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운영된 ‘인권’ 제도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 3

[심층 인터뷰] 故 송경진 교사 아내 강하정씨

2회 인터뷰

처음부터 정해진 결론과 조사 도중의 괴롭힘

송 교사의 사망 이후 언론에서 고인의 죽음 이면에 강압조사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됐다. 교육청과 인권센터는 이러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과거처럼 물고문을 하거나 잠을 안 재우는 등의 강압수사 관행이 있었느냐 식의 여부가 아니다.

강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송 교사가 느낀 모멸감은 보다 심층적인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사 과정 중에 고인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강씨는 망설임 없이 ‘학생과의 모든 일상적인 관계를 성적인 것으로 몰고 가는 인권옹호관의 조사방식’이었다고 답했다.

강씨는 제자들과의 일상인 관계를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맥락으로 해석하며 집요하게 추궁하는 과정이 지속된 것이야말로 (송 교사에 대한 객관적 조사를 가장한) 개인에 대한 괴롭힘이자 압박수단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사건 내내 가장 심하게 성적 모멸감을 느낀 것은 송 교사 자신이었다.

학생의 신체를 닿기만 해도 성희롱이라는 것입니다. 학생이 손가락 반지사이즈 재어 달라고 해서 손을 잡은 것도 성적인 행동으로 해석이 됩니다. 학생이 무릎 떤다고 해서 무릎을 건드리는 것도 성희롱이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것입니다. 조사할 때마다 성···성···성··· 학생과 일상 속의 모든 접촉이 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실제로 당시 학생인권심의위원회 결정문을 보면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사소한 신체적 접촉마저 “교사의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여학생에게 성적인 수치심을 주는 육체적 성희롱”으로 둔갑해 있었다. 그러나 당사자 학생이 송 교사의 복직을 요구하며 탄원을 하는 마당에 일상의 관계를 그렇게 해석한 것은 정작 인권옹호관 자신뿐이었다. 송 교사를 향한 ‘불온한’ 시선은 그의 사후에도 이어졌다.

송기춘 학생인권심의위원은 지난해 8월 18일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조사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도대체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무엇인지, 그것이 ‘60일 이내에 사건 처리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기면서 한 교사를 3~4개월 간 제자들과 동료로부터 고립시킬만한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았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격리되다시피 한 처지 속에서 방어권 보장을 위한 모든 사소한 행동마저도 ‘2차 가해’라는 둥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둥’ 등의 반협박을 끊임없이 들어야만 했던 것도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킨 요인이었다. 강씨는 유폐상태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직위해제기간 동안에는 특별연수 명목으로 독방에 책상 하나에 컴퓨터 하나 달랑 있는 방을 배정받고 출퇴근했습니다. 출근 후 남편은 그 방에 혼자 있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었습니다. 남편은 교도소 독방 체험이 따로 없다며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나중에 교육지원청 과장이라는 사람이 남편에게 ‘(2차가해를 해서) 감옥 가면 죽기 전에 나오면 다행이다’고 위협을 하자 남편은 식은땀을 흘리며 저에게 ‘감옥을 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7월 24일 이전까지 10kg, 8월 4일까지 3kg, 도합 13kg씩 체중이 줄 정도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2차 피해’를 운운하며 송 교사의 발언권을 극도로 제약한 억압적 상황도 송 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계기 중 하나였다. 강씨는 송 교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을 회상했다. 지난해 8월 10일 전북교육청 감사를 앞두고 있던 송 교사는 비록 황망한 와중이긴 했지만 사망하기 전날까지만 해도 ‘교원소청’ 심의에 출석해 할 말을 연습하거나 감사 대비 자료를 준비하는 등 사건해결에 나름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삶에 대한 의지를 무너뜨린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대화를 바로 옆에서 들은(상대의 육성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강씨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전북 교육청 산하 부안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학생들 만났냐고 추궁하더군요. 그러면서 대뜸 ‘학생들의 탄원서를 받는 게 2차 피해다’, ‘누군가 고발하면 감옥에 갈 수 있다’고 위협하더군요. 남편은 황당해 하면서 ‘그것도 받으면 안 됩니까’고 되물으니까 ‘학생들 만나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하더군요. 놀란 남편이 교장한테 연락을 해봤지만 교장은 학생부장 선생한테 전화하라고 책임을 떠넘기더라고요. 결국 어렵게 전화를 건 남편이 ‘교장이 전화하라고 해서 전화했다’고 부장선생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선생은 ‘(전북 교육청) 감사과에서 월요일, 화요일에 학교로 감사를 나온대. 먼지까지 탈탈 털겠다는 거지. 그런데 학생들은 조사 안 한다네? 그렇게 알고 있어.’라며 학생의 탄원서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식으로 전달하더군요. 그 전화를 끊고 난 남편은 ‘나는 이제 끝났다’고 중얼거렸습니다. 폰을 툭 바닥에 떨어뜨리며 흡사 혼이 빠진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지난해 7월 22일경 모집한 최초 피해주장 여학생의 부모를 포함한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졸업생들의 탄원서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던 송 교사에게 있어서 마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강씨는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나중에 교육청 감사과는 ‘학생을 조사할 계획이 없다’는 학생 부장교사의 발언을 부인하더라고요. 결국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한 셈이지요.

