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특집]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 혹은 빅토르 안 2

18회 '도핑 의혹' 평창 출전 최종 무산, 유종의 미 거두지 못하다

파벌 파동과 부상

대한민국 쇼트트랙 선수들과 지도자 사이에 파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전부터 계속 불거져 나오던 문제였다. 안현수 선수를 중심으로 한 한체대 파벌과 그 외 대학 선수들이 속해 있는 비한체대 파벌은 국가대표 선발전은 물론이고 국제대회에 나가서도 서로 견제하다가 경기를 그르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에서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 1, 2위로 달리던 안현수 선수와 이호석 선수가 치열한 선두 다툼을 하다가 3위인 안톤 오노에게 역전을 허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인 두 선수를 3위인 선수가 제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파벌 싸움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선수가 경쟁하면서 생긴 틈을 교묘하게 파고든 오노가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고 여러 차례 기사화와 TV 시사프로그램에까지 나왔지만, 파벌 문제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토리노 동계올림픽 기간 안현수 선수는 한체대 소속인 여자 선수들과 훈련을 하고, 한체대 소속이 아닌 변천사 선수는 남자 선수들과 훈련을 하는 촌극까지 벌어진다. 비록 안현수 선수가 올림픽 3관왕을 하고, 계주 우승까지 하면서 비한체대 선수들과의 관계가 일시 회복되는 듯했으나 한 달 후 벌어진 세계선수권에서 비한체대 선수들이 안현수 선수를 막았다고 안현수 선수의 아버지 안기원씨가 폭로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빅토르 안’ 안현수 아버지 안기원씨

안현수 선수가 개인종합 4연패를 하고 돌아온 2006년 4월 4일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안현수 선수의 아버지 안기원씨는 “선수들과 코치가 짜고 안현수가 1등 하는 것을 막았다. 스포츠맨십도 없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면서 “현수가 미국 현지에서 울면서 전화했다. 외국 선수들보다 한국 선수들이 더 심하게 현수를 견제했고, 1000m와 3000m에서 코치의 지시로 다른 파벌선수들이 안현수를 막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을 말리는 김형범 빙상연맹 부회장과 말다툼을 벌이다 손찌검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안기원씨는 이 일로 빙상장 출입이 1년간 금지된다.

이에 대해 안현수 선수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지금은 너무 힘드네요. 부끄러운 일들도 많고 아무리 참고 견뎌보려고 해도 지금은 다 관두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드네요”라며 “그래도 저에게 용기와 희망 그리고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라고 적었다.

어쨌든 이렇게 커지자 빙상연맹에서는 파벌 문제의 당사자로 지목되는 두 사람을 화해시키고 문제를 봉합했다. 미봉책이지만 파벌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했고, 안현수 선수는 안정을 되찾고 07~08시즌 최고의 컨디션을 보이며 세계선수권을 5연패 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양양 A의 세계선수권 6연패 기록을 경신하는 것. 이미 국내외에 적수는 없는 데다가 다음 대회는 홈그라운드인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에서 벌어지는 만큼 양양 A와 타이기록을 세우는 것은 따놓은 당상 같았다.

하지만 세계선수권을 2개월 앞둔 2008년 1월, 안현수 선수는 태릉 선수촌 링크장에서 훈련 중 넘어져 펜스에 충돌하며 무릎 부상을 당한다. 이 부상은 선수 생활을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이었기에 안현수 선수는 결국 양양 A의 세계선수권 연속 우승 기록 경신을 포기하고서 수술을 받는다.

재활 실패와 귀화

수술 이후 안현수 선수는 재활에 힘쓴다. 세계선수권 6연패가 무산된 이상 그에게 남은 목표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출전과 개인전 금메달 획득이었고, 그를 위해선 2009년 4월에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종합 2위 이상의 성적을 거둬야 했다.

