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안 팔리고 고비용 구조에 경영악화 ‘한국GM’, 철수하나?

제네럴모터스(GM)가 경영난을 겪는 한국GM의 회생을 위해 한국 정부에 손을 벌릴 기미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GM이 이처럼 막다른 길에 몰린 것은 결국 한국자동차 업계의 고질병인 ‘고비용 구조’ 탓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럽 시장 등에서 GM이 철수함에 따라 한국GM의 수출도 그만큼 줄었지만, 인건비 등 고정비는 판매 감소와 상관없이 꾸준히 올라 더는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는 얘기다.

‘판매 감소-비용 증가’ 문제는 현대·기아차 등 다른 한국 완성차업체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마냥 반사이익을 기대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유럽 철수에 한국GM 수출 급감···내수 점유율도 10%→7.4%

12일 한국GM에 따르면 2014~2016년 3년간 누적 당기순손실 규모는 약 2조원에 이르고, 지난해 역시 2016년과 비슷한 약 6000억원의 적자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4년간 적자 규모가 2조5000억원을 넘는 셈이다. 이런 경영난의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차가 안 팔렸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으로 한국GM은 CKD(반제품 조립) 수출량까지 포함해 모두 126만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이 가운데 국내시장에 18만275대, 나머지 약 120개국에 완성차·CKD 방식으로 107만대를 팔았다. 수출이 전체 판매량의 85%,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GM의 대대적 글로벌 사업 재편이 진행되자 ‘수출 위주’ 한국GM이 직격탄을 맞았다.

GM이 유럽, 인도,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주요 시장에서 줄줄이 철수하고 계열사 오펠 등을 매각하면서 여기에 완성차나 부품을 수출하던 한국GM이 공급처를 잃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2013년 말 단행된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시장 철수는 결정타가 됐다.

그 결과 2016년 CKD를 제외하고도 완성차 수출량(41만6890대)이 전년보다 10%나 줄었고, 지난해 수출량(39만2170대)도 다시 5.9% 감소하는 등 계속 수출 실적이 내리막을 걷고 있다.

내수의 경우 스포츠유틸리티(SUV) 라인업(제품군)을 포함해 눈에 띄는 신차가 최근 몇 년간 거의 없었던 게 고전의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GM 관계자는 “2015~2016년 트랙스, 말리부, 스파크 등의 부분변경 모델이라도 출시됐지만, 2017년의 경우 신차가 전기차 ‘볼트’와 ‘뉴 크루즈’ 정도밖에 없었다”며 “요즈음 인기가 많은 SUV 모델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볼트EV

그 결과, 2006~2007년 10%를 웃돌던 한국GM의 국내 자동차 시장 점유율(승용차+상용차)은 지난해 7.4%까지 추락했다.

임금, 2002년의 2.5배···5년 연속 1000만원이상 성과급

하지만 이처럼 수출을 중심으로 판매가 뒷걸음질하는 상황에서도, 한국GM의 임금 수준은 꾸준히 올랐다.

한국GM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임금 수준은 2002년의 2.5배까지 뛰었고, 총 인건비(2015년 기준)는 2010년과 비교해 50% 이상 늘었다.

2013년 이후 2016년까지 성과급은 해마다 1000만원 이상 늘었고, 기본급 인상률은 3.3~5% 범위에서 유지됐다.

해를 넘겨 타결된 2017년도 임금협상도 기본급 5만원 인상, 성과급 1050만원 수준에서 타결됐다.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9년 동안 2009년, 2010년, 2014년, 2015년 4년을 제외하고는 파업도 반복됐다.

임금 상승에는 통상임금 소송 결과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한국GM의 주장이다. 2013, 2014년에 걸친 노조와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소급분 지급 의무는 없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상여금 등의 통상임금 인정으로 이후 인건비 부담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한국GM 부평공장

한국GM 관계자는 “급격히 재무실적이 나빠진 2014~2015년에도 높은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한 것은 글로벌 주력 생산 차종인 경차와 소형 SUV의 공급에 차질이 없기를 바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저조한 판매 실적에 고정비 부담만 커지면서 공장 가동률은 뚝 떨어졌다.

