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특집] 첫 빙상 아이돌 채지훈 선수

13회 응답하라! 1994

기적의 500m 금메달

1994년 한국 시간 2월 27일 새벽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하마르 올림픽 원형 경기장. 남자 500m 결승전을 앞두고 채지훈은 심호흡을 크게 하며 대기석에서 일어섰다. 긴장하지 말자며 자신을 다잡았지만, 링크로 들어서는 순간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성과 긴장감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말 그대로 아찔했다.

그래도 애써 뛰는 가슴을 몇 번이나 쓰다듬어서 억누르며 스타트 라인에 섰다. 스타트 포지션은 2레인. 우승을 놓고 경쟁할 캐나다의 가그농이 1레인, 이탈리아의 빌레르민이 3레인이다. 스타트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느린 편이라서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경기 전날 자기도 모르게 기도를 한 보람이 있었던 것일까. 추첨 결과가 좋았다.

경기 전 감독과 짠 전략은 초반 스타트가 좀 늦더라도 순위를 차근차근 올려 마지막 바퀴에서 뒤집는 것이었다. 스타트했을 때 꼴찌만 아니면 대역전승의 가능성이 있다. 준결승에서도 경험했듯이 빌레르민의 스타트는 세계 최고로 이미 500m 세계 신기록을 세운 선수였다. 다만 스타트 이후 2바퀴부터는 스피드가 떨어진다. 그래서 중반 이후를 노려야 한다.

레디~, 쾅!

총성이 울렸다.

예상대로 스타트가 빠른 빌레르민이 3레인인데도 1위로 나섰다. 채지훈은 1레인인 가그농에 이어 3위로 시작했다. 한 바퀴를 돌았을 때 선두인 빌레르민이 쭉쭉 치고 나간다. 2위인 가그농과는 차이가 10미터가량 났다. 그리고 채지훈은 가그농의 바로 뒤에서 바짝 따라갔다.

2바퀴째를 돌면서 가그농의 아웃코스를 노리던 채지훈은 인코스를 파고드는 것으로 작전을 전환했다. 2바퀴가 남았기 때문에 마지막 바퀴에 빌레르민을 젖히려면 적어도 지금은 2위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직선주로에서 성공적으로 인코스를 파고든 채지훈은 2위로 올라섰다. 반면 3위로 쳐졌던 가그농은 서두르다 코너에서 블록을 밟고 미끄러졌다. 어부지리로 3위가 된 영국의 구치는 앞 선수들을 따라오기도 벅찼다. 2위는 확보한 상태. 하지만 앞서 달리는 빌레르민과의 거리는 여전히 멀다.

인코스를 도는 채지훈 선수

아직 포기는 금물이다. 바로 전 두 사람이 맞붙었던 준결승전에서 채지훈은 막판 전력을 다하지 않고 2위로 들어왔고 그래서 빌르레민이 약간 방심했을 수 있다. 그런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서 준결승, 결승 레이스를 준비해야 한다. 기술과 체력도 중요하지만, 막판 승부를 가르는 건 결국 정신력과 마음가짐이다. 의도적으로 전략 노출을 피한 것은 바로 지금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 바퀴 남긴 상태에서 아직도 10m 가까이 차이가 난다. 바로 그때 빌레르민이 뒤를 돌아봤다. 벌써 두 번째다. 뒤를 돌아봤다는 건 그만큼 심적으로 쫓기고 체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곡선 주로에서 빌레르민과 격차를 많이 줄인 채지훈이 드디어 직선 주로에서 스퍼트한다. 체력이 떨어진 벨레르민은 점점 속도가 떨어진다. 마지막 곡선 주로를 앞에 두고 차이는 2~3m 차이로 줄어든다. 이제는 순전히 눈치와 머리싸움이다. 인과 아웃, 어디로 들어가느냐와 그걸 잘 막느냐의 싸움이다.

