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닮음과 다름 그 사이에서

[리뷰] 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정>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글 쓰는 업을 잘 해내는 것에 있어 지식이 제일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분명 필요한 요소인 것만은 확실한지라 더디더라도 매일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삶의 첫 스승이신 분이 그랬거든요. 매일 조금씩 하는 공부가 제일 멀리 간다고. 취향은 확실히 문학 쪽이지만 지식을 넓혀가기 위해서 요즘은 철학책을 읽고 있는데요. 아리송한 사상들의 의미, 한 끗 차이 같은데 서로 대립하는 학파들을 알아가면서 철학은 무엇을 위한 학문인가 생각하게 됐습니다.

결론은 하나였어요. 행복하자는 거죠. 그러면 행복이 무엇인가 묻게 되는데 그 답 역시 하나였어요.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사랑을 말하는 문학책을 손에 든 것은, 그러니까, 꼭 핑계인 것만은 아닌 거로 해둘게요.

<오만과 편견>의 작가, 제인 오스틴의 첫 출간 책인 <이성과 감성>은 오만과 편견보다 구성 및 문체가 덜 세련되었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필자처럼 모든 예술 작품을 접하는 이유가 평가가 아닌 배움에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성과 감성>에서 치밀하게 묘사된 심리의 흐름, 관계의 변화를 읽고 더 많은 것을 얻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성과 감성> / 제인 오스틴

개작 전의 제목이 <엘리너와 메리앤>이었듯 주인공인 두 자매의 사랑, 실연의 아픔, 그 후의 결혼까지가 전체적 스토리입니다. 언니인 엘리너는 이성이 잘 발달한, 절제와 분별을 갖춘 여성인 반면 동생인 메리앤은 감정과 열정이 강한, 조금은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면모를 보이는 여성입니다.

엘리너의 연인은 이복 오빠이긴 하지만 올케의 동생인 에드워드 패리스로 서로 닮은 점이 있어요. 소심해서 조심스럽고 확신 없는 감정으로 사랑도 느린 속도로 진행됩니다. 메리앤의 연인인 월러비 역시 그녀와 닮았는데요. 우연하고 갑작스러운 첫 만남부터 사랑에 빠지게 되는 속도까지 불처럼 활활 타오르며 누가 봐도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난 모든 점에서 취향이 나하고 꼭 일치하지 않는 사람과는 행복해질 수 없을 거야. 내 감정 속으로 속속들이 들어와야 돼요.

이렇게 대조적인 두 자매이지만 닮은 점도 있는데요. 금전 지향적인 세상 속에서 끝까지 낭만적 사랑의 힘을 믿고 그편에 서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이는 그렇지 않은 다른 부부들과 확연히 비교돼 작품의 방향성 및 작가의 의도에 대해 고찰하게 합니다.

먼저 이복 오빠인 존 대시우드 부부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유산 중 일부를 어머니와 자매들에게 나눠주는 것에 대해 망설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를 바라기까지 하죠. 냉정함, 이기성이 그들을 대표하는 키워드입니다. 어머니와 자매들이 이사할 수 있도록 거처를 마련한 먼 친척 존 미들턴 부부는 재능과 취향이라곤 아예 없는 커플입니다. 그들에게 유일한 즐거움이란 오직 사교일 뿐입니다. 겉으론 세련돼 보이지만 속은 알맹이 없이 비어있어요. 마지막으로 파머 부부는 유일하게 닮지 않은 커플인데요.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몇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요.

이안 감독의 영화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서 에마 톰슨(사진 오른쪽)이 언니 엘리너을 케이트 윈슬렛(왼쪽)이 동생 매리언을 연기했다

느린 속도로 진행되던 엘리너의 사랑은 에드워드가 약혼한 상태였다는 것이 밝혀지자 슬픔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엘리너는 가족들이 걱정할 것과 자신의 감정 통제에만 신경을 써요. 그래서 오히려 이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으로 보였던 메리앤의 사랑은 월러비가 형편없는 인성의 소유자로 그녀를 농락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슬픔이라기보다는 절망에 빠집니다. 메리앤으로선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아닌 척하는 것이 살아있는 감정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사랑에서도, 사랑 후의 시련에서도 두 자매는 이렇게 다릅니다.

