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남성은 왜 ‘진보세력’ 거부하나

[인터뷰] 남성 3인의 정치성향 변화로 보는 2030 청년이 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

지난 20세기 제1세계 정치(어설프게 한국까지 포함)에서 청년은 진보 성향이라는 룰(?)이 정석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간 견고하게 유지됐던 그 룰에도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 대선을 강타했던 트럼프 신드롬을 대표로, 구미 국가들에서 다수의 젊은 사람이 우파를, 심지어 극우 성향을 띄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결코 무관치 않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018년 4월 30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무려 86%(한길리서치)까지 치솟았다. 그랬던 지지율이 조금씩 떨어져 46%(2019년 3월 11일 리얼미터)에서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다. 2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5월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만났다(출처 청와대)

연령대별 세부 지지율을 분석해 보면 각 연령대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일관된 하락률을 보여준다. 여기까지만 보면 “정부가 유독 젊은 층에서 더 지지를 상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간 리버럴 진보계열 정치세력이 장년·노년층에서 지지를 상실해도 젊은 층에선 비교적 튼튼한 지지를 계속 확보해 왔던 전례로 보건대, “젊은 층에서의 지지율이 장년·노년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현실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남녀로 나누어 보면 더욱 의미심장한 결과가 나온다. 유독 2030에선 남성의 지지율이 여성보다 10~20%가 낮다. 특히 근래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20대 남성의 지지율은 꾸준히 30% 중반대로 전통적 보수우파 성향 연령대인 60대 이상과 거의 비슷하다. 적어도 2030 남성의 지지율은 “젊은 사람들은 진보 성향”이라는 종래의 관점이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더불어민주당과 그들의 정부를 ‘진보세력’으로 분류하는 것에 불만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진보세력이란 (원내정당 중에서는) 정의당과 민중당 정도다. 그러나 그들의 견해를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정의당 역대 지지의 주축이 2030 젊은 세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4050 ‘민주화세대’가 지지의 주축이며, 더 이상 그들을 젊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식으로건, 진보로 분류해 볼 수 있는 정치세력들에 대한 젊은이들, 특히 남성의 지지는 원래 없었거나, 혹은 하락하는 중이다.

왜 한국의 2030 남성은 진보세력을 거부할까. 일단 민주화(87혁명) 이후에 유년기를 보낸 이들은 민주화 이전에 청춘을 보냈던 이들과는 상당히 다른 성장 과정을 겪었다는 것, 그것이 소위 민주화세대와는 전혀 다른 정치적 관점을 만들어 냈다는 것만은 자명해 보인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소위 ‘진보’는 (단편적인 이슈와 정책 몇 가지만으로) 2030 남성을 자신들의 지지기반으로 만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여론조사는 얼마나 많은 이가 진보좌파를 거부했는지를 보여주지만, 그 심층적 이유까지 말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2030 남성의 정치적 심리를 보다 심층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소위 진보세력에 거부감을 느낀다는 2030 남성 몇 명을 만나 그들의 정치적 관점을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들여다봤다.

1. 대학생 C군(28세)

필자 : 인터뷰에 응해주어서 고맙다. 본인의 정치 성향, 그리고 그 성향이 형성된 과정을 듣고 싶다.

C군 : 모호하긴 하지만 정치적 관점 비슷한 것을 처음 가져 본 것은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당시 대통령은 노무현이었다. 주로 우파세력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의 유행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이러한 현실을 잘 나타냈다고 본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남들이 다 노무현 대통령을 욕하니까, 그냥 나 역시 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했던 것 같다. 그게 어설프게나마, 무언가 ‘정치적 견해’ 비슷한 것을 가졌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필자 : 특별히 스스로의 관점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남들이 다 그러니까 그냥 그걸 따라갔다?