그때 다시 빌레르민이 뒤를 돌아다봤다. 채지훈은 직감했다. ‘인코스를 막겠구나.’ 결승선을 앞둔 마지막 코너. 채지훈은 아웃코스로 크게 돌아 들어갔다. 채지훈이 인코스로 들어가는 거라고 예상하고 막기 위해 왼손까지 짚었던 빌레리민은 살짝 삐끗했다. 그 삐끗 한 번이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두 사람이 마지막 직선 주로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채지훈의 왼발이 결승선에 먼저 들어간 것이다.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역사상 처음, 그리고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는 쇼트트랙 500m 금메달을 따는 순간이었다. 채지훈은 당시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결승선 마지막 추월 시에는 정말 너무 큰 환호성이 들려서 고막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거 아니냐고 물으니까 절대 아니라고 부정한다. 정말 소리가 컸다는 기억. 현장에 없었기에 그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승리를 확신했는데 0.02초밖에 차이가 안 날지는 몰랐다고, 그렇게 박빙인 줄 알았으면 반드시 발 내밀기를 했을 거라 한다.

어쨌든 그 장면은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중에 하나다. 쇼트트랙이 동계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지 26년째지만, 다른 종목에선 수도 없이 금메달을 딴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유일한 단거리 금메달이기 때문이다. 그 500m 금메달을 따기 위해 채지훈 자신도 많이 노력했다. 태릉 빙상장 바로 옆에 있는 스포츠과학연구소에 있는 사이벡스란 훈련 기계를 통해 집중적으로 연습을 했을 뿐만 아니라 취약한 스타트를 개선하기 위한 연습도 많이 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장면은 대한민국 스포츠사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로 남는 장면이기도 하다. 4년에 한 번씩 배출되는 빙상 아이돌 오디션의 첫 주인공이 탄생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소녀팬들로부터 받은 선물

첫 빙상 아이돌의 탄생

알베르빌에서 대한민국의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고, 계주 금메달까지 견인해 낸 김기훈은 분명 세계 쇼트트랙 역사와 대한민국 올림픽사에 길이 남을 영웅이지만 흔히 말하는 아이돌 스타와는 거리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십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서 오는 거리감이 소녀팬들을 열광시키기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만 스무 살에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린 올림픽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의 실력, 운동선수 같지 않은 곱상한 외모, 연세대라는 최고의 학벌까지(당시 농구대잔치로 연세대에 대한 호감도는 최고였다). 채지훈은 바로 그 전해에 서태지로 시작된 아이돌 문화의 수혜를 누리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춘 선수였다.

빙상 아이돌이 된 채지훈 선수

그가 귀국했을 때 당시 김포공항에 몰려든 소녀팬들로 공항을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인기가 폭발했다. 그렇게 당시 대한민국의 수많은 소녀팬은 채지훈에게 열광했고, 그는 최초의 빙상 아이돌이 되었다. 연세대 선배이자 농구 선수 중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이상민 선수와 함께 인터뷰할 정도로 그의 인기는 신드롬 수준이었다.

물론 4년에 한 번 짧게 몇 달,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쇼트트랙이란 종목의 특성상, 그리고 그런 유명세를 즐기지 않는 본인의 성격 덕분에 그 신드롬은 오래 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4년 후 김동성이 나가노 올림픽에서 1000m 금메달을 딸 때까지 대한민국 쇼트트랙을 언론에서 이야기할 때 채지훈은 항상 에이스의 숙명을 지고서 기사 첫머리를 장식하는 선수가 됐다.

릴레함메르 이후 채지훈의 선수 생활

사실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은 그가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서 두 번째 해에 출전한 대회였기에 정신 차리기도 힘들었다고 그는 고백했다. 물론 그렇게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땄다는 것은 그가 타고난 스타임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후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의 진정한 에이스가 된 채지훈은 1994-1995시즌부터 쇼트트랙에 눈을 떴고, 초대 에이스였던 김기훈 못지않은 성적을 거둔다. 1995년 세계선수권 3관왕 및 개인종합우승, 1995년 동계유니버시아드 4관왕, 1996년 동계아시안게임 3관왕이란 눈부신 성적이었다.

