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타임, 되돌아갈 필요 없는 시간들

[리뷰] 영화 <어바웃 타임>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기해년의 해가 밝았습니다. 다산과 재물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황금 돼지의 해라 역시 그와 관련한 인사말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한 설문 조사에서 밝힌 가장 인기 있는 인사말은 복을 기원하는 소망의 메시지가 아니라 “함께해서 고맙고 행복했다”는 고백의 메시지라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그것이 필자에게는 미래를 향한 염원이 아니라 현재를 사랑하는 현명한 태도처럼 보였어요. 현대인이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취하는 방식 속에는 문제점과 해결책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현재에 묶인 존재이지만 그 누구도 물리적 시간의 현재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은 과거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헌납하듯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과거의 기억과 추억, 미래의 꿈과 희망에 두고 몸은 그 틈 어디쯤 갇힌 것처럼 방황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알아챈 많은 이들이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며 지금을 즐기는 삶, 순간에 충실한 삶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 아닌가 싶었던 거죠.

오늘은 새해 인사말 속에 깃든 이러한 삶의 태도와 관련한 영화 <어바웃 타임>을 통해 시간과 그 시간을 여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나눠보는 기회를 갖겠습니다.

스물한 살을 맞는 새해에 팀은 가족 내 남자들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생각하면 언제 어디로든 돌아갈 수 있는 시간 여행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이 믿기 어려운 사실을 직접 체험한 후 팀은 이 능력을 돈 버는 것에 사용하는 것이 정답일 거로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반대합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

그건 은총이자 저주이지. (중략) 난 진심으로 행복한 부자를 본 적이 없어. (중략) 그거야말로 재앙의 길이야. (중략) 네가 정말 바라는 인생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게 좋아.

그런 팀에게 첫사랑이 찾아옵니다. 자신이 가진 특권으로 실수들을 만회하려 시간을 되돌려보지만, 한여름 밤, 그녀와의 마지막 날에 느낀 것은 이것입니다.

아주 큰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시간 여행을 한다 해도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게 할 수는 없다는 걸.

그는 곧 집을 떠나 런던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만난 한 여인, 메리에게 첫눈에 반하는데요. 그가
신세 지고 있던 극작가, 아빠의 친구분을 돕고자 시간을 되돌렸다가 그녀를 잃게 됩니다. 역시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사용하지만, 다시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다른 기회를 노려 그는 그녀를 가까스로 되찾습니다. 물론 시간 여행 능력이 여기서 큰 역할을 발휘하는데요, 이미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의 생각은 어떠한지를 다 꿰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곧 결혼합니다. 갑작스럽게 비바람이 몰아치고 주인공과 하객들 모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는데요. 아쉬워하는 팀에게 메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

비가 좀 안 왔으면 좋을 걸 그랬나?

아니. 완벽했어. 이제 시작이네. 많은 날이 있겠지. 재미있잖아!

그녀의 말처럼 이제 많은 날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이사를 하고, 가까운 친구들과 어느새 이해를 달리하고, 사랑하지만 때로는 외로움을 느끼고. 그러는 가운데 그는 이런 생각에 다다릅니다.

갑자기 시간여행이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인생의 한순간 한순간이 모두 너무나 즐거웠기에.

이 깨달음에 이른 그였지만 여동생 킷캣의 문제에서만큼은 예외였죠. 킷캣은 철부지 소녀 같은 구석이 있는 숙녀인데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남자친구와 얽힌 상처로 인해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이제 더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시간 여행을 다시 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그녀와 함께 가는 것이죠. 이로써 킷캣을 남자친구로부터 끊어낼 수 있었지만,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는 그와 메리의 사랑스러운 아이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시간 여행은 어느 때로도 가능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겁니다. 생명의 탄생은 정확한 확률로만 가능한 기적과 축복의 순간이기에 조금이라도 변동사항이 생기면 다른 생명으로 바뀐다는 것이죠.

그는 아이를 찾는 대신 킷캣의 현실에 대해 메리와 함께 고민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러던 중 아빠의 암 소식을 접합니다. 아빠 역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죠. 그의 인생 최고의 스승이기도 하고요. 그러므로 팀은 아빠에게 시간 여행으로 암을 바꿀 수 없었는지 물어봅니다.

담배 때문이었던 거 같긴 한데 네가 태어나기 전이라 어쩔 수 없었지. (중략) 인생은 알 수 없는 거야. 누구의 인생이든. 예수님을 봐라,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결국 어떻게 됐니?

이제 시간 여행인 삶의 마지막에 이른 아버지는 그가 배운 인생의 비밀 공식을 알려줍니다. 일단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것, 그다음은 거의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살라는 것입니다.
처음엔 긴장과 걱정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두 번째 살면서는 느끼면서 말이다.

아빠의 장례식을 치른 후 메리는 팀에게 아이를 또 갖자고 말합니다. 그는 고민하죠. 언제든 시간 여행이 가능했기에 아빠의 죽음이 두 부자에겐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었는데 아이를 갖게 되면 아빠와의 재회는 영영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이 어려운 고민 앞에 그가 아이를 갖는 것으로 결정 내릴 수 있었던 까닭은 그것이 아빠의 바람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마지막으로 아빠를 보러 가는 날, 그는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아빠에게 소망이 있는지 여쭤봐요.

잠깐 산책 좀 했으면 좋겠다.

잠깐의 산책, 소박한 소망. 시간을 되돌리는 대단한 능력이 있는 그가 사랑하는 아들과의 마지막 순간에 바라는 것은 평범하고 흔한 일상의 무엇일 뿐이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평범하고 흔한 일상의 무엇에 소박함을 넘어서는 커다란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일 테고요. 다만 그 일상을 누릴 수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그것을 발견할 눈과 마음이 부족한 것일 뿐입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

그 후 아빠가 없어도 시간은 흐르고 가족들은 생활에 잘 적응해나갑니다. 그리고 팀은 아빠로부터 배운 인생의 비밀 공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이제 난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하루를 위해서라도. 그저 내가 이날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완전하고 즐겁게 매일 지내려고 노력할 뿐이다.

새해라서 계획을 세우고 마음을 다듬고 결정을 내립니다. 새해라서 해돋이를 보고 꿈꿔왔던 어떤 일을 시작하고 낡은 것들을 정리합니다. 그래요. 좋아요. 새로운 전환이 되고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행동에 변화를 촉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런데 팀이 그랬듯 한 단계 더 나아가자면, 매년의 첫날, 1월 1일 만이 아니라 새벽 별이 하늘 뒤로 숨고 아침 해가 내 방 창을 두드리는 매일의 하루하루가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동안의 가장 새로운 첫날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겠어요. 가장 새로운 첫날이자 가장 보통의 끝 날, 가장 평범하고도 특별한, 또 가장 특별하고도 평범한 날, 그래서 되돌아갈 필요 없는 시간들의 반복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새해 1월 1일의 첫 노란 빛 햇살을 창문 너머로 받으며 가장 새로운 첫날이자 그 하루가 다 저물 때쯤엔 그로써 충분한 끝 날입니다. 매일매일이 황금 날입니다.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유일하면서도 무한한 하루이기에 되돌아갈 필요가 없는, 이대로도 충분히 족한 오늘의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