C군 :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대통령이 바뀌었고, 전임자인 노무현에게 보다 강력한 공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어 학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됐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필자 : 나 역시 그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C군 : 이 충격적인 사건은 그때까지 그저 막연하게 가져왔던 정치적 관점을 보다 치밀하게 재고해 보는 계기가 됐다. 일단, 보수우파세력이 그간 정략적인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을 너무 비겁하게 공격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 마치 학생들이 특정 친구를 왕따시키며 놀듯이?

C군 : 그렇다. 그때부터 소위 한국의 ‘보수우익’이라고 하는 세력들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게 됐고 권위주의와 군부독재를 뿌리로 한 그 기득권들의 기만적인 역사적 맥락을 알게 됐다. 그 뒤로, 난 그들에게 마음을 줄 수 없게 됐다.

필자 : 그럼 그 뒤론 민주당계 정치세력을 지지했나?

C군 : 그렇지도 않다. 노무현의 불행한 몰락까지 민주당계 정치세력이 보여주었던 무능함이 싫었고 또 그렇게 소신 있는 이들로 여겨지지 않았다. 필요에 따라, 정략적으로 소신을 이리저리 바꿀 수 있는 그런 이들로 보였다.

당시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을 주로 보았는데 <경향신문>을 통해 한국 운동권의 양대 주축인 PD와 NL을 알게 됐다. 일단 NL식 패거리문화는 민주사회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그들의 그간 행보가 진보에 대한 기생에 가깝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들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PD는 달라보였다. 뭐랄까. 진정성? 순수함? 그런 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을 지지하기로 했다. 진보신당? 아마 당시엔 그즈음 이었을 거다.

필자 : 그 뒤로 지지성향이 정의당으로까지 쭉 이어진 건가?

C군 : 당연히 아니다. 가장 먼저 실망했던 건 통합진보당 통합사태였다. NL의 뒤틀린 모습을 보고 갈려져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들 스스로 외면했던 ‘잘못된 이들’과 다시 손을 잡는단 말인가?

필자 : 그럼 그 이후로 무당층이 됐나?

C군 : 아니다. 통진당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분열됐다.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 등 거물들이 ‘정의당’을 만들어 떨어져 나오자 다시 그쪽을 지지하게 됐다. 애초에 NL 같은 녀석들과 손을 잡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그 어리석음이 쉬이 용서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 더 기회를 주고자 했다.

필자 : 그럼 그 이후로 정의당까지?

C군 : 일단 나는 지난 두 선거에서 모두 무효표를 던졌다.

필자 : 분당사태부터 지금까지, 그 사이에 무언가 큰일이 있었던 건가?

C군 : 클로저스 성우 논란 사태다.

필자 : 아, 메갈!

출처 김자연 성우 트위터

C군 : 그렇다. 정의당은 클로저스 사태 때 메갈이었던 그 성우를 옹호하는 논평을 냈다. 소위 메갈로 불리곤 하는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은 적어도 내 생각엔, 결코 진보가 용인해선 안 되는 이들이었다. 난 그 상황에 너무 충격을 받아 당시 대표였던 심상정 의원실로 누차 항의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 그러나 내가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답변은 “중앙당과 상의하라”는 차가운 반응뿐이었다. 정의당은 그걸로 끝이었다.

필자 : 그 이후로는 계속 무당층으로 남았나?

C군 : 그렇다. 기성 제도권 정치에선 더 이상, 그 어떤 희망도 기대도 가지고 있지 않다. 굳이 바란다면, 새로운 시작을 불러올 파괴뿐이다. 조금 중2스러운가?(웃음)

필자 : 아니, 납득할 수 있다.(웃음)

C군 : 강력한 폭력사태를 통해서라도 기존 국회의원들이 모조리 사라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물들이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상황이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곤 한다.

필자 : 정리하면, 상대적으로 진보좌파 성향을 그래도 유지하려 했던 것 같은데 그것을 궁극적으로 방해했던 강력한 요인이 바로 NL과 메갈이었다. 맞는가?

C군 : 그렇다.