아이들을 폭행한 빗자루로 둔갑한 지휘봉, “남편은 먹잇감이었다”

강씨는 학생인권교육센터의 집요한 괴롭힘, 행정편의적인 사건처리, 관료주의적인 책임 떠넘기기, ‘2차 피해’ 운운하는 윽박지르기가 점철된 지옥과 같은 4개월을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남편은 그냥 저들에게 먹잇감에 불과했던 거예요.

특히 그는 문제의 학생인권교육센터와 학생인권심의위원회에서 남편에 대한 아이들의 진술마저 완전히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5월경에 남학생들을 찾아와 체벌 조사도 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사건이 접수된 건 ‘성추행’ 건이었고 체벌은 해당사항이 없었는데 송 교사에 대한 사실상의 ‘먼지털이’ 조사를 한 거였어요. 남편이 체벌이나 가혹행위를 했는지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예’라는 답변이 나올 때까지 계속 캐물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학생들이 진술한 몇 가지 사건을 확대해석해서 징계의 근거로 삼으려 했고요···.

강씨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책장을 뒤적거리고 무언가를 꺼내왔다. 성인남성 팔뚝 길이보다 조금 긴 얇은 지휘봉이었다.

이게 남편이 생전에 사용하던 교편입니다. 학생인권교육센터 측의 추궁 끝에 학생이 ‘숙제를 안 했을 때만 1년에 한두 번 정도 이 교편으로 발바닥을 툭툭 쳤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은 심지어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간지러웠다고 저에게 전했습니다. 그 정황도 선생과 학생 간의 약속에 의한 짓궂은 장난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학생인권심의위원회 결정문을 보면 제 남편이 빗자루(대나무)로 남학생들의 발바닥을 때렸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결정문을 보면 고인이 “학생들을 빗자루(대나무)로 발바닥을 때렸다”고 나와 있었으며, ‘2·3학년 남학생들의 주장’이라며 옹호관과 주무관이 질문하고 학생들이 단답을 한 내용을 자신들이 작성하여 이를 마치 체벌을 뒷받침하는 남학생들의 진술서인 것처럼 제시한 뒤 “학생들이 (송 교사를) 음해할 만한 사유가 없는 등”의 이유를 붙여 송 교사의 가해행위를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강씨의 설명에 따르면 학생들의 진술은 전혀 달랐으며 오히려 학생들이 조사관들의 먼지털이식 유도질문에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불공정한 조사과정으로 인해 학생들의 진술을 완전히 왜곡했다는 것. 사전에 약속이 있었다는 진술도 고의로 누락했다고 한다.

이처럼 심의위원회 결정문상에서 고인의 ‘교편’은 어느새 아이들을 폭행한 ‘대나무 빗자루’로 둔갑해 있었고 이러한 결정은 후일 교육청의 징계절차에 불리한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송 교사의 사후에도 송기춘 전북학생인권심의위원이 드러낸 바 있는 ‘적반하장식’ 태도의 배경이 된다.

“아이들을 때린 빗자루”로 둔갑한 고 송경진 교사의 교편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송 교사의 사망 이후 가해자들의 태도는 ‘뻔뻔함’ 그 자체였다.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당시 김승환 교육감이 보여준 ‘조직보위 논리’와 거기서 파생된 고인과 유족에 대한 ‘2차 가해’였다. 교육청의 최고 책임자가 그 동안의 잘못된 과정을 감싼 결과, 사람이 죽은 사건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을 지는 사람도, 누군가의 반성도, 제도적인 개선도 없었다. 한 추리소설 제목을 비틀자면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가 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송 교사 사망사건이 쟁점화된 2017년 국회 교문위 국정감사자리에서도 당시 인권옹호관과 심의위원회의 책임을 부인하는 데만 급급했다. 그는 당시 경찰의 내사종결을 참작하지 않은 무리한 조사 과정을 질타하는 국감의원 앞에서 “책임이 있다면 져야죠. (하지만) 경찰이 내사종결 했다고 해서 그게 혐의 없다는 것은 아니다”고 대답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정면으로 무시한 발언일 뿐만 아니라 부실한 조사과정에 대한 반성 없이 고인이 살아생전 겪어야 했던 낙인을 지속한 셈이다.

또한 학생들의 탄원서를 왜 무시했느냐는 질의에 대해 “학생들 탄원서는 자발적으로 작성돼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며 아무런 근거나 조사 없이 ‘학생들의 탄원서는 오염되었다’는 말만 반복한 교육청 공무원과 동일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 두목에 그 부하들인 셈이다. 학생들의 탄원서가 강요에 의해 작성되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

김승환 교육감

김승환 교육감은 2018년 전북 교육감 선거에서 재선됐다. 송 교사를 죽음에 몰아넣은 학생부장 교사도 여전히 현직으로 일선 학교현장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교장으로 재직하던 자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고 그 당시 징계에 관여했던 공무원들도 당시 사건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가해자들의 일상을 지탱하는 또 다른 기제는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자기최면’이었다. 송 교사의 죽음에 일조한 가해자들은 하나 같이 자신들은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고 말한다.

2018년 교육감 선거 토론회 자리에서 한 참가자가 김승환 교육감에게 송 교사 사건에 대한 ‘도의적 사과’를 요구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양심의 자유’를 운운했다.

사과강제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례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요.

자칭 양심은 있지만 고인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는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인이 사망한지 1년 가까이 됐지만 고 송경진 교사 사건은 당사자들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강씨는 지금도 제도적으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길 원하고 있다.

최소한 남편을 순직처리를 해서 아이들을 누구보다 예뻐하고 아꼈던 남편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강씨의 호소에 응답을 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