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마음을 비추는 거울 ‘요리’

[리뷰]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장마철이라 활동하기가 조금 불편하시죠? 갑작스러운 외출이 불편하니 웬만한 건 집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따라 기분도 가라앉아 어제는 비슷한 감성의, 촉촉하면서도 잔잔한 영화나 한 편 보자는 생각에 노트북을 뒤적였어요.

그러다 한 편 골랐는데요, 바로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입니다. 여름과 가을이 1편이고 겨울과 봄이 2편인데 지금은 여름이니, 아직 가을은 오지 않았으니 여름 편만 다뤄볼까 해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포스터

도시를 벗어난, 작은 숲을 닮은 마을, 토모리에서 이치코는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자급자족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소박함, 안락함, 편안함도 물론 영화는 담고 있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에요.

살기 위해 먹는다. 그리고 먹기 위해 스스로 만든다.

원작 만화가의 말처럼 먹는 일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일이라서 손이 많이 가요. 씨를 뿌리고 키우고 열매를 거두고, 그 재료들을 씻고 손질하고 다듬고 요리하고, 그 사이사이에 잡초를 제거하고 날씨 따라 잇따르는 피해를 살피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한 계절이, 한 해가 다 가는 것이죠.

영화는 음식을 소재로 인물과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음식을 다루고 있어요. 과거의 기억, 유우타와의 연애감정, 엄마와의 추억 등도 언뜻 비추고는 있지만 아주 미미하게 깔려있을 뿐 예쁜 자막으로 레시피만 유용하게 넣는다면 일상 브이로그라 해도 무방할 것 같았습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그런데도 이토록 마음을 살며시 간질이기도, 가만히 다독이기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요. 우리의 생활을 닮았기 때문이더라고요. 오늘 내 하루에 특별한 일은 잘 없어요.

날 밝아 침대에서 일어나고 출근해 일하고 배꼽시계 울리면 밥 먹고, 밥 먹을 때 맛있는 거 먹으면 기분 좋고 기운도 나고, 그 기분과 기운으로 남은 오늘의 시간을 견뎌요. 곁에 좋은 동료가 있으면 조금 더 잘 견뎌요.

그렇게 견디다 저녁에 퇴근하고 바깥에서 흘린 땀 씻어내고 출출한 배를 또 채우고, 그럴 때 하루의 수고를 위로하는 음식을 먹으면 또 기분 좋고 내일을 위한 충전도 되고요.

그리고는 내일이 오기 전에 자야죠.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과거의 어떤 후회나 그리움의 감정에 뒤척이기도 해요.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니까 내일을 위해서 접어야죠. 그래서 불을 끕니다. 그런데 별 것 없는 이 일상을 삶이라는 전경 속에 펼쳐놓으면 굵직한 것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먹거리의 변화로 알아채는 계절의 변화, 생산과 소비 사이의 긴 경로, 그 계절과 경로마다 흘렸을 모두의 피, 땀, 눈물, 숨,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순간. 그리고 미래의 기대까지 그렇게 공기를 타고 알게도 모르게도 서로에게 스미고 엮여 거대한 삶이 이뤄진다는 것 말이죠. 아마도 그래서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장면에 마음이 간질거리고, 아무것도 아닌 서사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여름 편에서 다루는 요리는 총 일곱 가지인데요. 통밀빵, 식혜, 수유 열매잼, 우스터 소스, 멍울 풀 절임, 곤들매기구이, 데친 토마토에요. 그중 하나만 꼽으라면 수유 열매잼인데요, 가장 사연이 깃든 요리입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이치코 역의 하시모토 아이

이치코가 토모리로 도망 오기 전에 도시에서 잠깐 남자친구와 살았던 적이 있어요. 수유 나무 열매를 쉽게 딸 수 있는 키 큰 남자친구를 옆에 두고도 촌사람이라 체력에서 밀리는 게 싫었던 그녀는 끝까지 고집을 부려요. 헤어진 후 코모리로 돌아와 맞이하는 수유의 계절인 지금, 열매 무게로 가지가 휘어 땅에 떨어지면 그 결실들이 썩어 버리는 것을 보고 이치코는 말해요.

