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다가온 한반도 평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2

평화국면 견인하는 두 가지

지난 25년 동안 북핵을 둘러싼 북미 간 공방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그리고 예전에도 남북 혹은 북미 간 화해 모드는 있었다. 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고위층 간부가 상대국을 방문해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도 했다.

핵문제에도 그러한 반짝 진전이 있었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하기도 하고, 미국의 요구에 의해 핵사찰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남북미 간의 일들은 예전에 있었던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한마디로 예전에 있었던 일들이 이벤트성이 강했다면, 지금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은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남북미 간 일어나는 여러 일이 지금은 서로가 원하고, 또 원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막다른 단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며 왼손으로 단독회담장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출처 AFP)

그래서 지금의 평화국면이 전과는 다르게 쉽사리 깨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또 상대적으로 이번 평화체제 구축 노력이 실패할 경우, 한반도에 전쟁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올 수도 있음을 내포한다.

올해 한반도에 평화국면을 불러온 중요한 두 요소는 핵과 경제다. 일차적으로 북한은 핵을 담보로 하는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미국은 안보 다시 말해 비핵화의 필요성에 의해, 남한은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 구축만이 살길이라는 절박함에 의해, 남북미라는 삼국의 전략 전술 밀고 당기기 주고받음이 협상이라는 테이블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시기 평화국면 어떻게 보아야 하나

말은 평화국면이지만 현시기 협상의 당사국들은 각국의 명운을 건 치밀한 계산과 기 싸움에 임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협상 판을 깨지도 못할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지금의 협상 국면이 남북미 모두 막다른 단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선 당장은 북미 간의 밀고 당기는 틈에 남한이 자주적인 역할을 요구받고 있지만,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는 일중러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곧장 덤벼들 태세다.

그러나 서로(혹은 어느 한쪽)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전쟁 같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은 이미 충분히 엿보인다. 비핵화가 논의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미국이 북한에게 뜻대로 안 될 경우 북한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직면한다고 경고하는 것이나, 전쟁시나리오 검토, 핵태세검토보고서의 내용만 보아도 그렇다.

핵태세검토보고서(NPR)는 미국 행정부가 발간하는 핵관련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핵 정책과 연관이 깊으며 8년 주기로 작성된다. 지금까지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와 2002년 조지 부시 행정부, 2010년 오바마 행정부, 그리고 2018년 트럼프 행정부까지 총 4번 발간됐다.

올해 2월 2일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발표된 핵태세검토보고서에는 앞으로 8년간 미국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안이 담겨 있다. 보고서에는 “중국, 이란, 북한 등의 불량국가가 미국에 대해 다양한 비핵무기로 전략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극한 환경’에 대해서 새로운 신형 저강도·농축 핵무기로 대처하겠다.”고 명기하고 있다. 이 말은 곧 해당 국가에 필요하다면 핵무기 선제공격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꼽아보아야 할 몇 가지

미국의 비핵화 요구

비핵화와 관련해 한 가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비핵화란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말한다. 그러니까 남북한 모두에 해당하는 비핵화이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북한에 대한 비핵화로만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에 대해 북한은 미국에 체제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 틈에 남한은 새롭게 조성된 평화국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정전협정을 폐지하고,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맺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이 주장하는 비핵화 내용은 CVID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CVID 가운데 완전과 검증 가능은 실현 가능하다. 한반도에 핵무기를 몰아내고 들여오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확인하면 된다.

문제가 될 것은 “불가역적”이다. 불가역이란 돌이킬 수 없는, 이란 뜻이다. 원래 처음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이라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 다시는 핵무기를 만들 수 없게 해야 한다. 이를테면 핵무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과학기술(기계공학, 원자력공학, 컴퓨터공학 등)마저도 폐기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는 북한이 망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 된다. 그런데 이 ‘불가역적’이라는 말이 비핵화 내용에 떡하니 들어가 있다. 함정이 아니겠는가? 할 수 없는 영역을 요구사항에 넣어 끝까지 꼬투리 잡아 협상을 파행으로 몰아가려는 속셈이 아닐까.

CVID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재임 때 수립한 북한 핵문제 해결의 제1원칙이다. 그러나 북한은 과거 북핵 6자 회담 당시부터 이 표현이 ‘패전국에나 강요하는 것’이란 등의 이유로 반발해왔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미국은 북한과 협상할 때 CVID 대신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라는 표현을 쓰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차원에서 한 것인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 의하면 의미는 똑같다고 한다.

