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살아있는 한 애쓰며 노력하는 존재 ‘인간’

[리뷰] 괴테 <파우스트> 1부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생일 이후로 꼭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은 그날 읽었던 헤세의 글들, 굳혔던 다짐들을 되새겨보면서 승화된 웃음이 아닌,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예상하다시피 작심삼일의 크게 변하지 않은 태도 때문이었죠.

그래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촘촘한 시간 간격으로 자꾸만 되돌아보고 되뇌어보려 자꾸 애쓴다는 것입니다. 그리 쉽게 변할 리 없지만, 기억을 돌려 한 반성의 한 끗이 자꾸만 쌓이면 이건 시간 문제거든요. 잊지 않으면 영원히 잃어버릴 리는 없는 것, 그 기억의 놀라운 힘을 믿고 있기에 괜찮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 헤세가 <황야의 이리>를 통해 전한 메시지 중 하나는 다양한 인격이 우리 안에 숨어 있다는 것이라고 했는데요. 소설 속에도 등장했던 괴테를 실제로 무척이나 존경하고 좋아했던 그는 괴테의 대작인 <파우스트>에서 두 영혼이 동시에 싸우는 인물의 내면적 갈등이 악마와 신, 악마와 인간의 외면적 대결로 형상화한 것을 다른 방식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자신만의 답을 찾아낸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헤세도 그렇지만 더욱이 괴테는 <파우스트>라는 작품보다도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바친 전 생애라는 긴 시간과 고생 따윈 하지 않아도 될 지식, 부, 명예 등의 우월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면서도 끊임없는 고뇌와 방황의 선택을 멈추지 않았던 그 자신의 존재로서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우리는 그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그의 그 난해한 작품들을 자꾸만 읽어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고 굳힌 결심들을 되새겨보는 것이죠.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망각의 동물이지만 기억을 부르려는 노력이 있는 한, 꺼지지 않은 불씨가 언제든 활활 타오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시간을 조금 더 거꾸로 돌려 이번 주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다루려 합니다.

1막 천상의 서곡에는 이 난해하고 방대한 희곡의 방향을 암시하는 주님과 메피스토펠레스의 대화가 나옵니다.

메피스토펠레스

내기를 할까요? 당신은 결국 그자를 잃고 말 겁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녀석을 슬쩍 나의 길로 끌어내리리이다.

주님

그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유혹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이 부분이 필자에게 참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이제 인간의 전형으로 상징되는 파우스트에게 모든 것이 걸린 셈이거든요.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고 빠지겠다는 선언을 한 뒤니까 모든 행동의 책임은 그에게, 아니 우리 인간에게 걸린 일이라고 봐야겠죠. 다르게 보자면 인간의 방황을 예상했던 신은 인간을 믿었다기보다 인간의 가능성을 믿었던 것일 수도 있고요.

이 경우엔 어떤 잘못에 대한 구원의 책임은 신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이렇게 그를 두고 한 신과 악마의 대결이 파우스트의 내면에서, 그리고 실제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사이에서 나타납니다.

Faust and Devil. An hand drawn illustration, freehand sketching. Line art technique, colored spots, digital painting.

인간 존재의 한계와 의미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느끼고 있던 파우스트는 그 어떤 시도에도 해답을 얻지 못해 자살을 결심하지만, 부활절에 울려오는 교회의 종소리에서 희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데려온 삽살개가 변신한 것이 바로 메피스토펠레스인데요. 둘은 내기를 걸고 일종의 계약을 맺습니다.

파우스트

내가 순간을 향해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라고 말한다면, 그땐 자네가 날 결박해도 좋아. 나는 기꺼이 파멸의 길을 걷겠다! (중략) 내가 어느 순간에 집착하는 즉시 종이 되는 거야.

메피스토펠레스

이성이네 학문이네 하는 인간 최고의 힘을 경멸해주자. 오로지 요술과 마법을 통해 거짓정령의 원기를 받게 해주자. (중략) 그쯤 되면 악마에게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다 해도 결국은 제풀에 파멸하고야 말걸!

이제부터 둘의 세상 유랑이 시작되는데요. 마녀의 영약을 먹고 젊은 남자로 변한 파우스트는 청순하고 순수한 그레트헨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이 사랑은 고통을 안겨다 주고 평화를 깨는 재난일 뿐이었습니다.

그가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오빠를 죽게 만든 것에 이어 그녀는 둘 사이에 낳은 아이를 죽게 합니다. 파우스트가 감옥에 갇힌 그녀를 구해내려고 하지만 그녀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구원의 나라로 갑니다.

마르가레테(그레트헨)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아버지시여! 절 구원하소서!

목소리(위로부터)

구원받았노라!

1부는 상징적인 장면, 현실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가 복합되는 2부보다는 훨씬 읽기에 수월합니다. 파우스트의 고뇌, 그로부터 시작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의 여정의 중심에 운전대를 두고 읽어나간다면 다소 난해한 대목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파우스트가 스스로 택한 고통의 숭고한 의미와 필자가 기억을 부르는 노력, 그 애씀이 이 글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였는데요, 아직 2부를 다루기 전이니 독자 여러분들도 자신을 다그치거나 무언가를 포기하기 전에 조금만 더 애쓰며 우리가 처한 이 고통이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를 곱씹어 생각하는 한 주가 되길 바랍니다. 여전히 기억을 부르며 애쓰고 있는, 그렇지만 아직은 괜찮은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