그 많은 과정이 쓸모없게 되었다. 그런 건 너무 슬프잖아.

그래서 잼을 만들기로 하는데 문득 그때처럼 그 남자친구에게 먹일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요. 그리고는 중얼거려요.

바보같이

설탕을 덜 넣을까, 조금 더 넣을까 고민하는 사이 요리는 끝나버려요.

아무 결정도 못 내렸는데 다 졸아버렸다. (중략) 타는 게 무서워 너무 저으면 잼이 탁해진다.

이런 게 꼭 우리의 모습과 닮았죠. 감정에 치여 파도의 굴곡에 휩쓸리면 어느샌가 끝나버리는 것. 그러면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어버리는 것. 요리를 만드는 중간중간 엄마를 회고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엄마의 다음 말은 이런 상황에 알맞은 조언이 됩니다.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집중해. 다치기도 하니까.

그렇게 완성된 잼은 작은 3개의 병에 담겨요. 투명감 없는 탁한 핑크색인데요, 그걸 빤히 들여다보면서 이치코는 혼자 물어요.

이것이···지금 내 마음의 색깔인···가.

이제는 그녀의 곁에 잼을 먹일 남자친구도, 레시피를 알려줄 엄마도 없으니까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열매가 땅에 떨어져 버리기 전에, 섞어버리기 전에, 잼이 다 졸아버리기 전에, 탁해지기 전에, 그리고 잊지 못할 사람과 헤어지기 전에 우리는 주변의 소중한 것들에, 무엇보다 내 마음에 집중해야 해요. 아니면 다칠 테니까.

노트북을 닫고 거실로 나왔더니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 틈 사이로 습도 찬 공기가 흘러들어와 아직 영화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창 너머 보이는 바깥도 늦은 오후의 희미한, 꿈과 현실의 중간처럼, 낮과 저녁의 경계처럼, 희미한 풍경이었어요.

영화의 첫 장면에도 수증기에 잠긴 마을을 내려다보며 바람결 따라 옷자락을 펄럭이며 자전거를 타는 이치코의 모습이 등장하거든요. 배가 꽤 출출해 부엌에 들어가 보니 엄마의 날린 글씨체의 쪽지가 식탁에 놓여 있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식어도 맛있어. 먹어.

장마로 장보기가 불편해 어제 많이 삶아 두었던 감자가 남았던 것을 얇게 썰어 팬에 두르고 파프리카, 토마토, 옥수수, 치즈를 올려 피자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어쩜 그 간단한 재료들의 맛이 혀끝에 감칠맛을 넘어 허기진 배와 마음까지 전해오던지.

몇 글자 안 되는 쪽진데, 딱히 그럴 일도 아닌데, 엄마의 의도도 그건 아니었을 건데, 먹다 말고는 왜 또 울컥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그럼, 이어폰을 끼고 보니까, 당연히 안 들리니까.

괜히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이치코처럼 혼잣말을 해댑니다.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그 한마디 때문이라는 것을요. 엄마가 제 이름을 불렀을 그 시간이 잼이 다 졸아버려 탁해지기 전의 그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글 쓴다고, 일한다고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던 딸의 시간이 방해하고 싶지 않아 부르다 말았을 엄마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외롭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분명 식었는데요, 엄마의 손길로 만든 감자피자는 식어도 온기가 있더라고요. 괜히 소울푸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죠. 영혼을 달래준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그러니까 존재의 몸속 살아 숨 쉬는 세포 하나하나, 마음속 잠든 섬세한 감정 하나하나까지 다 깨워 위로해준다는 말의 의미일 테니까요.

여러분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소울푸드에 깃든 사람은 누구인가요?

장마 때문에 선택한 영화 한 편에, 역시 장마 때문에 먹게 된 피자 한 판에, 실은 엄마 생각에 혀도, 배도, 영혼도 참으로 맛있었던 오늘의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