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프레임 진보교육이 소년을 어떻게 멸종시키나

리뷰 <소년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남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나

남자다움을 잃어버린 시대다. 또한 남자다움의 해체가 진행되는 시대다. 남자다움, 남성성, 남성적 이런 단어는 어느새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듯하다. 대신 남성적이란 공격적, 폭력적, 우월주의, 성적 착취, 가부장제, 육체적 힘의 우월성을 내세워 여성을 억압한다는 식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무엇이 어떻게 됐기에 남성은 쇠퇴하고 있으며, 남성성은 약화되고, 아니 남성성은 거세되고 있는가. 소년들의 양육과 교육 방식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렇다는 말인가. 사실 필자가 이미 수 년 전부터 직시하고 있었던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마침 국내에 번역·출간된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가 쓴 <소년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는 미국 소년들의 문제이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직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유튜브 짧은 비디오클립 영상을 통해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의 강의는 여러 번 시청한 바 있다)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 지음 / 서의윤 옮김 / 좁쌀한알. 이 책은 한국의 청소년 자녀를 둔, 특히 남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이 읽기를 권한다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는 시대를 앞서, 약 20년 전부터 남자 아이들의 교육적, 사회적 문제를 연구하며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학업과 학교생활에서 뒤처지고 있는지를 주목하며 반향을 일으킨 인물이다. 저술가이며, 철학자인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는 1960년대 말부터 일어난 현대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유명하다. 페미니즘의 젠더 이념이 어떻게 성별 차이를 왜곡시켜 왔는지, 1990년 내내 성평등을 내세운 ‘젠더 평등’ 정책이 남자 아이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연구 보고와 분석까지 담고 있는 책이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부터 남자 아이들의 독해력은 저하되기 시작했고, 대학 진학률은 여자보다 뒤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자료를 제시한다. 미국 남학생들은 읽기, 쓰기, 문해력 저하 및 학업 수행 등에 대해 여학생과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에서 학사 학위를 받는 사람의 57%, 석사 60%, 박사 52%가 여성이라고 한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약 15년 늦은 2005년을 기점으로 여성들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을 앞지르기 시작해 2017년 남성 65.3%,, 여성 72.7%(교육부 통계)로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또한 여성가족부, 통계청이 함께 조사한 청소년 통계에서는 2015년 기준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여학생이 사상 처음으로 모든 영역에서 남학생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읽기 능력, 수학, 과학 분야에서 남학생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미국 학생들이 다른 나라의 학생들에 비해 뒤처지는 교육적 간극이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지도자들은 남학생들의 성적 미달을 국가 미래에 대한 위협으로 본다는 점이다.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남학생들의 학업 부진을 메우는 일은 10년 넘게 국가 의제의 중심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국가 경쟁력 위기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젠더 평등 교육, 진보주의 교육 괜찮나?

그렇다면 미국은 어떨까.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는 미국의 하위계층 남학생들이 읽고 쓰는 능력이 제아무리 형편없어도 교육부 관계자나 지도층은 무관심이라고 개탄한다. 언제부터 소년들의 위기는 시작됐을까. 저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을 꼽는다.

첫번 째는 탈가치적 진보주의 교육법의 심각한 오류다. 두번 째는 젠더 평등가들의 성별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남녀 똑같음 추구와 나아가 남자 아이들에게 보다 더 여자 아이들과 비슷해지라고 강요하는 젠더 프레임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첫번 째 진보주의 교육은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점점 더 많은 교육자는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많이 뒤처지게 되는 주된 이유로 교육에서의 진보적 방법론을 들었다. 이 두 나라에서는 기존의 교육법으로 돌아가 남학생들의 교육적 전망을 향상시키자는 합의된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영국의 많은 교육자는 현대 수업이 무질서하고 자유방임적이며 남학생들이 우수함을 보일 수 있는 경쟁에 대해 적대적 결과로 남학생들이 제대로 성취를 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미국의 상황을 우려한다. 미국의 주·연방 관계자들은 개선할 의지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계도 오래 전부터 진보주의 교육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자율에 맡기고, 탈가치, 탈성별 교육법이다. 문제는 진보주의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남자 아이들의 전체 학습 능력이 점차 후퇴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 미국과 비슷한 측면이 존재한다.

두번 째, 1990년대 말 무렵 미국 페미니스트들은 젠더 평등 교육을 교육계에 도입하는 작업 시작, 남성의 폭력적 성향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교육에서의 ‘사회화 과정’에 개입했다. 이는 남자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는 방식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 오게 됐다. 젠더 연구자들은 남성의 폭력성을 강조하기 위해 통계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페미니스트 단체의 불분명한 통계와 정보 출처도 없이 남성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건수가 비일비재하지 않는가. 남자아이들에 대한 무관용 풍조에 남자아이들은 이제 감정을 숨기고 위축됐다.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의 말을 빌려보자.

우리는 현재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여성 단체들, 교육부, 교육대학 내의 젠더 이론가들 (중략) 미국 대통령 등등은 여자아이들의 힘에 정신이 팔려서 남자아이들을 잊어버렸다. 이 많은 사람과 단체는 단순하고 평범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능력치를 가진, 전 연령대의 미국 남자아이들은 우리 학교 안에서 2등 시민이 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은 이 현실에 기꺼이 대처 중이다. 이 두 나라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저자는 ‘위대한 재학습’을 시작하자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을 지지하며 아리스토텔레스 가르침에서 양육의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 교육을 신체 훈련에 비유하며 감정을 통제하고 절제된 행동의 훈련은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사회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미국과 한국의 교육 환경에 대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또한 래디컬 페미니즘이 국내를 휩쓸며 성갈등이 극심해 지는 상황은 장차 미국의 교육계, 남성들의 문제를 닮아갈 것이라는 예감도 아울러 든다. 아니 어쩌면 벌써 이행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실감나게 읽혔다.

국내 교육계의 현실은 거의 여성들이 전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치원을 시작으로 초중고 거의 대다수가 여교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 어머니들이 양육, 교육, 사교육 선택, 고등교육 진로까지 권한을 행사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부재하다. 미국 교육계의 현실도 아버지의 부재함이 간과되고 있었다. 이 책은 한국의 현실을 놓고 보면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우리의 자녀 교육은? 우리의 남자 아이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질문을 해야 한다. 대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