종전 같으면 종합 3위 내에만 들어도 개인전에 출전할 수 있었으나 안현수 선수의 가장 큰 라이벌인 이호석 선수가 2009년 세계선수권을 우승하면서 올림픽 자동 출전권을 획득했기 때문에 종합 2위에 드는 성적을 거둬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이 대회에서 안현수 선수는 종합 7위의 저조한 성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데 실패한다. 수술 후유증으로 체력을 끌어올리지 못한 데다가 경기 감각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해 부진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안현수 선수는 모든 것을 달관한 듯, 후배인 곽윤기 선수와 그 외 선수들을 축하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안방에서 절친한 후배들이 올림픽 무대를 누비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봐야만 했던 안현수 선수는 이후에도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2011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해설자로 SBS 방송에 출연하기까지 한다. 누구보다도 쇼트트랙을 사랑하고 세계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라고 자부하던 안현수 선수로서는 참으로 답답하고 참기 힘든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밴쿠버 올림픽이 끝나고 짬짜미 파문이 벌어진다. 밴쿠버 올림픽 2관왕 이정수 선수와 계주 은메달리스트인 곽윤기 선수가 2009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담합을 했다는 폭로 사건이었다. 이에 빙상연맹에서는 2010년 국가대표 선발전을 9월 이후로 연기한다.

4월 선발전을 앞두고 준비 중이던 수많은 선수가 빙상연맹의 결정에 아쉬움을 표하지만, 항간에서 제기된 바와 같이 5월 육군훈련소에 들어가는 안현수 선수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 선발전을 9월로 바꿨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다. 안현수 선수 한 명을 탈락시키기 위해 선발전 일정을 바꿀 정도로 빙상연맹이 무책임한 집단은 아닐뿐더러 당시 상황에서 진상 규명을 위해 선발전을 연기하는 것은 합당한 처사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진상 조사를 통해 이정수, 곽윤기 선수는 자격 정지 3년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후 안현수 선수는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는 와중에 소속팀인 성남시청이 2010년 12월 해체되는 이중고를 겪는다. 소속팀을 찾지 못한 안현수 선수는 개인 자격으로 2011년 2월 평창 동계체전과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한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종합 5위의 성적으로 국가대표팀 차순위자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미 러시아 귀화를 결정한 상태였기에 의미가 없었다.

결국, 2011년 6월 안현수 선수는 러시아로 출국해 8월 17일 귀화 신청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12월 29일, 당시 러시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안현수 선수의 귀화를 허락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함으로써 대한민국 안현수 선수는 러시아인 빅토르 안이 된다.

tvN ‘현장토크쇼 택시’ 출연한 안현수 선수

왜 귀화를 했는가?

안현수 선수가 빅토르 안이 돼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과 1개의 동메달을 따내는 반면 대한민국 남자 선수들이 노메달에 그치면서 빙상연맹과 대한민국 남자 선수들을 향한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마저 국무회의에서 안현수 선수의 귀화 문제를 거론하며 “안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 줄세우기, 심판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문체부에서는 선수들이 실력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심판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체육비리와 관련해서는 반드시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에 많은 이들이 안현수 선수가 파벌 문제로 귀화한 것으로 오해했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안현수 선수 자신이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파벌 문제가 귀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스승인 전명규 한체대 교수와의 불화가 원인이라면 이후 그가 한체대 빙상장에서 훈련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전 소속팀 성남시청 빙상팀의 해체를 이유로 들 수도 있겠지만, 안현수 선수의 아버지 안기원씨가 인터뷰를 통해 인정했듯이 성남시청 빙상팀이 해체되기 전에 이미 안현수 선수는 귀화를 모색 중이었다.

그러면 도대체 안현수 선수는 왜 러시아로 귀화한 것일까. 안현수 선수의 인터뷰와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의 발언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안현수 선수는 2014년 2월 15일 금메달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저를 위해서, 운동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다.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던 다 잊고 내가 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 귀화를 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러시아 빙상연맹 회장은 “한국은 최상급의 선수층을 가지고 있는데 장난감이 많은 아이가 조금만 고장 나도 쉽게 장난감을 버리듯이 자국의 선수들을 대한다”라고 말했다. 종합해서 말하면 안현수 선수는 자신을 완벽하게 지원해 주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러시아로 귀화한 것이고 대한민국엔 안현수 선수를 그렇게 지원하려는 기업이나 단체가 없었다. 그 외의 다른 이유는 모두 부차적인 것으로 진짜 원인과는 거리가 있다.

여전히 안현수 선수의 귀화가 파벌 싸움 때문이라고 믿는 이들은 제발 오해를 거두길 바란다. 그것은 안현수 본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빙상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로잡아야 하는 오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했던 남자대표팀이 안현수 선수의 귀화와 맞물려 너무 심한 비난을 받은 것이다. 물론 본인들이 자초한 부분도 있으나 본인들과 상관없는 일로 과도한 비난을 받았다. 부디 앞으로 제2, 제3의 피해자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올림픽 3관왕과 7년 만의 세계선수권 우승

러시아로 귀화 후 초반엔 천하의 빅토르 안 선수도 고전했다. 첫 러시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꼴찌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나빴고 여자 선수들과 경주를 해도 졌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 빙상연맹의 전폭적인 지원과 재활 치료를 받고, 성남시청 시절 감독이었던 황익환 전 감독이 러시아로 찾아와 빅토르 안 선수의 부활을 도우면서 서서히 전성기의 기량을 되찾아간다.

