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대책, 남성정책이 빠졌다

지난 12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간담회에서 “지금까지의 저출산 대책은 실패했다”며 저출산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어 “여성이 결혼·출산·육아를 하면서도 일과 삶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자신의 삶과 가치를 지켜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저출산 근본 대책”이라고 진단했다. 그동안의 출산장려대책이 효과가 없음을 인정하고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의 삶의 문제까지 해결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시했다.

민병두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동대문을)의 2017 국정감사 보도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지난 12년간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투입된 예산만 무려 122조 4000억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율 반등을 끌어내지 못한 것은 정작 필요한 곳에 돈이 쓰이지 않았던 이유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를 만든다는 해결 방향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서울 시내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이 아기들이 없어 텅 비어 있다

많은 학자는 이러한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결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전통적 가족구조의 한계를 지적한다. 남성은 노동시장 영역을, 여성은 가사와 자녀 양육을 담당하는 성별 분업이 결과적으로 아이를 낳는 여성에게 부담을 지움으로써 저출산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전통적 패러다임 하에서 가족복지 정책은 가족의 본래 기능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발전했으며, 정상적인 가족을 성별 분업에 기반을 둔 핵가족으로 전제해왔다. 그리고 그 패러다임을 깨지 못한 역대 정부들은 보육 서비스, 출산보조금 제도, 육아휴직 제도 등 각종 가족복지 정책을 폈으나 결과적으로 저출산 극복에 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저출산 극복 핵심은 ‘탈가족화’, 해외 저출산 극복 사례

덴마크의 사회학자 에스핑 앤더슨(Esping Anderson)은 탈가족화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탈가족화란 가구의 복지와 돌봄 책임이 국가를 통해 완화되는 정도를 뜻한다. 다시 말해 단순 돌봄 노동의 책임을 국가가 가족으로부터 가져오는 것만이 아닌, 가족 부담을 공적인 서비스를 통해 덜어줌으로써 여성을 노동시장에 진입하도록 하고, 남성노동자와 동일한 탈상품화에 의해 복지국가와 연관을 맺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탈가족화 개념이다.

실제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 독일, 프랑스 등 몇몇 유럽 국가들은 국가주도의 돌봄 사회화 구축이 먼저 이뤄졌다. 독일의 경우 전통적으로 가족 내 보육을 원칙으로 해 현금급여 지급 정책이 주류를 이뤄왔다. 3세 미만의 아동 보육시설은 매우 부족했으며 1994년 공공 보육시설 이용률은 2.2%에 불과했다. 이러한 보육시설 구축 미비는 지속적인 저출산 현상을 일으키게 된 요인이다.

독일 정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세 이하 아동 3명 중 1명에게 보육시설을 보장하는 계획을 지속해서 추진했고, 만 1세가 되면 모든 아동이 보육시설을 이용할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게 했다.

또한, 경력단절 예방을 위해 육아휴직 기간을 3년에서 1년으로 축소하고, 아버지의 육아휴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보너스 제도를 도입하는 등 남녀 모두가 육아와 일을 양립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인프라의 구축이 탈가족화 경향을 강화하는 일련의 과정들이다.

독일 출산율 변동 추이(출처 KBS)

프랑스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전통적인 가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나 이후 출산율 제고를 위해 돌봄의 가족화와 사회화를 병행하는 다양한 정책들이 도입됐다. 쉽게 말해 강한 모성주의 성격을 띠던 전통적 가족복지 유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고 여성의 모성역할과 노동자 역할을 동시에 지원하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가족 수당 지급을 확대·강화하면서도 보육시설을 늘리는 등 돌봄의 가족화와 사회화를 병행하는 방식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1994년 1.66명이었던 프랑스의 출산율은 2014년 2.08명까지 올라감으로써 OECD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출산율을 보이게 됐다.

물론 두 나라 모두 이민자들의 증가로 인해 출산율이 오른 것이지 제도적 구비와는 관련이 없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노력이 분명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방향성은 좋으나 여전히 놓치는 지점, 남성 스테레오타입

이러한 해외의 저출산 극복 사례들을 토대로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의 저출산 대책에 관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긍정적이다. 출산을 단순 성과로 따지는 출산장려정책에서 벗어나 결혼을 생각하거나 결혼한 여성들의 본질적인 삶의 문제로 정한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여전히 출산의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만 국한 짓는다는 것이다. 탈가족화를 위해선 여성의 노동자의 역할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성이 가정에서 경제적 압박감 없이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여성의 경제활동 욕구를 충족해주는 만큼 남성의 경제활동 부담도 함께 덜어줘야 한다. 이것은 많은 학자와 정치인이 저출산 문제에 대해 접근할 때 항상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가 2000~2016년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2.23명으로 저출산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이전인 지난 2000년(1.7명)보다 더 높은 수치라고 한다. 즉, 출산율은 곧 결혼율과 나란히 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한, 2015년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대표 이정근)이 20·30세대 2880명을 대상으로 “귀하는 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 집 마련 중 포기한 것이 있습니까?”라고 설문한 결과, 57.6%가 ‘있다’라고 답했으며, 그중 남성이 포기한 1순위는 다름 아닌 ‘결혼’(53.2%)이었다. 그다음 ‘연애’(48.5%), ‘내 집 마련’(47.2%), ‘출산’(41.9%), ‘대인관계’(40%) 순으로 포기했다는 응답이 나타났다.

‘N포 세대'(출처 YTN)

비슷한 연구로 2017년 고려대 대학원 사회학 전공 손지성씨의 석사 논문 ‘한국 빈곤층 남성들의 연애와 결혼 포기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남성들이 생계를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는 전통적 남성성 때문에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요약하자면 저출산 현상의 기저에는 ‘낮은 결혼율’이 있으며, 출산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여성과 마찬가지로 남성 역시 사회적, 경제적 부담감으로 인해 결혼을 포기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저출산 현상은 비단 여자들의 사회적 문제만이 아닌, 남자들의 경제적 문제와도 연결돼 있으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이러한 양쪽 측면을 함께 고려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히려 아버지의 육아 책임을 강조하다 보니 “저출산의 근본적인 원인은 가정에 소홀한 남성들 때문”이라는 식의 남녀대립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경우까지 생긴다. 하지만 이는 올바른 접근 방식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상적인 남편이란 기본적으로 일차적 생계부양자로서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탈가족화’가 이뤄져 남성의 육아 참여를 유도하고 싶다면 돌봄 노동을 책임지는 전업주부의 남성성 역시 인정받아야 하며, 무엇보다 여성이 그러한 남성을 배우자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남성 역시 마찬가지로 자기보다 경제적으로 뛰어나고 근로 욕구를 가진 여성을 여성으로서 인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제도뿐만 아니라 ‘인식 개선’ 선행돼야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제도적 구비 이전에 이러한 인식들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식 개선이라고 하니 조금 뜬구름 잡는 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때론 너무나도 당연한 것을 간과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저출산 현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어떤 표피적인 조치만으론 부족하기 때문에 인식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첫 단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