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가치’ 맹종 아닌 필터링과 극복 요구하며 1

[기획]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의 문화대혁명

[글 싣는 순서]

  1. 페미니즘 광풍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
  2. 주체성 부르짖는 비주체적인 ‘상실의 세대’
  3. 박근혜 정권의 판 뒤집기와 ‘상실의 세대’의 위기의식
  4. ‘상실의 세대’와 ‘페미피아’, 영혼의 단짝으로 만나다 1
  5. ‘상실의 세대’와 ‘페미피아’, 영혼의 단짝으로 만나다 2
  6. 홍위병 이끄는 ‘강청’이 되고픈 ‘상실의 세대’ 1
  7. 홍위병 이끄는 ‘강청’이 되고픈 ‘상실의 세대’ 2
  8. ‘상실의 세대’, ‘승리의 세대’를 검열하다 1
  9. ‘상실의 세대’, ‘승리의 세대’를 검열하다 2
  10. 모택동 자임하는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
  11. ‘80년대 가치’ 맹종 아닌 필터링과 극복 요구하며 1
  12. ‘80년대 가치’ 맹종 아닌 필터링과 극복 요구하며 2

지금까지 2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페미니즘 광풍에 대한 필자 나름의 시각을 상당히 길게 서술해 보았다. 필자는 페미니즘 광풍에 대한 온라인·오프라인의 여러 견해를 살펴보았지만, 이들을 보면서 갖게 된

왜 그 시작이 2016년이었는가?

라는 의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쉽게 찾지 못했다.

그런데 페미니즘 광풍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 시기를 즈음해 진보 진영 안에서 활동을 주도하는 세대가 교체되는 상황에 주목하게 됐고, 그 세대들과 광풍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다는 추정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 세대들이 살아온 역사적 과정과 그들 주변의 상황들을 살펴본 결과, 이들을 통해 페미니즘 광풍을 해명해 볼 수 있겠다고 보였다. 이러한 판단에서 필자가 조명한 존재가 바로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이며, ‘상실’과 이에 따른 ‘권력 결핍’ 및 ‘집착’은 이들을 이해하면서 찾게 된 적절한 설명 틀이었다.

페미니즘 광풍진보 세력의 주장대로 “오랫동안 억압받은 여성들이 스스로의 계급성을 자각하고 남성 주도의 사회를 변혁하려는 사회·문화상의 투쟁”으로 이해되는 현상이 아니다.

그들이 투쟁의 선봉장으로 부각했던 ‘메갈리아’의 활동은 ‘계급투쟁’이라고 떠받들기에는 상당히 천박하며, 사회 전반에서도 공감을 받기 어려운 수준에 불과하다. 메갈리아가 주장하는 페미니즘 자체도 사회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으로 ‘여성의 계급성’을 인정하도록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반박할 여지가 많은 내용으로 가득 찬 담론이다.

한남패치, 강남패치 등 혐오성 SNS 계정을 운영한 여성 운영자가 검거되자 이후 강남역에 붙은 구호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 세력들은 ‘페미피아’들을 끌어들이고 메갈리아를 긍정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페미니즘 광풍을 확산시키는 데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이때 진보 세력을 주도했던 이들이 다름 아닌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이었다.

페미니즘 광풍은 박근혜 정권을 기점으로 거시적인 사회 주도 담론조차 제시하기 어려워진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이, 87년 정치 민주화 이후 지속되고 있는 사회적 ‘상실’을 막고자 ‘권력 결핍’에 따른 ‘집착’ 성향을 공유한 ‘페미피아’들과 손을 잡고, 미시적인 담론에 불과한 ‘페미니즘’을 거시화해 사회 전반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기도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이때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시각을 가지면서 박근혜 정권의 퇴행적인 사회 운영에 따른 불만을 공유하고 있던 문화계 및 선배인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을 끌어들여 ‘페미니즘’ 광풍을 확산하고 정당화했다.

위로는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들의 권위를 내세우고 아래로는 메갈리아의 ‘불편함’에 ‘검열’받는 ‘문화계’의 문화 행위들을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해 보겠다는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의 행보는, ‘모택동’의 권위를 내세워 ‘홍위병’들의 전반적인 문화 파괴 행위를 지원함으로써 국가 전체에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들었던 ‘강청’을 떠올리게 한다.

1980년 11월 20일, 최고인민법원 특별법정 피고인 석에 선 강청. 중국공산당 지도자 모택동(마오쩌둥)의 3번째 부인이며, 모택동이 죽은 해인 1976년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문화대혁명 4인방의 한 사람으로서 1981년 반혁명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투옥됐다

페미니즘 광풍은 그 규모와 파급력이 중국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발상 자체나 내용은 ‘문화대혁명’의 그것과 유사하다.

다만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은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하고자 서구에서 강화되고 있던 ‘정치적 올바름’ 논의를 끌어들이는 등 외부의 권위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서구에서 나타난 ‘정치적 올바름’의 정신적 틀을 만들었던 ‘68세대’들 또한 과거 ‘문화대혁명’에 호의적인 시각을 가진 시절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언젠가 이 두 ‘모택동의 정신적 외국인 양자’들을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특정한 세대의 그리고 특정한 집단의 이해관계가 페미니즘 광풍을 움직인다는 사실은, 이 사태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띤다.

