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기 챔피언의 아이키도 전향과 유사 합기도의 억지

모든 무술을 수용해서 새로운 것을 창출해 간다는 기치를 내건 무술들이 있다. 필자 역시 강한 것은 모두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젊음은 패기라고 했으니 그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강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을 나눠보고자 한다.

필자는 한때 무에타이에 몰두해 있었다. 1985년에 격투기 챔피언이었던 필자는 3회에 걸친 극진공수도 경기에 출전한 이후 강함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이후 태국에 있는 무에타이 체육관에 가서 태국 선수들과 첫 훈련을 했을 때 필자가 실전을 얘기하고 있었지만 실전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에타이

곧바로 무에타이를 한국 보급을 행동으로 옮기고자 금적 투자에도 머뭇거림이 없었다. 우선 560전 이상 시합 경험을 가진 무에타이 챔피언을 한국에 데리고 왔다. 그 과정에서 필자의 성장을 못마땅해하던 이들이 트레이너로 위장 취업을 시키고 있다며 신고해 경찰이 오기도 했다.

처음 트레이너를 데려왔을 때 샌드백 차는 것을 보고 그 파괴력이 놀라웠다. 20회 연속으로 차는데도 매 동작이 처음과 똑같은 파괴력을 보이는 발차기에 감탄했다. 필자도 평생 샌드백과 살아왔지만, 태국 챔피언의 발차기는 그동안 필자가 해왔던 파괴력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가 바로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태국 챔피언 ‘반팻’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장충체육관에서 국제전을 열자는 킥복싱협회의 제안을 받았다. 필자는 트레이너의 실제 파괴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출전하는 날, 반팻이 경기를 빨리 끝내는 것을 원하는지 길게 끄는 것을 원하는지 물었다. 필자는 그에게 네 실력을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질문에 얼마나 빨리 끝낼 수 있는지 보고 싶다고 한 것이다.

이후 킥복싱 한국챔피언과 대결에서 단 한 번의 킥에서 나온 “퍽!” 소리에 그 큰 장충체육관이 찬물을 끼얹즌 듯 조용해졌고 옆구리를 맞은 선수는 갈비뼈가 부서져 들것에 실려 나가고 말았다. 시작하자마자 끝난 것이다. 똑같은 장소에서 필자가 시합했을 때 발차기로 상대 턱이 부서지며 링 바닥에 고목 쓰러지듯 했는데도, ‘어쩌다 맞았겠지’라며 동네 시장처럼 시끄러웠던 것과는 정반대 분위기였다.

1985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격투기 참피언 전에서 우승한 필자

무에타이는 접근전에서 펼치는 목싸움이 웬만한 유도선수도 당기지 못하는 엄청난 중심력을 보였고 무릎차기와 팔굽의 위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필자는 반팻에게 완전히 빠져 버렸다. 3개월 동안 전국을 돌며 무에타이 세미나로 보급을 하였고 반팻은 태국 유명 잡지에서 한국에 무에타이를 알린 유명 스타가 되었다. 이후 몇 년간 반팻을 비롯해서 여러 태국 트레이너를 불러들여 무에타이를 보급 발전시켰다.

주짓수를 한국에 처음 보급한 프랭클린씨가 필자가 가르치고 있던 강남도장을 빌려서 훈련하기 시작했고 필자는 사범에게 영상으로 찍게 해서 훈련하는 것을 관찰했다. 현재 UFC, 특히 중량급에서 태국 무에타이 선수 출신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극한 훈련을 하는 선수들이 군살이 붙을 여유가 없고 가벼운 체급에만 몰려 있어서가 아닌가 추측한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UFC에 최적화된 트레이닝 방법의 발전도 한몫하고 있다.

