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모든 것, 모든 것에 대한 사랑

[리뷰]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시험을 무사히 치른 후, 사람들과 모여 앉은 자리에서 직업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직업은 한 사람의 일생과 함께하며 그 사람을 크게도 만들었다가 작게도 만드는, 존재감 자체를 결정짓는다고 할 만큼 중요한 것이잖아요.

시험을 치르기까지 함께 고생했던 것도 결국에는 무엇이 되기 위한 노력이었으니 궁극적 목표는 다르더라도 그 길의 여정 중, 작은 지점에서 같은 목적으로 만난 우리들의 주제는 그와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당장의 먹고 사는, 하루의 문제가 급급한 것이 모두의 현실이긴 해도 그들이 바라보는 필자는 조금 달랐나 봅니다.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작가의 길은 뭔가 신기하다, 싶었나 봐요. 필자 역시 나와는 전혀 다른 전공의 전문가들을 만날 때면 갖는 환상이 있으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인문학과 가장 멀다 싶었던 이공계-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궁극적으로 밝히려는 게 우주의 기원과 인류의 미래라면, 그 역시 인간 존재에 대한 애정, 관심에서 출발한 목표니까요.

문학, 신학, 철학, 심리학, 과학 등이 전혀 무관하지 않으며 조금씩 맞물려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는 과정의 학문들이라는 점, 그 궁극엔 우리의 시작과 끝을 궁금해하고, 지금의 현실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염원이 담겨있다는 점이 공통점이죠.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오랫동안 미뤄온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우리 시대의 천재적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삶과 사랑을 다룬 영화인데요. 이쯤에선 더 미룰 수 없어 시청하게 됐습니다. 무신론자인 그가 처음 반하게 된 여성, 제인은 반대로 독실한 신앙인이데요. 서로 다른 관점에도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곧 그는 루게릭병이라고 알려진, 운동신경원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와 헤어질 결심을 하죠. 그러나 그녀는 용감하게, 혹은 무모하게 그의 곁에 남겠다고 말합니다. 선고받은 나은 생은 2년, 그러나 그는 그녀와 사랑하고, 2세들을 낳고, 시간에 대한 연구에 몰두합니다. 그렇게 2년이 아닌 그 후로 56년을 더 살았던 기적이 그에게 일어난 거죠.

그가 평생을 바쳐 노력했던 시간엔 특이점이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수학적으로 예측하지 못하는 아주 특수한 점이라는 뜻으로 시간을 되돌려 시초에 도달하는 순간, 즉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러나 그는 곧 블랙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번복해 블랙홀에서도 일부 입자가 방사돼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을 폅니다. 시간의 특이점이라는 개념은 여전하지만 블랙홀에 대한 새로운 이견엔 여러 반박이 뒤따르는데요. 이어 그는 다시 시간의 시초마저도 반박하는 연구에 몰두합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요. 한계가 없으니, 시작도, 신도 없다는 것이거든요.

제인과 스티븐은 힘겹게 이별합니다. 제인은 그녀의 힘든 처지를 돕고 있는 목사와 결혼하게 되고, 스티븐은 그가 의지하는 일레인과 앞으로의 생을 함께 하게 되지만 여전히 좋은 친구로 남아요. 헤어지기 전까지 그가 내린 연구의 결과는 제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는데요.

우리는 누구인가 여기에 왜 있는가 이걸 알아낸다는 건 인간 이성의 궁극적인 승리로서 그때가 되면 비로소 우린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현대 물리학의 큰 두 축은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으로 정리됩니다. 이 둘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이론이라서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두고 “신은 우주를 놓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스티븐 호킹은 “그러나 신은 주사위 놀이를 즐길 뿐 아니라 주사위를 인간이 찾을 수 없는 곳에 던져버리는 고약한 존재죠”라고 말해요.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무신론자였던 것이 아니라 하늘이 정해준 물리학자였던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의 가호를 받은 천재적 물리학자이기 위해서 무신론자여야 했던 것일지도 모르죠.

영화가 끝나는 지점에서 그는 한 청중의 질문에 인간에게 한계란 없다는 발언을 합니다. 이는 다시 무신론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 같지만 아직 우리가 살아있는 한, 그래서 온갖 희망과 가능성이 전제돼 있는 한, 아무것도 제대로 결론지을 수 없는 우주와 존재의 신비를 의미할 뿐, 신을 부정하는 말 같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의 생명이 이뤄낸 기적, 2년이 아닌 56년의 신비, 사랑이 낳은 자산들을 돌아보는 그의 눈 속에, 무엇보다 가슴 속에 신에 대한 열렬한 믿음과 찬양이, 그러므로 삶에 대한 희망과 감사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영화의 제목이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인데요, 원제는 이에요. 그의 대표적 저서의 제목은 of time>이고요. 아무것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우리의 시작과 끝이 만들어진 순간엔, 그리고 지금의 현실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드는 비법엔 사랑이 있었을, 있다는, 있을 것이라는 것만은 알겠습니다. 시작을 있게 한 것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랑임을, 그래서 사랑은 곧 모든 것임을.

내게 남은 생명 속에 어떤 기적의 씨앗이 심어져 있을지 모르므로, 분명 나의 한계를 결정지어줄 특별한 조건 속엔 한계 자체의 부재를 믿는 희망이 있을 것이므로, 나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힘으로 나를 살려야 하므로 오늘도 한 걸음, 떨어진 볼펜을 줍는 마음으로, 시초의 순간에 운동화 끈을 묶고 일어서는 기분으로, 한 눈금씩 한 바퀴를, 1440번씩 매일 도는 초침의 성실함으로 하루를 여는 서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