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심사회는 없다

지식은 언어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 언어로 구성된 지식은 항상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해주는 경계가 있다. 그 울타리 안에 있는 것들은 우리와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동일자(同一者)이며 그 경계 바깥에서 벗어난 것들은 우리와 다른, 우리에게 너무나 ‘이질적인’ 타자가 된다. 성소수자는 이성애(동일자) 중심사회에서 ‘이질적인’ 타자다. 한국인들(동일자)에게 있어 외국인이란 한국적인 것에서 벗어난 ‘이질적’ 존재들이다.

미셸 푸코는 자신의 저서 <광기의 역사>를 통해 옳고 그름이란 이렇게 담론에 의해 구성된 지식의 경계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담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그 사례로써 푸코는 신의 뜻을 전해주는 매개자로 여겨진 중세의 광인들이 근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비정상’인으로 그 의미가 달라졌는지 밝혀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떠오를 질문은 하나. ‘그 경계와 기준은 과연 누가 정하는 것인가’이다. 푸코는 그 주체가 바로 권력을 가진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광기의 역사> / 미셸 푸코 지음

권력을 가진 존재들의 맹목적 앎의 의지에 따라 지식의 경계가 생겨나며, 동일자와 타자가 구분되고 옳고 그름이 구별된다. 페미니스트들이 우리네 역사와 사회구조를 일컬어 ‘남성중심의 역사’, ‘남성중심사회’라 규정하는 것은 이러한 미셸 푸코의 사고에 힘입은 바가 크다. 권력자는 남성들이었으니까. 그저 역사 속에서 옳은 것은 남성적인 것이었고 틀린 것은 여성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남성중심사회에서 배제된 ‘타자’들이다!

익숙하게 들어봤을 것이다.

젠더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응당 이 논리에 대해서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라며 맞장구를 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인간의 역사는 ‘남성중심적’이였을까. 우선 이러한 주장을 해부하기 위해선 역사 속에서 한 존재를 어떻게 규정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양사 총론> 등을 비롯해 수많은 역사 개론서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전통사회에서 한 존재를 규정하는 데 있어 기본단위는 개인이나 남성 따위의 것들이 아니었다. 바로 ‘가족’이였다. 한 존재의 의미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만이 그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가족이라는 원초적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누구였나? 기본적으로 아버지(남성), 그리고 ‘여성(어머니)’이다. 다시 말해 한 존재의 의미를 규정하는 데 있어 여성을 떼어놓고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테 프레베르트와 카스파 마제, 조지 모스 등을 비롯한 수많은 남성사(男性史) 학자들이 밝혀낸 바 있듯이, 특히나 남성이라는 존재의 의미는 오로지 여성과의 관계 속에서 만이 가능하다.

실제 기성의 사회문화구조를 지탱해왔던 종교와 관습 등을 살펴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가부장적 종교라 규탄해 마지않는 유교와 기독교의 사례를 살펴보자(이슬람의 사례는 필자의 지식이 부족해 자세히 적지 못했음을 밝힌다).

유학의 아성(亞聖)이라 불리는 맹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데 있어 ‘맹모삼천지교’가 없다면 맹자는 존재할 수 없다. 마구간에서 예수를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의 모성적 경험이 없다면 예수 또한 존재할 수 없었다.

아울러 역사적으로 남성의 일생에 필수적 통과의례였던 여성과의 ‘혼인’. 이러한 경험을 일컬어 유교는 인륜지대사, 기독교에서는 신에게 구원받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7가지 성사(聖事) 중 하나인 칠성사(七聖事)로 규정했다.

이런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았을 때 남성의 존재는 그저 ‘미성년자’, 혹은 ‘미숙아’에 불과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남성의 경험 속에서마저도 여성은 그 관계를 빼놓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옳은 것’이었고, 명실상부하게 가족을 구성하는 일원이자 ‘동일자’였던 것이다.

대가족

전통사회에서의 결혼은 이렇게 가족공동체의 유지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구성원이었던 남성과 여성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로서의 지위와 몫을 부여하는 제도였다. 남성의 몫이란 이미 익히 알려진 공적인 권리들이었고, 여성의 몫이란 바로 그러한 남성들로부터 생계와 안위를 보장받으며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는 어머니로서의 ‘보호받을 권리’였다. 여성에게 태생적으로 부여된 사회적 구성원을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은 그러한 ‘권력’을 가능케 했다.

만약 페미니스트들이 진단한 대로 여성이 남성중심사회의 타자로서, 남성의 자의적 처분에 내맡겨진 존재였다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결혼이라는 제도하에 여성의 몫과 지위는 그저 남성들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폐기처분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했을까. 절대로 불가능했다. 오히려 자의적 처분에 따라 여성의 몫을 부당하게 침해하려 했던 남성은 범사회적 지탄을 피할 수 없었다.

유교사회의 대표격인 조선사회에서는 장병인 교수의 논문 <조선시대 이혼에 대한 규제와 그 실상>에서 밝히고 있듯이, 남성이 여성과의 혼인을 파기할 수 있었던 칠거지악의 규정이 사실상 그것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칠출지 삼불거(七出之 三不去)의 조항으로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나마 죄질이 무겁다고 여겨졌던 여성의 ‘간통’ 또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가족을 해체하는 일은 국가 유지의 핵심 단위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이 간통으로 의절을 범했다고 거짓으로 꾸미는 사례들을 방지하기 위함도 있었다. 조선의 19대 왕 숙종은 바로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때 숙종은 범사회적 지탄을 감당해야만 했는데, 이때 숙종이 인현왕후의 지위를 자의적으로 침해하려 했던 것을 두고 당시 노론의 영수였던 서포 김만중은 자신의 소설 <사씨남정기>를 통해 그것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후삼국시대 궁예 또한 비슷한 사례다. 관심법을 통해 아내가 간통했다고 모함해 살해한 궁예를 두고서 <삼국사기>를 쓴 ‘유학자’ 김부식은 지아비로서 지어미에게 해선 안 될 ‘패륜’적 행동이었다고 규탄하는 동시에 그러한 궁예를 폐위시켰던 왕건에 대한 정당성을 역설했다.

한편 기독교 사회인 서양 사회에서도 같은 사례들이 등장한다. 영국의 종교개혁 군주였던 헨리 8세와 프랑스 존엄왕이었던 필립 2세가 아내를 버리려 했을 때 그랬다.

헨리 8세

마지막으로 일부다처제로 악명이 높은 중동 이슬람 사회는 어떠할까. <이슬람 학교>의 저자 이희수 교수가 밝혔듯이 아내의 동의 없이는 남성이 여성과의 혼인을 파기하는 ‘탈라크’는 애초 불가능하며, 설령 이혼했을지언정 결혼 시 남편이 부담했던 결혼지참금인 마흐르(Mahr)를 빼앗을 수 없다.

또한 남편은 자신의 아내 되는 모든 존재를 차별대우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요구된다. 이슬람 사회 내에서도 남성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여성의 지위와 몫을 침해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처럼 남성중심사회란 없었다. 그저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했다. 또한 여성이라는 존재는 남성중심사회에서의 타자가 아니라 우리네 삶의 어머니이자 ‘가족중심사회’의 명실상부한 동일자였다. 여성이 타자였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우리 인류 모두가 지난날 어머니를 보고서 ‘이질감’을 느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우리들의 삶과 경험에 비추어볼 때 전혀 들어맞지 않는 망상에 불과하다.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이 타자였음을 밝힌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상상 속에서 남성을 ‘이질적’이고 ‘경멸’스러운, ‘증오’의 대상으로서 타자화 해왔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