그리고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에서 차곡차곡 메달을 쌓아가면서 부활의 전조를 알린다. 다만 전성기 시절과 다르게 장거리인 1500m 대신 500m를 주 종목으로 삼아 세계 정상급 기량을 보인다. 나이가 점점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한 빅토르 안 선수는 2014 유럽 선수권대회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부활을 알린다. 그리고 마침내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폭발하듯 500m, 1000m와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1500m에서는 동메달을 따내며 8년 만에 다른 국적으로 올림픽 3관왕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운다. 또한, 쇼트트랙 사상 최초로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유일한 선수가 된다.

당시 그의 레이스를 보면 마치 모세가 지팡이 짓 한 번으로 홍해를 가르듯이 그가 나가고자 하면 앞에 있던 선수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로를 열어준다. 오랫동안 세계 정상을 호령하며 쌓은 경험과 기술에 올림픽을 대비해서 갈고 닦은 체력까지 3박자가 어우러져 완벽한 레이스를 펼친다.

쇼트트랙의 신이 있다면 바로 안현수, 아니 빅토르 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신들린 레이스였다. 결국, 3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러시아가 소치 동계올림픽 종합 1위를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빅토르 안 선수는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조국공헌 훈장까지 받는다.

그리고 이어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에서도 빅토르 안 선수는 홈그라운드의 찰스 헤믈린 선수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면서 7년 만에 세계선수권 개인 종합 우승을 차지한다. 단 한 번도 세계선수권 우승을 하지 못한 찰스 헤믈린으로선 벼르고 벼른 무대였지만 번번이 자신의 앞길을 막아선 빅토르 안에게 다시 한번 좌절하고 만다.

어쨌든 빅토르 안의 세계선수권 6회 우승은 중국의 양양 A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기록이었다. 진정한 쇼트트랙 황제, 아니 쇼트트랙 차르로 등극한 빅토르 안 선수. 하지만 이후 노쇠화 기미를 보이며 점점 하락세를 보인다. 이번 시즌도 월드컵 시리즈에서 단 한 번도 결승에 오르지 못하며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는 진리를 증명하고 있다.

‘빅토르 안’ 안현수, 평창 동계올림픽 명단서 제외(출처 MBC)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빅토르 안은 모국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올림픽 출전을 준비했다. 하지만 빅토르 안의 이름은 IOC가 평창올림픽 출전을 허용한 ‘러시아 출신 선수(OAR·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 명단(169명)에서 빠졌다.

러시아는 이에 제소했고, CAS는 2일 평창 기자회견에서 소치올림픽 도핑에 연루돼 올림픽 영구 퇴출당한 39명 중 28명을 증거 불충분으로 징계 무효화했다. 또 나머지 11명에 대해서도 평창올림픽에 한해 출전 금지로 수위를 대폭 낮췄다.

IOC는 CAS의 결정에 반박 성명을 냈지만, 러시아는 징계 무효 처분을 받은 28명 중 현재 선수 13명과 은퇴 후 코치를 맡은 2명까지 총 15명의 평창대회 참가를 IOC에 요청했다. IOC는 이에 ‘초청검토패널’을 꾸리고 이틀 만에 만장일치로 거부했다.

이후 빅토르 안 등 러시아 선수 32명이 다시 CAS에 제소했지만, CAS에서 기각하면서 빅토르 안의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은 최종적으로 무산됐다.

‘도핑 의혹’ 빅토르 안, 평창 출전 최종 무산(출처 KBS)

현재로선 빅토르 안의 약물 복용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런 혐의가 있는 것이지 복용한 것이 명백하게 사실로 드러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약물 복용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의 선수 시절 업적은 모두 부정당하고 쇼트트랙 사상 최고의 선수에서 최악의 선수가 될 것이다.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기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그와는 별도로 그의 올림픽에서 은퇴하겠다는 바람은 무산됐다. 만약 빅토르 안이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면 러시아란 국적이 그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기에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결백하다면 이후 코치로서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