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을 대하는 현대인의 자세

어릴 때는 무술에 대한 기본 배경이나 철학에 대한 관심도 없이 오직 발차기와 주먹을 단련했던 시절이 있었다. 무술의 종류를 구분할 줄도 몰랐지만, 당시는 무술이 다양하지도 않았다. 그런 관심보다는 오직 일격필살을 목표로 몸을 단련했다.

이른바 피지컬이 정점에 도달해 가고 있었지만, 검(무기)을 상대하는 시뮬레이션은 늘 만족하지 못했기에 드러내지 못하는 두려움은 늘 뇌리를 감싸고 있었다. 나름 답을 구하고자 검도(검술·검법) 도장에 기웃거렸지만, 고민을 풀지 못했다.

검에 대한 두려움은 연습이나 시합에서 상대를 대하는 자세를 더욱 거칠어져만 가게 했다. 군대에서는 태권도를 가르치며 훈련을 이어갔고 전역하면서 격투기 챔피언이 됐다.

1985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격투기 챔피언 전에서 우승한 필자

대다수 사람은 무술을 배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다.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불필요한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면 된다. 굳이 무도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 종교를 통해 영성을 쌓아가거나, 종교와 상관없이 명상이나 요가 등의 수행을 통해 행복과 깨달음을 추구하기도 한다. 꼭 눈에 들어오지는 않더라도 자기만의 수행법이 있다.

이해하기 쉽도록 무술의 종류를 5가지 범주로 나누어 보았다.

  1. 살상(殺傷)-죽이는 것
  2. 타격(打擊)-상처를 입히는 것
  3. 유술(柔術)-잡는 것
  4. 도주(逃走)-도망가는 것
  5. 무위(無爲)-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뒤에서부터 이야기해보면, 무술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무기력한 모습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적을 만들지 않는 고단수다. 폭력적인 무술을 배운 사람보다 배우지 않은 사람이 더 현명해 보이고 위험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갖기도 한다.

그다음, 도주를 놓고 본다면 비겁한 행동이라 비아냥거릴 수도 있다. 중국의 병법서 <삼십육계> 패전계(敗戰計) 제36계에 “주위상(走爲上, 도망치는 것도 뛰어난 전략이다)”이 나온다. 이기지도 못할 싸움, 싸워봐야 득이 되지도 않은 일에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 이순신 장군이 전승을 기록한 것 역시 이길 싸움만 했기 때문이라 하지 않던가.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무술이다. 검을 뽑은 이상 고매한 설명은 필요 없다. 오직 생과 사의 갈림길만 있을 뿐이다. ‘활인검’이란 말이 생기기 이전부터 아니 그 이후도 검은 상대를 죽이는 것이 지상목표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검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던 것도 검이 가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살상력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공수도나 무에타이 같은 타격기 무술이다. 기술의 단련으로 검에 준하는 살상 효과를 추구한다. 그런 목표가 없으면 타격기로써 존재 의미가 사라진다. 일본에서는 경찰무술로써 공수도의 가치는 논란이 돼 금지됐다. 자칫 몸에 밴 습성이 안전보다는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경찰무술로써 검도와 유도가 주류를 형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 유술은 싸움을 멈추게 하는 기술로서 현대에 와서 두 갈래의 큰 물줄기를 이룬다. 하나는 경기 무도로 발전해 올림픽 주요 종목으로 자리 잡은 강도관유도(講道館柔道), 또 하나는 시합이 없는 아이키도(合氣道)다.

출처 대한합기도회

아이키도는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지만, 효율적인 제압 능력 때문에 관심을 끌고 있고, ‘움직이는 선(禪)’이라 불릴 정도로 정신 수양 요소도 갖추고 있다. 아울러 검도, 유도와 함께 경찰 무도의 주 종목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준법을 강조하고 공익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에서, 상처를 입히는 무술이 공격성을 강조하다 보면 시민들에게 외면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술 고유의 기능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 무술이 가진 철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맞춰 발전해가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국기 태권도가 일부 엘리트 선수를 제외하면 거칠게 말해 탁아소 역할 밖에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태권도가 가지고 있는 심신단련의 효과로 자기계발 영역에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갈수록 그 존재의 가치가 희석될 게 뻔하다. 필자 역시 태권도인으로 태권도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다. 기타 비주류 무술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직도 법치국가에서 무술의 실전성 운운하는 사람이 있는데, 무엇이 실전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 무술의 가치는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과정에서 얻는 깨달음이어야 하고, 굳이 부딪힘이 있더라도 상대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서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송사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

아이키도를 하는 사람들은 배려를 바탕으로 단련하므로 항상 안전을 떠나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또한 검술의 원리를 몸의 움직임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작은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 세밀함이 기술 속에 살아있다. 그리고 무엇을 배우든지 그것이 추구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무도를 통해 얻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어도 면면히 이어진다.

아이키도는 ‘사랑’이며, 만유애호(萬有愛護)의 사명을 완수하는 진정한 무(武)의 길(道)이다. 합기는 자기를 극복하고 상대의 적의를 없애는, 적 자체가 없도록 하는 절대적인 자기완성으로 향하는 길이다.

-아이키도정신, 개조(開祖)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