필자 : 당신에게 있어서 NL이랑 메갈이 어떤 존재인지 조금 더 설명해 줄 수 있나?

C군 : ‘과거의 수호자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 현재를 고찰하지 않는다. 과거에 함몰돼 있으며, 그 과거에 서서 현재를 자신들 편의대로 바꾸려 하는 위험한 이들이다. ‘진보’라는 단어 뜻이 무엇인가? 난 그런 과거지향적인 자들이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기만이고 거짓이며, 심지어 단어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난 역으로 질문하고 싶다. 소위 진보를 한다는 이들은, 세력확장이라는 명분으로 누구까지 손잡을 수 있다고 보나? NL? 메갈? 난 그건 아니라고 본다.

필자 : 그때 이미 실망해 소위 진보라는 이들에겐 그 어떤 기대도 할 수 없게 됐다면, 근래 기성 젊은 남성 진보 지지층 사이에서 무척 시끄러웠던 ‘https’ 차단 사태 때는 오히려 차분하게 넘어갈 수 있었을 것 같다.

C군 : 그렇지도 않다. 나는 화학과이기 때문에 종종 외국 화학 연구소 홈페이지를 활용할 때가 많다. 웃기는 게 ‘https’ 차단 당시 그 연구소 홈페이지 역시 차단됐다. 그 홈페이지엔 어떤 불법적 소지도 없었는데 말이다. 정부에 항의를 넣었고 결국 그 홈페이지 차단은 해제됐지만, 정부의 일처리 방식에 다시 한번 크게 실망하게 됐다. 물론 애초 민주당계 정치세력 놈들에겐 별 기대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때 하태경 의원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필자 : 하태경? 왜 하필 하태경이었나?

C군 : 그냥, 잘은 모르지만 젊은 사람들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1월 4일 열린 바른미래당 제50차 최고위원회의 및 확대간부회의에서 하태경 의원이 워마드의 범죄행위를 응징하겠다고 했다(출처 바른미래당)

필자 : 알겠다. 마지막으로, 극좌를 0 극우를 10으로 했을 때, 본인의 정치성향은 몇점이라고 보는가?

C군 : 말했지만 그걸 측정하는 측정기 자체를 부수고 싶다는 것이 지금 나의 성향이다. 이런 상태에선 그 측정기 내에서의 나의 위치를 산정하기는 조금 힘들 것 같다.

필자 : 그렇다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알았다. 오늘 시간을 내주어 고맙다.

C군 : 나 역시 유익한 시간이어서 기쁘다.

2. 기술자 S씨(33세)

필자 : 시간을 내주어서 감사하다. 본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S씨 : 성장기부터 집어보겠다. 어려서부터 집안 성향 자체가 진보좌파(?) 쪽에 가까웠다. 아버지부터 그랬고 주변 인물들도 그러했다. 그렇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유별나게 극좌 성향을 가지거나 했던 것은 아니고, 막연하게 진보 쪽에 호감(?) 정도만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필자 : 음. 그것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가?

S씨 : 2002년이었던가? 미선·효순이 사건. 이를 계기로 친진보좌파 성향은 오히려 강화됐다. 미선·효순이 사건을 비롯한 그간 미군들에 의한 범죄를 폭로하는 거친 대자보들을 접하게 됐고 거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미국에게 부당한 지배와 착취를 받는다고 느꼈고, 뭐 당시 분위기 자체가 워낙 과열됐으니까 그런 분위기에 휩쓸린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시의적절하게 터진 안톤 오노 금메달 사건을 거치며 이 반미감정은 더욱더 불타올랐다. 당시 유행했던 노래 뻑킹 USA? 이런 노래들도 즐기고 뭐…

필자 : 음…

S씨 : 이 성향은 이명박 정권때까지 계속됐다. 이명박 집권 직후에 터진 광우병시위에 이르러선 완전히 정점까지 갔다. 당시에 내가 썼던 과거 인터넷 리플들을 한번 둘러볼 일이 있었는데. 와, 이건 뭐… 지금의 내가 아니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지금 내가 비하하고 경멸하는 바로 그 ‘좌빨’, ‘좌좀’ 그게 바로 나였다.