그들이 취한 수단은 목적만큼이나 달랐고, 각각 나름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도 잘 들어맞았다.

그러나 에드워드의 약혼에는 충분한 면책 사유가 있었어요. 세상도, 사랑도 몰랐을 어릴 때의 약속, 그 후 많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바래진 약혼녀와의 감정, 그리고 느끼게 된 엘리너와의 사랑, 그러나 끝내 옛 연인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던 책임감, 무엇보다 약혼녀, 루시 역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이 모든 것을 헤아리게 된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됩니다. 결혼 후 소박한 삶을 행복하게 꾸려나갑니다.

반면 월러비에게는 면책 사유가 없었어요. 그래서 메리앤은 자신이 당한 실연 그 자체보다는 그의 성품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는 것에 더 가슴 아파합니다. 다만 그녀에게 위로가 된 것이 있다면 그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는 것, 메리앤에 대한 생생한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됐다는 것, 그녀의 사랑 대신 현실적 편안함을 선택한 것에 대한 벌을 평생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에겐 존 미들턴의 친구로 줄곧 그녀를 사랑해왔던 브랜던 대령이 있었어요. 과거에 꼭 메리앤을 닮은 일라이자와 깊게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적 벽에 부딪혀 잃게 된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사는 인물인데요. 월러비가 메리앤의 곁을 떠나고 그녀의 감정적 열정이 이성적 절제로 차츰 바뀔 때쯤엔 브랜던 대령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들 역시 결혼하게 됩니다.

이성적 인간, 엘리너의 사랑은 이뤄졌지만, 감성적 인간, 메리앤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 감성적 인간, 메리앤이 이성적 인간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작가는 이성의 편에 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이 이미 감정적 영역이라는 점에서, 또 엘리너의 결혼 이 위에 언급된 다른 세 커플과 비교해 가난하지만, 낭만적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마지막으로 이성적으로 변한 메리앤조차 결혼 후에는 원래의 성격대로 온 마음을 다해 남편을 사랑했다는 점에서 감성 편에도 한 표를 던지는 것 같아요.

메리앤은 사랑을 반쪽만 하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때가 되자 그녀는 한때 월러비에게 그랬던 것 같이 남편에게 온 마음을 바쳤다.

다른 세 커플은 물론, 특히 루시와 로버트 커플은 겉으로 보기엔 물질적으로 훨씬 더 풍요롭고 대내적으로 더 인정받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속으로는 후회와 그리움의 감정을 안고 살지만 사소한 즐거움을 누리며 때때로 행복해하는 월러비마저도요.

그러나 사랑이 전제된 결혼생활이 곧 긴 인생의 궁극적 지향점인 행복으로 가는 황금 열쇠라는 점에서 결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삶의 복잡성, 결코 섣불리 확언해서는 안 될 삶의 어려움 앞에 우리는 서게 됩니다. 그러고는 전부가 아닌, 확언할 수 없는 이면 속에 깃든 삶의 신비를 생각하게 돼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남녀의 사랑 감정, 연애 행각 너머 시대의 생활, 문화적 풍습을 다루고 현대에까지 적용되는 인간의 본질적 심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은 지금 어디쯤인지, 내 발길은 지금 어딜 향해 있는지 묻게 돼요.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면 취향, 속도, 가치관, 사고 등이 비슷해 잘 맞을 수 있겠죠. 덜 싸우고 더 이해할 수 있겠죠. 그러나 사랑은 이론을 넘어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이전엔 몰랐던 모든 것이 새롭고 즐겁게 느껴지는 신비를, 불편하고 어려웠던 퍼즐이 완벽에 가깝게 맞춰지는 기적을 맛보게도 합니다.

이성이든 감성이든, 닮았든 다르든 우리의 마음이 사랑의 속도에 맞춰지기를, 우리의 걸음이 사랑의 방향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3월의 입구에 선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