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특집] 진심 담긴 쇼트트랙 해설로 감동 선사, 안상미

15회 대한민국 쇼트트랙 해설의 전설

인기 스포츠엔 그 스포츠를 대표하는 인기 해설가가 있다. 우리나라의 양대 인기 종목인 야구엔 허구연씨와 고 하일성씨 등의 대표 해설가가 있었고, 축구엔 신문선씨와 차범근 감독 등의 해설가가 큰 인기를 끌며 많은 유행어도 남겼다.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는 동계 종목의 경우 해당 스포츠의 경기 단체 관계자나 은퇴 선수, 코치 등이 단발성으로 해설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쇼트트랙은 금메달리스트 출신 스타들이 많은 만큼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올림픽 때마다 국민에게 널리 알려진 스타들을 해설자로 영입하는 게 관례처럼 됐다. 특히 앞에서 ‘빙상의 전설’로 소개한 김기훈, 전이경, 채지훈 선수가 단골 중 단골이었다.

그런데 지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조금 색다른 일이 벌어졌다. 일반인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안상미 선수가 SBS에서, 김소희 선수가 MBC에서 해설을 맡은 것이다. 김소희 해설위원은 94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계주 금메달, 1000m 동메달리스트이고, 안상미 해설위원은 98 나가노 동계올림픽 계주 금메달리스트로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았다.

안상미 해설위원(출처 SBS)

결론만 놓고 보자면 안상미 해설위원의 해설은 크게 호평을 받으며 시청률을 높이 올렸다. 10년 넘게 쇼트트랙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을 중계해 오며 쌓아온 전문성과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친분을 쌓아온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해설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이번에 소개할 ‘빙상의 전설’은 바로 대한민국 쇼트트랙 해설의 전설, 안상미 해설위원이다.

빙판의 똑순이, 올림픽 계주 2연패를 일궈내다

안상미 해설위원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쇼트트랙을 시작했다. 그리고 딱 6년 후인 중학교 3년인 1994년 6월 처음 국가대표가 됐다. 같은 해 12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5위를 해 예비 멤버로 뽑혔다. 하지만 선발전 순위가 낮았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만 봐야 했던 그녀는 1995년 4월 세계팀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국제무대를 밟았고, 500m에서 조1위를 했다.

그리고 1995년 10월에 열린 국가대표선발전에서는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종합 1위를 차지하며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1995년 10월에 열린 챌린저컵(지금의 월드컵) 대회에서도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하며 대한민국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로 자리 잡아 갔다. 1996년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3000m 계주 은메달을 시작으로 1997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개인종합 우승에 이어 마침내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155cm의 작은 키로 국가대표 선수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는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7년 동안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하며 본인의 자리를 지켜낸 안상미 선수였다.

당시 나가노 동계올림픽 100일을 앞둔 안상미 선수

나가노 동계올림픽 당시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여자 계주팀의 고민은 첫 번째 주자로 누구를 내세우냐는 것이었다. 1994년 첫 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낸 전이경, 김윤미, 원혜경 세 선수를 출전시키는 것은 이미 정해졌지만, 나머지 한 명을 누구로 하느냐가 문제였다. 스타트가 빠른 최민경 선수와 지구력과 코너웍, 경기운영 능력이 좋은 안상미 선수를 놓고 고민하던 전명규 감독은 안상미 선수의 경험을 높이 사 그녀를 첫 번째 주자로 내정했다.

몇 번 언급했지만, 계주에서 첫 번째 주자와 두 번째 주자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계주에서 승부의 향방은 마지막에 한 번씩 더 뛰는 첫 번째 주자와 두 번째 주자가 어떻게 뛰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 예상대로 여자 계주 결승전은 중국과 대한민국의 맞대결로 흘러갔다.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두 나라의 차이가 결승선을 두 바퀴 남기고 2~3m 정도로 벌어지며 중국이 조금 더 앞서갔다.

마지막 주자인 김윤미 선수에게 터치하기 전 안상미 선수는 승부수를 띄웠다. 바깥쪽으로 크게 돌며 아웃코스로 치고 나가는 척하다가 중국 선수의 안쪽을 파고든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순위가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안상미 선수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주자 김윤미 선수를 힘껏 밀며 터치했다.