필자 : 그 성향이 어떻게 변화를 겪게 되나?

S씨 : 당시 난 재밌는 인터넷 자료들을 탐닉하고 살았다. 당시에 유행했던 디씨에 흥미가 많았으며, 디씨자료들의 저장소로 시작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당시 일베에는 제법 괜찮은,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단순히 웃음을 찾아 들어갔다가 그들(똑똑한 사람들)의 자료들을 접하게 됐고 그렇게, 광우병 괴담을 비롯해 그간 맹신해왔던 좌파적 관념들이 대체로 근거 없는 헛소리들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차츰차츰 그간 믿고 지냈던 진보적 주장들이 근거 없는 선동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간 지녔던 진보에 대한 나의 호감은 정반대로, 증오로 전환돼 갔다. 2011년 즈음하여선 신념이 완벽하게 뒤바뀌었다. 이때부터 쓴 인터넷 댓글들과 과거 댓글들을 비교하자면, 그냥 다른 인간이라고 보면 된다.

필자 : 그때부턴 완전히 우파의 세계 일부가 됐다는 건가?

S씨 : 그렇다. 과거의 진보좌파 쪽으로는 이젠 다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며, 이는 장담할 수 있다.

필자 : 음, 뭔가 더 소개할만한 에피소드가 있나?

S씨 : 대학생 시절 의료민영화 문제가 한창 이슈였던 적이 있었다. 지나가다 우연히 의료민영화 반대 대자보를 봤는데 “민영화가 되면 감기만 걸려도 치료비 천만원”과 같은,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도저히 그냥 볼 수가 없더라.

필자 : 잠깐만, 그럼 당신은 그 대자보에 붙은 문구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나? 그러니까 이 이슈에 관한 사전지식이 있었는가 말이다.

S씨 : 여기저기서 우연찮게 접한 사전지식이 있었다. 그래서 그 대자보의 이야기들이 터무니 없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보았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그 대자보를 찢어 버렸다.

필자 : 내용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남이 붙여놓은 대자보를 훼손하는 행위는 문제가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S씨 : 물론 그런 측면 역시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대자보 역시 정해진 위치가 아닌 곳에 붙여진 불법 홍보물(?)로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대중을 상대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죄도 결코 작지 않다고 보았다.

필자 : 그 뒤로 문제는 없었나?

S씨 : 내가 대자보를 훼손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 의해 밝혀져서 학교 커뮤니티에 이야기가 돌긴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별다른 압박이나 그런 건 없었다. 추가적인 공격은 받지 않고 넘어갔다.

필자 :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근래 시끄러운 페미니즘 관련 이야기를 듣고 싶다. 본인의 생각? 혹은 이슈와 관련된 사례?

S씨 : 회사에 여직원을 위한 처우나 개선사항을 회사 측과 협상 및 조율할 수 있는 분과가 존재한다. 우리 회사는 아침마다 각 직원이 나서서 특정 주제를 정하고 발언을 한다. 그런데 위에 설명한 부서의 담당자는 늘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 회사 남자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요새 미투다 뭐다 시끄럽다 보니 남성 직원들이 여성 직원들을 아예 피해버리는, 펜스룰을 시행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이런 잘못된 일이···! 만약 그 여성들이 당신들의 가족이라면 그럴 수 있겠습니까.

접촉하면 성추행이다! 피하면 펜스룰이다! 대체 뭘 어쩌라는 거냐?! 그런 말을 하는 여성들도 맘에 안 들지만 거기에 침묵하는, 심지어는 동조해버리는 남자들도 마음에 안 든다. 요새 하도 페미니즘이다 뭐다 하니까 그냥 분위기에 묻히는 거지. 남자들 중에 이러한 분위기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나를 비롯해 20%가량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필자 : 이 페미니즘 문제를 정치적 관점으로 접목해서 무언가 추가해 볼 이야기가 있는가?