Wichita, Kansas, USA, October 28, 2014 Congressman Mike Pompeo (R-KS) delivers short remarks in support of fellow Republican Senator Pat Roberts during a campagn rally who is running for re-election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드러난 내용은 아직 없다. 다만 몇 가지 생각해 볼 수는 있다. 북한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체제안전 보장은 우선 대북제재 해제이고, 그와 함께 종전선언에 이은 평화협정 체결, 불가침 선언, 더 나아가 북미 관계 정상화일 수도 있다.

그리고 미국의 핵우산 철폐,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나 철수, 한미 동맹의 철폐 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런 내용을 어떤 형식과 절차를 거쳐 보장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물론 이 가운데에는 실현 불가능한 게 대부분이다.

북의 체제안전 보장과 관련해 이런 생각들마저 든다. 역설적으로 미국과의 적대관계 유지가 김정은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왜 북한은 미국에 체제안전을 보장해달라고 하는 걸까. 또 비핵화만 실현되고 체제 안전보장이 안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 가서 이빨 뽑힌 호랑이 같은 북한은 어떻게 할까. 그리고 미국은 북한의 체제 안전보장에 드는 비용을 전적으로 남한에 부담시키려 하지 않을까. 미국은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식으로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을까.

남한의 경우

남한의 목표는 정전협정 폐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이다.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유례없이 70여년을 ‘정전상태’로 지내왔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서명한 당사자는 UN군 총사령관(미국), 북한군 최고사령관,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이다. 정전협정은 판문점에서 체결됐으며, 6·25 전쟁 정지와 평화적 해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모든 무장행동과 적대행위를 정지하기 위해 체결됐다.

정전협정에 남한은 서명 당사국에서 빠져 있다.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하나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정전협정에 반대해서고, 다른 하나는 법적으로 한국은 작전지휘권이 없기 때문에 군사령관끼리 하는 정전협정에 자격이 없어서였다.

평화협정은 정치적, 국제법적으로 평화를 보장해주는 가장 확실한 분쟁종식 방법이다. 평화협정은 ‘한반도 평화협정’이 되어야 하며, 서명 당사국은 한국, 미국, 북한, 중국이어야 한다. 북한은 미국과 단독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싶어 ‘북미평화협정’을 주장하지만, 이는 한국과 중국이 반대해 성사되기 어렵다.

한반도 평화협정 당사국 문제는 이미 2007년에 한국, 미국, 북한, 중국 간 합의가 끝난 문제로, 2007년 10·4 공동선언(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서 북한은 한국의 평화협정 당사자 자격을 완전히 인정한 바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다르다는 점이다. 종전선언은 한반도의 정전상태가 끝났음을 남북미중 당사국들이 그야말로 ‘선언’하는 것이다. 선언은 선언에 그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상황으로 볼 때 선언 그 자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18일 열린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집무실인 노동당 본부청사 앞까지 나와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맞이했다(출처 청와대)

한반도 평화 체제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한다. 평화협정 체결로 미국은 대북 적대 정책을 폐기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며, 한미동맹과 조중동맹을 동시에 해체하고, 한반도에서 군축을 단행해 남북미중 어느 쪽도 전쟁을 일으킬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북핵 문제 해결을 논의하기 위한 6자 회담이 있었다. 6자 회담은 북미를 중심으로 나머지 국가(남한·일본·중국·러시아)들이 각국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모인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남한과 일본은 미국이 자국의 부담을 덜기 위해 끌어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핵심 사안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어렵고, 의미 있는 결정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앞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기존의 6자 회담보다는 평화협정 체결 당사국이 될 4개국(남한·북한·미국·중국) 회의로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일본이 자국의 이득을 위해 이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겠지만 그들은 평화협정 당사국이 아니다.

평화는 곧 삶의 문제

문재인 대통령이 9월 18일 평양을 방문해 남북 정상회담을 다시 가졌다. 지난 4·27 판문점에서 양국 정상은 남북 관계를 예전에 비해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교류와 협력을 제도화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것 같았던 게 엊그제였다. 다행히도 여러 여건 변화가 평화의 훈풍을 몰고 왔고,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는 평화체제를 구축할 기회를 맞고 있다. 남북미 간 여러 협상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남한에서 추동할 필요가 있고, 그것이 가능하게 하려면 상황 변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민의가 한곳(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으로 모여야 한다.

불확실성이 너무 큰 상황이라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분야마다 교류의 폭을 넓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 간 긴장을 줄이면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오랫동안 전쟁 위험과 불안 속에 살아온 우리에게 평화는 곧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