만 올해 41세가 된 그는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 계주 멤버로 참가한 이력이 있다. 당시 계주 후보 멤버로 올림픽 대표에 선발된 김선태 선수는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는 못하고 동료들이 아쉽게 은메달을 따는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명코치로 주목받다

이후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직장 생활과 바도 운영했던 그는 현역 시절의 경험을 살려 장비 전문 코치가 됐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스케이트 날을 잘 깎는 날 전문가로 각광을 받았다.

덕분에 대표팀 상비군 코치와 장비 담당을 맡았던 그는 2004년 중국 장춘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밴쿠버와 소치 올림픽 1500m에서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에게 연달아 패배의 쓴잔을 안겨준 저우양을 비롯해 세 명의 국가대표 선수를 키워냈다. 그리고 국내에 다시 돌아왔다가 일본 대표팀의 콜업을 받고 2010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하는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올림픽 무대에 데뷔했다.

비록 일본 선수들과 세계정상권 선수들의 기량 차가 커서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그의 지도는 일본 선수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서 한 일본 선수는 스케이트를 타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사실 일본 쇼트트랙은 초창기에 세계정상권 기량을 자랑하며 한국에 쇼트트랙을 가르칠 정도로 쇼트트랙 선진국이었다. 초창기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나 선수들이 일본 스케이팅 책과 경기 영상을 사다가 공부할 정도로 일본은 대한민국보다 몇 수 위에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김기훈 선수와 초창기 지도자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대한민국 쇼트트랙이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라 몇십 년째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 반해 일본 쇼트트랙은 90년대 간판선수였던 데라오 사토루 이후 좋은 선수를 발굴하지 못해 세계 5~8위권을 맴도는 쇼트트랙 이류국가로 전락했다.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대한민국, 중국에 밀려 3위에 만족하는 처지가 됐다. 그런 일본이 자존심을 굽혀가면서까지 김선태 코치를 국가대표 감독으로 초빙한 것은 그만큼 그의 실력과 지도력을 인정했다는 이야기이다.

비록 밴쿠버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이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진 못했지만, 김선태 감독의 겸손한 태도와 리더십은 일본 현지 언론으로부터도 큰 호평을 받았다. 항상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뿔테 안경을 쓰고 학생과도 같은 모습으로 열정을 다해 지도하는 그의 모습은 일본 기자들에게도 매우 인상적으로 보였다고 한다.

자국의 국가대표 감독이 되다

밴쿠버 올림픽이 끝나고 귀국한 김선태 코치는 다시 중국 지방팀의 코치로 갔다가 2014년 소치 올림픽이 끝나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남자팀 코치이자 쇼트트랙 대표팀 총감독에 선임된다. 알다시피 2014 소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남자대표팀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은 사상 최악의 편파 판정으로 김동성 선수가 1500m에서 미국의 안톤 오노에게 금메달을 강탈당하는 불상사라도 있었지만 소치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의 부진은 실력+안현수 선수의 귀화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받은 비난으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벌어진 참사였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대로 국가대표팀 에이스였던 노진규 선수가 골육종으로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애초 노진규 선수는 계주 멤버였고 만에 하나 노진규 선수가 개인전 멤버로 출전했다고 해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노진규 선수

그뿐만 아니라 노진규 선수와 함께 남자 대표팀을 이끌던 2012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곽윤기 선수는 부상으로 선발전에서 탈락해 올림픽 출전이 무산된 상황이었다. 2013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신다운 선수와 2013 국가대표 선발전 우승자인 이한빈 선수의 선전이 기대됐지만 안타깝게도 두 선수 모두 경험 부족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이에 오래전부터 제기됐던 국가대표 선발전의 불합리성이 불거져 선발전 방식이 대폭 변경됐을 뿐 아니라 기존의 내부 추천제로 국가대표 감독을 뽑던 방식도 바꿔 외부공모 및 추천을 통해 국가대표팀 감독을 선출했다. 결국, 지도자 추천 위원회를 통해 김선태 코치와 여준형 코치가 남녀 대표팀 감독으로 선출됐고 그중 김선태 코치가 대표팀 감독도 겸임하게 됐다.

그야말로 금의환향, 화려하게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한 김선태 감독은 선수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자신감을 다시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 그뿐만 아니라 기존의 체력 위주의 스파르타식 훈련과 달리 과학적이고 효율적이며,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의욕을 높였다. 또한, 시스템을 대폭 개선해 재활이나 선수 개개인의 몸 상태를 관리해 주는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김선태 총감독

그 결과 2014~2015시즌 대한민국 남자 대표 선수들은 지난 시즌의 부진을 씻고 월드컵 시리즈에서 연이은 승전보를 전했다. 그리고 열린 2015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로 세계선수권 5연패를 하고, 러시아로 귀화해 2014 세계선수권을 우승했던 빅토르 안의 홈그라운드인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였다.

설욕을 벼르던 대한민국 남자대표팀은 박세영 선수가 10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종합 우승에 한발 다가섰지만 아쉽게도 마지막 3000m 슈퍼파이널에서 네덜란드의 싱크 크네흐트에게 역전을 허용하며 종합 순위에서도 간발의 차이로 2위에 그치는 불운을 맛봐야 했다. 그래도 지난 시즌의 부진을 씻는 선전이었다.

여자부에서는 무서운 신예 최민정 선수가 첫 종합 우승을 차지하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당연히 대한빙상연맹에서도 김선태 감독을 재신임했고, 다음 시즌보다 나은 성적이 기대됐다.