S씨 : 이를 비호하는 진보좌파놈들이 당연히 맘에 안 든다. 그러나 진보좌파 전체적 문제에 비하면 페미니즘 문제는 그저 일부일 뿐이다. 내로남불, 종북성향, 끼리끼리 문화, 소위 그 짝 민주화세대란 이들은 저들끼리 뭔가 정신을 공유하는 링크라도 있는 것 같다. 그들만의 비슷한 무언가를 종종 느낀다.

필자 : 내로남불,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

S씨 : 사례가 많았는데 막상 말하려니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가장 근접한 사례를 들어보자. 진보들, 자신들이 저항자였을 적엔 표현의 자유 엄청나게 좋아하지 않았나? 표창원 의원의 박근혜 모독그림을 생각해 봐라. 근데 그들이 주도권을 쥔 지금은 어떤가? ‘https’, 유튜브 통제, 도처에 표현에 대한 규제 시도가 넘쳐난다.

뭐, 진보좌파 잔뜩 비난하긴 했는데 나라고 해서 진보좌파 사람이라면 무조건 아웃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다. 그쪽이라 하더라도 이념이나 정당에 매몰돼 합리적인 판단 능력이 결여되거나 비판적 사고가 더 이상 불가한 사람이 아니라면, 난 아직은 표를 줄 용의 정도는 있다.

필자 : 알겠다. 흥미로운 이야기 해주어 고맙다.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은 것은, 극좌를 0 극우를 10으로 할 때, 본인의 위치는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S씨 : 8 정도 아닐까 한다.

필자 : 알겠다. 혹여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은?

S씨 : 기자가 정치에 관심 있다는 것은 아는데 너무 몰입되진 않았으면 한다. 어떤 식으로건 불행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일상생활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선에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란다. ‘일상생활’을 상실한 정치라는 건 뒤틀린 허상일 뿐이라 생각한다.

필자 : 충고 감사하다. 나 역시 중요하다 생각하는 지점이며, 앞으로도 명심할 것이다.

3. 교육인 K씨(31세)

필자 : 시간 내주어 감사하다. 본인의 정치 성향을 자세히 말해 주기 바란다.

K씨 : 나의 경우엔 성장기 동안 정치에 대한 인식이 좌파는 분배고 우파는 성장? 이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잘은 모르지만, 분배를 주장하는 좌파의 대의에 막연하게나마 더 호의적이었던 것 같다.

필자 : 그 성향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나?

K씨 : 군대를 전경으로 다녀왔다. 그때가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는데 각종 시위에 많이 끌려다녔다. 아무래도 주로 좌파(?)라고 할 수 있는 진영 사람들이 주로 시위자들이었는데 그들을 접하면서 종래의 시각에 변화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필자 : 구체적으로 말하면?

K씨 : 일단 그들이 그렇게 순수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거대한 체스판 속에 어떤 정략적인 계산에 의해 시위를 나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필자 : 그 ‘순수하지 못함’이 좌파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나?

K씨 : 그렇다고 보긴 좀 어렵다. 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정략적으로, 계산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해한다. 근데 문제는 시위의 강도가 종종 너무 과격했다는 데에 있다.

필자 : 순수하지도 못하면서 과격하기까지 하니까?

K씨 : 그렇다. 그래도 그들이 가진 분배라던가? 대의 자체의 의미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아예 “좌파는 나쁘다!”는 식으로 의식이 굳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2012년도 대선까지 시간이 지났다. 그때 내가 누구를 찍었는지까지 말해야 하나?

필자 : 그건 본인의 의사로 판단하면 된다.