소형 아베오·트랙스, 중형 말리부·캡티바를 생산하는 부평 공장의 가동률은 100%를 유지하고 있지만, 경차 스파크, 상용차 다마스·라보를 생산하는 창원의 가동률은 70% 수준이다.

특히 준중형차 크루즈, 다목적차량(MPV) 올란도의 만드는 군산 공장의 경우 가동률이 20%를 밑돌아 거의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특히 준중형차 크루즈, 다목적차량(MPV) 올란도의 만드는 군산 공장의 경우 가동률이 20%를 밑돌아 거의 생산이 중단된 상태다.

낮은 생산성 해결 없인 ‘밑 빠진 독 물 붓기’ 회의론

한국GM의 발목을 잡은 ‘고비용’ 구조는 비단 한국GM 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 완성차업체들이 안고 있는 과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업체 5곳의 연간 평균임금은 2016년 기준으로 9213만원으로 2005년과 비교해 83.9% 올라 이미 일본 도요타(9104만원)와 독일 폭스바겐(840만원) 등 주요 경쟁업체를 웃돌고 있다.

매출액 대비 임금 비중도 월등히 크다. 국내 완성차 5곳의 2016년 평균 임금 비중은 12.2%로 도요타(7.8%)나 폭스바겐(9.5%)와 큰 격차가 있다.

국내 1위 완성차업체 현대·기아자동차의 영업이익률이 세계 최하위권인 것도 비슷한 이유다.

2017년 현대차와 기아차의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각 4.7%, 1.2%로 집계됐다. 평균적으로 1000만원어치(매출) 차를 팔아 불과 47만원, 12만원의 이윤(영업이익)을 남겼다는 뜻이다.

지난해 1~3분기 누적 실적 기준으로만 따져도 현대·기아차의 수익성은 이미 세계 최하위권이다. 각사 공시 자료와 증권업계 조사 등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영업이익률은 각 5.3%, 0.9%로 세계 11개 완성차업체 가운데 7위와 꼴찌(11위)에 머물렀다.

영업이익률이 9%대에 이르는 1, 2위 다임러(벤츠 모기업·승용차 부문만 9.7%), BMW(9.1%)와 비교해 현대차는 거의 절반, 기아차는 9분의 1 수준이다.

말리부

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한국의 자동차 1대 생산 시 투입시간은 일본(도요타), 미국(포드)보다 각 11%, 26% 더 많이 소요되는 등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런 고비용, 저 생산성 구조에서는 만약 한국GM에 대한 GM본사나 한국 정부, 산업은행 등의 추가 자금 지원이 이뤄지더라도 한국GM이 완전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회의적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GM 철수가 다른 국내 경쟁업체들에 큰 도움이 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완성차업체 관계자는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GM이 한국에서 ‘완전철수’를 결정하더라도, 현재 한국GM의 내수 점유율이 낮은 데다 주로 수출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국내 완성차업체가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은 적다”며 “오히려 한국GM 협력업체들의 대부분이 경쟁업체들과도 거래하고 있기 때문에, 협력업체의 경영난이 가중되면 국내 자동차 생태계 자체가 큰 혼란을 겪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GM 철수’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면, 자동차 업계와 지역 경제, 나아가 한국 경제가 받을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사업보고서를 기준으로 국내 자동차 업체 가운데 1만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는 대기업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그리고 한국GM 세 곳뿐이다. 한국GM의 고용 인력은 모두 1만6031명으로, 매출 100억원이 넘는 1081개 자동차 관련 업체 전체 직원 수(33만5745명)의 4.8%에 이른다.

여기에 한국GM과 거래하는 협력업체(1~3차) 수도 3000여개가 넘기 때문에, 경영난 ‘도미노’가 불가피하다.

한국GM 노조 등은 GM이 한국에서 철수하면 관련 종사자와 가족 등까지 모두 30만명이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GM이 철수하면 현재 한국GM 본사와 공장이 있는 인천 부평, 세단 크루즈와 스포츠유틸리티(SUV) 올란도 등을 생산하는 공장 소재지 군산, 파워트레인(동력전달체계) 생산공장이 위치한 보령 등의 지역 경제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