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고 특별한 청춘의 순간, 낭비 없는 삶을 위하여

[리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가정의 달, 5월에 들어섰는데요, 가족들은 안중에도 없을 만큼 바빠서 양심의 가책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럴 때, 제발이 저려 눈치껏 사는 딸의 마음을 헤아려 너른 아량을 베풀어주면 좋으련만 엄마는 미리 꼭 한소리를 해대고 결국 꽃 피고 새 울어야 하는 달 초부터 정반대의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꽃 대신 벌침에 쏘이듯 따가운 말들이 오갔고 새 소리 대신 새된 목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못된 말을 내뱉는 필자 자신을 돌아보면서 아직도 철이 덜 들었노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 젓지만, 그 위로 화난 엄마의 호랑이 기운이 덮쳐지면 엄마 역시 아직도 청춘인가 보다 싶어 픽 헛웃음이 납니다.

그래, 아직 모두 젊디젊어서 그래.

같은 마음이었는지는 몰라도 한 시간도 못가 아무렇잖게 심부름을 시키고 살갑게 농담을 건네기도 하는 엄마의 넉살이 새삼 고맙기도 하고요.

5월의 봄, 파릇한 싸움을 계기로 젊음, 청춘을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첫사랑, 첫경험, 생동감, 충동과 같은 단어들이 연결고리처럼 차례로 뒤따라왔습니다. 돌아보면 죄 후회뿐인 과거 속에 추억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몇몇 장면도 있겠지요. 드문 행복, 특별한 감정, 귀한 경험들.

그러나 누군가 그러더군요. ‘해서 후회하는 일보다 안 해서 후회하는 일이 더 많은 법’이라고. 그러니 남겨질 흑역사에 대한 두려움보다 남겨질 무엇도 없는 아쉬움을 더 두려워해야 할 겁니다. 그 경험의 순간들이 내일 없을 작은 조각들의 광채일 테니까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포스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소년과 청년의 사랑을 다룬 퀴어 영화입니다. 영화에 대한 평은 확연하게 갈려 찬란하고 매혹적인 예술품이라는 의견과 식상하고 개연성 없는 서사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습니다.

혹평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의도와 작가의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필자로서는 생각하는 것만으로 크게 감동받는 대목이 있어 오늘 같은 봄날, 청춘의 한 때를 살고 있는 지금, 이렇게 실어봅니다.

열일곱 소년 엘리오와 스물넷 청년 올리버는 1983년의 여름날, 이탈리아의 강렬한 햇살 아래 서로를 향한 뜨거운 감정을 느끼는데요. 이런 감정이 처음인 엘리오, 그리고 이 감정이 전부가 돼버린 올리버는 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시간들이 어쩔 수 없이 흘러가듯 서로를 보내주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두 사람의 감정을 눈치 챈 엘리오의 아버지는 사랑의 상실에 괴로워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잘 돌아왔다. 둘의 우정이 참 보기 좋았다. 둘 사이에 있었던 것이 얼마나 드물고 특별한 것이었는지 똑똑한 네가 모를 리가 없지.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작가가 독자(관객)들에게 정말로 하고팠을 말일 다음 대사가 이어집니다.

우린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가 30살쯤 되면 파산하는 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만들다니 그런 낭비가 어디 있니?

과거의 흑역사를 떠올리면 후회, 수치, 슬픔, 아픔, 미련 등의 감정들이 밀려오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의 오늘을 만든 재료들이 되었을 겁니다. 그것들을 버리지 않아야 단단한 인생이 되어요. 낭비 없는 삶, 그래서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삶이 되는 것이죠.

영화 중간쯤 헤라클레이토스 <우주의 파편> 일부가 인용되는데요.

강이 흐른다는 의미는 모든 것이 바뀌므로 두 번 만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함으로써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도 있다는 뜻이다.

이 철학적 문장을 영화의 결말과 엮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작인 소설에서는 헤어짐 이후, 두 사람이 재회하는 장면이 나와요. 각자의 현실을 존중하지만 엘리오는 다시 한번 제목이 암시하듯 작품의 핵심 키워드인 ‘너의 이름’(올리버)으로 불러주기를 기대합니다. 한편 영화에서의 마지막 재회는 전화상이었는데요. 약혼 소식을 전하면서도 올리버는 이렇게 말해요.

난 전부 기억해.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 아니 흘러가버리기에 더욱이 고정되어 있는 것들의 의미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인 거죠.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청춘이 아름다운 건 잠시도 쉴 수 없는 불안 때문일 거에요. 아프기 때문에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고 천 번의 날갯짓 끝에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는 생동, 그 불완전한 몸부림이 있어서 말이죠. 그래서 오늘의 바쁨을, 피 튀기는 싸움을 긍정하고 즐겨보려는 딸을 향해 엄마는 또 한 소리하십니다.

저 혼자 바빠? 너 그것도 인생 낭비야. 가족들과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지. 야, 너 어버이날이 내일 모레야!

드물고 특별한 청춘의 순간을 위하여, 낭비 없는 삶을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싸우고 열심히 글 쓰는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