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약품 리베이트 역사

리베이트의 사전적 의미

단골거래처와의 거래가 일정 금액을 넘었을 경우 또는 특별한 판매 활동을 하였거나, 판매 서비스를 하였을 경우 등에 대금의 지급 혹은 수령 후 지급되는 비용. 리베이트는 물품판매는 물론 해상(海上) ·육상(陸上) 운송업, 보험업 등의 서비스업에서도 행하여진다. 일반적으로 리베이트율(率)은 관습에 의하거나, 비용효과(費用效果)의 정도에 따라 정해진다

영어의 사전적 의미

amount paid by way of reduction, return, or refund on what has already been paid or contributed. It is a type of sales promotion marketers use primarily as incentives or supplements to product sales

즉 ‘리베이트’라는 단어는 원래 정당한 판촉비용이며 서구사회의 경우 제품을 구매한 후 동봉된 쿠폰이나 영수증, 혹은 바코드를 보내면 구매금액 일부를 돌려주는 이른바 우편물 리베이트(Mail-in Rebate)가 일반화됐다.

사진 1. 구매금액 일부를 돌려주는 우편물 리베이트
사진 2. 구매금액 일부를 돌려주는 우편물 리베이트

따라서 ‘의약품 리베이트’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며 미국의 경우 처방의 대가로 제약회사-의사 간에 오가는 부정적 금전거래에 대해서는 ‘리베이트’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kick-back’ 또는 ‘bribe(뇌물)’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의약품 리베이트’는 우리나라에서 처방의 대가로 오가는 금전관계를 통칭하는 관용어가 되었으므로 그 명칭이 부적절하지만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대한민국 의약품 리베이트의 역사

대한민국 의료계의 의약품 리베이트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과거에는 정부가 정책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해 눈감아주고 있었기 때문에 의약품 리베이트가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 몇 가지 중요한 제도적 변화에 따라 의약품 리베이트의 형태도 크게 바뀌게 되었다. 이를 시기별로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1. 2000년 의약분업 이전

의약분업 이전에는 병원과 의원에서 직접 약을 조제해서 환자에게 공급했다. 즉 처방과 조제가 하나의 기관에서 이뤄졌다. 즉 처방권과 조제권이 모두 의사에게 집중되던 시기였다.

절대적 선택권을 가진 의사가 어떤 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제약회사의 매출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병·의원에 약을 공급하는 제약회사와 도매상은 주문량보다 더 많은 양의 약을 공급하는 관행을 유지했다. 예를 들어 100만원어치를 주문하면 120~130만원어치의 약을 갖다 준 것이다. 이것을 ‘할증’이라고 했는데 의약분업 이전에는 거의 모든 병·의원과 거의 모든 제약회사·도매상에서 할증이 관행으로 진행됐다.

당시에는 치맥을 파는 통닭집에 OB와 하이트가 서로 할인율을 높이며 납품경쟁을 벌이는 것처럼 병·의원에 납품되는 약에 대해 할증을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식했다.

할증은 병·의원이 진료 외에 부가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이었지만, 정부가 원가 이하의 진료수가를 유지하기 원했기 때문에 의료기관의 이러한 부가적인 수익 창출 수단에 대해 정부는 모른 체 눈 감고 있었다. ‘할증’은 일종의 의약품 리베이트인데 2000년 이전, 정부가 개원가의 리베이트를 적발해 처벌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2. 2000~2010년

2000년 완전의약분업이 전격적으로 실시되자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처방권은 여전히 의사들에게 남겨졌지만, 조제권이 약사들에게 넘어간 것이다. 더 이상 의사들은 약을 직접 조제할 수 없게 됐다. 소위 약에 대한 의사들의 권한이 크게 약화된 사건이었다.

약을 병·의원에 공급할 필요가 없게 되자 입원환자가 없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할증’이라는 단어가 사라졌고 입원환자에게 투약하는 병원급 의료기관에만 ‘할증’이 남아있게 됐다.

이제 제약회사의 영업방식은 과거 의사의 매입에 대해 할증을 주던 방식에서 의사의 처방에 따라 대가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됐다. 이른바 본격적인 ‘의약품 리베이트 영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단속하기 시작하자 제약회사는 리베이트 영업방식을 진화시켰다.

