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살아있는 한 愛쓰며 노력하는 존재 ‘인간’

[리뷰] 괴테 <파우스트> 2부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지난주 <파우스트> 1부에 이어 오늘은 2부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2부는 국가 정세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파우스트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의 전형, 헬레나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아들인 오이포리온을 낳게 된다는 내용이 주인데요. 2부 헬레나와의 사랑은 1부 그레트헨과의 사랑과는 조금 다릅니다.

LEIPZIG, 5 APRIL: sculpture of Faust and Mephisto – famous scene in the novel of Johann Wolfgang Goethe in Leipzig on 5 April 2016.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낙원의 여성으로 보이는 그레트헨과의 사랑은 어쩐지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꿈꾸는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듯 보였다면, 그래서 그에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게 했다면 진정한 짝을 만나 모든 것이 멈춘 상태를 경험하게 한 헬레나와의 사랑은 지상 최고의 행복을 찾게 한 안식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자신의 한계를 넘어 끊임없이 더 큰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본성을 가진 파우스트에게는 멈추면 끝인, 그러므로 다시 한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너뜨려야 하는 사랑입니다. 오이포리온은 하늘을 날다가 떨어져 죽고 헬레나 역시 파우스트를 포옹하는 순간 육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으로 3막이 끝납니다.

한 번뿐인 운명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지 마십시오. 존재한다는 건 의무입니다. 비록 순간적일지라도.

그러나 사랑하는 헬레나를 곁에 둔 절정의 순간에 파우스트는 이같이 말했습니다. 결국 사라지고 마는 사랑이지만, 결국 죽고 없어지는 운명이지만 순간에서 영원을 본다는 것의 의미를 그는 사랑의 경험으로 알았던 거죠.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고 황제를 구한 대가로 습지를 얻게 된 그는 간척사업으로 공동체 이상이 실현된 땅을 건설하려고 합니다. 이 간척사업이 그의 최종 목표가 된 셈인데요, 문제는 이를 성취하기 위해 수단의 도덕성, 과정과의 합일성 등을 모두 말살한다는 것입니다. 노부부를 그들이 살고 있던 집과 함께 불태워버린다거나 인부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태도를 보였던 거죠.

이제 마지막인데요, 백수의 노인이 된 그는 근심에 젖어 눈이 멀게 되고, 간척 사업이 한창인 인부들의 작업 소리는 메피스토펠레스가 그의 무덤을 파는 소리였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같이 드높은 행복을 예감하면서 지금 최고의 순간을 맛보고 있노라.

파우스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뒤 쓰러집니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했던 말대로라면 내기에 진 것이죠. 그러나 눈이 멀었던 순간에 파우스트는 마음속에서 더 밝은 빛을 뿜어내었고,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천사들에게 빼앗깁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퇴장한 자리에 영광의 성모, 이집트의 마리아, 속죄하는 여인인 그레트헨, 천사들이 나와 끝을 장식하는데요. 파우스트의 불멸의 영혼을 인도하던 천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언제나 갈망하며 애쓰는 자, 그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대사는 신비의 합창입니다.

일체의 무상한 것은 한낱 비유일 뿐, 미칠 수 없는 것, 여기에서 실현되고, 형언할 수 없는 것,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리도다.

처음 시작은 신과 악마의 대결이었습니다. 그때 신은 인간의 완전성이 아니라 가능성에 한 표를 던진 듯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인간을 악마에게 맡기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자칫 악마의 승리처럼 보이는 마지막 말을 던지고 쓰러지는 파우스트의 영혼이 천사들에 의해 위로 들어 올려질 때 천사들은 말했습니다.

애쓰는 자, 그를 구원할 수 있다.

처음과 끝의 이 두 대사를 합쳐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는 동안 갈망하고 애쓰는 인간은, 인간의 그 노력의 방황은 반드시 구원된다고.

