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정체와 변화

[리뷰] 영화 <오만과 편견>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새해도 벌써 열흘이 흘렀습니다. 2018년을 떠나보내고 2019년을 맞이하면서 했던 다짐들, 세웠던 계획들 잘 지키고 있는지 묻기 두려워집니다. 한 살 더 먹는 만큼 정신과 인격도 성숙하길 바라지만 사람이란 정체하길 좋아하는 존재인 거죠.

한없이 높이 오르고 싶고 멀리 가보고 싶은 욕망 이면엔 익숙한 곳에 머무르고 싶고 편안한 곳에 안주하고 싶은 욕망이 더 크게 있습니다. 그래서 이루고 싶은 꿈, 자아실현과 같은 거창한 목표는 대부분 멀어서 닿기 힘든, 그래서 더 빛나는 이상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계에서도 그런 것 같아요. 아주 폭넓은 인간관계를 자랑하는 오픈형 인간이 아니라면 보통은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됩니다. 관계의 영역이 한정되어 있어요. 그 안에서 하는 사랑의 양상도 거의 비슷합니다. 다음번에는 다른 유형의 사랑을 할 것 같지만 비슷한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사람이 그대로거든요. 어릴 때의 경험, 그로부터 각인된 주관적 기억들이 다 내 안에 굳게 심어졌기 때문에 그 후 생의 기로마다 했던 행동들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번의 실수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끝없이 되풀이됩니다. 실수로부터 새롭게 배울 수 있으려면 상당히 유연한 사고와 나를 벗어나야 하는 큰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그 실수의 원인은 한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함께 축적된 기제거든요. 그러므로 그가 가진 고정관념, 편견, 고집은 겉으로는 강인함으로 보이지만 실은 삶의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치지 않기 위해 굳혀진 반쯤은 고장 난 정체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위와 같은 삶의 태도를 기반으로 삶을 움직이는 사랑, 그리고 사랑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시도하기에 조금 망설여지는 많은 고전 소설들이 영화화되면서 훨씬 더 쉽고 재미있게 즐기게 되었는데요. 다만 원작과 비교해 구성이 아쉽다는 의견을 포함한 여러 꼬리 평은 늘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로맨스이면서도 남성 관객들에게도 좋은 평을 이끌어낸, 특히나 구성면에서도 훌륭했다는 평이 많았던 작품이 있습니다. 원작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인 <오만과 편견>입니다.

영화 <오만과 편견>

사실 숭고함과 같은 거대한 가치를 다루지 않는 한, 보통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건마다 일어나는 남녀의 감정은 얼마나 미묘한지, 그 감정의 변화에서 읽어낼 수 있는 메시지들은 또 얼마나 미세한지 등을 눈여겨본다면, 예나 지금이나, 남자나 여자나 왜 사랑을 그리도 궁금해하고 꿈꾸는지 느낄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베넷 가문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조건보다 사랑을 믿는, 영리하고 자존심 강한 여성인데요. 시대적 배경과 어머니의 바람은 부유한 가문의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그녀를 강요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베넷가의 딸들은 저택에서 열린 무도회에서 신사 중의 신사 빙리와 다아시를 만나게 됩니다.

첫째 딸 제인과 빙리는 첫눈에 서로에게 끌리지만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반대입니다. 먼저 엘리자베스는 그의 인상 쓴 첫인상이 마음이 들지 않았고, 다아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엘리자베스가 큰 매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영화 <오만과 편견>

무도회 후, 제인은 빙리의 초대로 그의 집에 머무르게 되는데 독한 감기에 걸린 제인을 위해 그곳까지 가게 된 엘리자베스는 다시 다아시를 만납니다. 좋은 쪽은 아니지만 어쨌든 서로에 대한 인상을 깊게 가졌던 두 사람의 재회는 티격태격한 다툼을 만들어내요.

너무 오만하시군요. 다아시? 오만은 결함일까요? 미덕일까요?

전 남의 어리석음과 나쁜 짓을 용서하기가 힘듭니다. 제가 당한 모욕도 그렇고요. 전 한 번 마음이 돌아서면 변하지 않습니다.

다아시가 오만한 남자라는 엘리자베스의 편견은 더 깊어진 채로 그들은 헤어집니다. 돌아온 집에는 엄마가 약혼자로 정해둔 친척 콜린스가 와 있는데요. 그는 아들이 없는 베넷가의 상속자로 정해진 남자였습니다. 물론 그녀의 마음은 확고합니다.

다행히 비슷한 시기에 위크햄이라는 장교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의 신사다움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에게서 전해 들은 다아시의 행동은 엘리자베스의 편견을 더 굳게 만들었고요. 그쯤 다시 열린 무도회에서 위크햄을 만나리라 기대했지만 위크햄 대신 콜린스와 다아시만을 보게 됩니다.

물론 콜린스는 반갑지 않았지만 의외로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댄스 신청을 해요. 이는 그들의 서로에 대한 오해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를 기회였지만 오히려 제인과 빙리의 결별과 서로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는 계기가 됩니다.

선생님에 대한 평가가 너무 다양해서 갈피를 못 잡겠어요.

위크햄은 만나지도 못하고, 타인들에게서 들은 다아시의 이야기는 그녀의 편견을 확신으로 바꾸고, 게다가 콜린스는 엘리자베스의 절친인 샬롯과 결혼을 하려 합니다. 모든 게 뒤죽박죽인 상황인 거죠.

결혼한 샬롯의 집에 놀러 간 엘리자베스는 콜린스를 지원해주는 캐서린 여사의 집에 방문했다가 다시 다아시와 재회합니다. 다아시는 숨겨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만 이미 그에 대한 수많은 편견이 확신으로 변해가고 있던 그녀는 심한 말로 상처를 남깁니다.

당신의 도도함과 자만, 남을 멸시하는 이기심을 보고 당신과 결혼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란 걸 알았습니다.

그 밤 그는 떠나면서 그녀에게 편지를 남기는데요. 위크햄이 보여주고 들려준 모든 사건은 그저 달콤한 거짓말이었다는 것, 그리고 제인과 빙리의 결별은 솔직한 자신의 의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의 솔직함은 오만함으로 오해됐고 발 없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그를 신사답지 못한 남자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후 동생 리비아의 결혼식에서 그가 보여준 선의, 제인과 빙리를 다시 만나게 한 계획까지 그 모든 게 그녀를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명대사인데요. 이 한 줄로부터 끌어낸 저만의 다른 한 줄은,

그러나 사랑은 한 남자의 온몸에 배인 오만함을 꺾고 한 여자의 확신에 가까운 편견을 제거할 만큼 강력하다.

입니다.

영화 <오만과 편견>

원고의 서론은 사람이 참 변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었는데 그 변함없는 정체를 조금씩이나마 변화하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겁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한 세계와 또 다른 세계의 충돌이며 그 틈새로 기적의 씨앗을 심는 일인 것입니다. 그 기적이 피어내는 꽃은 바로 사랑일 테고요.

그러니 우리의 오만과 편견, 그 고집과 고정관념 이면에는 얼마나 커다란 생동력이 숨어 있는 것일까요? 내가 내 안에 갇히지 않으려면, 나를 넘어 더 큰 나를 만날 수 있으려면 이면의 힘이 일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라고 단정 짓지 말고, 그것이라고 확신하지 말고 다른 시각으로 반대편을 보는 시각, 그 다채로움을 모두 다 끌어안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닮고 싶은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