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세대’, ‘승리의 세대’를 검열하다 1

[기획]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의 문화대혁명

[글 싣는 순서]

  1. 페미니즘 광풍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
  2. 주체성 부르짖는 비주체적인 ‘상실의 세대’
  3. 박근혜 정권의 판 뒤집기와 ‘상실의 세대’의 위기의식
  4. ‘상실의 세대’와 ‘페미피아’, 영혼의 단짝으로 만나다 1
  5. ‘상실의 세대’와 ‘페미피아’, 영혼의 단짝으로 만나다 2
  6. 홍위병 이끄는 ‘강청’이 되고픈 ‘상실의 세대’ 1
  7. 홍위병 이끄는 ‘강청’이 되고픈 ‘상실의 세대’ 2
  8. ‘상실의 세대’, ‘승리의 세대’를 검열하다 1
  9. ‘상실의 세대’, ‘승리의 세대’를 검열하다 2
  10. 모택동 자임하는 ‘유신·386 세대 운동권 세력’
  11. ‘80년대 가치’의 맹종이 아닌 필터링과 극복을 요구하며 1
  12. ‘80년대 가치’의 맹종이 아닌 필터링과 극복을 요구하며 2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과 ‘페미피아’ 연합이 문화를 어떻게 다루려고 했는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문화계의 상황을 잠시 언급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80년대 후반 및 90년대 이후 대학 생활을 보낸 진보 성향 인사들을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이라고 명명하고, 이들의 행보를 ‘상실’이라는 틀을 통해 설명했다.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현재까지의 서술이 같은 연배의 사회 구성원들 전체에 적용되는 사항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같은 세대의 문화 관계 인사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과는 정반대의 양상이 펼쳐졌다.

주지하다시피 80년대 이후 문화계는 (특히 대중문화계는) 활발한 국제화·세계화에 따른 새로운 양식의 도입이 활성화되고 그에 비례해 각종 문화 관련 사회적·제도적 제한 및 통제들을 탈피하려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이전과 분별 되는 파격적인 모습과 보다 다양한 형태의 표현을 추구하고 이를 향유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때 포스트 80년대 세대는 그와 같은 문화계 양상을 적극적으로 주도 혹은 소비했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은 새로움에 거리감을 느끼는 기성세대와 외부 구성원들의 문화 인식과 서구나 일본 등 수용 양식의 원류 지역 경향을 따지고 드는 동종 문화 종사자·소비자들의 문화 인식 사이에서, 자신들의 방향을 설정·모색해야만 하는 과제를 지속해서 요구받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름대로 답을 찾아 외부 구성원들에게 문을 계속 두드리며 한국 사회 안에 자신들이 추구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에 성공했으며, 나아가 이때까지 축적한 자신들의 경험을 한국 밖으로도 적용·확산시켜 이른바 ‘한류’라는 세계에 통용되는 문화 흐름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상영 중인 방탄소년단 응원 광고

이들은 서구나 일본 등 원형을 두고 있는 외부에서 유행하는 문화 양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비주체적’이었지만, 한국 사회와의 관계 설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에 적합한 문화 양상을 만들어나갔고 끝내는 외부에 한국 문화의 대표로 자처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는 점에서 ‘주체적’이고 ‘승리·주도자’인 세대였다.

이같이 ‘승리의 세대’인 ‘포스트 80년대 문화계’에 대한 ‘상실의 세대’인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의 태도는 이중적이었다.

우선 그들이 ‘학생·사회 운동’을 하면서 선배들로부터 이어받은 문화관은, 현실 사회의 계급 구조와 그에 따른 문제들을 부각하고 민중·민족·계급 등 하부 집단의 자주·주체성을 강조·유도하는 도구로서의 문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가까웠다.

