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예술과 현실

[리뷰]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인생 별거 없다는 말, 많이들 사용하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일희일비했던 모든 것들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았던 솔로몬 왕의 지혜로부터 부러울 만큼 대단한 행복도, 못 견딜 만큼 끔찍한 고통도 없다는 현실을 확인합니다. 또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이어온 삶의 체험으로부터 행복이라 믿었던 것이 되려 고통을 주는 경우도 있고, 고통이라 여겼던 것이 장애를 뛰어넘는 촉진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역설을 배웁니다.

우리가 끝끝내 연연해하고 죽을 것처럼 매달렸던 것들을 손에 넣게 된 직후 얼마 못 가 시들해지는 이유는 타성에 젖는 습관, 더 나은 것을 원하는 심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부여한 만큼 인생이란 게 정말 별거 아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로망을 품었던 장소로 여행을 가도,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해도 별반 감흥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 집 앞 창가에서 바라본 밤하늘이 별천지일 때가, 찬밥에 김치 얹은 한 숟가락이 꿀맛일 때가 있고요. 여행과 만찬, 그 외 온갖 것들을 포함한 인생은 다름 아닌 마음이 작용하는 장입니다. 마음은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감정들이 돌아다니는 장이고요.

마음이 편해야 인생이 풀리고 감정이 기뻐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거죠. 모든 것을 가졌어도 발 뻗고 잘 수 없는 불안한 마음은 누운 자리를 가시방석으로 만들고, 세상 가장 밝은 빛을 내는 별들을 봐도 시들해진 감정은 멍한 눈을 어둠으로 향하게 합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오스카 와일드 지음 / 더클랙식 출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는 각각 예술, 쾌락, 아름다움에 삶을 바친 바질, 헨리, 도리언이 나옵니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이상이라 믿고 있는 가치에 매달리는 것이죠. 바질은 도리언의 아름다움에 취해 최고의 초상화를 그려내지만, 그 안에는 자신의 영혼이 과하게 표현되었다고 여깁니다.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술은 예술가를 드러내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드네. 오히려 철저히 예술가를 감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겠지.

헨리는 도리언의 영혼이 자신의 말 한 마디에 점차 타락하는 것을 실험하듯 지켜보며 쾌락만을 즐기는 것 같지만 그의 사상 속에는 영혼과 물질의 결합, 지성과 열정의 조화, 예술과 삶의 관계 등 그도 몰랐을 삶의 비밀이 은밀하게 숨어 있습니다.

오히려 예술은 행동하려는 욕망을 무력하게 만들지. 예술이야말로 가장 영향력이 없는 존재네.

그리고 스스로 예술이 되려 한 도리언은 자신의 영혼을 초상화 속의 아름다움과 바꿔버리지만, 점점 타락하는 자신의 영혼을 목격하면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공명정대한 신에게 빌어야 할 기도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가 아닌 우리의 죄를 벌하여 주소서여야 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각각 바질, 헨리, 도리언을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 남들이 생각하는 자신, 스스로 되고 싶었던 자신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지닌 가치관을 종합해보면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예술과 삶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데 예술이 아무리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현실을 반영하는 장치일 뿐, 그것이 현실이 되려는 순간 삶은 망가진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영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빛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빛이 빛으로 존재하기 위한 조건 속에는 그림자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림자란 꼭두각시에 불과할지언정 생명력을 담고 있어 이를 부정할수록 더 그 존재를 드러내며 삶에 곁 따라 붙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100% 순전한 아름다움이란 너무 아름다워 죄성을 내재한 인간으로서는 탐할 수밖에 없지만,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행여 우리의 삶이 바라왔던 것처럼 최고의 예술이 되건, 현실 그대로의 추함만이 남은 악의 세계가 되든 영혼을 잃고서는 그 무엇도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아름다움을 탐닉하되 영혼을 잃지 않는 양심, 빛을 바라보되 그림자를 발끝에 매단 자세만이 우리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킬 것입니다. 진정한 삶은 예술보다 더 예술 같고 그 어떤 예술도 삶보다 현실적일 순 없거든요.

안개는 아름답지만 길을 잃게 하듯이 ‘real’ 하다는 것이야말로 삶의 신비이거든요. real함이 얼마나 신비한지, 삶이 얼마나 예술적인지 증명해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역할이 아니라 손 닿는 거리에 존재하는 당신과 나의 역할입니다.

‘인생, 별거 없다’는 말은 이미 삶 속에 존재하는 예술을 너무 멀리서 찾느라 정작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의 허탈함을 동반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충분히 아름다운 이 삶을, 추함마저 긍정할 수 있는 real의 신비를 잃지 말기로 해요. 서연이었습니다.