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찬의 리얼한 대한민국] 나향욱 망언과 금수저의 역사

망언의 냉정한 현실

“민중은 개·돼지로 취급하고, 먹고 살게 해주면 된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교육부 고위 관료의 망언이었다. 이 이야기 때문에 상위 1%에 속하려고 노력했던 공직자는 결국 파면을 당하고 말았다. 그가 했던 발언 중에는 미국 이야기도 있었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거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망언이 있을 무렵 미국 폴 라이언(Paul Ryan) 미국 연방 하원의장의 인스타그램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바로 하원 의장이 다수의 공화당 의회 인턴과의 셀피(selfie)가 문제였다. 그 사진은 백인 일색이었다.

폴 라이언(Paul Ryan) 미국 연방 하원의장의 공화당 의회 인턴과의 셀피(selfie)
폴 라이언(Paul Ryan) 미국 연방 하원의장의 공화당 의회 인턴과의 셀피(selfie)

물론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의 발언과 달리 미국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나 마르코 루비오는 모두 히스패닉 출신으로서 나 전 기획관의 발언이 미국 정치 사회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폴 라이언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적어도 미국 주류 사회에서의 인종적 편협함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의 발언은 분명 한국 사회에 대한 망언이었다. 그래서 파면이라는 응징을 당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계급 논쟁은 사실 지나칠 수 없는 불편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가 이야기했던 신분제 사회는 무엇일까? 최근 들어 서울대 학생들은 ‘과잠(학과 점퍼)’이라고 불리는 의상에 출신 모교를 표현한다고 한다. 그리고 열성적인 학부모들은 인맥을 위해 상류층만의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경쟁을 한다.

게다가 자수성가를 한 청년 창업가가 사실은 금수저 부모의 도움으로 성공했다는 조작된 미담들이 들려오는 일과 로스쿨을 나와도 성적 좋은 학생보다 집안 좋은 학생이 더 빨리 로펌에 취직했다는 이야기를 보면 확실히 대한민국 사회는 계급이 공고화되어 간다는 불편한 경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계급이란 어떤 것인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역사 속 흙수저와 금수저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금수저는 다름 아닌 고구려의 추모왕이었다. 주몽이라고 불리는 신화 속 이 인물은 친부가 해모수이며, 어머니는 유화부인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는 동부여 금와의 아들로 입적되어 왕자로 성장한 것으로 나온다. 마치 사생아로 차별받다 남하하여 나라를 건국한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삼국유사>에서는 해부루는 해모수의 아들로 나오기 때문에 추모왕은 동부여의 대소왕에게는 할아버지뻘의 왕족이 된다. 게다가 유화부인의 하백은 만주 일대의 유력자였고, 추모왕의 아내인 소서노의 전남편은 우태라는 인물로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는 해부루의 서손으로 표현된다.

당시 부여인들은 유목민의 풍습이 있어 ‘형사취수제’ 같은 제도도 있었기에 추모왕은 결국 성장기와 창업기 모두 ‘친족’의 도움을 받은 셈이 된다. 한 마디로 역경 신화란 친족 간 권력 다툼이지 드라마 <주몽>과 같은 역경은 아니었다.

KBS
KBS <태조 왕건>

그렇다고 우리나라 역사에서 흙수저 창업신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흙수저의 주인공은 바로 후삼국의 ‘궁예’이다. 그는 신라 왕족 출신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날조된 것으로 봐야 옳다.

어쨌거나 그는 가진 것이 하나 없는 비천한 계급에서 시작해서 후고구려를 창업했다. 하지만 진정한 금수저인 ‘왕건’에게 권력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왜일까?

여기서 궁예와 왕건의 차이가 드러난다. 궁예는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나라를 세웠고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귀족 사회이자 호족 중심의 국가 체제에서 그는 몇 번의 실책으로 민심을 다 잃게 되었다.

