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러 갑니다, 기다림의 힘으로 다시 만날 당신들

[리뷰]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며칠 전부터 부쩍 추워져 어제는 옷장에서 겨울 코트와 얇은 패딩을 꺼냈습니다. 안 그래도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옷섶을 여미고 가슴을 웅크리고 다니는데 몸의 체온 때문이 아니라 마음의 심온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할머니가 계시는 요양병원에 다녀오던 길이었거든요.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야위어가고 정신 또한 안으로만 향하는지 약해져 가는 모습을 보고 돌아오는 날은 늘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고 씁쓸했습니다. 불편하기에 굳이 꺼내려 하지 않는 질문들, 바쁘기에 멀리 뒷전으로만 밀어두는 생각들, 하지만 꼭 이런 날,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인생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직접 본 날이거나 앙상한 나뭇가지와 어둡고 차가운 공기 때문에 늘 닿고 싶던 이상의 공간, 푸르른 하늘보단 두 발 닿은 낙엽 깔린 황금길에 차라리 더 위안을 받는 날엔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삶의 의미를, 죽음의 본질을, 그 후의 세계를.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포스터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물론 이런 질문들에 명쾌한 답을 내려주지는 않습니다. 그냥 예쁜 동화 같고 순간의 위로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죽음을 체험할 수 없는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그것은 이해보다 화해를 요구합니다. 그 화해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기 위한 작은 시도로써 따뜻한 메시지를 얻을 수는 있기에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지효와 아빠(우진)는 1년 전 엄마(수아)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곧장 하늘나라로 간 것이 아니라 구름나라에 잠시 머물러 있습니다. 그곳은 죽은 이들이 가족들에게서 잊힐 때까지만 머무르는 곳인데요. 지효와 아빠가 죽기 전 엄마의 약속처럼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마가 시작되는 날, 지효는 역으로 달려가요. 엄마의 그 약속은 바로 빗방울 열차를 타고 지효를 만나러 오겠다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엄마가 와있습니다. 아이는 기뻐하지만, 아빠는 의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기억을 다 잃고 이제 막 다시 태어난 엄마도 마찬가지고요.

병과 기억상실로 엄마를 간신히 이해시키고 함께 살 수 있게 된 세 사람은 다시 예전처럼 행복한 나날을 이어갑니다. 그러다 궁금해진 수아는 우진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만나서 사랑하게 됐냐고.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우진은 수아를 고등학생 때 만나 혼자 짝사랑하다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고백했습니다. 그 고백을 받아준 수아와 한창 사랑을 나누지만, 전공이었던 수영을 그만둬야 할 만큼 아픈 병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병 때문에 수아에게 이별을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수아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찾아왔던 우진에게 다시 왔습니다. 그래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죠.

우진의 이야기로 수아는 지난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고 다시 우진과 사랑하게 되지만 살아가는 존재들에게는 유한한 시간이라는 것이 늘 헤어짐과 고통의 근원이 됩니다. 죽기 전 엄마가 했던 약속 속의 시간인 장마가 끝나가는 것이죠. 천천히 아들과의 이별을 준비해가던 수아는 자신의 일기장을 보게 되는데요. 이제부터는 우진의 시점이 아니라 수아의 시점에서 지난 기억이 재생됩니다.

수아도 우진을 혼자 짝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귀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이별하게 되고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 중에 우진이 몰랐던 하나가 있었어요. 우진이 마지막으로 수아를 찾아왔던 날, 그를 발견하고 쫓아가던 그녀에게 큰 교통사고가 난 것이죠.

의식을 잃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수아는 미래를 경험합니다. 스물다섯 살의 남녀가 아니라 8년 후의 부부가 된 모습을요. 사랑의 선물인 아들 지효와 행복하게 살아가지만, 지금의 상태와 비슷하게 죽음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깨어난 수아는 만일 우진에게 달려가지 않으면 8년 후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봅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죠.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 8년의 시간이 행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가 없는 삶은 그녀에게 아무 의미 없는 삶이 되리라는 것을. 그래서 그에게 달려갑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6주의 장마가 끝나고 그렇게 엄마는 떠납니다. 그녀의 일기장에 적힌 한 구절인데요.

내가 그 사고로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던 건 바로 미래의 당신과 지효의 간절한 기다림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사람의 탄생과 만남이 순전히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반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말도 안 되지만 체험으로만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는 신비들, 아니 이해보다 화해가 먼저여야 하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 앞에서는 그 어떤 말도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필연일지도, 섭리일지도 모르는 무거운 운명에 대해서는 그저 동화 같아서 한시름 놓이는 생각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도 합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들 앞에서 지금의 제가 겨우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러므로 쉽게 단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단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차원이 다른 시공간에서 다시 출발하는 삶일지도 모릅니다. 아득히 먼 곳에서, 충분히 오랫동안 부유하던 우리의 의식들은 다시 어떤 육체를 빌려 이 땅을 밟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억겁의 시간 너머 다시 발 닿을 그곳에서는 간절히 기다렸던 누군가가 그 사람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 기다림의 힘으로 기어코 다시 만나 기적처럼 다시 사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수아의 마지막 대사처럼요.

아무 걱정하지마. 우린 정해져 있어.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 몫의 시간을 살아가고 사랑해야 하겠죠. 그것만이 죽음이 던져준 삶의 의미일 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못 견디게 슬프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그 사람과 충분히 사랑하지 않은 것, 더 아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후회스러울 뿐이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슬프지 않기 위해서 살아있는 지금,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숨겨두고, 바쁘다는 이유로 밀어두지 말고 삶을 더 생생하게 살아내기 위해서 물어봐야 합니다. 죽기 전에 내 몫의 시간을 아름답게 살아내고 있느냐고, 삶의 정수일 사랑을 아낌없이 하고 있느냐고, 정말 갖고 싶고 이루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이 깊은 고민 끝에 나온 진실한 소망이냐고, 혹시 더 많이 갖고 싶고 더 높이 쌓고 싶은, 맹목적 욕망은 아니냐고.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본 원작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원작인 책에는 구름나라가 아니라 아카이브라는 별이 나옵니다. 아카이브는 기록의 저장, 혹은 저장소를 의미하는데요. 저장하고 보관하는 업적, 유산까지를 총칭합니다. 스토리의 전개가 엄마의 동화에서 비롯되었고 수아의 사랑이 일기장으로 밝혀지듯이 우리의 삶은 영화와 책으로 이어집니다. 그 기록들이 인류의 유산이 되는 것이죠.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를, 삶과 죽음을, 하늘과 땅을 잇는 별들과 같은. 그렇게 기록을 남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면 답은 단연 사랑입니다.

또 부부가 낳은 최고의 유산은 물론 자녀겠죠. 그 처음 역시 사랑입니다. 신들이 창조한 인간 세상, 예술가들의 피와 땀이 만든 작품과 부부가 낳은 아이, 그것들의 공통분모가 이 우주를 영원토록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는 늦가을, 돌아오는 길의 가슴 한구석은 서늘하고 씁쓸하지만 그래도 슬프지만은 않은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