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다가온 한반도 평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1

일상의 지평 위로 예기치 않은 일이 솟아오를 때 우리는 놀람을 경험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긴 했지만 근래에 필자는 세 가지 일에 놀란 적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을 때, 올해 북한이 기존의 태도를 버렸을 때, 그리고 촛불혁명이다.

미국과 북한과 남한에서 일어난 이 세 가지 일은 필자의 개인적 차원의 놀람을 넘어 한반도의 정치 상황을 뿌리째 뒤바꾸고 있다. 이른바 한반도 평화국면으로의 전환이다. 이런 국면 전환 속에 2018년 우리는 어느 때보다 역사적이고 격동적인 일들이 연이어 터져 나옴을 보고 있다. 하나하나 이야기를 풀어보자.

트럼프 당선

공화당 후보로 출마부터 비웃음을 샀던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 아무도 뚜껑을 열기 전까지 그가 당선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선거 전날까지도 거의 모든 방송이 힐러리의 당선 가능성을 80% 이상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그가 당선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출처 NBC)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를 사람들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꼽고 있다. 우선, 2007년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는 저성장을 거듭해, 국제적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년간 단 한 번도 무역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미국의 무역적자 원인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는 중국이며, 그 폭은 계속 커져만 간다. 트럼프는 이를 고관세율 부과 등을 통해 회복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른 하나는 ‘힐빌리’라고 하는 백인 노동자들의 상실감이다. 힐빌리는 미국 남부에 사는 교육수준이 낮고 보수적 성향을 띠는 가난한 백인을 일컫는 말인데, 트럼프의 선거공약이 이들에게 먹힌 것이다. 미국의 백인 노동자들은 유례없는 실업 위기를 겪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저임금의 중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값싼 수입 제품이 일상 생활용품으로 대체되고 있어 공장에서 물품을 생산할 기반이 줄어든 것과 저임금으로 일하려는 이주민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마약, 도박, 폭력, 알콜, 가난에 노출돼 불안하고 우울한 삶을 살아야 했다. 트럼프는 경쟁력 잃은 백인 노동자들을 교역 증가와 밀려드는 이주민을 비난함으로써, 백인 노동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기성정치인에 대한 미국인의 환멸도 지나칠 수 없다. 오바마 재임 동안 미국은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금융위기 전 상태로 경제를 회복했다. 그러나 소득 불평등은 이전보다 심화했고 특히 중산층 비율이 현저히 하락했다. 임금은 고정돼 있는데 실업자는 늘고 물가는 올랐다. 그런 판에 오바마 정책을 안이하게 답습하려는 힐러리를 대중들은 외면했다.

CHARLOTTE, NC, USA – JULY 5, 2016 Hillary Clinton makes a pointing gesture as she delivers a speech at a campaign event with US president Barack Obama. © shutterstock

결국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내 코가 석자’라는 미국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며, 이는 바로 철저한 비용 절감과 자국 내 산업부흥을 통해 중산층 부활을 이루겠다는 트럼프의 전략이 먹혀든 결과였다.

북한의 태도 변화

2017년 11월 29일 북한은 대륙 간 탄도로켓(ICBM)인 화성 15호 발사에 성공하면서 국제적으로 핵무기 완성을 선언했다. 화성 15호 미사일은 엔진이 상당히 강력해 미사일 1기에 핵탄두 10개를 장착할 수 있다고 한다. 이로써 북한은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국제사회에 천명한 셈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그것은 향후 북한이 핵을 전제로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여러 협상을 하려 들기 때문이고(지금 이미 그 협상이 비핵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 하나는 핵무기 개발이 대만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퍼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핵무기를 둘러싼 미국과의 공방은 2017년 하반기에 들어 한반도에 일촉즉발 전쟁 위기를 몰고 왔다.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북한 핵무기를 절대 그냥 두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북한을 자극해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분위기였다.

그런 기류에 파격을 몰고 온 것은 올해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였다. 그는 신년사에서 책임 있는 핵 강국으로 핵무기를 방어용으로만 사용하겠다고 선언하고, 남한과 평화적 대화를 할 수 있음을 암시한 후, 실제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 후 판문점에서 열린 4·27 남북정상회담, 싱가포르에서 열린 6·12 북미정상회담을 일사천리로 개최해 한반도에 평화국면을 불러 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20일 백두산 장군봉에 올라 맞잡은 두손 들어 올리며 한반도 평화기원을 했다(출처 청와대)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런 변화를 선택했을까.

