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해전술 실체, ′개떼·저글링 러쉬′ 아니다

″중국의 인해 전술은 ′개떼·저글링 러쉬′가 아니다.″

-임건순 작가-

인해전술은 오자병법에서 기원한 게 맞습니다. 흔히들 인해전술을 병력수가 많은 것만을 믿고 그저 우직하게 무한 러쉬하고 돌격하는 전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후진적인 전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구와 병력수가 많은 중국에 딱 맞는 전술인 것은 확실합니다만, 절대 무식하고 후진적인 전술이 아닙니다. 행군과 기동에 능하고 경험과 인내심을 요하는 전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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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해전술은 포위전술입니다. 고난이도의 포위 작전이죠. 많은 병력을 나누어서 은밀하게 이동시켜 적의 후방과 적군의 사이, 사이의 길목과 거점에 침투시킵니다. 특히 이동시간으로 밤을 택합니다. 몰래 가야하기 때문이죠. 적이 모르게 밤에 몰래 움직여서 요소, 요소, 방위, 방위마다 병력을 침투시켜 위치하게 합니다. 침투와 위치잡기가 꽤 이루어진 시점이 되면 적을 쪼개고 보급망을 차단합니다. 그리고 적을 완전히 분열 고립시킨 채 포위 압박하며 분쇄합니다. 이러한 포위, 압박 전술의 기원은 오자병법입니다. 오기가 험한 산지에서 싸울 때 은밀하고 신속한 이동과 기동을 통해 적을 포위해서 압박해 부수라고 했거든요.

이 인해전술에는 오기가 말한 은밀하고 신속한 기동이 필수입니다. 고구려를 침공한 수당의 제국 군대부터 그리고 한국전쟁에 투입된 중국군까지 모두 은밀하고 신속한 기동을 통한 포위 전술을 펼쳤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때 우리가 너무 뼈아프게 당했지요. 무기의 화력이 떨어져도 많은 실전경험과 강한 행군능력을 가진 중국군이 은밀하고 빠른 기동으로 한국군을 농락했고 유엔군을 고전 시켰습니다. 낮에는 미군의 정찰기에 걸리지 않도록 아예 하얀 이불을 덮어 쓰고 눈 위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동상에 걸려 썩은 발가락으로 산길을 걸며 이동도 했습니다. 그들의 강한 복종심과 많은 행군 경험도 경험이었지만 한국이 산이 많은 지형이라 특히 인해전술의 위용을 떨쳤던 겁니다. 애초에 산에서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전술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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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병법 응변편에서 산에서 전투 특히 계곡에서의 전투 이른바 곡지전(谷地戰)에서 싸우는 법으로 은밀한 이동과 기동으로 적을 포위시켜 부수자고 했는데 오자병법 응변편이 인해전술의 기원이지요.

응변편에서 무후가 물었습니다.
“좌우에 높은 산이 있고 지형이 아주 협소한 곳에서 갑자기 적과 마주쳐 공격도 후퇴도 여의치 않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오?”

오기가 답합니다.
“이러한 경우를 곡지전이라 합니다. 이 때는 비록 병력이 많더라도 쓸모가 없습니다. 우선 우리의 용감한 병사를 뽑아 적과 서로 대치시키고 또 발이 빠르고 날쌘 병사로 하여금 병기를 잡게 하여 앞에서 싸우도록 하여 적의 관심을 그곳에만 집중 시킵니다. 그러는 사이 전차와 기병을 분산 시켜 이동 시키고 사방에 매복시켜 멀찌감치 떨어지게 하는데 매복시켜둔 군대를 철저히 숨겨둬야 합니다. 적은 그 때 이쪽의 전략을 모르기에 진지를 견고히 한 채 진격도 후퇴도 하지 않은 채 상황을 관망하려 할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깃발을 내세우고 대오를 유지한 채 유유히 빠져나와 산 밖에다가 진을 칩니다. 이렇게 되면 적은 틀림없이 놀라고 두려움을 느낄 것 입니다, 이 때 숨겨둔 전차와 기병을 움직여 반복해서 상대를 타격함으로써 적을 지치게 만듭니다. 이것이 곡지전에서 싸우는 방법입니다”

