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특집] 스피드스케이팅의 철인 이승훈 선수

10회 스피드스케이팅 5개 종목 출전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 최고의 스타를 꼽으라고 하면 누구나 이상화 선수를 꼽는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림픽 3연패란 엄청난 위업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 신기록도 3차례나 경신하며 세계 정상을 10년 넘게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꾸준함과 함께 다양성에서는 이승훈 선수를 따라갈 선수는 없다. 그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5000m 은메달, 10000m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2014 소치 올림픽에서는 팀 추월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중 역대 최다 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2011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동계아시아게임 대회에서는 팀 추월, 5000m, 10000m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2017년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선 세 종목에다가 매스스타트까지 우승해 대한민국 최초의 동계아시안게임 4관왕이 된 것과 함께 동·하계 아시안게임 통틀어 개인 최다 금메달 획득이라는 대기록까지 세웠다.

무엇보다도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때는 다리 부상을 안고서도 4관왕에 오른 사실이 밝혀져 더욱 국민과 언론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야말로 기적과 기록의 사나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승훈 선수. 이번 편은 스피드스케이팅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철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승훈 선수에 대한 이야기다.

이승훈 선수(출처 대한빙상경기연맹)

신의 한 수, 종목 전환

1988년 태어난 이승훈 선수는 일곱 살 때 누나가 스케이트를 타는 걸 보고서 흥미를 느껴 자기도 스케이트를 타게 해달라고 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입학 후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한 그는 특이하게도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을 병행했는데, 둘 다 잘해 나가는 대회마다 상위권에 들었다. 중학생이 되어서 쇼트트랙만 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태극마크를 단 후,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쇼트트랙은 선발전 통과하기가 올림픽 메달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종목. 안현수, 이호석, 성시백, 곽윤기, 이정수 등의 쟁쟁한 선수들과의 경쟁을 이겨내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2009년 4월 국가대표선발전에서 탈락한 그는 선수 생활 은퇴를 결심할 정도로 크게 좌절했다. 그때 은사이자 대한민국 빙상의 대부인 한국체육대학교 전명규 교수가 그에게 종목 전향을 권유했다.

그해 여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과 함께 훈련해본 이승훈 선수는 한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바로 본격적으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쇼트트랙 선수 시절 이승훈 선수는 2008년 강릉 세계선수권 3000m 슈퍼 파이널에서 우승할 정도로 뛰어난 체력을 자랑하는 선수였다. 그리고 그 체력을 바탕으로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어렵지 않게 5000m와 10000m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밴쿠버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월드컵 5000m 경기에서 세 번의 한국 신기록을 세운 것은 덤이었다.

쇼트트랙 선수가 아닌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출전한 첫 올림픽, 그는 말 그대로 사고를 쳤다. 처음 출전한 5000m에서 6분 16초 95의 기록으로 장거리 지존 네덜란드의 스벤 크라머에 이어 은메달을 딴 것이다. 더욱이 그의 은메달은 대한민국 선수단의 밴쿠버 올림픽 첫 메달이기도 했다.

며칠 후 벌어진 10000m 경기에선 더한 기적을 썼다. 5000m 우승자인 스벤 크라머가 코스를 착각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덕분에 은메달을 딸 뻔했던 이승훈이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어찌나 놀라운 일이었던지 당시 2위와 3위를 했던 러시아의 스콥레프와 네덜란드의 밥 데용이 시상식에서 이승훈 선수를 목말을 태우고 함께 축하한 장면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그렇게 인연을 쌓은 밥 데용은 최근 대한민국의 코치로 부임하여 이승훈 외 선수들의 기록 경신을 돕고 있다.

귀국 이후 이승훈 선수는 MBC 토크 프로그램인 ‘무릎팍도사’에도 출연하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그리고 다음 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 동시 출전에 도전하겠다며 포부를 밝힌 그는 친구 모태범과 함께 대한항공 빙상팀에 입단하여 경제적인 안정과 든든한 지원도 얻었다.