메갈리아의 온갖 문제들이 표출됐을 당시, 온라인 공간에서는 그 폐해의 강도가 심각한 만큼 ‘일베’처럼 사회 전반에서 경각심 및 활발한 자정 작용이 발생하리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메갈리아의 부작용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심화됐으며, 오히려 ‘사회 변혁의 주역’이라는 찬사와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까지 한다. 이러한 결과가 발생한 데에는 진보 성향 인사들의 메갈리아 현상 정당화 작업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메갈리아의 문제가 온라인 공간에서 적지 않게 거론됐고 일반적인 상식을 지닌 이들이라면 누구나 거부감을 표현할 내용들임에도, 진보 성향 인사들이 그들을 일방적으로 옹호했다는 사실은 자신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나도 메갈리안이다’는 칼럼을 쓴 진중권(출처 매일신문)

그리고 그 이득은 누구보다도 진보 세력의 메갈리아 지지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에게 돌아갈 터였다.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은 사회 전반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할 도구로 ‘여성’의 효용성에 주목하며 ‘페미니즘’을 선택했다. 실제로 이들은 메갈리아 현상에 페미니즘 왕관을 씌우며 포장한 이미지들을 사회 전반에 퍼뜨렸고, 각종 언론 매체들을 통해 ‘시대의 변혁에 동참하고 주도하는 지식인·엘리트’라는 명성을 얻으면서 주목을 받는 데에 성공했다.

그토록 결핍돼 집착 대상이었던 ‘권력’을 맛보게 된 이 ‘지적 사기꾼’들이 지금까지 행해온 자신들의 오류들을 인정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선택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와 지적 우위를 활용해, ‘사기’를 ‘진실’로 둔갑시키고 역사적 정당성을 인정받으며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안에 골몰하게 될 것이다.

‘메갈리아’ 현상에서 보여준 진보 세력들의 태도에 의아해하는 이들은, 그동안 ‘진실’ 규명을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부르짖는 모습을 보여준 진보 세력이 어떻게 사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왜곡할 수 있느냐고 항의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진보 세력에게 있어서 ‘역사’란 ‘문화’처럼 자신들의 사회 인식을 뒷받침해 줄 ‘정치적 시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즉 진보 세력 역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실’을 선택하고, 이에 부합하는 사례들만을 ‘역사적 사실’로 부각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강력하게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저들에게 진실을 알게 하리라”라는 어느 민중가요의 한 구절은 “저들에게 내 해석만 주입하리라”라는 메시지의 다른 표현이다.

이들은 ‘국정교과서’로 대표되는 보수 세력의 ‘<일본서기(日本書紀)>’를 극도로 혐오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신들의 ‘<일본서기>’를 써서 사회 구성원들에게 세뇌시키고 싶어 한다.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일본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정사(正史)다

다만 이제까지는 자신들이 가진 사회 인식과 외부 구성원들이 지니게 된 현실상 및 사회적 요구가 서로 맞아 들어간 부분들이 많았기에, 진보 세력의 ‘진실’ 규명이 실제 양상과 부합된다고 인정받으며 호의적인 반응들을 축적해왔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사회 인식이 불변의 진리이기에 이에 따라 현실을 맞추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익숙한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에게, 사회적·역사적 정당성이란 외부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통해서가 아닌 그 ‘진리’를 전해준 존재들로부터의 적통 계승으로 획득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은 선배들인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이들은 선배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80년대를 상기시키고 그들의 정신적 유산인 ‘80년대 가치’를 부각시키며, 슬그머니 자신들의 활동이 이를 계승하고 있음을 내세우곤 한다.

박근혜 정권과의 충돌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신적 유산이 사라지는 데에 민감한 태도를 보유하게 된 선배들은, 80년대를 절정으로 지속적으로 쌓아온 자신들의 사회적 명성을 동원해 이 ‘기특한 후배’들의 편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이제 이들은

  1. ‘80년대 가치’는 현대 한국 사회 변혁에 상당 부분 기여하였다고 평가받는 훌륭한 정신적·사회적 유산이다.
  2. 그리고 우리는 그 가치를 제대로 보유하였기에 계승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다.
  3. 따라서 우리가 하는 모든 사회적 활동들은 사회적·역사적 정당성을 갖는다.

라는 단순한 3단 논법으로 구성원들에게 자신들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게 됐다.

드디어 ‘80년대 가치’는 그동안 축적된 사회 전반의 긍정적인 시선을 역이용해 자신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만능 요술봉으로 전락했다.

냉전 세대가 국기 게양식·하강식에 모든 일을 멈추고 태극기를 쳐다보아야 했듯이, 그 이후 세대들은 자신들에게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해도 ‘80년대를 아십니까’라는 울림 속에 ‘80년대 가치’만 드높이 올리면 여기에 경의를 표하느라 그것을 잊게 될 터였다.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의 사회적·역사적 정당성 만들기는, 선배들인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을 등에 업고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학술·교육 활동을 통한 영향력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증대시킨다.