예1. 의사에게 제공하는 리베이트의 지급 주체를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바꿨다. 즉 제약회사가 리베이트를 영업사원에게 수당형식으로 지급하고 영업사원이 자신이 받은 수당에서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런 영업방식의 전환은 리베이트의 확산을 가져왔다. 의사가 처방하고도 그 대가를 받지 않는다면 그 대가가 고스란히 영업사원의 수입으로 돌아가거나 신규 시장확대를 위해 다른 원장에게 돌아가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영업방식은 한미약품이 가장 먼저 시행했고, 이후 다른 제약회사들에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예2. 의사에게 현금을 지급하기보다 제약회사의 법인카드를 제공해 사용하게 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전담 수사반

3. 2010년 이후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의약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의약품 리베이트를 꼽았다. MB정부는 전체 의약품 매출의 약 20%(연간 약 2조원)가 리베이트로 지급되고 있고, 제약회사가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갖다 바치느라고 R&D에 투자할 돈이 없다고 판단했다. 매우 잘못된 진단이었지만 MB정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기존의 법으로는 리베이트를 받는 개원의사를 처벌할 근거가 없다고 하자 2010년 4월,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제약회사뿐만 아니라 의사들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소위 ‘리베이트 쌍벌제’를 만들어 국회를 통과시켰다. 이 법은 2010년 11월 28일 발효됐다.

리베이트 쌍벌제가 개시된 이후 제약회사의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해 조사가 본격화됐다. 2011년 하반기부터 2012년 1월까지 7~8개 제약회사의 리베이트 사건이 줄줄이 터졌고 정부는 2012년 들어 리베이트 쌍벌제를 더욱 강화하는 법안을 추진했다.

리베이트 쌍벌제 강화법안의 추진을 막기 위해 대한의사협회는 2012년 2월, 이른바 ‘리베이트 단절선언’을 하면서 리베이트가 의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약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산·정 협의체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제약회사 영업사원의 의료기관 출입금지 조치를 취했다.

의사협회의 선제대응으로 리베이트 쌍벌제 강화법안의 추진은 미뤄졌으나 정부는 의·산·정 협의체 구성 요구에 대해 차일피일 미루다가 무려 1년 4개월 후에야 첫 협의체 회의를 구성했다. 의협은 ‘판매촉진’이라는 애매한 표현 말고 합법과 불법을 명확히 규정해 달라는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리베이트 쌍벌제를 입법 이전 시기까지 소급해 적용하여 의사들에게 행정처분을 내렸다. 의사들의 반발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억울하다고 소를 제기한 사건에 행정법원이 적법하다고 판결을 내렸고 감사원도 리베이트 쌍벌제 이전 건에 대해 처벌하라는 권고안도 보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서 소급 적용을 지속했다.

의사협회는 크게 반발했고 의·산·정 협의체는 무기 연기됐다.

정부는 리베이트 쌍벌제 이전 수수 사건에 대한 행정처분을 착착 밟아나갔다. 담당 주무관이 행정처분예고통지서를 보냈고, 어떤 의사는 여기에 반발해서 소송을 제기했으며 어떤 의사는 순응했다. 그리고 어떤 의사에게는 통지가 배달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서

그러던 사이 “왜 의사들만 공소시효 없이 처벌을 받아야 하느냐”며 의사들의 행정처분에 대해서도 5년간의 시효를 두어야 한다는 박인숙 의원의 소위 ‘공소시효법’이 2016년 5월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서 2010년에 제정된 리베이트 쌍벌제 이전 사건은 면죄부를 받게 됐다.

그러나 같은 사건으로 적발된 의사 중에서도 이미 행정처분이 확정된 의사는 구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담당 주무관이 서둘러 서류를 보낸 의사들은 2개월 이상 행정처분을 받게 됐고, 늑장을 부렸던 의사들은 모두 구제를 받게 된 것이다. 뒤늦게 보건복지부가 형평성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이들을 함께 구제하려 했으나 법무부에서 제동을 걸었다. 이들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