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반전운동

최근에 68혁명과 히피운동의 역사에 관련된 여러 자료를 접했습니다. 주로 시민운동 활동을 하시는 지인들에게서 접한 자료입니다.

68혁명 또는 프랑스 5월 혁명은 프랑스 샤를 드 골 정부의 실정과 사회의 모순으로 인한 저항운동과 총파업 투쟁을 뜻한다. 미국·일본·서독 등 수많은 자본주의 국가에 개혁 의지를 파생시켰기 때문에 프랑스에만 국한된 운동은 아니다. 편집자주

많은 분이 아시듯 PC주의와 래디컬 페미니즘의 담론이 대학가 담론의 헤게모니를 쥐기 시작한 시점은 68혁명과 히피운동 이후부터입니다. 이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시점은 60년대부터 시작해 70년대 이후였습니다.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68혁명

이 당시의 대학생들은 기성세대들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트라우마를 교육받았던 세대이며, 동시에 냉전과 식민지 해방문제로 인해 전쟁의 트라우마를 끊임없이 상기해야만 했던 시대입니다.

이 당시는 인종 간의 갈등이나 국적 간의 갈등이 언제든지 핵전쟁의 불씨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현대전과 대량학살무기의 등장으로 인해 조그마한 군사적 충돌도 언제든지 대량의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시대였습니다.

인종·성별 등의 집단 간의 차별과 불안이 없는 상태를 적극적 평화로 규정한 평화학자, 요한 갈퉁도 이 무렵에 연구를 시작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갈등 그 자체뿐만 아니라 모든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요소를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대학가에서는 반전 및 핵기술 개발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독일의 마르쿠제를 중심으로 정치적 올바름과 차별의 배제, 인간 해방을 모토로 하는 신좌파들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등장합니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트라우마는 그들이 병적으로 반전에 집착하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구의 반전좌파 담론이 우리나라에 넘어오면서 NL 계열의 민족통일 담론이나 PD 계열의 평화통일 담론으로 이어지고요.

하지만 세대가 교체되면서 그런 68세대, 히피세대는 새로운 기득권이 됩니다. 냉전은 종식되고, 빌 클린턴 등의 히피세대 운동가들은 세계 정계·언론계의 최정상 자리에 올랐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대에 형성됐던 구시대의 담론을 그대로 고수했습니다.

Washington DC. USA, 8th December, 1993 President William Jefferson Clinton addresses the media after signing the North America Free Trade Agreement treaty in the Cross hallway of the White House.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따위의 모토를 내걸고 “적극적 평화”를 자기네들의 절대적 가치로 숭배하며 자기네들의 집권명분으로 이용했다고 봅니다.

새로운 기득권들은 자신들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대학가에 있는 학생들에게 그대로 주입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교훈을 배우지 못한 세대들은 68혁명이나 히피운동 당시의 폭력적인 운동 양상만 보고 기득권들보다 더 악질인 세대로 자라나게 됐습니다.

물론 서구 기성세대의 대학운동도 폭력성에서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좌파의 거장으로 여겨지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위르겐 하버마스도 학생운동의 과격성에 비판할 정도였으니깐요.

그래도 기성세대의 운동은 냉전과 핵전쟁에 대한 공포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정당화됐습니다. 하지만 신세대들은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에서 급진적인 담론들을 배웠고, 그것이 래디컬 페미니즘이나 PC주의 검열 등으로 계승됐다고 봅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 사회의 문화를 잠식해나가고 있는 PC주의와 페미니즘 담론은 기성세대의 반전운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PC주의와 폭력적 페미니즘의 발생 양상에 대해서는 조만간 더 연구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