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여자라서 구하지 않았다” 제천 여성학살 시위

필자가 ‘제천화재 여성학살 사건 시위’를 예고한 웹자보를 읽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설마 정말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을까’였다. 농담이 아니고 누가 장난치거나 패러디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웹자보를 보니 실제로 참여자를 모은 워마드 관련 카페(카페 이름이 무려 wompig)가 있었고, 시위한다고 여기저기 글을 퍼다 나른 정황이 있었다. 이쯤 되니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나와서 어떤 말을 하려나 궁금해졌다.

지난 13일 오후,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시위 장소를 찾는 데 조금 애를 먹었다. 지하철역에서는 꽤 떨어진 곳이었다. 몇 분 헤매다가 멀리 보이는 무대를 보고 근처로 갔다.

무대 위에선 10여명 정도 되는 여성들이 집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두 마스크와 모자 등을 쓰고 미리 준비한 피켓 등을 들고 있었다. 한 여성이 확성기를 들고 “집회가 곧 시작할 예정이니 모여 주십시오!”라고 수십 번 외쳤다.

13일 제천화재 여성학살 사건 시위를 준비 중인 여초연합

필자뿐만 아니라 취재를 온 다른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다른 마스크를 쓴 여성이 와서 일일이 찍은 사진을 검사했다. 게다가 명함을 요구하며 기자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했다. 불필요한 마찰은 피하고자 요청에 응하며 얼굴은 나오지 않게 사진을 찍었다.

집회 인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늘어나긴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30명 남짓한 인원이 참가했다.

집회 총대의 선언문 낭독과 구호 제창, 시위가 제창 등이 이어졌다. 당국이 여성 구조를 의도적으로 소홀히 했고 이것은 여성학살이나 다름없다는 피해망상성 주장이 주를 이루었다.

13일 제천화재 참사가 여성학살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시위 중인 여초연합

재밌는 점은 개사한 시위가가 남자 아이돌인 위너원의 ‘나야나’를 원곡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남성 전반에 대해 무차별적인 혐오성향을 드러내는 단체가 노래만큼은 남자 아이돌의 노래를 쓴다니 의도했든 아니든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사이 몇몇 남성들이 사진을 찍다가 진행요원의 제지를 당하기도 했고, 남성단체인 ‘안티페미연합’ 회원이 1인 시위를 하려다가 경찰 측 제지로 사진만 찍고 물러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길을 지나던 일반 시민들 대다수는 주최 측의 억지 주장에 혀를 내두르며 지나칠 뿐이었고, 소수의 단체 회원들만이 서명 등의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이 와중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시위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필자 외의 기자들을 향해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대던 일부 회원들이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비웃으며 얼굴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본인 얼굴 노출은 무서워서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꽁꽁 싸맨 이들이 정작 다른 이들의 외모를 비하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한 셈이다.

이들이 평소 인터넷에서 익명성에 기대어 악플로 해왔던 행위를 시위현장에서 그대로 재현한 꼴이다.

제천화재 참사가 여성학살 사건이라는 여초연합의 주장

어쨌든 이들의 시위에서 나타난 바와 같은 피해망상과 타인에 대한 공격적 언행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우려스러운 것은 메갈·워마드 등이 유포시킨 극언 덕분에 일각에서 이를 빌미로 진짜 여성혐오(학술적인 용어‘misogyny’가 아닌 hatred)를 유포시킨다는 점이다. 최근 나타난 안티페미연합 같은 커뮤니티처럼 페미니즘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는 남성들의 움직임도 날이 갈수록 세력화, 조직화되고 있다.

이러한 분노의 악순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혐오발언을 여성운동(?)의 방법론으로 여성계가 인정한 순간부터 젠더문제에 대한 남녀 간의 인식의 간극이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하늘과 땅만큼 벌어진 것이 현실이다.

여성 커뮤니티 내에서도 워마드와 같은 극단적 부류를 배척하고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이 벌어지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메갈 사태 당시 미러링이라는 허구적인 명분을 옹호했던 순간부터 워마드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의 출현은 불 보듯 뻔하지 않았을까.

제천 여성학살 시위 주최 측이 양성 간 증오의 악순환을 바랐다면 그들의 의도는 성공적이지 못할 것이다. 대중의 공감을 받지 못한 채 심지어 여성계로부터도 고립되어 가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에게 가장 좋은 건 그들 자신이 이른바 ‘여혐민국’인 대한민국을 떠나는 것 아닐까. 어떤 나라를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굳이 권한다면 최근 세계경제포럼 성평등지수 4위를 차지한 르완다는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