K씨 : 그냥 대선 토론당시 이정희라는 사람이 준 임팩트가 좀 컸다. 별 다른, 그렇다 할 비전도 없이 나와선 단지 상대방을 무너뜨리려고만 하는 모습에 심한 실망을 느꼈다. 암묵적으로 그들과 함께하는 문재인과 민주당계 세력에 대해서 역시 좀 문제의식을 느끼게 됐다.

필자 : 잠깐, 이전부터 이미 이정희와 통진당은 여론에 의해 많은 비난을 받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 선행감정이 들어간 것은 아닌가?

K씨 : 물론 나 역시 그런 이야기들을 나름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종북 성향이라던가 여하튼 그들에 대한 안 좋은 인식들. 그러나 대선토론 이전까지만 해도 그런 ‘썰’들에 대해선 그냥 긴가민가 정도로만 받아드리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대선토론을 보면서 확신(?)의 단계로 들어갔던 것 같다.

아, 이런 이들에게 표를 주면 위험하겠구나.

필자 : 그럼 이 이후론 쭉 우파의 삶을 살게 됐나?

K씨 : 그렇지도 않다. 난 그냥 중도다. 언제나 “내게 누가 실질적으로 이득이 되나?”를 중점에 두고 상황에 따른 판단을 내릴 뿐이다. 대선 토론은 말 그대로 그 대선의 선택에만 영향을 주었을 뿐이다. 당연히 최순실 사건으로 탄핵이 이루어진 다음 대선에선 또 다른 선택을 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4차 범국민행동(촛불집회)에 시민들과 함께 참석했다.

필자 : 다시 진보 쪽에 호의적으로 전환한 것인가?

K씨 : 그걸 진보에 대한 호의(?)라고 해야 하나? 난 그 사건 이후 진보진영이 상대적으로 호기를 잡았다는 것은 알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이 잘해서 그리된 것은 아니라고 봤기에 딱히 진보좌파들한테 호의가 추가되거나 하는 부분은 없었다. 다만 최순실 사건을 떠나서 당시 이슈가 됐던 불평등 문제로 “이젠 또 분배에 대한 추구가 필요한 때다” 정도의 생각은 했었던 것 같다.

필자 : 그때의 관점을 지금까지 계속 가지고 있나?

K씨 : 아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 대해 말하자면, 일단 성적표 자체가 너무 나쁘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을 것 같다. 각종 경제지표가 너무 최악이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자신이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아닌 보편적 대의에 의한 관점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본다.

근데 나처럼 이제 가족이 생기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고 나면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 “나한테 누가 더 유리한가?”로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경제 성적표가 이렇게 초라하면 좋은 평가를 줄래야 줄 수가 없다.

필자 : 음, 그 부분에 대해선 트럼프의 관세라던가 무역전쟁이라던가 하는 대외적 이슈 탓이 적지 않다고 보는데.

JULY 13, 2017 : The President of United States of America Donald Trump at the Elysee Palace for an extended interview with the french President.

K씨 : 모든 정책 방향성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분배가 필요할 때가 있고 성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지적한대로 국외상황이 엉망이라 한국경제가 무척 힘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분배보단 성장을 중점에 두고 과감하게 대기업 중심의 방향을 취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규제완화, 법인세 완화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은 그 방향이 완전 다르지 않나?

필자 : 잘 알겠다. 혹시 경제 말고도 다른 측면에 대해서도 말 해보고 싶은 것은 없나? 사회문화라던가.

K씨 : 원래 난 정치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말한 딱 이 정도를 넘어 특별히 더 떠오르는 이야기도 말하고 싶은 분야도 없다.

필자 : 그럼 본인이 종사하는 교육 분야에 있어서 좌우 문제를 논해 보는 것은 어떤가?

K씨 : 교육에 있어서 굳이 따지자면 난 우파 쪽 교육 담론을 더 지지한다. 이를테면 더 엄격한 통제관리의 필요성?

