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권 대학 총여학생회 폐지 의미는?

최근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

올해 총여학생회가 재개편되거나 폐지된 연세대, 성균관대에 이어 최근 동국대에서도 총여학생회가 학생투표를 거쳐 22일 자로 폐지됐다. 이로써 서울권에서 총여학생회는 전무한 상태다.

경희대, 한양대 등에는 여전히 학생회칙 상 총여학생회가 존재하지만, 공석인 상태가 오래됐다. 마찬가지로 학생투표를 통해 사실상 총여학생회가 폐지된 연세대에서는 총여학생회의 재개편 논의가 진행 중이다.

동국대 총여학생회 폐지 투표가 눈길을 끌었던 점은 앞선 경우와 달리 상당히 격렬한 반발 때문이다. 동국대의 경우 총여학생회의 방만한 지출내역이 문제 제기된 이후 폐지안이 발의되자 반대 측에서는 대자보와 현수막 그리고 여학생 총회라는 수단을 통해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또한 이에 호응해 총여학생회의 존치를 주장하는 학내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총여학생회 지출내역(출처 동국대학교 에타)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국대 총여학생회 폐지안 학생투표는 이례적으로 하루 만에 과반 투표율(55.7%)을 넘겨 성사됐고, 결국 75.9% 찬성으로 폐지가 확정됐다. 동국대 대나무숲에서는 총여학생회 존치론자들이 홍보물로 걸어놓은 ‘우리는 조개가 아니라 해일이다’ 등과 같은 선정적인 문구가 오히려 투표율 상승에 도움이 됐다는 반응이다.

동국대 총여학생회 폐지 투표 결과(출처 동국대학교 교육방송 집계 결과)

동국대 총대위원회에 따르면 총여학생회 폐지를 발의한 측은 ‘학내 갈등 조장과 통합 저해’, ‘총여학생회 실질적 운영 성과 및 소통 부재’, ‘총여학생회의 사법기관화 및 정치세력화’, ‘총여학생회의 학생회비 사용’, ‘남학생들이 총여학생회에 학생회비를 납부하지만 투표권이 없는 문제’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의 플랜카드

총여학생회 폐지의 객관적·구조적 배경

어떤 이들은 총여학생회에 대한 비토를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 혹은 (나쁘게 말하면) ‘백래시’로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총여학생회가 폐지되거나 개편된 데에는 요사이 래디컬 페미니즘의 조류에 대한 반발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페미니즘에 대한 학생 각자의 주체적인 태도와 별개로 총여학생회 설립 당시와 지금의 사회적 구조가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간과한다.

80년대 중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서울 수도권 대학 및 국공립대학 중심으로 일었던 총여학생회 설립 붐 당시만 해도 여학생은 캠퍼스에서 소수였다. 또한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당시 운동권 내의 남성 중심적 분위기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이념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다.

총학생회와 별개로 총여학생회를 설립한 배경에는 이처럼 소수자에 대한 배려(affirmative action)의 측면 외에도 이른바 운동 사회 내 여성 활동가의 참정권을 보장받으려는 성격이 짙었다. 실제로 최초의 총여학생회 설립은 80년대 학생 시절의 심상정 의원이 서울대에서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 학생 운동권은 서울 수도권 캠퍼스에서도 소수파로 전락하게 된다. 총학생회가 더 이상 대학 내 진보적 대중운동을 대표하는 기구가 아니게 된 이상 마찬가지로 운동사회 내 여성 활동가를 별도로 대의하는 기구가 학생사회 내에 존재해야 할 필요성 역시 사라지게 됐다.

또한 2005년 이후부터는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2017년 기준 여학생 대학진학률이 72.7%로 남학생(65.3%)보다 7.4%p 높다(출처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여학생은 더 이상 캠퍼스 내의 소수자가 아니다. 총여학생회 설립을 가능하게 했던 객관적 조건 중 하나가 해소된 셈이다.