안상미 해설위원의 국가대표 경기 모습

안상미 선수의 기세를 물려받은 김윤미 선수는 이후 순위를 내주지 않고 마지막까지 힘차게 질주해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 이어 여자 계주팀이 올림픽 2연패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안상미 선수는 전이경 선수의 은퇴로 대표팀의 맏언니가 돼 1999 강원 동계아시안 게임 계주 금메달을 이끌어내고 2000년 세계선수권 3000m 슈퍼파이널에서 우승하며 개인종합 2위에 올랐다. 당시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로 군림하던 양양 A에 이어 개인 최고 성적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선수로서 최고의 순간에 안상미 선수는 은퇴를 결정한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을 단 1년 앞두고 2001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했다. 아쉬움이 남을 만도 했지만, 최선을 다해 7년이나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했기에 후회는 없었다고 한다.

선수 은퇴 이후, 해설위원과 심판·주부로 여전히 일인다역

은퇴 후 1년간의 대학 생활을 거쳐 안상미 해설위원은 대구광역시체육회에 입사한다. 체육회에 들어가려고 계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했고 여러 자격증을 따놓은 것과 국가대표 출신으로 금메달을 딴 것도 도움이 돼 최종 합격했다. 입사 후 회계 쪽 업무를 담당했던 안상미 위원은 임용고시 준비도 병행하며 선수 시절과 다름없는 똑순이의 면모를 보였다. 그리고 2003년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해설위원으로까지 데뷔하며 1인 2역을 담당했다.

처음에는 많이 긴장하고 떨어서 어떻게 방송을 한지도 몰랐는 그녀는 해를 거듭해 가면서 경험이 쌓이고 외국 선수들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해서 점차 해설가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특히 2011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되고서는 ISU 빙상 패키지 계약을 맺고 있는 SBS에서 월드컵 시리즈도 전 경기 생중계해주면서 세계선수권 중계만 하던 안상미 해설위원이 거의 모든 월드컵 대회를 중계하게 됐다.

이를 통해 안상미 해설위원은 쇼트트랙 전문 해설가로 인지도를 쌓았다. 그리고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감동적인 해설을 함으로써 많은 시청자에게 선수 시절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안상미 해설위원의 애정이 담긴 해설, 진심 어린 눈물과 샤우팅이 전 국민의 가슴에 울렸던 것이다.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안상미 해설위원이 전 국민의 가슴에 울렸다

하지만 2017년 세계선수권대회 중계를 마지막으로 안상미 해설위원은 SBS와 더 이상 방송을 하지 않게 됐다. 총 14년간 함께했던 SBS와의 인연을 마감하며 안상미 해설위원은 자신의 SNS에 “함께하지 못하겠다는 통보를 받고 화도 나고 많이 속상했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보니 지금은 많이 편해졌습니다. (중략) 해설을 하며 선수들과 함께 긴장하고 호흡하며 경기를 보는 것이 정말 재밌고 좋았습니다. 앞으로 SBS에서 제 목소리를 들을 순 없겠지만 전 여전히 쇼트트랙을 사랑하고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며 지금과 다름없이 살아갈 겁니다”라고 글을 남겼다.

자신의 말대로 안상미 해설위원은 여전히 쇼트트랙을 사랑하고 선수들을 응원하며 살아가고 있다.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쇼트트랙 소식을 전하고, 쇼트트랙 대회 심판으로 나서며, 지난 월드컵 4차 대회에서는 장내 아나운서로 쇼트트랙 경기를 관람하러 온 관중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하는 등 여전히 바쁘고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재는 대한체육회의 ‘찾아가는 운동선수 진로교육’ 전문강사와 ‘인권교육’ 전문강사로 활동하며 후배 운동선수들의 교육환경에도 힘을 쏟고 있다. 또한, 예쁜 딸과 아들을 키우며 엄마이자 주부로서의 삶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도전을 할지 알 수 없지만, 빙판의 똑순이란 별명 그대로 안상미 해설위원은 야무지고 슬기롭게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녀가 시작한 제3의 출발을 응원한다!

MBC 허일후 아나운서와 안상미 해설위원(출처 안상미 인스타그램)

안상미 해설위원이 MBC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해설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