그래도 UFC 상위 레벨의 선수들은 무에타이 기반의 입식타격기와 주짓수 기반의 그래플링 위주의 훈련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경기의 룰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뛰어난 선수는 드물다. 입식이든 그래플링이든 자신의 기초가 되었던 종목이 역시 우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유도나 레슬링 선수 출신이 주짓수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무에타이 상위레벨에서 밀려난 선수가 복싱으로 전향해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많다. 이는 기술과 트레이닝 과정에서 유사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지만 입식 선수가 그래플링으로 전향을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모든 무술을 수용해서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는 말은 입식도 그래플링도 아무것도 아닌 종합선물세트 포장에 불과하다.

이제 합기도 얘기로 들어가 보겠다. 필자는 앞서 얘기한 무에타이를 한국에 처음 조직적으로 도입한 사람이다. 필가 나서서 조직한 ‘대한무에타이협회’는 지금 대한체육회 인정 종목으로 가맹된 지 꽤 되었다.

필자가 협회장직을 그만두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필자 마음속에 합기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합기도(Aikido)는 수련하면 할수록 나의 삶이 바뀌고 있었다. 타인과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잠재적 범죄자를 만들 수 있는 공격적 기술들과 저돌적인 성격이 사라졌다.

주변에서 반대한 사람도 있었다. 무에타이 제자들도 필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합기도 철학과 기술 그리고 전략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에 무에타이에 비교해서 한없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반일감정이 심한 한국에서 일본무술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국제합기도연맹(IAF)

일본 합기도는 처음 시작부터 한국에서 정착하기 어려운 무도였다. 일본을 바로 알고, 좋은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지만, 일본무술은 안된다는 역설이 공존했다.

‘柔道-Judo-유도’, ‘劍道-Kendo-검도’와 마찬가지로 ‘合氣道-Aikido-합기도’는 글로벌한 일반 상식이다. 합기도를 한국이 종주국이라는 사람들의 주장은 최용술 선생이 일본에서 배웠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전혀 다른 새로운 무술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왜 ‘합기도’라는 명칭을 고수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한걸음 물러서서 “내가 합기도(Hapkido)라고 쓰니 너는 합기도(Aikido)라고 하지말라”는 억지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더욱이 국립국어원 질의에서도 합기도는 일본에서 시작된 한자 ‘合氣道’의 한글 표현임을 정확하게 밝힌 바가 있다.

필자는 모 회장이 주도했던 합기도 통합을 추진하는 연합단체의 대한체육회 가입 움직임에 대해서, 일정 부분 도움을 드리겠다고 공개석상에서 밝힌 바 있다. 합기도의 상생을 위해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명칭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충분히 상생을 위해 노력하는 분들과는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겠지만, 역사를 왜곡하고 근거 없는 비난만 일삼는 이들과는 함께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합기도는 나름 생활체육 가치와 경찰·경호 분야에서 발전할 수 있는 무술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 왜곡과 글로벌한 상식에서 벗어난 고집은 제도권 진입과 세계 진출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수밖에 없다. IOC 산하 GAISF와 AIMS의 국제조직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를 고민해봐야 할 때다.

아래는 합기도와 관련해서 국제합기도연맹 사무총장이 지난 9월에 보내온 문서다.

국제합기도연맹이 대한합기도회에 보낸 문서

국제합기도연맹(国際合氣道連盟, International Aikido Federation)은 공익재단법인 합기회(合気会, Aikikai)의 산하 조직이자, IOC 인정 단체인 GAISF(국제스포츠연맹기구) 및 IWGA(국제월드게임협회), AIMS(독립스포츠인정단체총연합)의 정회원 조직입니다. 우리는 국제적 견지에서 다음과 같이 확인합니다.

–전임 IAF 회장 피터 골즈버리 박사가 2016. 4. 12.에 발송한 편지는 정당한 것으로 여전히 유효합니다.
–대한합기도회(大韓合氣道會, Korea Aikido Federation)은 한국 내 유일한 정회원 단체입니다.
–그러므로 대한합기도회는 상기한 국제 조직 내 합기도 종목에 있어 한국 내 유일한 대표자입니다.
–위 국제 조직에서 Aikido의 한자 표기는 合氣道입니다.

2017. 9. 28.

국제합기도연맹 사무총장
월코 브리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