이러한 문화관은 문화 자체가 자신들의 사회 인식 틀 안으로 맞추어 들어가야 할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그에 맞추어 나가는 작업에 봉사·기여하도록 하는 ‘정치의 시녀’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해당 문화관은 문화 행위 자체를 곧 자신들의 문화 인식처럼 현실 사회로의 이상 구현 과정으로 이해했기에, 각종 문화 행위들에 대해 자신들의 사회 인식과 맞는지를 따지고 그에 맞지 않는 행위는 경계 혹은 공격하는 ‘검열’을 지향하게 됐다(이같은 문화관은 그들과 연합하는 ‘페미피아’들에게서도 ‘여성’을 중심에 놓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문화관을 주입받은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에게 같은 세대의 문화계 양상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문화계는, 현실 사회 구조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 있지 않고 속물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외부 문화의 무분별한 도입이 난무해 자신에 대한 각성이 없는 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자신들이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거시적인 사회 구조 변화 요구보다 현재를 즐기며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겠다는 목소리가 두드러지는 문화계의 현실 인식은,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에게 있어서 ‘반계급적’일 뿐만 아니라 ‘반동적’이며 ‘부르주아적’인 양상으로 비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Waiting In Line For The BTS Concert At The Ziggo Dome Amsterdam The Netherlands 2018.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들은 이 ‘승리의 세대’가 주도하는 문화 행위에 대해 같은 세대 혹은 그 이후의 사회 구성원들이 호응하는 모습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자신들이 주도하는 ‘학생·사회 운동’의 규모와 관심은 점점 축소됐고, 주요 활동 무대인 ‘대학’은 이제 문화를 선도하기보다는 참신함으로 무장한 전문적인 문화계 종사자들의 경향을 따라가는 모습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해 줄 수 있는 존재들인 같은 세대 혹은 그 이후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문화관을 무턱대고 강요하다 지지를 잃기보다는 오히려 그에 편승해서 호의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 안에 자리를 잡아갔다.

더군다나 ‘포스트 80년대 문화계’의 문화 행위가 맞닥뜨린 사회적·제도적인 제한 및 통제들은 기성세대와 그들이 주로 지지하는 보수 세력에게서 조성된 경우가 잦았기에, 문화계에 대한 연대 및 변호 활동은 곧 이같은 자신들의 구상을 현실화시킬 좋은 기회로 인식됐다.

거기에다 문화계가 수용 양식의 원류인 서구의 경향을 활발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점차 그 안에 통용되던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함께 습득한 데다가, 이를 토대로 자신들의 문화에 호응하고 소비해주는 구성원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생각을 대변하려는 역할을 자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는 사실은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들에게 문화계를 상호 협력 대상으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겨줬다.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들은 같은 세대 문화계의 문화 행위들을 언론·평론·학술 등을 통해 지지·옹호하거나 그들에게 정치적·제도적인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그들의 호감을 샀다. 이는 자연스럽게 같은 세대 혹은 그 이후 사회 구성원들의 진보 세력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같은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의 작업은 문화계에 대한 상당한 영향력으로 이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언론·평론·학술 등을 통해 문화계에 종종 자신들의 시각을 반영해주기를 주문하긴 했으나 참신하고 독특한 다양한 해석 중 하나로 이해받는 경우도 많았으며, 문화계에서 유행한 이미지와 언어들을 사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구호를 내세우기도 했지만 같은 세대 혹은 그 이후 구성원들 주변에서 겉돌게 느껴지는 ‘아재개그’와 비슷한 반응을 얻는 상황도 적지 않았다.

언론·평론 행위나 정치적·제도적 도움은 문화계 운영에 일정 부분 기여하기도 하나 어디까지나 문화계 당사자들의 주도 행위는 아니었으므로, 과거 기성세대나 보수 세력의 통제 및 제한을 연상케 하는 영향력 행사 강화나 간섭은 그들에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으로 인식돼 도리어 거부감을 주기에 충분했기에 이루어질 수 없었다.

따라서 진보 세력과 포스트 80년대 문화계의 관계는 전자가 후자를 이끌기는커녕, 반대로 전자가 후자의 선택을 구애하며 협력을 기다리는 처지에 놓여있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했다.