필자 : 오호

K씨 : 소위 교육에서 진보주의자들이 추구했던 더 자유분방함에 대한 허락(?), 이것은 학교를 더욱 어지럽혀놓은 측면이 적지 않다고 본다. 나 때였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일탈적인 상황들을 그저 넉 놓고 지켜만 보아야 한다. 말 안 듣고 멋대로 일탈하는 학생들, 그런 상황이 되면 그걸 마냥 놔두어야 하는지 교사로서 정말 깊은 회의감을 느끼곤 한다.

근데 나라에서, 위에서 터치하지 말라 그러니까. 교사는 둘째치고서라도 바람직한 지도를 받지 못한체 성장하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진보 당국자들이) 생각 해보는 건지 모르겠다. 바람직한 사회성이라든가 그런 것들 말이다.

필자 : 상당부분 공감한다. 그럼에도 하나 궁금한 점이 있는데, 혹시 본인의 학창시절은 어땠나? 학창시절에도 지금 가진 그 교육관이었나?

K씨 : 학창시절 때는 교육관에 대한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학생이면 당연히 통제된 상황에서 교사의 지시에 복종하고 그렇게 착실하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마치 숨을 쉬듯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닌 것 같아 종종 혼란스럽다.

지금 학생들의 학부모 세대는 HOT, 젝스키스로 상징되는 90년대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마구 꽃피운 시절에 청춘을 보냈던 이들이다. 그 때문에 이들은 교육을 더욱 자유분방하게 해야 한다는 정책적 분위기가 처음 형성됐을 때는 동조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거다. 학교에서 제대로 통제를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보다 바람직하게 사회화시키는 책임은 고스란히 학부모의 역할로 되돌아갔다. 자신들이 지지한, 소위 ‘진보적인’ 정책적 방향성이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필자 : 흥미롭다.

K씨 : 이는 또한 사교육 문제를 만들어낸다. 학교 교육이 엄격한 지식교육보단 자유분방함에 치중되자 필요한 수준의 지식습득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그 빈자리를 사교육이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학부모세대 스스로가 지지한 정책의 결과로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사교육의 비중은 더욱 커져 버렸다. 이런 이야기들은 보통 교육계에 깊게 들어오지 않으면 일반적으로는 잘 나오지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교육계 사람들끼리는 종종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필자 : 확실히 교육계 이야기를 하니 말문이 더 트이는 것 같다. 애초부터 교육 분야에 방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면 좋았을 듯싶다.

K씨 :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시간이 다 된 듯싶다.

필자 : 알겠다. 마지막으로 극좌 0, 극우 10이라면, 본인의 위치는 어디쯤으로 보는가?

K씨 : 딱 5다 5.

필자 : 알겠다. 좋은 시간 내주어서 감사하다.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K씨 : 고생이 많다. 하는 일 잘 되기를 바란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정말 다양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인터뷰들은 사람의 정치 성향은 실로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도 무수한 인터뷰가 필요하겠지만, 인터뷰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다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팩트인 부분, 팩트가 어긋난 부분, 수용할 수 있는 부분, 수용할 수 없는 부분, 정당한 부분, 억울한 부분 등 많은 발언에서 나올 수 있다.

필자는 그러한 것들을 스스로 판별하기보다는 가능한 있는 그대로 작성해 올리는 것을 추구했다. 대중 정치를 지향하는 집단에 있어서 옳고 그름 이전에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심지어 그 주장이 틀렸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 없는 상황에조차도 모든 것을 일단 들어줄 수 있는 능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대중들이 진보세력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를 안다는 것은 진보세력의 입장에서 정략적으로 중요하며, 상대를 설득시킬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적이 늘어나는 상황을 방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남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능력. 어찌 보면 (범 세계적으로) 진보좌파들이 상실해버린 능력이 아닌가 생각하며, 이 능력을 회복해 가는 길은 진보좌파가 다시 번창할 수 있는 길과 결코 다른 영역에 있지 않을 것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