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인 파리, 황금의 시간

[리뷰]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가족들과 가까운 과수원에 다녀왔습니다. 사과를 따기 위해서였는데요, 어린 시절 과수원집 둘째 딸이었던 엄마는 불쑥 떠오르는 기억들에 취해 힘든 줄도 모르고 사과를 따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옛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때는 없이 살아도 사람들 사이에 정이 있었다, 지금처럼 냉장고를 두세 대씩 두고 음식을 쟁여놓지 않았다, 정말 다른 건 몰라도 과일은 실컷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뭐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나뭇잎들 새로 얼핏 드러난 엄마의 얼굴 위에 햇빛이 떨어져 내려 반쯤은 찡그린 표정이었지만 또 반쯤은 그 시절로 돌아가 어린 소녀가 된 듯 천진하게 웃고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우디 앨런 감독과 배우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 감독은 직접 각본을 쓰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거의 모든 각본의 공통적이면서도 대표적 특징을 꼽으라면 자학적인 유머라 하겠습니다. 전형적인 뉴요커인 그가 점차 무대를 유럽으로 넓혀오면서 2011년도에는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작품을 개봉했는데 이 작품에선 그런 요소를 거의 배제했습니다.

그의 수많은 영화 중 가장 로맨틱하면서도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 된 <미드나잇 인 파리>에 대해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특별히 좋았다는 반응과 그냥 그랬다는 반응인데 이 차이는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파리의 아름다운 명소들과 문학의 거장들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보는 장면마다 집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1920년대로의 시간 여행이 지닌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러한 시간 여행을 통해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까지 감동적입니다.

작가인 길은 약혼녀 이네즈와의 결혼을 앞두고 그녀의 부모님과 함께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납니다. 이네즈와 부모님은 전형적인 성공 지향적 미국인들로 길이 계속 상업적 영화 시나리오를 쓰길 바랍니다. 그러나 낭만주의자인 길은 다른 소설을 쓰길 원하죠. 그가 황금시대로 여기는 1920년대의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들, 이를테면 헤밍웨이, 피츠 제럴드, 살바도르 달리를 동경하며 파리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다른 성향 덕에 홀로 밤거리를 산책하게 된 길은 클래식 차를 타게 되고 1920년대에 도착합니다. 시간 여행이죠. 그곳에서 동경해마지 않던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는 꿈만 같은 일을 겪는데요,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일을 이네즈가 믿어줄 리는 없습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그는 그래서 또다시 홀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피카소의 연인인 아드리아나를 만나게 되는데요. 매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예술가들의 뮤즈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샤넬에게 패션을 배우러 파리에 왔다가 파리에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그 역시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파리를 찬양하다시피 했었죠. 통하는 게 많은 그들은 함께 밤거리를 걷고 대화를 나누다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버립니다.

문제는 그가 1920년대를 동경하는,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자라는 것뿐 아니라 그녀 역시 1890년대를 동경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또 한 번 189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됐을 때, 그녀는 그 시대에 머물고 싶어 했습니다.

1920년대는 어쩌고요?
-길

그건 현재잖아요. 지루해요. (중략) 설마 황금시대를 20년대로 여기진 않았겠죠?
-아드리아나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중략) 현재란 그런거에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길

아드리아나는 고갱과 드가의 시대, 1890년대에 머물기로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길은 이네즈와도 결별합니다. 다행히 그처럼 비 오는 파리의 거리를 우산도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는 여인을 만나게 돼요.

길과 이네즈,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젖는 거 상관없어요. 사실 파리는 비 올 때 제일 예뻐요.

아드리아나가 머물기로 한 1890년대를 두고 영화 속의 고갱은 상상력이 없는 시대라며 자신은 르네상스를 동경한다고 했습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동경하는 과거의 시간이 아닌, 현재 있는 지금의 시간에 집중할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시대가 황금시대라는 것이죠.

한나절 딴 사과만큼 크고 반짝이는 엄마의 추억 보따리를 한 아름 안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요. 엄마는 “아니, 어느 시대든 그 시대만의 힘듦과 방식이 따로 있는 거겠지” 했습니다.

필자가 책에서 읽고, 영화에서 보고, 지식으로 알게 되는 것들을 엄마는 삶의 현장에서 체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역시 그 시대만의 삶의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연륜을 감히 이길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가족으로 엮여 함께 황금 같은 사과를 따고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 황금 시간임을, 그리고 그 어떤 시대에 살든지 따가운 햇살을 함께 이길, 차가운 빗속을 함께 걸을 내 사람이 황금보다 값진 존재임을 믿는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