사실 왕건도 만만치 않게 실책을 저질렀지만, 그는 언제나 혼인 동맹으로 맺어진 인척 관계의 호족들과 아버지인 왕륭이 생전에 만들어둔 황해도 출신 호족 네트워크의 보호를 받았다.

사실 귀족 계급 사회와 아닌 사회에서의 큰 차이는 바로 ‘실력의 공백’을 메워줄 인간관계에 있었다. 똑같은 실정이었지만 왕건은 여론을 무마시켜줄 귀족 계급과 인적으로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고, 궁예는 아니었다.

비슷한 사례로는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였다. 종교적인 관점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면 그는 예루살렘에서 종교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로마와 유대 귀족들에게 탄압받지 않았다면 이후 마호메트처럼 나라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기에 로마 귀족과 유대인 귀족들은 그리스도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어쩌면 혹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 역사에는 민중이 권력층을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만들었던 역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조선 태조 이성계 또한 원나라 천호장이자 다루가치였던 이자춘의 아들이었고, 가문으로부터 상속받은 영토와 사병을 바탕으로 고려에서 성공 가도를 달렸으니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그러나 최근에 있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는 누가 봐도 흙수저였다. 스스로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었고, 인권변호사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정계 진출하고, 최종적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처럼 이러한 흙수저 신화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바로 ‘인간적’인 측면이 약점이기 때문이다. 즉, 흙수저 자수성가 신화가 탄생하면 일반 대중들은 차별화된 환상을 가지게 된다.

궁예도 사실 스스로 미륵이라 칭하고, 전지전능함을 정치적으로 활용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동맹 관계의 호족 세력이 약한 상태였는데, 오로지 군사적 정치적 역량으로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자신의 절대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성공 신화 뒤에 인간적인 실수가 동반되면 권위는 급격히 추락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로마인과 유대인들이 가한 공격도 바로 ‘메시아’라는 위치를 무너뜨릴 인간성을 찾는 데 있었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할 때 언론이 강조했던 것은 ‘경박스러운 언행’이었고, 수사를 받을 때는 수사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어차피 별다를 것이 없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어쩌면 나향욱 전 정책 기획관의 말은 맞을지도
분명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점점 신분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즉, 능력주의로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측면의 경쟁력이 세상에 투영되기 때문이다.

소위 창업한다는 사람들도 성공 신화 이면에는 몇 번이고 실패해도 버틸 수 있는 부모의 재력 기반이 존재했다는 것이 뒤늦게 발견되기도 한다.

같은 능력이라도 부모의 인맥에 의해 출발 선상과 기회의 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은 명백하게 ‘가문’으로 기회를 달리 주는 귀족주의 사회와 닮았다.

능력을 중시하던 미국도 최근에는 정치 명문가에서 대선 후보가 주로 탄생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앞서 미 의회 인턴들의 구성만 봐도 인재풀의 편협함이 드러나는 추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시 현실을 직시하자면 이 상황이 과거 몇백 년의 역사를 비춰볼 때, 꽤 개선되었다는 점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민중들은 왕의 목을 단두대에서 쳤다. 하지만 훗날 다시 그 왕의 친척을 왕으로 세웠다. 또한, 몇 번이고, 혁명과 반혁명을 경험했다. 민주주의의 역사라는 영국과 미국 또한 진보와 후퇴를 반복했다.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의 우리는 새로운 첫걸음을 가고 있다. 마치 귀족주적이고 세습적 퇴행 현상이 벌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100년도 안 된 사회였고, 전쟁으로 모두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경험이 있던 사회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제야 대한민국 구성원들은 무언가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부를 축적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누구도 가지지 않았기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 무언가를 가졌기 때문에 현상으로 드러났으며, 그것이 마치 퇴행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나향욱 전 정책기획관은 그 발언으로 파면당했다. 그리고 세습과 귀족주의적 문화 양식에 격렬한 저항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렇게 진행 중이다.

임형찬

임형찬

'정치하지마라' 저자
bucuresti@naver.com
임형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