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유치했지만 순수했고 서툴렀지만 빛났던 그 시절의 나를 찾아

[리뷰]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벌써 1월의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네요. 알고는 있었지만, 시간이 참 빠르다는 사실을 이렇게 다시 체감하게 되는 건 처음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혹은 마지막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인 것 같습니다.

새해 첫날을 맞으면서 다이어리에 적은 많은 메모 중에서도 유독 1이라는 숫자가 눈길을 끈 것은 단지 글자 크기 때문만이 아니라 마음의 시선이 머물고 싶어 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모두는 처음을 많이 아끼거든요.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 소중해서 잘하고 싶고, 그 욕구를 성과로 이뤄내 처음의 마지막엔 환히 웃고 싶거든요.

오늘은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로 우리 모두의 많은 첫 순간이 담겨있는 ‘그 시절’을 회상해보겠습니다. 우리에겐 무엇이 소중했는지, 무엇을 잘하고 싶었는지, 우리는 이뤘는지, 아니면 여전히 꿈꾸고 있는지, 혹은 꿈을 잊거나 잃었는지를요.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션자이는 첫사랑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의 소녀입니다. 그런 그녀를 커징텅과 친구들은 몰래 짝사랑하고 있죠. 작업방식은 다들 제각각이지만 닮은 하나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커징텅은 직접 호감을 표현하지 않고 ‘츤데레’같은 면을 보여주는데요. 늘 모범생에 잘나기만 한 그녀가 그 나이 때의 또래들에게는 조금 얄미워 보이기도 했을 겁니다.

난 언젠가 범생이 션자이가 망신당하는 걸 본다면 그야말로 내 학창 시절 중 가장 통쾌한 순간일거라 생각했다.

늘 투덜거렸지만, 영어책을 가져오지 않은 그녀를 대신해서 벌을 받은 사건 이후로 커징텅과
션자이는 부쩍 가까워집니다. 그녀로부터 학습지도를 받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도 잘 받게 됩니다. 공부에 원래 취미가 없었던 커징텅으로서는 놀라운 발전이었지만 이런 공부가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푸념을 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해요.

열심히 해도 아무 소득 없는 거 인생이 원래 그런거야. (중략) 너처럼 유치한 것도 인생에 아무 도움 안 돼.

그리고는 다음 시험을 걸고 내기를 하는데요. 시험에서 이긴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거죠. 커징텅은 션자이에게 머리를 묶고 다닐 것을, 션자이는 커징텅에게 머리를 삭발로 밀 것을 요구합니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해 커징텅은 머리를 밀어야 했지만, 다음날 션자이도 머리를 높게 올려 묶고는 예쁘게 웃으며 걸어갑니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그 모습이 마치 천사처럼 환해서 짝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흔히 하는 착각을 그들도 역시 하게 되는데요. ‘내가 머리 묶는 스타일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알았지?’, ’아무래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 ‘션자이가 이겼는데도 머리를 묶었다는 건?’ 다들 이런 식인 거죠. 이렇게 유치하지만 어쨌든 그날 이후로 공부는 커징텅 인생의 하나의 즐거움이 됩니다.

학급비가 사라진 날, 선생님이 학생들을 의심하자 모범생이기만 했던 션자이도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을 향해 똑부러진 소리를 내며 울면서도 끝까지 벌을 받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물들어갑니다.

시험문제처럼 모든 일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답이 있다 해도 늘 답을 알 수는 없다. 누가 범인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기억나는 건 그날의 션자이는 정말이지 예뻤다.

대학 시험, 졸업식, 여름바다, 대학 입학 등 소란한 과정을 거친 후 다시 만난 션자이와 커징텅은 첫 데이트를 하게 됩니다. 아직은 어색하고 확신할 수만은 없는 감정 속에 션자이는 션자이대로 마음을 숨기고 커징텅은 커징텅대로 거절당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니까 난 되게 평범한데 어쩌면 니가 좋아하는 건 니 상상 속의 나인 줄도 몰라.

거절하려고 돌려 말한 걸까? 두려웠다. 늘 자신감에 넘쳤는데 그 순간 깨달았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선 나도 겁쟁이가 된다는 걸.

그러다 자신이 강한 남자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어린 마음에 커징텅은 격투기 시합을 여는데요. 그녀의 관심을 끌고 싶었던 그의 마음은 오히려 그녀를 걱정시키고 화를 내게 만듭니다.

