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 지금 당신은 누굴 그리워하나요?

[리뷰]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지난주 세상의 끝을 닮은 나라, 헬싱키의 <카모메 식당>에 이어 이번 주는 제목 속에 ‘세상의 끝’이 있는 영화를 들고 왔습니다.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제목만으로 이미 힐링이 됐습니다.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 포스터

스무 살이 되어서야 처음 맛본 커피는 필자에게 어른의 세계, 그 자체였어요. 맛보다 향을 음미하고, 밥값보다 비싼 여유와 사치를 부리고, 실용보다 분위기를 즐기며 세상에 대한 고뇌나 성숙을 마음껏 뽐낸 거죠. 한 마디로 아는 척이었던 겁니다.

세상도, 삶도, 사람도, 사랑도 알고 싶었던 호기심이 필자를 커피에 취하게 했습니다. 커피의 각성 효과로 집중력을 얻고 이뇨 작용으로 소화력을 돕고 그 쓰고 진한 맛을 말 그대로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된 지금은 어디서 마시든 세상의 끝에서 마시는 한 잔 같은 날이 많아요. 그래도 아는 척이 아닌, 진짜 알게 된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삶이니까 그 한 잔도 귀하죠.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빠와 헤어졌던 미사키는 아빠가 8년 전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인 해안가 땅끝마을에 요다카카페를 열어요. 외등 하나를 설치하고 혹시나 하는 기대로 아빠를 기다리는 거죠.

그 건너편에는 민박집 에리코네가 있어요. 에리코는 미혼모인데요,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 그녀는 아리사와 쇼타,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타지로 일하러 갑니다. 누나인 아리사는 일찍 상처받은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조숙해요. 부모님의 이혼으로 마음에 상처가 있던 어린 미사키가 그랬던 것처럼요.

아리사와 쇼타

그래서 아리사는 마트에서 장을 볼 때나 급식비가 필요할 때도 엄마에게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딱 한 번 마트에서 했던 도둑질을 봐버린 미사키는 그런 아리사가 남 같지 않아요.

한번 저지르면 모두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아리사를 카페에서 일하게 하죠. 월급으로 급식비가 해결되었지만, 엄마에게 선물로 줄 귀고리를 고르다가 도둑으로 몰릴 위기에 처한 아리사를 미사키는 또 한 번 도와줍니다.

선생님은 첫 월급을 어디에 쓰셨어요?

아버지께는 넥타이. 어머니껜 스카프를 사드렸어요.

그렇죠? 부모님이 곁에 계셨으면 나도 그랬을 거예요.

어느 날, 카페 이름이 왜 요다카냐는 아리사의 물음에 미사키는 이렇게 답해요.

요다카는 나와 닮았거든. 새 이름이야.

아리사는 학교에서 요다카(쏙독새)에 관한 책을 읽게 되는데요, 요다카가 빛이 되어 하늘로 타오르는 결말의 이야기였습니다. 곧장 아리사는 미사키에게 달려가요.

미사키는 요다카와 하나도 안 닮았어요. 아무 데도 가지 말아요.

아무 데도 안가. 여기에 있을 거야.

다행한 날들 속에 에리코가 사랑하는 나쁜 남자가 미사키에게 몹쓸 짓을 합니다. 늘 아이들을 해코지할까 마사키를 경계하며 고소하겠다고까지 말했던 에리코는 눈으로 직접 목격한 이 사건으로 정말 고소를 하게 되죠. 경계가 아니라 도움을 준 것인데, 이 사건으로 둘은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친해져요.

그런 일을 당했는데 어떻게 그리 태연해요?

태연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일에는 지고 싶지 않아요.

그러고는 강하고 사려 깊은 미사키답게 아이들의 마음에 대해 들려주고 에리코에게 함께 일할 것을 권유해요.

말할 수 없었던 거에요. 당신을 너무 좋아하니까.

어느 날, 같은 배를 탔던 다른 사람의 가족들을 만나보면 어떻겠냐는 에리코의 제안에 따라 일은 진행이 되는데요, 그 가족 중 한 할머니는 배 타기 전 늘 찹쌀떡을 하나 다 먹던 남편이 그날따라 반 만 먹고 나가더라며 그 후로 찹쌀떡 반을 아침저녁으로 먹다가 살이 쪘다는 얘기를 유쾌하게 들려줍니다.

사람은 부재해도 그 사람에 얽힌 얘기들은 존재하고, 기억은 바래도 사건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것, 함께라는 테두리 안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영원으로 남는 것이죠. 신원불명이긴 하지만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뉴스 보도에도 미사키는 고집을 세워요.

다른 분이 어떻게 하시든 저는 여기에서 아버지를 기다릴거에요.

그러자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한 여성이 이런 말을 남깁니다.

어떤 모습이든 간에 돌아오신 거에요. 우리가 기다리는 곳으로.

필자는 이 한 마디가 이 영화의 명대사라고 생각했어요. 이별에 대해 늘 정리해왔던 제 생각과 거의 흡사하거든요.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거짓말쟁이, 아무 데도 안 간다고 해놓고.

미안하다. 하지만 더는… 이 파도 소리를 견딜 수가 없어.

그날 이후로 에리코는 밤마다 외등을 켜요. 무서워하는 아리사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는데요, 어김없이 외등을 밝히던 어느 날 밤, 에리코가 돌아본 곳에 미사키가 서 있습니다.

다녀왔어.

제목 속에 있던 세상 끝과 커피 한 잔은 제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영상화되는데요. 세상 끝 치고는 정말이지 아름다워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파란 바다, 밤의 어스름에 더 그윽한 쪽빛 하늘, 남색 지붕의 카페와 데님 청의 앞치마까지 전체적으로 푸른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져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잔>

또 커피는 마시는 장면보다 내리는 장면에 집중한 듯 보입니다.

천천히 가늘게, 안에서 밖으로

원을 그리라던 미사키의 설명처럼 상처는 기다림 속에 사랑으로 치유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일찍 서둘러서 될 일도 아니고 단칼에 잘리듯 끝낼 것도 아닌, 깊은 눈으로 응시하고 섬세한 손길로 이끌었을 때, 속으로만 고인 눈물이 밖으로 터질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 천천히 가늘게, 안에서 밖으로, 그렇게요.

쏙독새(요다카)는 여름새입니다. 가을이면 월동지로 떠났다가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찾아오는 새죠. 가을과 겨울이 떠남의 계절이라면 봄과 여름은 만남의 계절이잖아요. 안녕은 헤어질 때의 인사이기도 하지만 다시 만날 때의 인사이기도 하잖아요.

세상의 끝이지만 세상의 안쪽에 있어 여전히 세상과 연결되어있는 곳에서 기다림의 마음으로 내리는 커피 한 잔의 시간은 저 바다 건너의 세상을 바라보기에 가장 찬란한 절정의 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죽음과 이별을 자각하기에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도 쓰지만 쓴맛이 참된 커피 맛임을, 이제는 ‘척’대신 제대로 알고 마시는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