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것만이 내 세상

‘불’가능, 그것‘만’이라는 한정어 너머에는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설 연휴 지나 2월 첫 주의 리뷰 원고를 위해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모두 모여 조카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개봉하고 특선 영화와 맛있는 음식들로 떠들썩한 시간을 보낸 후에는 이렇게 다들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생활을 이어나갑니다. 조카들은 개학을 준비하고 언니와 형부는 주부와 회사원 모드로 분주하고 여기 남은 부모님은 다시 나름의 적적한 일상으로, 필자는 필자대로 방안 스탠드 불빛 속으로 복귀합니다.

한 몸인 듯 엎치락뒤치락 싸우면서도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는 조카 남매를 보면서 우리 자매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세월이 가면 명색으로 추억은 깊어진다 해도 어쩔 수 없이 관계된 거리와 기억은 멀어지고 희미해져요. 가족이란 참 가깝고도 먼 사람들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언니와 필자는 어릴 때부터 무척 달랐어요. 한 가지에서 나 모든 것을 공유하고 뼛속 깊이 이해하는 듯해도 결국 각자의 선택과 주어진 몫으로 다른 길을 걷고 다른 생을 살아가고 있어요.

이번 주는 특선 영화로 방영됐던 <그것만이 내 세상>, 삶의 한 시절을 귀에서 맴돌았던 노래 ‘그것만이 내 세상’, 가까운 사이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남일 수밖에 없는 ‘그것만이 내 세상’에 대해 나눠보려 해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조하는 폭군 아버지와 이를 못 견뎌 집을 나가버린 어머니에 대한 상처가 있는 전직 복서입니다. 가진 것 없는 그가 유일하게 매달린 단 하나의 꿈이었을 복싱마저 경기 중 한순간의 실수로 잃고 말아요. 그 후 전단지를 돌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가슴 속에 품은 그 말만은 놓을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 그건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그의 영웅이자 롤모델, 무하마드 알리의 말이죠. 그런 그의 앞에 거짓말처럼 친모, 인숙이 등장하고 같이 살게 된 후 친동생 진태가 그로부터 배운 말이기도 합니다. 진태는 피아노 소리로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어요. 서로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외롭고 아픈 삶을 살아왔다는 공통점을 가진 그들입니다.

수십 년을 떨어져 살았던 그들의 동거생활에는 많은 오해와 불편 등 우여곡절도 있지만 함께하는 첫 외식, 오해 끝에 건네는 사과, 오가는 장난에 닮아가는 모습 등 핏줄이라는 이유 하나로 쉽게 가능해지는 일들도 있습니다. 어느 날 함께 전단지를 돌리러 나간 길거리에서 진태가 치는 피아노 소리에 놀란 조하는 늘 동생 핸드폰 화면 속의 주인공이었던 피아니스트 한가율이 자신과 사고로 엮인 그녀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찾아가요. 사고로 다리를 잃고 난 후 더는 피아노를 치지도, 세상과 소통하지도 않고 자신만의 어두운 밀실에서 살아가던 그녀에게 진태는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줍니다. 진태는 콩쿠르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하지만, 그날 밤 가율의 닫혔던 피아노를 열게 합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조하에게 진태를 맡겨놓고 부산으로 잠시 일을 나가게 됐다던 엄마 인숙은 실은 병으로 입원해있던 신세였습니다. 조하는 처음으로 엄마에게 속말을 해요.

그땐 나도 애였다고요. (···) 난요. 아버지 엄마 둘 다 용서가 안 돼요.

용서하지 마라. 다시 태어나면 니만 챙길게. (···) 못 해준 거 다해줄게. 미안하다.

아픈 엄마를 뒤로하고 계획대로 캐나다로 출국하려던 조하의 귀를 잡은 문장은 그의 지난한 삶을 지탱해주던 무하마드 알리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하의 발을 잡은 음성은 그로부터 그 말을 배운, 어느새 서로 물들어 버린 동생 진태의 것이었죠.

엄마의 장례식 후 두 형제는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처음엔 혼자 건너려는 동생 진태를 형 조하가 막아 세워요. 잠시 후에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요. 비록 서로의 발걸음은 완벽히 맞춰지지 않고 속도 또한 멋대로 다르지만 그들의 꼭 잡은 손과 그 손을 타고 전해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뒷모습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자 하이라이트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들국화의 노래 ‘그것만이 내 세상’은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라는 가사로 시작합니다. 음악을 감상할 때 멜로디가 그 곡의 첫인상이라면 그 후 청중의 감성을 유지하게 하는 건 가사인 것 같아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론 가사에 조금 더 집중하는 편이라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첫 소절에서 오는 임팩트가 상당히 컸습니다. 그 한 줄 속에 우리 삶이 힘겨운 모든 이유가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죽 이어지는 뒷이야기는 삶의 여정은 결국 혼자이지만 후횐 없다는 거에요. 여기서 방점은 ‘꿈’입니다. 나를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한 꿈, 삶을 송두리째 바쳐 찾아 헤매게 하고 애지중지 가꿔왔던 그 꿈이 있어서 후횐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꿈이 내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꿈을 꾸고 있는 동안은 행복하니까요.

엄마의 저문 꿈, 조하의 바랜 꿈, 진태의 피는 꿈, 가율의 머금은 꿈이 그들만의 세상 속에선 아프고 눈물겹지만 그만큼 더 간절하고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만나 우리가 된 세상 속에선 아주 조금은, 적어도 더해진 한 사람의 품만큼은 수월해지고 가능해지리라는 것을 믿어요. 왜냐하면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건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는 일이거든요. ‘불’가능이라는 한정어, 그것’만’이라는 한정어 너머에는 끝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에 또 다른 길이 열리고 더 넓은 세계가 펼쳐지듯 기적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거든요.

영화의 영어 제목이 <keys to the heart>예요.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뜻인데요. 세상을 향해 난 문을 열고 걸어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인생 과제라면 결국 그 문은 나의 마음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문을 여는 열쇠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꿈, 기다리고 기다렸던 사람, 다쳤고 아팠고 그래서 흉터는 남았지만, 그것이 상처의 흔적이 아니라 극복의 흔적임을 아는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두가 흩어진 후의 세상, 그래요, 가사처럼 세상을 너무나 몰라서 그 속에 혼자 남겨진 이 시간, 나의 이 자리는 어둡고 외롭고 때로는 아프지만 한 줄기 스탠드 불빛은 밝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꿈은 아름답고 꿈꾸는 동안은 행복하리라는 것을, 훗날 돌아본다 해도 후회는 없으리라는 것을, 비록 가깝고도 먼 서로의 꼭 잡은 손을 잠시 놓고는 있지만 전해지는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불’가능, 그것’만’이라는 한정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