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와 미투 운동

[리뷰] 소설 <앵무새 죽이기>

오래전에 읽었던 미국 작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MeToo 운동이 일으킨 여러 양상은 이 훌륭한 문학작품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하퍼 리에게 퓰리처상을 안긴 <앵무새 죽이기>가 세상에 나온 지 반세기가 다 됐다. 1960년 하퍼 리가 발표한 최초의 장편소설은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있다.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예전에 읽었지만, 소설의 줄거리는 영화처럼 영상으로 남아 선명하게 느껴진다. 실제로도 영화로 제작돼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필자에게는 문학으로, 영화로 남아 영혼 속의 실루엣처럼 마음속에 남아있는 소설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성장소설로 읽었고, 실제로도 성장소설이다. 주인공이 여섯 살 무렵부터 아홉 살까지 약 3년간 유년기 성장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1930년대 중반 미국의 경제 대공황 시대, 남부 앨라배마주에 있는 작은 마을이 무대다. 이 소설에 묘사된 앨라배마주는 미국 남부의 전형적인 모델로 당시 흑인 인구가 가장 많았고, 그로 말미암은 흑백 갈등은 흑인 민권운동의 진원지가 됐다.

<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 스카웃은 다른 성장 소설과 달리 말괄량이에 사내아이처럼 다혈질이며, 호기심이 많아 좌충우돌하는 소녀다. 마을 변호사인 홀아비 아빠 애티커스의 두 자녀 스카웃과 젬, 그리고 유년기를 함께 보냈던 괴짜 소년 딜이 작은 마을을 무대로 탐험하듯 휘젓고 다닌다.

영화 <앵무새 죽이기> 중 홀아비 아빠 애티커스의 두 자녀 스카웃과 젬

아이들 눈에 비친 동네 나이 많은 어른들의 다양한 인물상은 정겹고 유머러스하며 생생하다. 마치 예전 우리가 살았던 동네의 모습과도 겹쳐지며 거리감을 좁힌다. 소설 속 무대인 앨라배마주 메이콤 시 주민 대부분 대공황 시기의 가난하고 조용한 모든 게 느릿느릿하기만 한 따분한 마을이지만 아이들에겐 모든 게 모험 대상이다.

우리네도 그랬다. 필자가 자랐던 동네도 보통 가정과 다른 이해 못 할 이상한 집들이 있었고, 형제가 죄다 깡패라는 소문이 난 집과 이들이 나타나면 골목길에서 놀던 아이들을 긴장하게 했다. 언제나 진한 화장에 한복을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외출이 잦았던 길 끝에 있는 집에 세 들어 사는 중년 여자는 늘 동네 아줌마들이 수군대는 대상이었다.

사람이 드나드는 흔적을 볼 수 없는 수상한 집에 사는 사람, 담장은 없어도 갖가지 화려한 계절 꽃을 키워 울타리를 대신하던 오두막 같은 허름한 집에, 아이들이 꽃을 꺾으려 치면 물바가지 세례를 안기던 그런 집들이 있었다.

주인공 스카웃의 눈으로 본 당시 앨라배마주 작은 마을은 미국 남부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동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경제 대공황 시기 백인과 흑인들의 분리된 관계, 수다쟁이 아줌마들, 알코올 중독자, 아이들 눈에 비친 느릿한 남부 백인 노인들의 묘사와 가난에 찌든 백인 자식들이 여럿인 평판이 나쁜 집안이 있었다.

고목이 된 떡갈나무 옆에는 25년 동안 한 번도 집 바깥으로 나오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사람 부 래들리가 사는 집이 있었고 그 집은 스카웃과 젬, 딜의 주요 공략지였다. 갖은 상상력과 공포감을 자아내는 그 집을 염탐하고 집안으로 접근해 부 래들리를 목격하는 것과 그를 집 밖으로 불러내는 일이 아이들의 주된 일과였다.

영화 <앵무새 죽이기> 중 스카웃과 젬, 딜

저자 하퍼 리의 문장력은 간결하면서도 도란도란 얘기를 들려주는 듯 하지만 유머와 정곡을 콕 찌르는 묘사가 뛰어나다. 미국 문학의 보석과도 같은 작품으로 그 시대 인물, 생활상이 박물관처럼 담긴 미국인이 사랑하는 소설이다.

백인 처녀를 강간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

이제 필자가 <앵무새 죽이기>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를 뒤흔드는 #MeToo 운동을 연관 지은 이야기를 하겠다. 이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보니 그 전에 그냥 스쳐 지나갔던 부분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전에 읽었을 때는 스카웃이라는 소녀와 형제의 성장소설 비중이 컸으며, 소설 중반 무렵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사건에 대해서는 당시 마을에서 일어났던 흑인과 관련된 재판을 단순한 인종차별 문제로만 접근하며 읽었던 점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에 함축된 의미는 오늘날 다르게 다가왔다. 스카웃의 동네에 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마을에서 늘 신뢰받으며 아이들에겐 더없이 든든하고 훌륭한 스카웃의 아빠 애티커스 변호사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냉소가 바로 그것이었다.