그때 그는 경기에 나가면 어떻게 해야 이길지 눈앞에 길이 다 보일 정도로 쇼트트랙에 도통한 상태였다. 하지만 ‘호사다마’란 말대로 1996년 겨울 태릉선수촌에서 무리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다가 허리 부상을 입고, 그 후 충분한 휴식과 안정을 취하지 못해 허리 디스크로까지 발전하며 그의 선수 생활은 내리막길을 걷고 성적도 급전직하한다. 하지만 팬들은 그를 잊지 않았다. 1997년 전주에서 열린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계주 후보 멤버였던 채지훈의 이름을 아이스링크에 모인 팬들이 연호하자 그는 허리에 마취 주사를 맞은 채로 결승전에 나서고,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금메달을 따내는 데 일조한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국제대회이자 현역으로서 마지막 대회였던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채지훈은 대회 전부터 금메달 기대주로서 언론의 기대를 모았지만, 허리 부상으로 개인전 내내 부진했다. 샛별 김동성이 개인전 1000m 금메달을 따면서 스포트라이트는 김동성에게 쏠린다. 빙상 아이돌과 대한민국 남자 쇼트트랙 에이스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것은 채지훈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다만 선수 생활 마지막 경기가 될 남자 계주 5000m에서 금메달을 따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 그것이 나가노 올림픽의 유일한 목표였다. 자신도 있었다. 숙명의 라이벌인 캐나다도 한 수 아래로 치부할 정도로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의 실력은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결승 레이스 초반 넘어진 한국 대표팀은 이후 김동성과 채지훈을 중심으로 치열한 추격전을 전개하지만 결국 캐나다에 이어 은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결코, 캐나다가 우승할 만한 실력은 아니었어요. 우리가 훨씬 실력이 좋았거든요. 팀워크도 그렇고.”

그때 채지훈은 김동성이 1000m 금메달을 땄을 때 들고 달렸던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그 기운을 받아 금메달을 땄으면 하는 바람을 안은 채 경기를 뛰었다고 한다. 계주 금메달을 따면 가슴 속 태극기를 쫙 펼쳐서 들고 환호할 계획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은메달을 따면서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은퇴 이후 이야기

선수 생활 마지막 경기를 아쉽게 마무리한 채지훈은 1998년 은퇴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받은 채지훈은 2002년 일시 귀국해 박사 논문을 써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6년엔 미국의 쇼트트랙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했다. 한 시즌 미국 국가대표 감독을 경험한 채지훈은 북미는 국가대표팀 운영이 쉽지 않음을 체험했다. 태릉선수촌이나 링크장이 많은 서울을 중심으로 모여서 집약적으로 운동하는 한국과 달리 국가대표로 선발되어도 각자 사는 지역에서 운동하다가 국제대회를 앞두고 공항에서 만나는 상황이다 보니 경기력이 크게 향상될 수가 없는 형편이다. 그나마 한국과 가장 상황이 유사한 일본조차도 선수층이 너무 얇고 운동할 수 있는 링크를 대여하기가 쉽지 않아 실력을 향상하기엔 한계가 많다고 한다.

