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차명계좌 1500개 육박···98% 금융실명제 이후 개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차명계좌가 1500개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검사 수사 때 드러난 1197개에서 약 300개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금융감독원이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박찬대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은 전수조사 결과 이 회장의 차명계좌 32개를 추가로 발견했다. 이로써 금감원에 포착된 이 회장 차명계좌는 1229개로 늘었다.

금감원이 발견한 이 회장 차명계좌들은 1987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2007년까지 개설됐다. 1229개 중 1133개가 증권계좌, 나머지 96개가 은행계좌다.

주식 형태인 이 회장의 차명재산을 보관하기 위해 증권계좌가 차명계좌로 주로 쓰였으며, 여기에 이 회장이 대주주로서 지배하는 삼성증권이 동원됐다고 박 의원은 주장했다.

실제로 1133개의 증권계좌 중 삼성증권에 개설된 차명계좌가 918개(81.0%), 신한금융투자 85개, 한국투자증권 65개 등의 순이다. 은행계좌는 우리은행 53개, 하나은행 32개 등이다.

여기에 경찰이 이 회장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면서 밝혀낸 차명계좌 260개를 더하면 총 1489개다. 260개 역시 증권계좌다. 삼성증권에 대부분 개설됐을 것으로 박 의원은 추정했다.

차명계좌 957개는 금융실명제법 위반으로 제재받았다. 또 경찰 수사에 따라 이 회장은 조세포탈 혐의로 추가로 처벌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삼성 금융계열사들에 대한 이 회장의 지배력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 모두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이 시행된 2016년 8월 이전의 일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감원은 이 회장이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 금융계열사들의 대주주로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심사 결과는 최근 금융위원회 보고로 확정됐다. 다음번 적격성 심사는 2년 뒤다.

이건희 회장(출처 뉴스타파)

일부 언론은 의식불명 상태인 이 회장을 대신해 계열사 사장이 서명한 서류가 제출된 만큼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보도했지만, 외부 법률자문 결과 문제가 없다고 금감원은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행법상 이 회장의 대주주 적격성을 문제 삼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올해 추진하는 지배구조법 개정에서도 적격성 요건의 소급적용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대주주의 범죄가 드러나면 금융회사가 보고해 수시 적격성 심사를 하게 돼 있지만, 경찰이 밝혀낸 이 회장의 혐의는 지배구조법 시행 전이라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법적 한계로 이 회장의 적격성을 문제 삼을 수 없게 되자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지배구조법을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 8일 성명에서 “(경찰 수사로) 이번에 밝혀진 82억원의 조세포탈은 그대로 벌금형으로 확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삼성증권의 건전한 경영을 위해서라도 이 회장과 삼성증권 사이의 이해상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대주주 결격 요건에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을 추가하고, 대주주의 의사결정능력도 심사 대상에 넣는 등의 내용으로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특가법은 2심에서 일부 뇌물 혐의에 대한 유죄판결이 유지된 이재용 부회장, 의사결정능력은 이 회장을 각각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은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98%가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 개설되는 ‘대담함’을 보였다”며 “계열 금융회사를 사금고처럼 이용해 차명재산을 운용한 재벌 총수에 대한 규제와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