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과 가상화폐, 분리 불가능?

업계 논리에 휘둘리는 정부와 언론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태도 변화

최근 비트코인 등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둔 ‘암호화 가상화폐’(가상화폐) 투기 열풍이 사회적 논란이 되자, 정부에서는 ‘투기는 규제하되 블록체인 기술은 촉진하겠다’는 입장을 줄곧 취했다. 정부의 이러한 입장의 연장 선상에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은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출처 KBS)

하지만 최근 이러한 정부 기조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최근 23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숲이라면 가상통화는 그 숲에서 우뚝 자란 나무”라는 발언을 내놓으며 블록체인과 가상화폐가 분리될 수 없다고 인정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기존의 정부 입장과 180도 다른 태도로 해석된다.

프레임 전환을 꾀하는 업계, 받아 적는 언론

이러한 기조 변화의 배경에는 먼저 가상화폐 업계의 프레임 공세가 존재한다. 지금까지 가상화폐 관련 업계 종사자 및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에 대한 명칭부터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둔) ‘암호화폐(crypto-currency)’로 부를 것을 요구해왔고, 이에 기반을 둬 ‘블록체인 기술은 가상화폐와 분리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물론 이해당사자인 업계는 그럴 수 있다지만, 이러한 업계의 논리를 비판 없이 받아 적는 언론은 정부 정책을 왜곡할 소지가 있다. 게다가 그러한 언론 중에는 놀랍게도 ‘진보언론’으로 불리는 <한겨레>도 있다. 김동연 부총리의 발언이 <한겨레> 인터뷰 과정에서 나왔을 뿐만 아니라, <한겨레>도 업계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기사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지난 21일 ‘가상통화 규제, 블록체인 지원’이 반쪽 정책인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가상화폐는 다수가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는 ‘퍼블릭(public)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둬 있으며, 이러한 참여를 유인하는 데 가상화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한겨레> 기사는 다음과 같은 우려를 전하고 있다. 가상화폐를 사장시키면 소수의 기업과 단체만 참여할 수 있는 ‘프라이빗(private) 블록체인’만 살아남아 대규모 공룡기업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는 언뜻 보기에는 ‘진보적’인 걱정일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가상화폐 관련 업계와 이해당사자의 논리를 비판 없이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프레임, 즉 “가상화폐 규제는 곧 신기술의 잠재력에 대한 억압이자 소수 대기업 옹호”라는 프레임에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휘둘리고 있다.

핵심질문, ‘가상화폐’를 ‘실제 화폐’로 수요할 유인이 존재하는가?

가상화폐 옹호론자들은 가상화폐가 블록체인 기술을 발전시킬 대중적 ‘유인(incentive)’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시중의 가상화폐는 다수의 거래자가 인터넷상에서 공유하는 가상의 장부(=블록체인)에 화폐적 형태를 부여한 것이다. 문제는 P2P 네트워크상에서 공유되는 이러한 가상의 장부를 지속해서 업데이트하고 그 보안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참여자들이 상당한 컴퓨터 자원을 자발적으로 지출해야 한다는 것. 이때 가상화폐는 이러한 비용지출에 대한 ‘인센티브(incentive)’ 역할을 한다. 비트코인의 경우 가상의 장부를 업데이트하고 암호화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이용자에게 ‘채굴’의 방식으로 코인을 보상한다.

비트코인

이 때문에 관련 업계는 다수의 공중이 참여하는 퍼블릭 블록체인에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소수의 기업 및 기관이 참여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과 달리) 가상화폐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논점을 회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쟁점은 퍼블릭 블록체인에서 가상화폐가 필수적이냐가 아니라, 현재의 가상화폐를 상용화하는 데 따른 사회적 효용이 그 비용을 상회하느냐이다.

여기서 잠깐 우회해 보자. 알다시피 대다수의 가상화폐 시스템은 참여에 대한 보상 격인 코인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사전에 정해진 규칙으로 코인을 공급하며 그 총공급량은 일정 수량으로 제한된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 거래에 기반을 둔 화폐 수요에 따라 화폐공급을 은행 혹은 중앙은행이 조절할 수 있는’ 현대적 화폐제도와 맞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가상화폐가 과거의 19세기 금본위제와 유사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현실의 화폐 시스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가상화폐는 외부자금의 유입에 의한 ‘투기거품 문제’와 ‘급격한 가격변동 문제’에 취약해지고 말았다.

