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샤베트, 따뜻하고 환한 빛과 시원하고 달콤한 세상

[리뷰] 그림책 <달 샤베트>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어른이라는 단어의 무게로 내면에 웅크린 어린아이의 존재를 끝없이 깊은 곳으로 밀어 내릴 때, 우리는 건강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린 허무한 존재로 퇴보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거꾸로 사는 것처럼 과거에 놓고 온 특정 사물에 집착하는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고요, 자신의 불행을 특권처럼 남용하는, 약해서 악한 사람들도 있는 듯합니다.

좋아하는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들은 내 안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으나 나를 규정하는 것들에 묶여 꽤 오랜 시간 잠자고 있는 동심을 깨워주곤 합니다. 마음에 자리한 네버랜드 속에 뿌려둔 꿈과 소망의 씨앗들을 키우는 달콤한 빗줄기와 따뜻한 햇살이 되어 줍니다. 그래서 여전히 꿈꿀 수 있고 소원할 수 있습니다.

픽사베이

밤 산책을 즐기는데요, 피부에 스미는 바람의 촉감도 좋고 발바닥에 닿는 땅의 마찰도 좋지만, 무엇보다 소란이 물러난 침묵, 모든 사물이 제 자리를 찾는 정돈, 오롯이 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어둠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달입니다.

같은 빛이지만 해를 보면서는 하지 않는 기도가 달을 보면서는 가능합니다. 어둠 속을 밝히는 빛,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말, 주변이 아닌 내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달에는 있습니다.

달을 보며 밤 산책을 즐기는 재미에 한참 빠져있던 해에 백희나 작가의 <달 샤베트>라는 그림책을 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왜 좋은 작가인지 알았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 단지 엉뚱한 상상력, 눈에 띄는 독창력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린아이를 안고 사는 모든 어른의 마음 안에 함께 사는, 결코 사라질 수 없고 사라져서도 안 되는 가치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라는 것을.

<달 샤베트> / 백희나 지음

무더운 여름밤, 그 대단한 열기에 지친 달도 뚝뚝 녹아내리자 반장 할머니는 고무 대야를 들고 나가 달 물을 받아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도 에어컨, 선풍기를 풀 가동해 그 밤을 견디는데 그만 정전이 됩니다. 너무 많은 전기를 써버린 것이죠.

온 세상이 깜깜한데 반장 할머니의 집만은 밝아요. 창문 틈으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본 이웃들이 그 앞을 기웃거리자 할머니는 대야에 받아둔 달 물로 달 샤베트를 만들어 모두에게 나눠줘요. 그 시원하고 달콤한 것을 먹고 나자 더위도 싹 가십니다.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달 샤베트를 먹고 나자 더위가 싹 달아나 버렸습니다.

모두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이웃이 아닌, 낯선 이들이 할머니의 집을 방문합니다. 집이었던 달을 잃어버린 토끼 두 마리였어요. 할머니는 고민하다가 달 물을 화분에 부어줍니다. 그 화분에서는 달맞이꽃이 피어나고요.

꽃에서 피어난 빛은 깜깜한 하늘로 올라 콕 박히더니 점점 자라나요. 작은 점이었던 빛은 커다랗고 노랗고 둥그런 보름달이 되어 토끼들에게 새집이 되어줍니다. 토끼들이 돌아가자 할머니도 시원하고 달콤한 잠을 청할 수 있게 됩니다.

노란빛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합니다. 노란 나비 떼의 파닥이는 날갯짓처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 빛은 물론 따뜻할 테고요. 모른 척하지 않으면 커다랗게 자라납니다. 태연함을 가장한 무표정, 쿨함을 가장한 무감각은 심장의 박동, 나비의 날갯짓, 달의 온기, 빛의 환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언제나 우리를 살게 했던 것은 다소 촌스러워 보일지도 모르는, 그러나 삶의 한 가운데에서 놀리는 두 발바닥의 분주함, 맞잡은 두 손으로 전해지는 따뜻함이었습니다.

땀과 눈물, 피와 숨이 서로에게 섞일 때, 어둠 속에서도 세상은 희망적입니다. 달 샤베트를 마신 모두의 체내에 노란빛이 물들어 시원하고 달콤한 꿈을 꾸고 그 동심으로 보름달을, 달 속의 토끼를 살려냈듯이. 더워도 덥지만은 않고 어두워도 외롭지는 않은 한여름의 밤을 견뎌냈듯이.

마음속에 자리한 네버랜드가 영원한 이유는 어둠 속에서 존재감을 더욱 밝히는 노란빛 때문일 겁니다. 내 마음을 밝혀 온 세상을 밝히는 힘 때문일 겁니다.

오늘 밤엔 떠오르지 않은 달,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없을 뿐, 그 어딘가엔, 내 마음 가장 안쪽엔, 나를 바라보고 내게 말 걸어줄 노란 빛이 어김없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그 따뜻하고 환한 (달)빛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네버랜드)세상을 만들어내는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