주체적 요인, 래디컬 페미니즘의 대중 확장성 한계

물론 총여학생회의 존폐를 좌우하는 데 이러한 사회적 조건만 작용했던 것은 아니다. 총여학생회는 한동안 대학 내 페미니즘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기구로 자리 잡았는데, 이러한 페미니즘이 학생대중 다수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합의가 존재하는 한 총여학생회는 유지될 수 있었다.

실제로 이것이 학생운동이 몰락한 90년대 후반 이후에도 한동안 다수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유지된 배경이 된다. 페미니즘은 남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를 위한 담론이라는 인식이 캠퍼스 내에 한동안 영향력을 미쳤다.

이렇게 볼 때 총여학생회 폐지에는 ‘페미니즘은 모두(남성은 물론 성소수자 포함)를 위한 것’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합의가 붕괴한 것 역시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합의가 붕괴한 사정은 주류 페미니즘 담론이 분리주의·래디컬 페미니즘에게 잠식당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15년 이후 발흥한 메갈리아·워마드 류의 페미니즘은 남성혐오를 표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게이·트랜스젠더에 대한 아웃팅(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정체성의 폭로) 등을 통해 남성 성소수자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히 드러낸 바 있다. 바로 이것이 총여학생회 폐지에 대해 ‘백래시’ 운운하는 논평가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이다.

실제로 정희진, 이나영 등을 비롯한 강단 페미니스트조차 이러한 메갈리아·워마드 류의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음으로써 과거 주류 페미니즘이 표방한 ‘페미니즘의 보편성’(예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에 대한 이념적 호소를 스스로 훼손했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탈코르셋’을 표방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은 여성의 화장과 옷차림에 대한 공격과 비난으로 이어짐으로써 젊은 여성 사이에서도 논란을 낳고 있다. 이러한 사태 역시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에라는 명제에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러한 의문은 고스란히 ‘총여학생회는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명제에 대한 의문으로도 이어졌다.

그동안 대학 캠퍼스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온상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최근의 총여학생회 폐지 흐름은 캠퍼스 내에서조차 이러한 래디컬 페미니즘의 확장성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다시 동국대 총여학생회 폐지투표 결과로 돌아가 보면, 적극적인 존치운동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여초 학과인 문과대학과 예술대학에서조차 총여학생회 폐지 찬성률이 의외로 반대를 앞지른 것을 볼 수 있다(문과대학 찬성률: 51.7%, 예술대학 찬성률: 54.7%).

이뿐만 아니라 사실상 존폐를 물은 연세대 총여학생회 재개편 투표의 경우에도 여학생의 총여학생회 재개편 찬성률은 62.04%를 기록했다. 물론 여학생의 투표율이 남학생보다 상대적으로 저조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는 총여학생회의 존립에 의문을 표하는 여학생의 수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가며

결산하자면, 총여학생회의 폐지흐름은 여학생이 더 이상 대학사회 내의 ‘소수자’가 아니게 된 사회적 환경 변화는 물론, 이러한 변화에 대한 페미니즘 진영의 주체적 대응의 실패가 낳은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최근 일련의 사건은 보편적 호소력을 잃은 이념운동이 봉착할 수밖에 없는 한계마저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여전히 총여학생회가 활동 중인 충북대 후보 출마자의 인터뷰는 시사적이다.

후보자로 출마한 허난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총여학생회는 변화해야 한다. 여학생이 보호받아야 하는 사회적 약자라는 시각에서 벗어나겠다. 대대적인 개혁과 구조 개편을 통해 모두에게 신뢰받는 학생자치기구가 되겠다”며 “많은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건전한 비판에 대해서 적극 수용하고 더욱 진심을 다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총여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허난희(21·주거환경학과)(출처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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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논평가들이 총여학생회를 둘러싼 주객관적 조건의 변화는 물론, 페미니즘 내부의 실천적·이론적 오류를 직시하지 않고 ‘백래시’만을 탓한다면 이는 변죽만 울리는 진단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