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벗어난 KBS ‘생리대 보도’

KBS가 지난 16, 17일에 이어 18일에도 생리대 관련 보도를 이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학은 물론 상식까지 무시한 뉴스다.

KBS 18일 보도
생리대 화학물질 ‘칵테일 효과’로 독성 증폭 가능성 제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아래 화면과 내용이다.

KBS의 18일 ‘생리대 화학물질 ‘칵테일 효과’로 독성 증폭 가능성 제기’ 뉴스 화면

식약처 발표를 기준으로 발암물질 6종의 위해성을 평가하자 기준치 2배를 웃돈 클로로포름을 빼고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신방실 기자

이 장면을 보고 처음 한 생각은 ‘가로로 그어져 있는 저 기준선은 도대체 어디서 가져왔을까’. 화학물질의 안전기준은 물질마다 다르다. 먹는 물 기준이 다르고 하루섭취 허용량이 다르고 공기 질 기준도 다르다. 그런데 6종의 화학물질을 주르륵 늘어놓고 단 하나의 기준선으로 발암위해성을 언급하다니, 상식 밖이다.

화학물질의 안전기준은 먹는물, 공기질, 하루섭취량이 모두 다르다. 이 표는 모두 EPA 기준이며 괄호로 따로 표시한 것만 다른 기관이 만든 기준이다.

그 다음 한 생각은, ‘도대체 저 그래프에 표시된 각 화학물질의 양은 어디서 가져왔느냐’다. KBS는 “식약처 발표를 기준으로”라며 얼렁뚱땅 넘어갔는데, 무려 666개에 이르는 제품의 데이터 중에서 어느 데이터를 가져와서 그래프를 그렸는가?

모든 제품의 평균치를 가져왔다면 그래도 이해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화학물질 별로 가장 많이 나온 수치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클로로포름이 가장 많이 나온 H사 제품, 벤젠이 가장 많이 나온 Y사 제품, 에틸벤젠이 (주요 제조사 생리대 중) 가장 많이 나온 L사 제품 등의 수치를 가져다 늘어놓은 것이다.

식약처 조사결과 주요 생리대의 각 화학물질 최대함량

그 다음이 가장 황당하다.

KBS의 18일 ‘생리대 화학물질 ‘칵테일 효과’로 독성 증폭 가능성 제기’ 뉴스 화면

이번엔 유해물질 6종이 서로 혼합된 조건을 가정해 봤더니 발암 위해성이 안전 기준의 최대 3.3배까지 높아졌습니다. 이른바 칵테일 효과입니다.
-신방실 기자

KBS는 생리대별 최고치 데이터를 모두 더해서 최악의 가상 생리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는 칵테일효과로 인해 발암위해성이 안전기준의 3.3배나 높아진다고 말한다.

더구나 화학물질을 6종이나 혼합했는데도 안전기준의 위치는 변함이 없다. 도대체 어떤 안전기준이 6종의 화학물질에 일률적으로 적용되고 6종을 혼합한 칵테일에도 꿈쩍 하지 않고 그대로 적용되는가?

이런 황당한 논리에 힘이 실리려면 역시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번에 등장한 전문가도 지난 17일 보도에 등장했던 전문가와 똑같다. 바로 여성환경연대 생리대 토론회에 참석하고 여성환경연대의 주장에 유리한 논리를 제공한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 © KBS

그의 멘트를 자세히 살펴보자.

문제는 그런 물질들이 한 물질, 한 물질은 괜찮다고 하더라도 섞여 있으면 함께 존재하면서 마치 칵테일처럼 독성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최경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환경독성학연구실)

학자로서 이런 주장을 할 수는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는 그 말고도 전 세계에 많다. 화학물질의 ‘칵테일 효과(Cocktail Effect)’ 혹은 ‘혼합효과(combination effect)’는 비교적 최근 시작된 연구 분야다.

가장 빨리 움직이고 있는 곳은 EU인데 2009년 환경장관회의에서 EU 집행위원회에 조사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아직까지 필요성을 인정한 것 외에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수많은 화학물질의 칵테일 효과를 어떤 방식으로 조사하고 어떻게 위해평가를 할 것인지 방법도 마련되어있지 않다. 지난 5월 스웨덴 정부가 조사에 착수했는데 첫 보고서가 2019년 9월에나 나올 예정이다.

여러 화학물질이 혼합될 경우 위해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면 공중보건 차원에서 정부와 학자들이 나서야 마땅하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학계의 생리다. 이 분야가 이제 막 열린 연구시장의 블루오션인 만큼 학자들은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위험성을 부풀리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 칵테일 효과를 증명할 아무 증거도 성과도 없음에도 ‘화학물질 총압력’(total chemical pressure)이니 ‘바디버든’(body burden)과 같은 용어를 남발하고 있다. 심지어 “1+1은 2가 아니라 3이나 4가 될 수도 있다”는 괴기소설을 쓰는 학자도 있다. 뭔가 대단한 위험이 있는 것처럼 부풀려야 여론을 일으킬 수 있고, 그래야 정부로부터 거액의 연구자금을 따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 링크
Cocktail effect makes chemicals more toxic

서울대가 제시했다는 자료는 정말 과학자들이 만든 자료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화학물질의 수치와 출처도 없고, 안전기준의 수치와 출처도 없고, 오직 기준선의 위치와 위해성 몇 배를 강조한 그래프만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자료를 시청자더러 믿으란 말인가.

위해평가를 하려면 식약처가 했듯이 노출량, 노출기간, 노출방식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반영된 결과인가. 여성환경연대가 식약처에 늘 주장하듯이 “질 부위에 착용하는 생리대의 특수성”도 고려한 자료인가.

이번에는 식약처도 화가 났다. 그냥 넘어가지 않고 정정보도 요구와 언론중재위원회에도 중재를 요청할 방침이다.

식약처 해명자료
KBS 뉴스9가 ‘18.5.18(금) 보도한 『생리대 화학물질, 섞이면 독성 증폭』 관련

KBS가 이렇게 생리대 관련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데 다른 언론사들이 잠잠한 것도 이상하다. 이게 정말 엄청난 이슈라면 다른 언론사들도 뛰어들어 후속 보도가 쏟아져 나와야하는데 SBS, MBC, JTBC, 조선, 중앙, 동아 등 어느 주요 언론사도 관심이 없다.

KBS가 도대체 어떤 목적으로 이런 보도를 내보내는지, 그리고 다른 언론사들은 어째서 관심이 없고 심지어 팩트체크조차 시도하지 않는지, 의문만 커질 뿐이다.

이처럼 결론을 정해 놓고 짜맞추기식으로 작성한 생리대 기사에서 필자는 KBS가 보도하면 어떤 뉴스도 통한다고 생각하는 오만함까지 보인다.

화장품비평가. 작가 겸 번역가. ‘뉴스위크’ 한국어판 번역 위원을 지냈다. 2004년과 2008년에 두 차례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번역하면서 화장품과 미용 산업에 눈을 떴다. 이후 화장품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헬스경향’, ‘한겨레’ 등에 과학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화장품의 기능과 쓰임을 정확히 알리고 있다. 지은 책으로 ‘화장품이 궁금한 너에게’(2019),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공저),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하루 30분 혼자 읽기의 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등이 있다. the_criti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