그동안에는 ‘대학’을 최정점으로 하는 ‘학교’ 내 중진급·상층 인사들이 주로 자신들과는 사상·정신 체계가 달랐던 냉전 세대였기에, 지적 권위에 바탕을 둔 정당성 확보 작업이 쉽게 진행될 수 없었다(이같은 양상은 지금까지 정부 주도 세력과 학계 지식인·엘리트들 사이에 갈등 관계가 형성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들과 같은 사상·정신 체계를 공유하는 ‘유신·386세대’가 중진급·상층 인사들을 맡아, 그러한 작업이 비교적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환경이 조성됐다.

페미니즘 광풍에 대한 진보 성향 학술·교육계 인사들의 일방적인 옹호는 이러한 두 세대 간의 유대 관계가 있었기에 발생 가능했다. 더군다나 이들은 스스로의 사회적 권위와 위치로 인해 주로 ‘예스맨’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주변 아래 세대 인사들과의 ‘지적 교류’를 통해, 아래 세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메갈리아’ 현상에 대한 자신들의 판단이 옳다는 자만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메갈리아 현상으로 대표되는 페미니즘 광풍에 대해 스스로의 심층적인 조사·분석·검증·고찰 과정 없이, 자신들이 설정한 사회 인식에 그럴듯하게 끼워 맞추며 사상·정신적 유대에 기반을 둔 신뢰 속에 대대적인 지지·지원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은, 해당 문제들을 다루는 한국 인문학·사회과학이 얼마나 천박하고 비주체적이며 나태하고 통찰력 없는지를 형편없이 표출해, 일반 대중들에게 무시당해도 할 말 없는 수준임을 자인한다.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과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은 박근혜 정권에 대한 저항 과정 이후 자신들의 ‘80년대 가치’ 유효성과 우월성에 심취했다. 그리고 이는 자신들과 반대되는 견해 제시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며 ‘반동’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일베’는 그 같은 반대 견해들을 무시·공격하는 만능 논거로 남용된다.

문제는 ‘80년대 가치’를 내세우며 판단한 그들의 현실 인식이 실제 사회 양상과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하긴 그들이 활동했을 당시에 갓난아이였던 이들이 어느새 성인이 됐고,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고 말했을, 어쩌면 변화 속도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이기에 매년 강산이 바뀌고 있다고 해도 좋을 상황에서, ‘80년대 가치’가 오늘날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는 사회적·정신적 틀로 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그리고 80년대 이후 계속되는 변화들을 경험했던 후속 세대들에게 있어서 이같은 모습들은 자신들의 미래와 연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며 문제를 제기할만한 사안이었으며, 페미니즘 광풍에 대한 반발도 바로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두 세대의 운동권 세력은 이들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 ‘80년대 가치’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하고 모두 ‘일베’로 취급하며 ‘자아비판’할 것을 요구한다. 우스운 사실은 ‘학생-사회 운동’ 당시 그들은 ‘정의 구현’·‘진실 규명’이라는 명분하에 선배인 냉전 세대에 대해 오늘날 후속 세대들이 하는 것보다 비판적·공격적인 태도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두 세대의 운동권 세력이 보여주는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은 아버지 우라노스를 물리친 후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까봐 자식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혹은 자신이 현재까지 살면서 지니게 된 부정적인 요소들을 자식들 책임으로 돌리며 학대하는 아동학대범을 방불케 한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아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두 세대의 운동권 세력들은 그토록 ‘이승만-이기붕’, ‘박정희-차지철’, ‘전두환-장세동’의 관계와 이들이 만들어낸 부작용들을 혐오하지만, 오히려 자신들 스스로가 선후배간에 그와 같은 모습을 닮아가기 시작하고 있음은 모르는 듯하다.

이렇게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과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이 ‘페미피아’와 메갈리아에게 ‘80년대 가치’의 구현자라는 훈장을 달아주며 옹호하는 현실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미래 세대들(특히 청년층 남성)이다.

그렇다면 이 페미니즘 광풍을 막고 미래 세대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 문제에 대한 그나마 현실적인 답은 이미 하나 제시한 바 있다.

두 세대의 운동권 세력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진보 세력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거두는 것이다. 나아가 때에 따라서는 이들과의 관계를 중시하곤 하는 민주당계 세력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행동을 보여주면 된다.

출처 연합뉴스TV

이러한 답을 내놓는 필자에 대해 독자들은 당혹해하며 “혹시 ‘일베’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지도 모르겠다(그동안의 필자의 견해에 의심쩍어하며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군’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필자의 서술을 살펴본 이들을 알겠지만, 필자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고, 민주당계 세력들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다룬 부분이 적지 않았다. 실제 필자의 정치적 성향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민주당계 세력에 가깝다. 심지어 현재 문재인 정권에 대해서도 페미니즘 문제 등 몇 개만 제외하면 대부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진보 세력에 대해서도 이 글에서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기술했지만 80년대부터 내려온 그들의 역사적 공헌은 충분히 인정하고 숙지하고 있는 사항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지금까지의 상황만을 놓고 보았을 때, 페미니즘 광풍에 이같은 씁쓸한 답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