괜한 시합 열어서 다치기나 하고 넌 왜 이렇게 유치하냐?

유치하다고? 얼마나 짜릿한 경험인지 넌 모를 거다. 그냥 같이 좀 즐거워해 주면 안 되냐?

이런 말다툼 끝에 그들은 정말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못한 채 헤어지고 맙니다. 그의 독백처럼 성인이 되어가면서 남자보다 조금은 빠른 여자의 성숙을 인내할 남자도, 그 타이밍의 차이를 잘 맞춰줄 여자도 없는 것이죠. 아직은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어른아이의 시절이니까요. 그 후 친구들 무리 중 한 명인 아허와 션자이는 사귀지만, 곧 헤어집니다.

몇 년이 지나 타이베이에 지진이 났을 때 션자이가 걱정된 커징텅은 그간의 공백을 깨고 먼저 전화를 겁니다. 먼 거리의 통화였지만 가까이 있을 땐 알지 못했던 서로의 속마음을 그들은 알게 됩니다. 션자이는 첫 순간의 설렘이 사라지면 커징텅의 사랑도 금방 식을 것 같아 그를 조금 밀어냈다는 말과 누구도 그만큼 자신을 좋아해 준 것 같지는 않더라는 말을 들려줍니다.

커징텅은 그녀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그녀를 좋아했던 그 시절 자신의 모습도 좋아했다는 것, 그리고 그녀는 영원히 그의 눈 속에 사과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비록 그녀의 곁엔 다른 남자가 동행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할 수 있었던, 다시 못 올 순간의 진심들이었던 거죠.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또 몇 년이 지나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전화를 거는데요. 결혼 소식을 알려줍니다. 결혼식장에 함께 모인 그때 그 친구들은 각각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자리를 잡았거나 여전히 고군분투하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재능이 출중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 않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 시절 커징텅이 션자이에게 말했던 대로 수학의 로그나 영어단어 몇 개가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 마음 하나가 꿈을 이루게 해준다는 것이죠. 즉 영원히 꿈을 꾸는 사람만이 아이러니하게 이 현실의 승리자가 되는 겁니다. 결혼식장에서 그는 그녀와의 수많은 추억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해요.

난 계속 유치하게 살 거다.

영화를 돌아보면 전반적으로 유치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전문가들은 내용만이 아닌 형식을 두고도 그리 평하기도 했습니다. 또 영화 속에는 유치하다는 대사가 유독 많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크게 흥행했던 이유는 아마도 그 시절 우리의 모습이 딱 그만큼 유치했기 때문일 거에요.

유치하다는 것, 무언가에 서투르다는 것은 조금은 부끄럽고 민망할지 모르지만 가장 순수했다는 것, 그래서 가장 빛이 났다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끝내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첫 순간들인 거죠. 영화 속에서도 커징텅의 유치함은 문제를 일으키는 말썽의 원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행동하게 하고 서로를 가깝게 하는 가장 큰 계기로도 작용합니다.

이렇듯 소중하기 때문에 아끼는 그 처음의 순간들,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아서 무엇이든 가능했던 모습들은 시간이 지나도 어디 가지 않고 내 안에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더욱 잊어서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서론을 열었던 욕구, 성과, 처음의 마지막에 지을 수 있는 웃음으로 다시 돌아가 결론을 닫으려 합니다. 첫사랑, 꿈, 처음 소원했던 그 마음들이 혹시 다 이뤄지셨나요? 이룬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고개를 젓는 대답들이 더 많을 거에요.

삶은 마음처럼 쉽지 않은 고생의 연속이라거기엔 여러 이유가 들러붙어 있겠지만 감히 단언컨대 그 처음의 마음들을 내가 먼저 잊었거나 잃었을 확률이 더 높을 겁니다. 찬찬히 돌아보았으면 해요. 어느 순간부터는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해버린 것일 수 있거든요. 성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척해야 했던 모든 거짓된 짐을 내려놓고 나에게만은 솔직해도 됩니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이뤄지지 않은 사랑을 그보다 더 오래 갈 추억으로, 깨져버린 소망을 피터팬의 나라, 네버랜드에서처럼 영원히 계속될 꿈으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 한에선 언제까지나 철들고 싶지 않은 피터팬의 친구,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