북한은 1960년대 이후 국방경제 병진노선을 추구해왔다. 병진노선이란 경제건설과 군사력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으로, 김일성 시대의 경제국방 건설 노선과 김정일 시대의 선군경제 건설노선이 김정은 정권의 경제건설 및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으로 이어져 왔음을 말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핵 무력 강화가 과학기술 발전을 가져와 다른 경제 분야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병진노선은 북한 경제의 모순을 더욱 심화시켰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아지는 가운데(2015년 47%), 트럼프의 대북제재 강화로 외국자본 유입 자체가 어렵게 됐고, 민생경제 투자를 배제해 자생적 시장화 현상을 더욱 확산시켰다. 게다가 기상악화로 인한 농산물 곡물 생산저하는 북한 인민들의 생존마저 어렵게 했다.

1990년대 초반 북부지역에서 식량배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자생적으로 농민시장, 야시장, 장마당 같은 비합법적 시장이 생겨났다. 이 장마당에서는 불법거래 품목인 쌀, 옥수수 같은 식량과 공산품들이 거래됐는데, 시간이 지나자 처음의 단순거래 형태에서 상업자본을 축적하는 ‘돈주’가 형성됐다.

이러한 밑으로부터의 시장화 현상은 사회주의 북한 체제에 모순을 불러왔고, 국가 통제권 밖에서 발생한 시장을 국가관리 안으로 유도할 필요가 생겨, 2002년 7월 기존의 비합법적 영역이었던 소비재 시장을 ‘종합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제도화하는 등, 경제개선 관리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종합시장 외의 장사활동, 서비스 업종 및 자영업 발달, 공장 기업소들의 업종 변경 및 돈주와의 결탁 등이 갈수록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급기야 2009년 11월 종합시장을 철폐하기 위한 화폐개혁(구권 100원을 신권 1원으로 바꾸고, 일정 금액 이상의 돈은 몰수 폐기)을 단행했으나 실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체제 안전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그동안 묶어놓았던 경제활동의 각종 규제를 대폭 풀면서, 국가기관이 다양한 형태로 시장에 개입해 내수시장을 견인하려 하고 있다.

또 온라인 쇼핑몰이나 대형 상점을 건립해 주민의 소비를 국영부문으로 흡수하며,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이라는 개선 조치를 도입해, 농장이나 공장 같은 경제 단위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물질적 인센티브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경제특구로 외자유치에 나서기도 했다.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각 도들에 자체의 실정에 맞는 경제개발구들을 내오고 특색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경제개발구 창설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어 그해 5월 ‘경제개발구법’을 만들면서 경제개발구 개발을 본격 추진한다. 나진, 선봉, 신의주, 황금평 등 22곳을 경제개발구와 경제특구로 지정해 외자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경제 변화는 북한 인민들의 생활상 변화를 가져왔다. 시장화가 발달하면서 휴대폰 보급도 광범위하게 이뤄졌는데, 현재 평양 시민 80%가 휴대폰을 소유하고, 전국에 약 400만 대 이상이 보급됐다.

또 북한 내부망인 인트라넷을 통해 전자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택배시스템이 발달해 평양에 택배 서비스 차량이 500~600대에 이른다. 이제 북한 주민들은 전과 같이 다시 ‘고난의 행군’에 동참하려 하지 않는다.

김정은 정권은 어떻게든 경제발전을 이루어 체제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일에 가장 큰 걸림돌이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경제제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오바마 정권이 대북정책으로 취해 왔던 ‘전략적 인내’를 폐기하고, 유엔의 여러 나라와 함께 대북 경제봉쇄의 끈을 바짝 조였다.

그렇긴 해도 그동안 북한은 나름대로 큰 동요 없이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버텨왔다. 그게 가능했던 것이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에 소극적이었고, 제3세계 국가들 가운데 북한에 우호적인 나라들과 보이지 않은 교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7년 12월 14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정상회담(출처 청와대)

그러나 이런 상황에 돌연 심각한 변수가 생겼다. 그동안 대북제재에 부정적이던 중국이 대북제재에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북한은 중국과 예부터 정치적 혈맹관계였고, 경제적으로도 대중 의존도가 높았다. 그래서인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수위가 높아 가는 데도, 중국과 북한의 무역 수치는 오히려 더 늘어만 갔다.

그런 중국이 최근 태도를 바꿔 대북제재에 동참한다. 중국이 그렇게 태도를 바꾼 가장 큰 이유는 남한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해,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쇠퇴시켜 그들이 동아시아 패권국으로 우뚝 서기 위함이다.

아무튼 민생 해결과 경제발전을 통해 정권의 안정과 성공을 꾀하려던 김정은 정권에게 중국의 태도 변화는 치명적이었다. 경제발전을 통해 민심을 얻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상황에서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 완성 선언과 함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2018년 핵무기를 방어용으로만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신년사에 이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그 후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체제보장과 비핵화 테이블에 나온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