잇따른 악재를 극복하다

2016년 4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3명이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서 상습 도박을 했다는 뉴스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안 그래도 소치올림픽에서의 부진으로 국민적인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이 상습 도박을 했다는 소식은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김선태 감독의 마음도 매우 힘들게 했다. 하지만 김선태 감독은 동요하지 않고, 선수들의 마음을 다잡으며 함께 훈련에 매진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깝고 황망한 소식이 전해졌다. 2016년 12월 쇼트트랙 월드컵 2차 대회를 마치고 몸에 이상을 느껴 검진을 받은 김선태 코치가 대장에 종양이 생겼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은 것이다.

겨우 만 40세, 불혹의 나이에 암이라니···. 이제 막 지도자로서 날개를 펼치려던 김선태 감독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선고였다. 하지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대로, 우선 본인의 몸부터 다스려야 하는 상황이기에 김선태 감독은 대한빙상연맹에 사직서를 내고 항암치료를 받았다. 다행히도 대장암을 초기에 발견한 덕에 무사히 퇴원한 김선태 감독은 다시금 국가대표 감독직에 도전했고 빙상연맹은 지도자로서 좋은 성과를 낸 김선태 감독을 다시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했다.

그 사이 대한민국 목동에서 벌어진 2016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은 중국 대표팀에게 개인종합 우승뿐만 아니라 계주 우승까지 내주는 치욕을 당하며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김선태 감독이 코칭 박스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의미 없는 가정을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그나마 고군분투한 최민정 선수가 세계선수권 2연패에 성공한 것이 위안거리였다.

최민정 선수

그리고 다시금 찾아온 2016~2017시즌. 대한민국 남자 국가대표팀은 김선태 감독의 지도로 다시 금빛 질주를 시작했고, 여자 대표팀도 부활한 심석희 선수와 최민정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대한민국엔 올림픽 다음으로 중요한 대회인 아시안게임에서 라이벌 중국을 압도하며 5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다만 여자부의 경우 이승재 코치의 지도로 급성장한 영국의 엘리스 크리스티의 상승세가 무서웠다. 엘리스 크리스티는 월드컵 시리즈에서 최민정 선수와 심석희 선수를 여러 차례 이기며 더는 폭주 기관차가 아님을 증명했다.

마침내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벌어진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대회. 네덜란드 현지에선 홍보 영상을 통해 자국의 쇼트트랙 영웅 싱키 크네흐트를 띄우며 각국의 선수들을 라이벌로 지목했는데 그 중 대한민국 선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쇼트트랙 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굴욕이었다.

이 굴욕에 화답하듯 대한민국 남자대표팀 선수들은 첫 종목이었던 1500m부터 무서운 질주를 했고 마침내 ‘목동의 왕자’였던 서이라 선수가 ‘세계의 왕자’로 거듭나며 세계선수권 종합 1위를 차지한다. 2013년 신다운 선수의 우승 이후 대한민국 선수로는 4년 만에 거둔 값진 종합 우승이었다.

김선태 감독에게도 2015년 자신에게 불의의 패배를 안겼던 싱키 크네흐트에게 멋지게 복수하는 자리가 됐다. 다만 여자부의 최민정 선수가 납득할 수 없는 판정으로 실격을 당한 끝에 종합 6위에 머물며 세계선수권 3연패에 실패한 것은 아쉬운 결과였다.

어쨌든 소치 이후 최악의 부진에 빠졌던 대한민국 남자 국가대표팀은 김선태 감독의 부임 이후 다시금 세계정상권 기량을 되찾으며 평창 올림픽에서의 선전을 기대케 하고 있다. 여자부도 심석희, 최민정 선수를 지도했던 조재범 코치가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돼 두 선수와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선태 총감독

우려를 기대로 바꾸다

사실 평창 올림픽을 앞둔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가대표팀 에이스인 서이라 선수뿐만 아니라 개인전 출전권을 딴 국가대표 선발전 1위 임효준 선수와 무서운 10대로 선발전 2위를 차지한 황대헌 선수도 올림픽 출전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경험치만 보면 2014년 소치 올림픽 대표선수단과 다를 게 없는 현 남자대표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치 올림픽 대표팀도 2013년 세계선수권자인 신다운 선수와 2013 국가대표 선발전 1위였던 이한빈 선수, 선발전 2위 박세영 선수 모두 올림픽 출전 경험이 없었고, 계주 멤버인 노진규 선수를 대신해 출전한 이호석 선수만이 2회 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었을 뿐이다. 현 대표팀도 계주멤버로 출전할 곽윤기 선수를 빼고는 모두 올림픽 출전 경험이 없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홈그라운드인 평창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고, 소치 올림픽 이후 국가대표팀을 지켜온 김선태 감독이 있기에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라고 믿는다. 김선태 감독도 어린 선수들이 많은 만큼 분위기만 잘 잡히면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남자 대표팀은 점점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0월에 열린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임효준 선수와 황대헌 선수가 개인전 메달을 거의 다 싹쓸이한 것을 비롯해 임효준 선수가 부상으로 빠진 2차 대회에서는 황대헌 선수가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황대헌 선수

12월에 열린 3·4차 대회에서는 임효준, 황대헌 선수가 부상 후유증으로 개인전 성적이 기대만큼 좋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너무나 부진했던 남자 계주에서 2위와 1위를 차지하며 자신감을 높인 것은 커다란 성과였다.

주장 곽윤기 선수가 4차 대회 계주 결승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선태 감독 이하 코칭 스태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정도로 김선태 감독의 지도가 대표팀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