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지적사기, 맨박스

맨박스: 가부장제 아래에서 남성에게 씌워지는 억압, 즉 ‘남성이 남성다울 것’을 강요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러한 남성성 강조는 결국 여성성을 가진 남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기에 이 또한 여성혐오에 해당한다.
-페미위키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땐 페미니스트가 남자들에게도 젠더감수성이란 걸 발휘하기 시작한 건가 싶었다. 한쪽 성별만을 중심으로 젠더를 해석하고 체계화시킨 페미니즘에서도 남성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남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현상들을 자기들 방식으로 진단하고 개념화시키는 데에 익숙해진 페미니스트가 다시 한번 저지른 지적사기에 불과했다.

맨박스에 내재된 오류의 핵심으로는 ‘가부장제’ 내지는 ‘남성중심사회’가 있다. 이는 페미니즘의 이론적 토대이기도 하다. 애초부터 이들은 남녀 사이에 발생하는 현상들을 대부분 가부장제 혹은 남성중심사회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명사로부터 찾는 데에 익숙해졌다.

예컨대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여성혐오는 존재하지만, 남성혐오는 존재할 수 없다.

홍성수 교수(출처 PD저널)

로리타 컴플렉스와 쇼타 컴플렉스를 같게 볼 수 없다.

이현재 교수(출처 EBS 까칠남녀)

라는 비상식적인 말들, 혹은 △젠더권력 △시선강간 △맨스플레인 △맨스프레딩(쩍벌남)같은 언어들은 모두 ‘가부장제라는 사회구조에서 주체인 남성과 타자인 여성’이란 이론적 토대가 있기에 태동할 수 있었다.

애초에 사회가 기울어진 운동장(가부장제·남성중심사회)이니 남성혐오는 존재할 수 없고, 로리콘과 쇼타콘은 동일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한 워마드의 온갖 반사회적 행위들도 사회적 약자들의 대담한 용기이자 분노이지만, 남초 커뮤니티의 김치녀 논란은 거세 심리로 인한 혐오 기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먼저 ‘맨스플레인’이란 단어를 보자. 이렇게 간단히 정의해버려도 될까 싶은 개념이지만 어쨌든 페미니스트가 만들어낸 이 신조어가 가진 의미는 ‘여성을 가르치려 드는 남성들의 행동 양식 내지는 습관’이다.

물론 실재하는 현상이긴 하다. 어떤 남자가 자신의 여자 친구나 여자 후배에게 “오빠가 알려줄게”라는 말을 하며 지식을 뽐내는 행위는 일상 속에서 가끔 접할 수 있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안에서 우리는 여성이 남성에게 바라는 똑똑한 남성상이 여성에게 인정받고 싶은 남성의 동물적 본능을 어떻게 현실화시키는가에 대해 알아볼 수 있고, 이를 통해 각자의 욕망이 이성의 행동 양식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를 논의할 수 있다. 나아가 가치 있는 젠더 연구이자 인문학적 탐구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는 이 현상을 ‘맨스플레인’이라는 추상적 명사로 개념화시킴으로써 그 어떠한 논의조차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들의 ‘가부장제’라는 이론적 토대에서 남자들의 가르치려는 행동은 ‘여성을 남성의 낮은 존재로 여기고 종속시키기 위한 의식적 행동’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맨박스 또한 다르지 않다. “남성성 강조는 결국 여성성을 가진 남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기에 이 또한 여성혐오에 해당한다”에서 알 수 있듯, ‘남성성 강조’ 또한 여성혐오 산물로 보는 게 이들의 수준이다. 왜냐하면 이 사회는 가부장적 질서 아래에 여성혐오가 공고화된 남성중심사회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니까. 쉽게 말해 남자가 만든 틀에 남자들이 스스로 갇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선택이, 여성의 시선이, 여성이란 존재가 소위 ‘남자다움’이란 영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 이들은 여성이 하나의 주체로써 어떤 가치를, 그것도 남성성이란 엄청난 걸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지독하게도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남성중심사회에서 주체인 남성과 타자인 여성’에 균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맨박스라고 정의된 ‘남자다움’에 관한 논의가 “남자들에게도 여성에겐 없는 어떤 사회 구조적 피해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 역시 자기들이 만들어냈다”는 정도로 일축될 수밖에 없다.

남성성의 굴레, 일명 ‘맨박스(man box)’

또 “남성성 강조가 ‘여성성을 가진 남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혐오다”라는 주장에도 함정이 존재한다. 물론 전통사회에서 여성성을 가진 남자는 부정적인 존재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대상이 단지 ‘여성성’인지, ‘여성성을 가진 남자’인지에 따라 내용은 완전히 달라진다.

여기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성’이란 것 자체를 남자들이 여성을 종속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부정적인 관념으로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성을 가진 남자’가 부정적으로 바라보이는 것까지도 여성혐오의 연장 선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타자화된 대상이 ‘여성성’이 아니라 ‘여성성을 가진 남자’, 다시 말해 ‘남성성을 가지지 못한 남자’라면 어떨까. 그렇게 보면 ‘여성성’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 ‘여성성’을 가진 대상이 ‘남자’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였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이를 좀 더 확장해 말하면 ‘여성성을 가진 여자’는 ‘남성성을 가진 남자’와 함께 부정적인 대상이 아닌 ‘정상’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었다는 말이 된다. 필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가치가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인류에 가족공동체가 생긴 이후부터 꾸준히 만들어져 온 역사적 산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녀 간의 상호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 맨박스라는 개념은 잘못됐다. 이 역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제·남성중심사회라는 거대한 이론체계 안에 억지로 욱여넣어 만들어낸 반쪽짜리 결과물에 불과하다.

이렇게 말하면 십중팔구

어쨌든 맨박스에서 벗어나려면 페미니즘이 필요한 것 아니냐?

또는

결국 여권신장(페미니즘)은 남자들에게도 이로운 것 아니냐?

는 반문이 나올 것이다. ‘맨박스’의 원인이 가부장제이기 때문에 여권신장이 이뤄져 가부장제가 타파된다면 남자들도 자연스럽게 해방된다는 주장이다.

페미니스트의 주장처럼 여권신장이 이뤄진다고 해서 맨박스 따위가 없어질까. 남자들이 남성스테레오타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여성들의 변화가 절실하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가 진정으로 성해방을 원한다면, 혐오가 아니라 남녀 모두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기반으로 한 올바른 젠더담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