산과 들에 매복된 병력들이 끊임없이 기습하고 공격하면 적은 두려움에 떨게 되고 또 상당히 전력소모가 심할 것입니다. 한국전쟁 때 중국군와 싸운 한국군이 그러했습니다. “산과 들이 통째로 들고 일어나 덤비는 것 같다.” 한국전쟁 때 중국군과 전투 경험이 있는 참전용사가 증언한 바인데 그것이 바로 오기가 계곡에서의 싸울 때 지향한 바입니다. 그림자 없는 유령처럼 움직여서 산과 들에 매복 해 있다가 산과 들처럼 들고 일어나 덤비는 거죠.

계곡에서 싸울 때는 우선 용감하고 날쌘 정예병을 시켜 상대를 앞에서 막게 하자. 그렇게 적의 시선을 붙잡아 둔 다음에 그 상태에서 부대를 은밀히 이동시켜 적의 사방에 감추어두자. 그 다음에 나머지 부대원들을 이끌고 신속히 퇴각하는데 그러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상대가 두려워할 것이다. 그 때 매복 시킨 병력이 계속해서 상대를 타격한다. 오기가 말하고 있지만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중국군 사령관의 말을 듣는 것 같기도 하지요. 곡지전에서 기원한 인해전술, 산이 유독 많은 한국의 지형에서 중국군의 은밀하고, 신속한 기동을 통한 매복과 기습전술이 톡톡히 효과를 보았습니다. 이런 중국의 전술에 한국군은 정말 농락하고 유린하다시피 했는데 중국군의 피리소리만 들어도 한국군은 겁에 질려 줄행랑을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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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해전술의 핵심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병력 수가 많아야 할 수 있는 전술이지만 앞서 이야기 한대로 고급전술입니다. 노련한 싸움의 기술이지요, 즉 숙련된 전기(戰技)를 갖추어야하고 내 힘을 집중시킬 상대방의 허점을 정확하게 노릴 수 있어야하며 귀신같은 행군능력에 강한 인내심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고급 포위 전술인데요. 그들은 전력이 쳐지는 연합군의 약점이었던 한국군을 인해전술로 집중 공격했습니다. 운동전(運動戰)이라고 불렀던 기동전을 펼치면서 은밀하지만 신속한 전선돌파, 우회, 포위를 보여주며 한국군과 유엔군을 강하게 몰아붙였습니다.

소위 인해전술이란 포위전이라고 했는데 그냥 포위하여 압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위가 거저 되는 게 아니지요. 우선은 적을 넓게 포위하여 보급망을 차단합니다. 그런 다음에 침투를 시작합니다. 은밀하고 신속하게. 길목마다 혹은 적군의 사이 사이로 대부대를 내려 보내 적을 잘게 쪼갭니다.

특히 적의 허점이라고 판단되는 지점을 집요하게 포위하는데 포위한 다음에 보급 자체를 차단하고 이렇게 적을 분열 고립시켜 전력을 약화 시키고 분쇄하는 작전이지요. 이 전술을 수행하려면 강조한대로 은밀한 기동이 필수입니다. 당시 중국군대는 장비가 열악했지만 경험이 아주 많은 노련한 역전의 용사들이었지요.

중국 내부의 군벌들끼리의 전쟁 그리고 국공내전과 중일전쟁 등으로 단련된 군사들이었는데 은밀한 기동실력이란 전기(戰技)는 당시 세계 최고 아니 사상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정찰에 능한 미군에 조금도 들키지 않고 미군의 후방에 파고 들었는데 정말 그림자 없는 유령이었지요. 단순히 몰래 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신속히 움직여야하고 초인적인 인내력이 있어야했는데 정말 대단 했습니다 중국군대의 실력이.

우리는 인해전술하면 대단히 무모하고 인명소모적인 전술로 생각합니다. 네 사실 위험하고 인명을 소모하기에 많은 병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굉장히 교묘하고 공포스러운 전술이었지요. 그림자 없는 유령들에게 한국군은 아주 밥이었고요.

