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무도’ 액자가 아니라 몸에 새겨야 한다

연세가 한국 나이로 90세인 타다(多田 宏, 1929~) 선생께서 연무하는 영상을 보고 “어이없네! 나하고 한번 붙어보자!”는 댓글이 올라왔다고 해서 찾아봤으나 댓글이 지워지고 없었다.

강한 자극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술도 빠르고 강한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감정 표현도 양극단을 치닫을 때가 많다. 평범, 중립, 보통 등의 단어를 모욕으로 느낀다. 필자도 어렸을 때 경쟁적인 무술을 해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지는 것이 싫어 빠르고 강한 것만을 찾았다.

오늘은 아이키도를 선택한 필자의 경험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태권도 관장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했고 선수로 시합에도 나갔다. 태권도 선수로 활약하던 친구들도 많았다.

그 당시 유난히 발이 길고 빠른 친구가 있었는데 그와 겨루기를 하면 점수를 빼앗겨질 때가 많았다. 그 친구를 꺾어보려는 생각에 필자는 유도를 비롯한 권투도 하고 하단 공격도 하는 합기도에 킥복싱까지 강하다고 하는 것은 다 했다.

태권도 시합 준비를 위해 아버지 도장에 와서 연습하던 친구들이 필자가 여러 가지 기술을 연습한 이후부터 필자와는 연습을 못 하겠다며 겨루는 것을 피했다. 당시는 이겼다고 우쭐했지만, 룰을 벗어난 필자의 기술에 친구들은 부상을 얻을 뿐 태권도 시합을 위한 경험치를 쌓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 낭비 그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이겼다고 할 수 없는 철부지 행동이었다.

무에타이를 도입하기 위해 태국에 갔을 때 선수들의 훈련, 경기, 그리고 그에 임하는 프로 선수들의 태도를 보면서 그동안 필자가 했던 격투기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를 실감했다. 그랬기에 무에타이를 도입하고자 했던 마음이 더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이후 태국의 우수한 트레이너를 영입해 국내 타격기 무술계에 체계적인 훈련 방법과 선진 시합 기술을 보급했다는 사실은 이미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파워와 스피드가 우선인 무술은 결국 정점을 찍은 후 하향 곡선을 탈 수밖에 없는 사례를 필자 본인에서만이 아니라, 수많은 선후배를 통해서 보아 왔다. 수련 기간은 짧고 ‘평생무도’라는 말은 액자에서나 볼 수밖에 없는 종목들이 많은 것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타격기 무술을 하고 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그런 고민을 품고 있었다.

합기도(Hapkido) 시범을 위해 방문했던 타이완에서 처음으로 접한 아이키도는 필자에게 충격이었다. 한국에서는 원로 아닌 원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이를 훌쩍 넘긴 선생들의 움직임을 보고 필자의 눈을 의심했다. 파워와 스피드가 아니라 경력이 더 해갈수록 쌓이는 공력이 보였다. 모든 기술이 몸의 중심으로부터 연결돼 상대의 공격을 중화시켜 버리는 모습에 넋을 잃어버렸다. 안정된 중심은 상대의 빠르고 강한 공격을 오히려 손쉽게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이후 필자는 주저 없이 평생무도 아이키도라는 여정을 떠났다. 그 과정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닥쳤다. 왜색에 대한 논란, 국수주의 무술계의 비방, 실전성에 대한 비아냥, 경제적 어려움 등. 이제서야 웃고 지날 일이지만, 일부 무술인의 모임에서 일본 무술을 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는다고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선배가 “너희 중에 윤익암(대현)이랑 붙을 자신 있는 사람 있어?”라는 말에 장중히 조용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타다 히로시 9단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이 할 수 있는 무술이 무엇이냐고 자문했을 때,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태극권과 아이키도를 꼽을 것이다. 둘 다 기본에서부터 허리 중심을 어떻게 움직이고 사용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다룬다. 무술과 건강, 정신 수행 어느 쪽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선(禪)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혼자 하면 태극권이요, 둘이 하면 아이키도라는 말도 있다.

현대는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회가 아니다. 실전 무술은 오히려 머릿속에나 존재하고 ‘인생이 실전’이라는 말이 더 와닿는 시대다. 인생이라는 실전에서 정말 강해지려는 방편으로 무술을 선택하고 그것이 추구하는 내공과 기술적 공력을 쌓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철없는 키보드 워리어가 잠시나마 비웃었던 타다 선생의 나이가 됐을 때를 생각해 보자.

필자는 그때 선생처럼 도복을 입고 서 있을 수 있을까. 나아가 선생처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미래를 준비하는 현명한 선택은 빠를수록 좋다. ‘평생무도’는 액자에 새기는 것이 아니고 내 몸에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