모든 노력이 허무하고 그 노력의 고통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주장하는 반복과 소멸에 속아 넘어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 뒤엔 아무것도 없어요. 말 그대로 허와 무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도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역할과 의미가 있다는 것을 믿고 한 걸음 발전과 더 큰 창조를 향해 꾸준히 진행한다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 뒤에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파우스트의 영혼이 이겼다 확신한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니라 천사들에게 돌아갔듯 말이죠.

그래서 필자는 <파우스트>를 비극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신이 던진 인간의 가능성에 저 역시 한 표를 던져보는 것인데요.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Classic illustration depicting Faust and Mephisto at Walpurgisnacht (Witches’ Night), drawn by August von Kreling in Wolfgang von Goethe’s “Faust”, published in Munich, 1874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이 엄청난 대작의 마지막 목소리는 신비의 합창으로 들려왔었죠. 무상한 것은 단지 비유라고 했습니다. 비유를 넘어선 본질적 핵심의 실현과 성취는 여기에 있다고요. 그리고 영원히 여성적인 것, 그러니까 성모나 마리아나 순수한 사랑, 속죄의 여성으로 상징되는 그레트헨이나 천사들이 우리를 다시 살게 한다고도요.

처음 이 글을 쓰면서 전하고자 했던 애쓰는 노력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혹시 그 ‘애씀’의 애는 愛(사랑)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정말 그런 것 같았어요. 필자의 그 생각은 마지막 대사의 의미와도 맞닿아있습니다. 출산과 양육의 역할을 도맡아왔던 여성은 무한한 사랑의 근원인 셈이고, 또 기독교의 첫 여성인 이브는 낙원에서 추방당하지만 그랬기에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최고의 목표는 안식처를 찾는 것, 그 안에서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는 것, 그 활동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그러면서 결국 행복이 무엇인지를 느끼는 것이거든요. 파우스트 역시 그 순간적 사랑 속에서 영원을 맛보았고 한 번이라도 행복해 보았습니다. 그 후 수없이 방황하고 맹목적 목표에 눈이 멀기도 했으나 그 노력의 보상으로 구원받았습니다.

<파우스트>를 일반적으로 1부는 그레트헨의 비극, 2부는 헬레나의 비극이라고 일컫는데, 그 여성들은 파우스트가 이 세상에서 진실로 사랑한 대상들이었습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안고 있던 위대한 인물, 파우스트가 세상을 유랑하고 하늘로 들어 올려지는 전 과정의 내용을 한 단어로 간추리자면 결국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한없이 유한하지만, 그래서 덧없이 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인간 존재의 가능성, 그중에서도 가장 밝고 따스한 빛일 사랑을 믿고 오늘 내게 주어진 몫의 노력에 최고를 기하고 방황에 최선을 기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1부 자살의 충동에서 막 벗어난 파우스트는 “기적은 믿음의 가장 사랑스러운 자식”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2부 1막에 등장하는 천문박사는 “기적을 바라는 자, 자신의 믿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천문박사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조종하는 대로 말하는 인물이지만 반대편에 선 두 사람의 같은 말은 중요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것이 삶이 역동성이라 사는 동안은 누구도 초연할 수 없어요. 간절히 욕망하고 분주히 달려가게 마련이지만 그러다 결국 끝이라는 유한성과 초월에 이를 수 없는 허무함을 알아버리는 순간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믿되 끝까지 믿는 것, 그러다 고통을 만나도 승화되어 의미를 발견하는 것, 그러다 죽음을 만나도 위로 들어 올려지는 것, 다시 사는 것까지를 믿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차이가 메피스토펠레스냐, 천사들이냐를 결정짓는 기준이 될 것 같습니다. 다시 살아지는 기적을 맛볼 수 있는 기준 말이죠.

믿지 않으면 속진 않지만 기대할 무엇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으면, 굳건히 믿고, 제대로 기하면 기적은 있을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가능성의 한 표에, 사랑의 빛 쪽에,믿음의 기적 편에 서 있기를 애쓰는, 그리고 늘 ‘愛’쓰려고 애쓰는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