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특집]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 혹은 빅토르 안 1

17회 신의 경지에 오른 스케이팅 기술

인기 스포츠에는 그 스포츠를 대표하는 선수가 있다. 축구엔 펠마메라고 불리는 펠레, 마라도나, 메시. 농구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야구엔 베이브 루스와 사이영. 그렇다면 쇼트트랙을 대표하는 선수는 누구일까. 이론의 여지가 없을 순 없지만, 대부분은 안현수, 이제는 빅토르 안이 된 그를 꼽을 것이다.

세계선수권 6회 우승에, 올림픽 금메달만 6개, 동메달은 2개. 역대 쇼트트랙 선수로서 그 누구도 이러한 성적을 남긴 선수는 없다. 남자 선수는 물론이고 여자 선수로까지 범위를 넓혀봐도 쇼트트랙 여왕으로 불리던 중국의 양양 A 선수가 세계선수권 6회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긴 했지만, 올림픽 성적은 안현수 선수에 한참 뒤처진다.

하지만 우리에게 안타깝고 답답한 사실은 안현수 선수가 대한민국 선수로서 저렇게 훌륭한 성적을 거둔 것이 아니라 러시아로 귀화 후에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 그리고 세계선수권 우승 1회의 성적을 거뒀다는 것이다. 그것도 2014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귀화 파동으로 말이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역사상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 선수는 1985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났다. 명지초등학교 2학년 때 스케이트를 시작해 1996년 전국 남녀 종별 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했고, 명지중학교에 진학해 동계체전 중등부 3연패를 하면서 쇼트트랙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다. 또한, 신목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전국체전 고등부에서 1위를 하며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름을 보였다.

그리고 주니어 대표로 출전한 2002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1000m와 1500m에서 우승하며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이런 안현수 선수의 재능에 주목한 당시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전명규 감독은 부상으로 빠진 이재경 선수의 대체 선수로 안현수 선수를 발탁했다.

2002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 김동성 선수와 함께 출전한 안현수 선수는 김동성 선수가 준결승전에서 리지아준의 파울에 밀려 탈락한 것과 달리 결승에까지 진출해 메달 획득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경기 막판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오노와 리지아준을 앞에 두고 인코스로 추월을 하려다가 넘어지던 리지아준이 안현수 선수의 스케이트 날을 치면서 균형을 잃은 안현수 선수와 함께 오노까지 넘어지는 일이 벌어진다.

결국, 어부지리로 우승을 한 선수는 계속 꼴찌였던 호주의 브레드버리였고, 몸을 날린 오노가 2등, 캐나다의 마티외 투르코가 3등을 한 반면 안현수 선수는 4위에 그쳤고 리지아준은 실격을 당했다.

이어서 계주에서 당한 부상으로 빠진 민룡 선수를 대신해 1500m에 출전한 안현수 선수는 실격을 당해 사상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노메달의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열린 세계선수권에서는 분노의 질주를 펼친 김동성 선수를 보조하며 2개의 은메달을 따내어 종합 2위에 올랐고,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

이후 김동성 선수가 부상과 연예계 진출로 대표팀에서 빠지면서 에이스 자리를 물려받은 안현수 선수는 이후 세계선수권 5연패에 2003년 아오모리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 2007년 장춘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 2개, 토리노 올림픽 3관왕에 전 종목 메달 획득이라는 금자탑을 세운다.

이 기록만으로도 역대 대한민국 쇼트트랙 선수 중 최고의 성적뿐만 아니라 전 세계 쇼트트랙 선수 중에서도 비견될 만한 선수는 중국의 양양 A밖에 없지만, 양양 A는 세계선수권 6연패의 대기록을 세운 것에 비교해 올림픽 성적은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로 안현수 선수가 대한민국 선수로 세운 기록에 못 미친다. 다만 양양 A 선수가 아시안 게임에선 금메달 8개에 은메달 2개로 안현수 선수보다 더 나은 성적을 거뒀다.

여기까지는 누가 더 낫다 못 하다 말하기 힘든 성적이지만 이후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로 귀화해 소치 동계올림픽 3관왕에 2014 세계선수권 우승까지 하면서 명실상부 세계 최고 쇼트트랙 선수의 영예는 안현수 선수 차지가 됐다.

안현수와 안톤 오노

세계 최고 스케이팅 기술과 쇼트트랙에 대한 열정

쇼트트랙 선수로서 안현수 선수는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안정된 자세에서 나오는 군더더기 없는 스케이팅, 수많은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과 넓은 시야, 인코스와 아웃코스를 자유자재로 추월하는 가속도에 끝없는 훈련량을 통해 키운 지구력까지···.