모태범과 이승훈 선수(사진 왼쪽부터)

슬럼프와 네덜란드의 초강세에 밀리다

하지만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을 병행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이승훈 선수는 결국 쇼트트랙을 포기하고 스피드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그러나 훈련 방식과 스케이트를 바꾼 것이 독이 되고, 무릎 부상까지 당하면서 이승훈은 기나긴 슬럼프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 이승훈은 5000m에서 12위에 머무르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고, 10000m에서도 4위에 머무른다. 당시 스피드스케이팅 최강국인 네덜란드의 기세는 경이로울 정도여서 5000m와 10000m 모두 1, 2, 3위를 네덜란드 선수들이 휩쓰는 초강세를 보였다. 장거리에서 4년 전 영광을 재현하는 데 실패한 이승훈 선수는 팀 추월에 김철민, 주형준과 함께 출전하여 8강전에서 러시아, 4강전에서 이전 대회 우승팀인 캐나다를 이기고 결승전에 진출한다.

상대는 역시 스피드스케이팅 최강국인 네덜란드. 이승훈이 이끄는 대한민국 팀 추월 대표팀은 선전했지만 5000m와 10000m를 싹쓸이한 네덜란드 팀을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은메달을 따내는 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고 이승훈 선수는 스피드스케이팅 개인 최다 메달 획득 기록을 세웠다.

이승훈과 이상화, 모태범 선수(사진 왼쪽부터)

매스스타트 초대 챔피언에 도전

다가오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이승훈 선수는 이전 대회에 출전했던 5000m와 10000m, 팀 추월에 이어 1500m와 매스스타트에도 출전한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매스스타트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된 종목으로 쇼트트랙과 유사한 점이 많아 쇼트트랙 선수 출신인 이승훈 선수에게 특히 유리한 종목이다.

2016-2017시즌뿐만 아니라 2017-2018시즌에도 종합 랭킹 1위를 달릴 정도로 이 종목에서 이승훈 선수는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다만 그만큼 많은 견제도 받고, 팀플레이도 종종 나오고 있다. 다들 이승훈 선수의 눈치만 보다가 막판에 스퍼트하거나 경기 중반 일찍 스퍼트를 올려서 간격을 벌림으로써 우승하는 선수들도 나오고 있다.

이는 쇼트트랙 3000m에서도 종종 나오는 작전으로 이승훈 선수도 몇 차례 당한 이상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마지막 월드컵인 4차 대회에서도 이승훈 선수는 막판 대역전극을 펼치며 0.15초 차 우승을 일구어낸 바 있다.

대표팀 후배인 정재원 선수가 초반에 스퍼트한 러시아, 네덜란드 선수와의 격차를 줄여준 반면, 이승훈 선수는 후미에서 체력을 안배하며, 상대 선수들보다 더 안쪽 코스를 노린 전략이 주효했다고 한다.

이제 올림픽 본선 무대만 남은 셈. 이승훈 선수는 매스스타트가 너무나 다양한 변수가 많은 종목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하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승훈 선수(출처 삼성화재)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장거리 선수가 목표

앞서 말한 대로 이승훈 선수가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종목은 모두 5종목. 이중 우승이 유력한 매스스타트뿐만 아니라 지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 이번 시즌 월드컵 1차 대회에서 우승한 팀 추월도 메달 획득을 노려볼 만한 종목이다.

하지만 이승훈 선수는 메달 색깔에 상관없이 출전하는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따는 게 목표라고 한다. 가장 큰 적수는 역시 스피드스케이팅의 최강국 네덜란드의 선수들. 스벤 크라머를 위시한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 선수들의 벽을 깨야 팀 추월뿐만 아니라 장거리 종목에서도 입상권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최종적인 목표로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장거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이승훈 선수. 사실 이미 자신의 꿈을 이뤘지만, 아직 미완성이라고 말하는 그는 인성, 성실함, 자기관리 등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선수 생활 이후엔 강단에 설 계획이라고 말하는 이승훈 선수는 2017년 6월 결혼까지 하며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은 바 있다. 평창 올림픽이 끝난 3월 6일에 만 30세가 되는 이승훈 선수가 어떤 30대를 맞이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껏 해온 대로 계속 정진할 것이기에 여전히 훌륭한 선수로 남을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