중국군의 인해전술, 그림자도 없어야합니다. 은폐와 엄폐, 무(無)를 핵심으로 합니다. 그렇기에 오자병법에서 기원했지만 어떻게든 나를 무로 만들어야한다. 무정형. 비정형성의 군대를 만들어야놓아야 한다고 주장한 손자, 그리고 손자병법을 계승한 노자병법과도 궁합이 맞았습니다.. 결국 그랬기에 과거부터 중국군대의 주류적 전술이 되었던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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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형, 비정형성
미군의 후방에 몰래 침투해 미군을 경악케 했는데 사실 그 때 중공군이 개입한 것 같다는 첩보는 계속 접수가 되었습니다. 중국군 포로도 잡았지요. 하지만 도쿄에 있는 맥아더 사령부는 수십만의 중공군이 조선반도에 깊숙이 진입해 미군들 근처에 까지 왔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 미군의 정찰에 포획되지 않았기 때문에요. 그들은 자신들의 정찰능력을 믿었던 거지요. 사실 그렇습니다. 그 많은 중국군이 침투해서 들어왔다면 흔적이라는 게 있어야하는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중국군 포로만 가지고 단정하고, 첩보만 가지고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계속 정찰을 했는데도 증거가 될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미군은 매일 같이 항공정찰을 했어요. 그 때는 한겨울이었고 대지가 두터운 눈에 덮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참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여럿이 눈길을 지나가면 반드시 흔적이 남거든요.

앞서 언급한 대로 낮에는 중공군이 하얀 이불을 뒤짚어 쓰고 눈 위에서 엎드려 있거나 잠을 잤습니다. 정찰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에 눈 위에서 잠을 청한다??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영하 40도의 날씨에서 중공군은 하얀 이불 안에서 잠을 취하고 밤이 되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조선반도의 험한 산골을 수레를 끌고 등짐을 지고 말을 부려 이동하며 보급품을 운반했는데 수십만의 병력이 혹한의 날씨에 눈 위에서 잠을 청하고 산골을 걸어서 수레와 말을 통해 원시적으로 보급품을 운반하면서 흔적도 없이 기동한다? 미군이 상상도 못할 일을 벌였던 겁니다. 미군이 자신들의 정찰능력을 과대평가한 게 아니었죠. 동아시아인들의 지독함과 끈기, 정신력을 과소평가했던 거지. 그리고 중국인들 유전자에 새겨진 ‘無’와 ‘玄’이라는 DNA를 몰랐던 거고요.

전 이 때 중공군들에게 우리가 엄청나게 당했지만 칭찬해줘야 할 군대라 생각하는데 엄폐와 은폐를 위해 눈 위에서 흰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고 밤에 그리도 신속하게 험한 길을 돌파한 것은 정말 인정할만하죠. 경이적이었습니다. 정말 흔적도 없이 움직인 그림자 없는 유령들이었던 중국군, 자 인해전술의 핵심은 그것입니다. 엄폐와 은폐 나를 무로 만들어야합니다. 정말 눈에 띄지 말어야죠. 노자와 손자가 강조하는 ‘無’.

산과 들판이 통째로 일어나 움직이는 것 같다는 중공군의 인해전술 이렇게 텍스트적 근거가 있는데 수당때부터 그리고 중일 전쟁 시에도 조선 전쟁 시에도 그들의 인해전술은 계속되었습니다. 텍스트적 근거. 많은 병력과 인내심, 그리고 은폐, 엄폐라는 DNA가 있기에 가능했던 전술. 손자와 오기, 노자를 읽으면 왜 그들의 인해전술을 쓰게 되었는지 왜 그들의 인해전술이 그토록 무서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무치유(以無治有) 무로써 유를 다스린다, 제압한다 꺽는다, 죽인다. 이무치유의 인해전술에 우리가 너무도 뼈아프게 당했습니다.

임건순

멸종 위기의 젊은 동양철학자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사상가',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오기, 전국시대 된 군신 이야기',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리를 간다' 등 다수의 인문학 도서 저술
moo925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