흑인의 변호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제 막 열아홉 살인 백인 처녀를 강간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톰 로빈슨이었다. 애티커스 변호사가 톰 로빈슨을 변호하게 된 사연도 그가 아니면 맡을 사람이 없었던 이유로 담당 판사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흑인을 변호하다니! 그것도 백인 처녀를 강간한 사람을! 스카웃 형제가 다니는 학교에 이런 소문이 퍼져 아이들의 놀림을 받고 싸우는 일로 인해 아빠는 흑인을 변호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목화밭을 매러 다니는 일꾼 톰 로빈슨이 어느 날 백인 처녀가 혼자 있는 틈을 타 집 안으로 들어가 강간했다는 것이다. 마침 이 광경을 목격한 그녀의 부친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앨라배마주에서 강간 사건은 사형이었다.

진실은 무엇일까. 강간을 당했다는 백인 처녀 메이엘라 유얼 집은 온 동네에서 악명 높았다. 메이엘라 외에도 형제가 많았고, 쓰레기를 뒤져 살아가는 가난한 남부 백인을 일컫는 백인 쓰레기로 공공연히 불리는 평판이 나쁜 집이었다.

그런 집에서 살아가던 메이엘라는 늘 집 앞을 지나 목화밭으로 가는 톰 로빈슨을 어느 날 불러들여 집에 뭔가 수선할 것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메이엘라는 톰 로빈슨을 껴안았다. 톰이 놀라서 밀쳐내는 광경을 부친에게 들키자 메이엘라는 거짓말을 한다.

저 흑인이 나를 강간했다.

정식 재판 날이 잡히자 온 동네는 발칵 뒤집혔다. 스카웃과 친한 몇몇 사람 빼고는 모두 애티커스 변호사를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어느 날 밤, 마을 백인 무리가 들이닥쳐 홀로 감옥을 지키던 애티커스 변호사를 위협한다.

저 흑인을 내놔라.

다행히 호기심 많은 스카웃 형제가 아빠가 지키고 있는 감옥 건물에 몰래 숨어있다 위기의 순간에 폭도들 앞에 나타나자 그들은 다시 돌아간다. 그들 역시 마을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애티커스 변호사는 흥분한 스카웃의 오빠 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젬, 너도 나이를 먹으면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다. 폭도들도 결국 사람이거든, 커닝햄 아저씨는 어젯밤 폭도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한 명의 인간이야, 남부의 작은 읍내마다 폭도들은 하나같이 늘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지. 별것 아니란 말이야.

여기서 애티커스 변호사의 휴머니즘적 인간관이 드러난다.

재판도 필요 없고 톰 로빈슨을 처단하겠다고 나선 폭도나, 재판에 선고를 결정할 12명의 배심원이나, 톰 로빈슨을 비난하는 마을 사람들이나 결국 그 마을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영화 <앵무새 죽이기> 중 애티커스 변호사와 강간혐의로 재판을 받는 흑인 톰 로빈슨

법정이 열렸고 배심원들은 전원일치 유죄 평결을 내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톰이 무죄라고 이미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강간당했다고 주장하는 메이엘라 유얼 집안은 구제 불능 백인 쓰레기들이며, 톰 로빈슨이 완력으로 강간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는 왼쪽 팔을 못 쓰는 장애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흑인이었다. 주 감옥으로 이송된 톰은 결국 감옥에서 총알 세례를 받고 사형이 집행되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톰이 갑자기 감옥 담벼락을 뛰어넘어 도망치려 했다는 것이다.

흑인 톰이 누명을 쓴 채 죽었음에도 유얼은 할로윈 축젯날 밤, 술에 취해 스카웃 형제를 헤치려 들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아이들을 구해준 이는 25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부 래들리였다. 유얼은 그날 자신이 든 칼을 휘두르다 자기 칼에 찔려 죽었다.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다시 읽어보게 만든 <앵무새 죽이기>는 현재 벌어지는 #MeToo 운동을 재삼 생각하게 만든다. 성범죄 무고 피해자도 늘어나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발생한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앵무새를 죽인다? 무슨 뜻일까.

지빠귀새

우리에게는 앵무새로 번역된 ‘mockingbird’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앵무새가 아니라 미국 남부지방에서 가장 흔한 새인 지빠귀새라 한다. 다른 새의 울음소리 흉내를 잘 내어 붙여진 이름인데 흉내 소리만 잘 낼 뿐 사람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새다. 어떤 해도 주지 않고 보통 일상을 살아가는 다 같은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들이 ‘죽이기’를 할 수 있다는 비유를 저자 하퍼 리는 담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 열풍과 #MeToo 운동 속에서 우리는 ‘앵무새 죽이기’를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