그랬기에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들은 같은 세대 문화계의 문화 행위들을 해당 세대 일원으로서 함께 소비하면서도(더욱이 ‘대학’ 입학 전까지 해왔을 문화 활동을 ‘대학’에 들어가 단박에 끊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자신들끼리 있을 때는 받은 문화관을 재확인하고 이에 따라 같은 집단 내 구성원들과 후배들의 ‘탈선’을 단속하며 자신들의 사회 이상에 따른 문화 주도를 모색하려는 모순적인 태도를 한동안 갖게 됐다.

Ho Chi Minh , VietNam – March 22: Tae Yeon , Hyo Yeon (SNSD, Girls’ Generation band) dance and sing on stage at the Human Culture Equilibrium Concert Korea Festival in Viet Nam on March 22, 2014.

이러한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들의 기다림은 마침내 박근혜 정권의 등장으로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게 됐다. 박근혜 정권에게 있어서 ‘문화’란 ‘국위(정확하게는 ‘정권 위상’) 선양’의 도구이자, 정권이 추구하는 방향에 발맞추어 봉사하는 ‘정치의 시녀’에 다름 아니었다.

그 같은 퇴행적인 문화 인식은 역시 부친인 박정희 정권의 그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지만, 실질적인 행보는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사회 문제를 제기하려는 행위는 최대한 차단하고 밝은 부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교묘하게 유도해나가는 편을 선호했다는 점에서 전두환 정권의 그것과 닮았다고 하겠다.

하지만 박근혜 세력의 이같은 문화관은 ‘한류’ 등의 문화 행위를 일종의 수출 상품 및 선전 수단의 측면에서 다루려고 하는 등 겉핥기식·보여주기식의 문화계 관련 태도들로 인해 감추어지기는 어려웠다. 박근혜 세력의 문화관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문화 행위에 대한 통제 및 배제와 감시로 이어졌다.

물론 ‘블랙리스트’ 등으로 대표되는 이같은 행동들은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일정 부분 감지됐던 현상이었지만, 박근혜 정권 수립 이후부터는 문화계 전반에서 상당 부분 인지할 수 있을 만큼 그 정도가 심화됐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포스트 80년대 문화계’ 인사 대다수들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사안으로 다가왔다. 이들이 문화 행위에 관심을 보였거나 막 시작한 80년대는, 연배가 낮았기에 당시 문화정책의 뒷면을 의식하기보다는 표면적으로 자유로움을 내세우는 분위기에 심취한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90년대 이후부터는 문화 관련 제한 및 통제들을 서서히 축소 혹은 제거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문화 양상을 최대한 표출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한 경험들만이 존재했던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이들에게 있어서, 박근혜 정권의 문화계에 대한 태도는 전두환 정권 수준보다는 못한 실제 양상과는 다르게 그 이상으로 체감됐다.

이처럼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현상에 당혹스러워 한 ‘포스트 80년대 문화계’는, 그동안 상호 협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호의적이었던 진보 세력에게 서서히 기대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러한 행동은 진보 세력이 오랫동안 문화에 대한 ‘속마음(혼네)’을 드러내지 않고, 현실적으로 ‘겉마음(다테마에)’만을 보여주었기에 나올 수 있었다.

혼네와 다테마에

여기에는 문화계가 자신들이 체감하는 군사정권 시절부터 내려온 통제에 대한 경험 및 대처 방안을 진보 세력들이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과의 공조를 통해 이를 전수받아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겠다는 발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욱이 진보 세력이 지니고 있었던 학력에 바탕을 둔 지적 우위는, 그것이 결핍돼 형식적인 지위는 상승했을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무시됐던 자신들의 정신적인 위상을 보다 높여 주리라고 생각됐다. ‘상실의 세대’가 일방적으로 구애해야 할 정도로 ‘세대의 대표자’로서 넘치는 자부심을 즐겨왔던 ‘승리의 세대’가, 이제는 오히려 ‘상실의 세대’에 문을 두드리며 신세를 지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