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앞으로 계속 전진해가는 삶

[리뷰] 소설 <위대한 개츠비>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얼마 전 스키를 타러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에 다녀왔습니다. 운동에 소질이 있던 어린 시절, 고급 취미라면 무엇이든 시도해보곤 했던 이모 덕분에 해마다 따라다니며 스키를 즐겼던 추억이 있는 곳인데요. 그때 몸에 밴 감각이 아직 남아있을지 반쯤은 의심을, 또 반쯤은 자신을 갖고 스키화를 신었습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몸이 리듬을 타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고 판단될 때쯤 리프트를 타고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렸습니다.

깊은 어둠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건너편에서 반짝이고 있는 빨간 불빛이 전부였습니다. 무슨 생각에 한참을 잠겨있었는지 함께 오른 일행들은 저마다 하강하며 흩어지고 정신을 차렸을 땐 그 불빛을 응시하며 쌩쌩 내달리고 있는 속도감만이 느껴졌습니다. 빛을 보며 내달려서인지 빛을 안고 내달린 것, 아니 마치 내가 빛이 된 것 같았어요. 그러니 그 순간 저는 빛의 속도로 경사면 위를 날고 있었던 겁니다. 그걸 깨닫자 갑자기 무섭더라고요.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자 몸도 같이 긴장하며 움츠러들었고 그 바람에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꽤 세게 넘어져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그 순간에도 눈은 빛을 쫓고 있었습니다.

그 밤 숙소에서 잠을 청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내내 눈앞에 아른거렸던 그 불빛 위로 개츠비가 늘 응시했던 초록빛이 겹쳤습니다. 그의 환상이자 이상, 사랑이자 희망, 꿈이자 삶의 전부였던 그 빛의 상징은 바로 그가 사랑했던 데이지였었죠. 오늘은 피츠 제럴드의 자전적 소설인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초록색이든 빨간색이든 각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빛에 대해 얘기 나눠볼까 합니다.

개츠비와 데이지. 영화 <위대한 개츠비>

제1차 세계대전 후 대공황이 오기 전까지 미국엔 이례 없던 경제적 붐이 일었지만 허황된 정신, 타락한 도덕 등으로 시대의 문명에 깊은 회의를 느끼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이를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하는데요, 소설 속의 인물들 역시 저마다의 이상을 품지만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모두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화자인 닉은 중서부 출신으로 증권업에 종사하기 위해 동부로 오는데 그의 옆집에는 밤마다 호화로운 파티가 열리는 부자 개츠비가 살고 있습니다. 개츠비는 닉을 자신의 집, 파티에 초대합니다. 주인 개츠비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가 없던 닉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개츠비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듣게 돼요. 그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스파이였다는 둥, 빌헬름 황제의 사촌이라는 둥, 살인범이라는 둥의 소문을요. 그러나 그를 직접 만나고 난 후에는 그의 미소, 말투, 손길 등에 매료됩니다.

사려 이상을 담은 미소를 지었다. 영원히 변치 않을 듯한 확신을 내비치는, 평생 가도 네댓 번밖에는 만날 수 없는 미소였다. (중략) 친근한 말보다는 나를 안심시키듯 내 어깨를 토닥이는 그의 손길이 훨씬 더 친밀하게 느껴졌다.

이 파티에 닉과 함께 참석했던 조던 베이컨은 훗날 개츠비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는데요. 자신의 친척 동생인 데이지와 개츠비가 예전엔 사랑하던 사이였고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하더라는 겁니다. 데이지는 5년 전쯤 개츠비가 사랑했던 여자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 데이지를 향한 사랑은 이 흔들리는 시대에 존재의 방황을 멈춰줄 수 있는 유일한 푯대와 같은 진리였습니다. 곧 삶의 목표였던 거죠.

그녀는 그가 난생처음으로 알게 된 우아한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의 우아함 너머에는 그 우아함을 뒷받침해 줄 만한 더 대단한 속물근성이 있었기에 가난한 개츠비와 헤어진 후 부유한 톰 뷰캐넌과 결혼하고 맙니다. 그 후 개츠비는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지금의 부를 얻게 됩니다. 만 건너편에 있는 그녀의 집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화려한 집도 사고요.

데이지와 톰 뷰캐넌. 영화 <위대한 개츠비>

닉은 개츠비와 데이지가 만나게 도와줍니다. 데이지의 마음은 물론 흔들려요. 이제 더는 예전의 가난한 그가 아니거든요. 게다가 그녀의 남편 톰 뷰캐넌에게는 머틀 윌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내연녀가 있었어요. 서부를 대표하는 개츠비처럼 신흥 부자가 된 케이스가 아니라 집안 대대로 부와 권력을 소유한 동부 출신 톰 뷰캐넌의 정신적 공허와 도덕적 타락을 잘 보여주는 대목인 거죠.