그 결과 현재 비트코인을 비롯한 시중의 가상화폐는 화폐로서 기본적인 3대 기능(교환수단·가치저장수단·가치척도)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가상화폐를 취득하려는 이들의 동기는 열이면 열 재화의 거래나 거래의 결제가 아니라 시세차익이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거래 시세(출처 빗썸)

여기서 진짜 ‘인센티브’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토록 가격변동이 심한 가상화폐를 실제 거래수단으로 수요할 유인을 누가 갖는가? 일반 이용자도, 거래소나 채굴자도, 이들에 출자한 투자자도, 어느 누구도 가상화폐를 실제 화폐로 사용할 유인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가상화폐는 (퍼블릭) 블록체인을 유지하기 위한 인센티브다’라는 업계의 주장은 ‘현실에서는 가상화폐를 실제 교환 및 결제수단으로 사용할 인센티브가 전혀 없다’는 문제 상황을 가리는 야바위꾼의 속임수에 불과하다.

비트코인 류의 코인을 ‘가상화폐’라고 부르든 ‘암호화폐’라고 부르든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화폐로서 쓸모를 가질 어떤 현실적인 유인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그것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퍼블릭 블록체인’의 쓸모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크리티컬한 질문은 그런 것이다.

‘도박판’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기술이라면 사장돼야

한편 앞서 언급한 <한겨레> 기사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참가자들이 늘어나야 (퍼블릭)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가상화폐 거래소에서의 거래 위축을 암묵적으로 우려한다. 비단 <한겨레>뿐만 아니라 다수의 보수 경제지 그리고 관련 업계가 내세우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화폐’가 아닌 ‘투기자산’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을 지닌 절대다수의 가상화폐의 특성을 비춰볼 때, 거래소를 통한 (투기적) 수요를 유지해야만 퍼블릭 블록체인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는 결국 거칠게 비유하자면 ‘기술 발전을 위한 실험에 사용할 실험용 쥐 용도로 사람들을 꾀어내기 위해 도박판을 벌이자’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기술발전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라는 사실에 비춰보면 이러한 논의가 언어도단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더군다나 동물실험도 윤리적인 논쟁거리가 되는 지금 시대에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주장이기도 하다. 투기판을 통해 사람들을 꾀어내야만 유지될 수 있는 기술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사장되어야 한다.

만일 퍼블릭 블록체인의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가상화폐를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돈’이 아닌)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할 용의가 있는 참여자들의 커뮤니티 활성화에 있지 자본주의적으로 운영되는 거래소에 있지 않다.

블록체인

가상화폐가 분권적이고 수평적인 화폐시스템?

<한겨레> 기사는 퍼블릭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가상화폐가 ‘분권적인 화폐’라고 순진하게 가정하고 있다. 이 역시 가상화폐 관련 업계의 논리를 답습하는 작태이긴 마찬가지이다.

비트코인이 초창기에 내세운 설계이념이 ‘분권적인 화폐’라고 해서 실제 돌아가는 구조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현실사회주의 체제가 평등-자유를 내세운다고 해서 그것이 실제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스템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가상화폐는 현실에서 소수의 채굴업자와 투기꾼의 수중에 화폐를 집중시키는 ‘중앙집중적’인 소유구조를 낳았고 지금 현재에도 이들 소수에 의해 가상화폐 시세가 좌지우지되고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에도 채굴 활동의 이익뿐만 아니라 거래로 인해 발생한 수수료 역시 소수의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 혹자는 국가의 법정통화도 비슷한 문제가 있지 않으냐고 반문하겠지만 법정통화를 발행하는 국가의 경우 인민이 민주적으로 그 대표를 선출할 수 있지만, 가상화폐 거래소와 채굴업자는 그런 민주적 통제방법이 전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후적 정부규제가 뒤따른다.

한가지만큼은 명심하자. 가상화폐든 블록체인이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의 기술이 아니다. 블록체인 기술 또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수평적 신뢰 관계를 창출해내는 기적의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블록체인 기술은 이미 기존에 존재했던 사회적 신뢰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데 의의가 있을 뿐이다. 더군다나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는 불평등하고 집중화된 권력 및 소유구조를 변경할 힘이 없다. 오히려 이미 소득과 부가 집중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그런 문제를 심화시키는 데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현실의 규제정책은 이러한 우려에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