세계선수권 5연패를 하던 시절 안현수 선수와 대적할 만한 선수는 지구상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왕년의 국가대표였던 이준호 해설위원은 “안현수는 쇼트트랙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전속력 아웃코스로 달리다 밖으로 흐르지 않고 안으로 탈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선수”라고 말할 정도다.

미국의 레전드인 안톤 오노는 소치 동계올림픽 중계방송 중에 “만약 쇼트트랙을 위해 태어난 운동선수가 있다면 안현수일 것이다. 안현수가 뛰는 자세를 보면 골반이 약간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스케이터로서 완벽한 자세다. 안현수는 엄청난 기술과 경험을 겸비했다”라고 극찬을 했다.

이렇게 극찬한 오노는 물론이고 중국의 리지아준, 캐나다의 찰스 헤믈린 등의 세계 정상급 스케이터들도 한두 종목 안현수 선수를 이길 수는 있어도 전체 성적에서 안현수 선수를 이기는 경우는 없었다. 오히려 대표팀 후배인 이호석 선수가 안현수 선수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선의의 경쟁을 펼쳤을 뿐이다. 또 안현수 선수가 마지막 주자로 뛰는 대한민국 남자 계주 대표팀도 항상 세계 정상에 머물렀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안현수 선수는 만 20세의 나이에 2006 토리노 올림픽에 출전한다. 당시 언론에서는 안톤 오노와 안현수 선수의 올림픽 재대결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으나 안톤 오노는 상대도 되지 않았고, 오히려 이호석 선수와 열띤 대결 끝에 안현수 선수가 우승하는 식으로 경기가 진행됐다.

1000m, 1500m 경기 모두 안현수 선수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을 차지한 가운데 쇼트트랙 마지막 날 남자 계주와 같은 날 치러진 500m 결승에서는 미국의 안톤 오노가 부정 출발 의혹을 받는 가운데서도 제일 먼저 골인해 금메달을 땄고, 안현수 선수는 3위로 들어왔다. 내심 전관왕도 노려봤을 직한 컨디션이었지만 500m가 주 종목은 아니었던 만큼 안현수 선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대망의 5000m 계주 결승전. 대한민국은 송석우-안현수-서호진-이호석 순으로 순번을 정해 출전했다. 대한민국, 캐나다, 미국, 이탈리아가 결승에 진출한 가운데 94, 98 올림픽을 우승한 캐나다가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맞수로 꼽혔다. 그리고 예상대로 대한민국과 캐나다는 초반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한편 안톤 오노가 뛰는 미국 대표팀은 홈팀인 이탈리아 대표팀과 3위 자리 경쟁을 하고 있었다. 9바퀴를 남겨두고 캐나다에 역전을 허용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2바퀴를 남겨두고 안현수 선수에게 송석우 선수가 터치하고 1바퀴를 남겨두고서 캐나다 선수를 바짝 추격하던 안현수 선수는 아웃코스로 가볍게 캐나다 선수를 추월해 남자계주에서 대한민국에 14년 만의 금메달을 안겨준다. 파벌 싸움으로 선수들 간에 서로 말도 안 하고 같이 훈련도 안 할 정도로 신경전이 극대화됐던 때에 거둔 최고의 성과였다.

안현수

이렇게 안현수 선수가 마지막 주자로 나서 계주 우승을 가져온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가장 극적인 예로 지금도 전설적인 경기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는 07-08시즌 월드컵 3차 대회 5000m 남자 계주 결승전에서 안현수 선수가 이끄는 한국 계주 대표팀은 17바퀴를 남겨두고 선두로 달리던 선수가 미끄러지면서 중국에 역전을 허용하고 한 바퀴 가까이 뒤처진다.

하지만 안현수 선수를 중심으로 열띤 추격전을 전개한 끝에 3바퀴를 남겨두고 역전에 성공하고 2바퀴를 남겨두고 다시 역전을 허용하지만, 마지막 주자였던 안현수 선수가 1바퀴를 남겨둔 직선 주로에서 인코스로 역전하며 대역전승을 완성한다. 당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중국의 리옌 코치가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도 안현수 선수의 역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드러내는 반증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안현수 선수는 쇼트트랙을 즐기고 사랑한다는 점에 있어서 진정 쇼트트랙을 위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누구보다도 쇼트트랙을 잘하기도 하지만 또 그에 못지않게 승부를 즐기고 몰입하는 선수가 안현수 선수였다. 이런 그가 부상으로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을 때 겪었을 좌절과 아픔은 누구보다 컸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쇼트트랙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그가 귀화를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