자신도 바람을 피우고 있으면서 아내와 개츠비의 관계를 눈치챈 톰은 모두(데이지와 톰 부부, 닉과 조던 커플, 그리고 개츠비 이렇게 다섯 사람)가 한자리에 모인 날 소문만 무성하던 개츠비의 과거사들을 폭로해버려요. 애초에 사랑이라는 숭고한 가치보다 물질적 욕망과 현실적 쾌락이 삶의 기준이었던 데이지의 마음은 또 한 번 흔들립니다. 개츠비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없었던 그녀는 개츠비와 먼저 자리를 떠나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요. 공교롭게도 사고를 당한 피해자는 톰의 내연녀 머틀이었습니다.

하지만 물론 내가 운전했다고 할 겁니다.

개츠비는 데이지 대신 모든 희생을 감당할 각오를 하지만 데이지는 톰의 품으로 돌아가 자신의 안전한 생활을 지켜요. 게다가 톰으로부터 잘못된 말을 전해 들은 윌슨은 부인을 죽인 범인이 개츠비라고 오해하고 개츠비를 살해하고 자살해요. 사건은 이렇게 종결됩니다.

그리고 남은 씁쓸한 결말은 비록 그것이 뒤틀린 욕망의 꿈이었대도 이상을 좇아 열심히 살아온 개츠비에게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거에요.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죽었다고 말한 아버지와 닉, 그리고 그 화려한 파티의 수많은 명사 중 단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데이지조차 그 자리에는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소설의 제목을 두고 위대하다는 수식어보다는 대단하다는 중의적 의미의 수식어가 더 맞지 않느냐는 평이 있었어요. 또 반어적 의미를 지닌 단어에 불과하다는 평도 있었고요. 판단은 시대의 가치, 개개인의 인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겠지만 인물 중 가장 중심을 잃지 않았을뿐더러 모두가 사라진 자리에 홀로 남아 담담한 목소리로 마지막을 정리해주는 닉에 설득된 독자로서는 그와 같은 입장에서 개츠비를 변호하게 됩니다.

개츠비는 위대한 인물이 맞았던 것 같아요. 모두가 상실과 회의에 빠진 시대 속에서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위법한 수단으로 물질적 부를 축적했을지언정 물질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수단으로써 쫓았다는 것, 모든 문제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른 해답이 존재해왔지만, 개츠비가 보여준 낭만적 순애보는 시공간의 한계 너머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절대적 숨이라는 것 때문에요.

데이지와 개츠비. 영화 <위대한 개츠비>

물론 그가 보여준 태도는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최고의 지성이란, 두 가지의 상반된 개념을 동시에 지니며 어떤 일이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면서도 이를 바꿔보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작가 피츠 제럴드의 말을 빌려보자면 개츠비의 초라한 뒷면을 쉽게 비난할 수만은 없을 것 같아요. 닉은 그래서 소설의 전반부에서부터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개츠비가 다 옳았다.

개츠비가 살해당하기 전의 후반부에서는 그에게 직접 이렇게 말했고요.

그 인간들은 썩어빠진 족속이오. (중략) 당신 한 사람이 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돌이킬 필요가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또 두 번 다시는 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과거를 보내주고 미래를 기대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태도인 듯 보이지만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 (중략) 물론 반복할 수 있고말고요! (중략) 전 모든 것을 옛날과 꼭 마찬가지로 돌려놓을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던 개츠비의 말 속에 박힌 단호함은 되묻게 합니다. 정말 그렇기만 하냐고. 때로는 과거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현재를 살게 하는 힘이자 숨이고 미래와 연결된 희망과 기대이지 않느냐고. 온 우주를 움직일 간절함은 누군가를 감동시키고 움직이게 하게 마련이니까요.

무엇을 보고 느끼든 독자 각자의 몫이겠지만 개츠비가 깊고 오래 응시했던 초록색 불빛은 그의 생을 전부 걸 만큼 소중한 이상이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불빛이 꺼지지 않는 한, 그 불빛이 실은 우리가 찾던 색이 아닐지라도, 그 불빛을 푯대 삼아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일 겁니다.

스키장에서 빨간 불빛에 홀려 빛의 속도로 내달리다 균형을 잃고 넘어진 후 한동안 그 장면이 머릿속을 맴돌았던 건 25년 전의 어린 나를 같은 공간, 같은 계절에서 만났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꿈도 욕심도 많았던 어린 내가 쫓던 불빛은 표적을 빗나간 자리에 다른 색으로 반짝이는 환상은 아니었을까, 불빛이 찬란하게 반짝이는지, 불안하게 깜박이는지 모른 채 달려만 온 것은 아닐까, 혹은 지나온 나의 길은 개츠비의 것만큼 간절했고 절대적이었을까 하는 생각들에 혼미했던 몇 주였습니다. 상실과 회의의 시대 속에서도 멀리 날 비추는 빛과 가슴에서 피어나는 사랑에 기대어 어쨌든 흔들리고 넘어지면서도, 뒤로 밀리고 옆에서 치이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해갈 1월 마지막 날의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