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일본 최초 검술 유파를 만든 가토리신토류의 이이자사 이에나오(飯篠家直), 현대검도의 원류라 할 수 있는 호쿠신잇토류(북진일도류)를 만든 치바 슈사쿠(千葉周作), 레슬링을 벤치마킹해서 유도를 만든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郞), 심신수양의 도로써 만유애호의 합기도를 만든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 등 이외에도 무술로 시대를 앞선 위인들은 많다.

이전에 세상 물정 모르고 운동만 할 때, 한 중소기업 회장이 필자에게 대를 이어온 무도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무술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때 이후 국내 존재하는 무술들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일본과 해외의 무술에 대해서도 파헤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입식타격기를 만들려고 했다. 새 무명(武名)을 만들고 선수를 집중 훈련시켜서 지속적으로 대회를 열어나가면 안 될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태국 무에타이를 깊이 관찰하게 되면서 생각을 접었다. 태국 무에타이 선수들을 누를만한 한국선수를 만들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다. MMA 위주의 시합이 번성하면서 그 위상이 조금 낮아졌지만, 입식타격기 분야에서는 무에타이는 과히 세계최강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무에타이

형(形)을 위주로 하는 무술은 중국무술을 따를 수 없다. 베이징 우슈팀의 훈련을 보면 공중에서 몸이 날아가는 듯한 날렵한 움직임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태극권의 아름다움과 내공은 감동이었다.

중국무술과 태극권을 흉내 내는 무술도 있지만 말 그대로 흉내일 뿐이다. 필자가 해외에 눈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어설픈 국내용 격투기 하나쯤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무술로 검술이 제일 만만해 보였다. 외부의 도전으로부터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칼을 든 미친놈이 제일 무섭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고류검술과 아이키도>를 출간 전에 이미 그것도 여의치 않음을 알았다.

일본에는 에도시대 말기에 검술 유파만 718개가 있었고 지금도 120여개 유파가 명맥을 유지하며 활동을 하고 있다. 새로운 검술 이름을 만들고 동작을 만들어봐야, 명문 유파의 움직임을 흉내 냈거나 검리에 맞지 않는 칼춤일 뿐이었다.

일본 검술유파에 대한 자료를 정리한 책 <고류검술과 아이키도>

아이키도가 검술을 함께 하고 있지만, 검술을 내세우지 않는 이유는 검을 어떻게 움직여도 기존의 명문 검술 유파의 검리를 벗어나는 움직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키도 선생들은 아이키도와 궁합이 잘 맞는 기존에 있는 유파를 선택해서 별도로 검술에 대해 수련을 하고 있다. 옛 무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검술은 아이키도를 더욱 완벽하게 해준다.

700개가 넘는 검술 유파 가운데 정글과 같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120여개의 검술 유파를 넘어서는 새로운 검술 유파를 만든다는 것은 어렵다. 남의 것을 훔쳐 내 것이라고 우기는 뻔뻔함은 얼굴이 두꺼워야 가능한 얘기다. 또한, 오랜 세월 유파마다 디테일한 기술과 함께 쌓이는 기세(氣勢)는 똑같은 동작을 모방한다고 해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검술이다.

필자(사진 왼쪽)와 윤준환 중앙도장장(오른쪽)의 가토리신토류 연무

일본은 무에타이를 보고 킥복싱을 만들었다. 가라테와 아이키도로 부터 영향을 받아 쇼린지 겐포(小林寺 拳法)가 만들어졌다. 대동류의 기무라 선생과 무도연구소의 히노 선생, 연체회 등 신기에 가까운 선생들을 만나면서 무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함과 독창성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유형의 무술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흥미를 갖는다.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은 하늘이 준 재능과 시대가 요구하는 사명이 있어야 한다. 무술을 좀 하다 보면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쉽다. 무지(無知)에서 오는 신념보다 위험한 것도 없다. 새롭게 만드는 것도 힘들지만,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완벽하게 따라 하고 훌륭하게 알리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다.

새로운 무술을 만들 때는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새로운 무술 명칭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남의 것을 어쭙잖게 흉내나 내고 조잡하게 섞어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술을 새롭다고 하는 것은 타인을 속이는 기만행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보급되고도 “족보도 없는 짬뽕무술”이라는 도울 김용옥 선생의 일침처럼 떳떳지 못한 것은 언젠가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처음 한 사람의 잘못된 시작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수모를 후진들이 당해야 하는지 생각한다면 새로운 무술을 만들 때는 철저한 자기검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