2006년 미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감독으로 부임한 채지훈

하지만 국내 빙상 인프라에도 문제는 있다. 빙질이 매우 좋은 북미나 유럽에 비해 국내 아이스링크의 빙질은 수준이 떨어진다. 채지훈 본인도 최근에야 국내 아이스링크의 빙질이 나쁜 이유가 수질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생수를 얼려 사용하는 북미나 유럽과 달리 수돗물을 얼려 사용하는 국내 아이스링크의 빙질이 좋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처음에 아이스링크를 설계할 때부터 선수들의 의견은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시공자 임의대로 아이스링크를 만들다 보니 선수들이 운동하고 경기하기 편한 아이스링크와는 거리가 먼 아이스링크를 만드는 것이다. 대한민국 빙상 인프라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2006-2007시즌 미국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했던 채지훈은 이후 ISU(국제빙상연맹)의 기술분과위원으로서 10년간 활동한다. 기술분과위원은 각종 국제대회에 심판을 배정하고 대회가 열릴 때 감독관으로 참여해 심판들이 제대로 판정하는지 못하는지 평가하는 일을 한다. 또 ISU의 각종 규정을 변경할 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그 자리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기술분과위원으로서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쇼트트랙 국제대회 메달을 독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 제정되어도 강하게 반대 의사를 나타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ISU(국제빙상연맹)의 기술분과위원으로 활동한 채지훈

당장 2017-2018시즌부터 뒷 선수가 추월을 시도할 때 두 선수가 동일 선상에 서면 앞 선수는 그를 가로막지 않고 자리를 비켜주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중반 이후 레이스를 주도하는 대한민국 선수들에겐 매우 불리한 조항이지만 경기 위원 한 사람이 유럽과 북미의 다른 위원들의 주장을 물리치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결국, 대한민국 선수들에 불리하게 규정이 개정되어도 어쩔 수 없이 지켜만 봐야 하는 안타까움이 컸다. 게다가 기술분과위원을 계속하려면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다. 다른 직업을 가질 수도 없고, 사업을 하기도 힘들다든지 등 제약이 많다고 한다.

결국, 2016년을 끝으로 ISU 기술분과위원 직을 그만둔 채지훈은 한국으로 돌아와 수원에 있는 탑동 아이스하우스에서 어린이들에게 스케이팅을 가르치며 골드아이스의 해외업무 이사로서 동남아 지역의 쇼트트랙 붐과 대한민국의 빙상 산업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동남아시아 게임에 쇼트트랙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쇼트트랙을 제대로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점점 커지고 있고, 그에 가장 알맞은 솔루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초대 쇼트트랙 여왕인 전이경이 싱가포르 대표팀 감독이 되어서 선수들을 데리고 2017년 여름 대한민국에 전지훈련을 온 것도 바로 그러한 흐름의 일환이다. 채지훈도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맡아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채지훈이 이후 대한민국에 글로벌 스케이팅 트레이닝 센터를 짓겠다는 포부를 품은 것도 이러한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프라가 열악한 동남아시아 선수들을 위한 훈련 시설을 만들어 스케이팅 한류를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맡아 훈련을 지도하고 있는 채지훈

평창 올림픽 전망과 유럽의 강세에 대해

다가올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채지훈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여자부의 경우 에이스 두 선수가 워낙 잘하기 때문에 큰 이변이 없는 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본다. 남자부는 실력이 모자란 것은 아닌데 아직 경기를 이끌고 나갈 에이스가 나오지 않은 게 문제라고 본다. 결국은 전략의 문제이기에 코칭 스태프가 주도면밀하게 잘 준비해야 할 것이고, 기왕이면 여러 명의 선수가 입상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최근 유럽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에 대해선 한국의 기술, 특히 스케이트 날을 깎는 기술이 유출된 것이 크다며 옛날엔 우리 선수들이 눈으로 보고 대충 깎아도 좋은 성적이 나왔는데 지금은 무조건 게이지를 써야 하고, 로그, 벤딩, 템플릿을 어떻게 깎느냐에 따라서 레이스 전략이 나오는데, 한국 선수들의 비법이 유출되면서 유럽 선수들이 그대로 그 전략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한다. 결국은 한국과 그 외 나라 선수들의 대결로 흘러갈 이번 올림픽, 그리고 향후 세계 쇼트트랙의 추세는 이러한 기술을 어떻게 개발하고 그에 따라 효율적인 전략을 짜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