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폭염이 왔었다

말복이 지나고 열흘이 지났는데도 무더위가 여전하다. 9월 초가 지나서야 무더위가 물러갈 거라고 한다. 하지만 111년 전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던 ‘폭염’은 누그러져서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 이제야 옛날 같은 여름으로 돌아왔구나!

폭염이 한창 맹위를 떨칠 때 사법부 엘리트들이 벌벌 떨었다. ‘재판거래 의혹’이 봄부터 줄곧 터져 나와서다. 혹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쇠고랑을 찰 지경으로 치달으면 어쩌나 싶었겠지. 그런데 언론이 아무리 열성을 다해 폭로기사를 써도 ‘개혁’을 자임한 김명수 사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폭염은 언젠가 그칠 거야!

사태는 십중팔구 실세 한 명(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잡아넣어서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기성 사법부에게 폭염은 끝났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올여름에 누구나 동등하게 폭염을 맞았던 것은 아니다. 집과 사무실에 에어컨 빵빵하게 갖춰 놓은 사람들은 잠깐씩만 고생하면 됐다. 에어컨 없는 곳으로 나들이할 때! 하지만 노천과 쪽방에서 속수무책으로 폭염을 맞은 사람들한테는 시련이 너무나 가혹했다. 정부 관공서는 ‘폭염 빈민’들을 돕는 데 과연 최선을 다했을까. 이웃 시민들이 도울 일은 무어 없었을까. 다들 ‘내 코가 석 자’라서 남들을 도울 겨를이 없었을까.

보수세력은 설쳐 대고, 민중은 한눈을 팔았다

폭염이 한창일 때,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 관련해 조사를 받았다. 옛 연예인 김부선은 경찰서에 나와서 진술은 하지 않고 기자들한테 ‘이재명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김경수가 어찌 될까, 이재명과 김부선이 어찌 될까”에 정신 팔린 국민이 참 많았을 것이다.

선거법 위반혐의 사건이야 그렇다 쳐도, ‘누가 연애 걸 때(그가 정치인이라 해도) 총각인 척 속였는지’ 여부를 온 국민이 알아야 하는가? 그런데 상당수 국민이 김부선을 비난하거나 두둔하는 일에 정신을 팔았다. 그게 천하의 대사인 양!

폭염에 넙치·닭 등 폐사 속출(출처 KBS)

다들 알다시피 폭염으로 농어민이 직격탄을 맞았다. 바닷물이 뜨뜻해져서 양식장에서 기르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내리쬐는 햇빛에 복숭아가 녹아내렸다. 폭염에 소나무가 타 죽기도 했다. 자연이, 생태계가 미쳐서 날뛰었다. 19세기가 산업화와 식민지 침략의 시대요, 20세기가 전쟁과 (패배한) 혁명(들)의 시대라면 21세기는 바야흐로 ‘재난의 시대’로 접어든 것 아닐까.

폭염이 진행될 때, <조선일보>는 ‘경제위기, 큰일!’이라고 줄곧 떠들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소득주도성장, 그거 될 일 아니’라고 외쳤다. 정부는 경제위기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시인했다가는 더 공격당하므로) ‘최저임금 인상 연기’로 물러섰다. <조선일보>는 ‘절반의 거짓말’을 떠든 것인데, 미국도 유럽도 아니고 한국만 ‘위기’일 리는 없다.

또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한국 민중의 삶이 아니라 한국 재벌들의 수익성 하락일 뿐이다. 자기들의 위기를 민중한테 떠넘기자는 수작이다. 폭염 속에서 계급투쟁이 벌어졌고, 거기서 한국 민중이 또 패배했다.

지구 온난화, 인류가 감당할 수 있을까

올해 한국과 유럽은 폭염을 앓았고, 북아메리카 대륙엔 산불이 거세게 타올랐다. 이같은 기상 이변이 ‘지구온난화 탓이 아니라’고 나서서 설명해줄 기상학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미국이 발을 뺀) 파리 기후협약을 실천한다 해도 막을 수 없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이미 인류는 지옥의 유황불 속으로 한 발 들어섰다는 것이다.

Tel Aviv, Israel- May 22, 2017: Democrats and Israeli environmental activists protest against Donald Trump In front of the US Embassy in Tel Aviv.

몇 해 전 내부고발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운영자 어산지가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의 기후학자들이 보낸, 10년간의 방대한 이메일과 자료를 사이트에 올렸다. 자기들이 부유하고 비열한 (온난화설) 비판세력의 포위 공격을 받고 있다고 불평하는 얘기가 거기 가득했다.

세계의 보수 언론, 특히 영국과 미국 언론들이 흥분해서 기후학자들을 성토하는 데 열을 올렸다. 영국과 미국의 정부까지 나서서 기후학자들이 무슨 불법행위나 속임수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샅샅이 뒤졌다. 그 자료 중에 지구온난화가 지구 파멸을 초래한다는 데 이견을 보인 대목은 한 구절도 없었다.

조사관들은 “그 학자들의 엄밀함과 정직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결론 내렸는데 언론들은 이를 아주 작은 기사로 내보냈을 뿐이다. 그러니까 세계 민중은 “지구온난화설, 이거 기후학자들이 즈그덜 밥그릇 챙기려고 너무 엄살떠는 거 아냐?” 하는 인상만 받았다. 언론의 ‘마녀사냥’을 의심하는 대신! 요즘 조사한 바로는 영국과 미국 국민 중에 3분의 2가 “지구온난화, 심각한 문제”라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어산지의 ‘자료 공개’가 악영향을 미친 탓인지, 불신하는 사람들이 최근 더 늘었다.

‘세계 기상이변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소박한 대중이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주제다. 숱한 자연 관찰과 정밀한 비교 분석을 거쳐야 가까스로 그 답이 나온다. 그러니까 학계와 정치계와 언론, 곧 사회 엘리트층이 (기후 변화에 대한) 앎에 합의를 이루고, 이를 대중한테 충실히 전달해야 “그럼 대책을 세워야겠구나!” 하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된다. 이것은 한두 나라가 애쓴다고 될 일도 아니다. 전 세계가 대책 마련에 나서야 그나마 효과를 볼지 말지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를 주름잡는 자본가들, (그들한테) 들러리 서는 정치인, 언론인들한테는 그 대책으로 곧장 제기되는 “지금부터 성장을 멈춰라!” 하는 제안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그래서 그 제안을 끔찍하게 외면한다.

그럴 리 없어!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마라!

대다수 민중은 그들이 이끄는 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한테 ‘딴지 걸’ 배짱이 언제 있었을까. 미국의 베트남 침략(1960~1970년대)이나 이라크 침략(2000년대 초) 때는 저항이 터져 나왔지만, 지금은 민중의 기세가 많이 가라앉았다.

단 1분이라도 먼 앞날을 생각해 보자

세상에는 우리가 신경 쓸 거리가 참 많다. 취직 걱정도 해야 하고, 화장실 몰카 걱정도 해야 한다. 한눈팔 거리도 참 많다. 도처 청산이라고, TV 먹방 프로그램을 보면 찾아가야 할 ‘맛집’이 곳곳에 쌔고쌨고, 방탄소년단의 음악에 취할 때는 우리가 문화선진국 시민이 된 것처럼 흐뭇하다. 화풀이할 데도 참 많다. 남자(일베)는 여자(된장녀)를, 젊은 여자(워마드)는 한남충과 개저씨를 욕하는 것으로 날밤을 지새운다.

그러면서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는 힘을 잃어가고 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흥청망청하는 것의 결과로, 내일 어찌 될까?”를 직시하지 않는다. 그런 일깨움의 소리를 자주 들으면서도 그 소리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두 눈으로 TV를 보면서, 두 손으로 능숙하게 스마트폰 채팅을 해내는 다재다능한 우리는 정작 어느 쪽도 다부지게 떠맡지 못한다. 지금의 ‘취직난’ 시대를 변변히 헤쳐나가지도, 앞날에 맞을 생태계 재난을 차분하게 대비하지도 못한다. 그저 정신없이 오늘을 살아간다.

사진=픽사베이

2030년이면 북극의 얼음이 (여름만 되면) 다 사라진다고 한다. 30년 전에 있었던 빙하가 그동안 4분의 1만 남고 다 녹았단다. 이렇게 저 멀리서 천천히 벌어지는 일을 우리가 기억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몸으로 겪은 일이 아니라서다.

하지만 올여름의 폭염은 우리가 몸으로 겪었다. 그 끔찍한 경험은 우리가 쉽게 잊지 않겠지.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몇 해가 지나면 그 기억도 가물가물해질까. 메멘토! 기억하라! 이 폭염이 ‘생태계 재난’의 전주곡이라는 사실을! 그래야 거기서 정신(영혼)이 생겨나고, 역경을 헤쳐나가려는 자유로운 주체가 생겨난다.

루쉰(1881~1936년)의 에세이 중에 ‘왔다’라는 글이 있다.

중화민국 성립 때(1911년), 도시인은 시골로, 시골 사람은 도시로 도망쳤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사람들이 그러는데 과격주의가 온대요’라는 거다. 사람들은 ‘왔다’를 두려워했다. 온 것이 주의(主義)라면 주의가, 그 사상이 달성되면 그만인데 단순히 ‘왔다’가 온 것이라면 그에 대해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올 여름, 폭염이 왔었다. 우리 상당수는 이것이 ‘지구온난화의 결과’임을 안다. 그런데 여러 해가 흘러, 지구가 유황불 더위 속으로 더 들어갈 때, 그때도 우리가 사태를 다부지게 직시할 수 있을까. “무엇이 왔고,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그때 우리는 ‘왔다’만을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때 그나마 우리를 구원해줄 사람들은 에어컨 도움 없이, 몸으로 폭염을 견뎌 왔던 일부 사람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